불멸의 작가, 위대한 상상력 - 서머싯 몸이 뽑은 최고의 작가 10명과 그 작품들
서머셋 모옴 지음, 권정관 옮김 / 개마고원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보기 전까지, 내가 경험한 서머싯 몸의 글이란 달랑 <달과 6펜스> 한 권뿐이었다. 책에서 받았던 좋은 감상이 여전한 것과 동일하게 '서머싯 몸'이란 작가 또한 내겐 그런 의미가 되는 존재이다. 이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을 보자마자 입질이 왔다. 즐거운 기대감에 휩싸인 채. 서머싯 몸이 뽑은 세계 10대 소설과 그 작가들이라. 목차를 살펴보니 헨리 필딩이란 작가만 빼면, 그 나머지 작가와 그들의 작품들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너무나 유명해서 익숙한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본 책보다 못 본 책이 단연코 많은 것이 사실이다. 나의 독서 성향은 다분히 소설 쪽으로 편중되어 있다. 소설이란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나도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이고.

각각의 장에서 해당 작가들의 일생과 됨됨이를 다루는 동시에 그것들이 그네들이 탄생시킨 문학작품과 어떤 관계를 이루고, 시간의 파괴력을 견디며 위대한 작품으로 남을 수 있었는지를, 믿을 만한 저자의 견해를 통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책이다. 왜냐하면 작가가 어떤 인물인지 알면 독자들이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p.31) 이름과 제목만 알뿐, 실상 제대로 아는 건 하나도 없었는데 책을 통해서 작가들의 타고난 기질 및 개인사를 일부나마 두루 알 수 있어서 실생활 속에서의 작가들의 모습을 파악해내기가 한결 수월했다. 작가들에 대한 동경이 있는 나로서는 내심 '작가들은 이럴 것이다' 하고 생각했었던 부분들이 있었는데 막상 속내를 알고보니 예상했던 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엇보다 '소설' 전반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견해라고 할까. '서머싯 몸' 자신이 직접 창작을 하는 소설가라는 입장에서 씌여졌던 점이 기존의 다른 비평가들이 쓴 평론집과는 차별화가 되어 소설의 본질적이고도 핵심적인 부분을 더 잘 짚어내고 있는 것 같다. 위대한 문학이라면 덮어놓고 장점만 있다는 듯 평가하는 세태에 익숙했던 나는, 장점뿐 아니라 정황상, 논리상, 부자연스러운 부분들에 대한 단점을 조목조목 짚어내고 있는 면이 퍽 신선하게 느껴져서 인상깊었다. 하늘 아래 완벽한 인간이 없듯이 완벽한 소설 또한 없다는 점을 새삼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인간적으로 어떻게 보면 장점이 있어도, 상대적으로 더 커보이는 결점을 지닌 작가들이었지만, 소설가로서는 꼭 지녀야 할 덕목인 개성과 창작의 재능 및 창작 본능을 가지고, 제각각 흥미와 재미를 안겨주는 뛰어난 소설을 창작 해낸 사람들이라는 그 이유만으로 단숨에 그 인물들의 결점이 커버가 되는 것 같다.

소설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납득이 가고 수긍이 가는 답변들을 발견하실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소설 기법들에 대해서 저자의 세세한 설명이 곁들어져 있어 창작을 하고픈 열망을 지닌 분들에게 요긴한 정보를 주는 면에서도 전혀 뒤쳐지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유익하고 유용한 독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매끄럽고 간명하게 표현해내는 동시에 이따금 재치 있는 유머러스로 따분하지 않게 조율해내는 저자의 문투 또한 이 책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나도 한때, 아니 여전히 이따금씩 쓰고픈 열망에 주책없이 가슴이 뜨거워지는 때가 있다. 간절히 쓰고 싶지만, 쓸 수는 없는 이 빌어먹을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심한 적이 있었더랬다. 왜 나는 쓸 수가 없는 걸까? 명확한 정답을 찾고 옳거니, 하며 무릎을 쳤다. 그 대목은 다음과 같다. 

[문학 저술가에는 두 부류가 있다. 문학이 수단인 부류와 문학이 목적인 부류가 그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전자의 범주에 드는 사람이었고, 지금까지도 줄곧 거기에 속해왔다. 나는 문학을 사랑할 권리, 내 능력껏 문학을 고양시킬 권리 이상의 것을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뒤 캉처럼 그 일원이 되는 것만으로 자족했던 부류는 지금까지 줄곧 다수를 형성해왔다. 이들은 문학적 성향과 문학에 대한 사랑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며, 개중에는 특별한 재능과 남다른 심미안, 그리고 높은 교양과 능란한 글 솜씨를 지닌 사람들도 흔히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전혀 갖지 못한 것이 있으니, 그게 바로 창작의 재능이다. 이 사람들은 젊은 시절에 한 두편의 시를 완성해봤거나, 그리 감동적이지 않은 소설도 한 편쯤 써봤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그것은 한때이고 결국은 자기들한테 한결 쉽게 여겨지는 일들, 이를테면 서평을 쓴다거나 잡지를 편집하는 일, 작고한 문인들의 선집에 서문을 쓴다거나 저명인사의 전기를 집필하는 일, 문학 소론이나 뒤 캉의 경우처럼 문학 관련 추억담을 쓰는 일 등에 종사하게 된다. (p.270 - p.271)

나는 창작의 재능이 결여된 것이 확실하다. 그저 문학에 대한 사랑만을 지닌 사람일 뿐이다. 저자의 깊은 이해와 안목을 빌어서 지적인 즐거움도 만끽해보고, 소설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저자의 탁월한 방식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얼마나 깊어져야 그런 것들을 표현해낼 수 있게 되는 걸까. '소설은 놀이다'라는 시작글에서 소설은 즐기면서 읽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한 저자. 소설이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가 즐길 수 있는 만한 재미와 가치같다. 시작에 버금가는 끝맺는 글도 이 책을 반짝이게 만든다. 누가 소설가 아니랄까봐, 등장한 10명의 작가들을 다 불러모은 파티장에서의 가상 에피소드 또한 얼마나 재밌는지. 특색있는 저자의 기발한 상상력에 반해버렸다.

작가와 작품과의 관계는 떼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더욱 알고싶은 마음이 샘솟는 것이리라.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성공적으로 달성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나로 하여금 각장의 해당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도록 만들었으니 말이다. 자신있게 일독을 권할 수 있을 것 같다. 맥없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유명한 고전을 없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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