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창조’라는 단어가 화두다. 삼성의 회장이 ‘창조경영’을 강조한 이후로 ‘창조적 열정’ ‘창조적 공존’ ‘상상력’이 화두가 되고 있다. 창조와 상상력이란 단어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것, 예측 가능한 것은 이미 상상력을 통한 창조가 아니다. 상상하지 못 했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창조의 힘이다. 그리고 창조를 위해서는 기존에 존재했던 전혀 다른 분야들이 함께 융합되기도 한다.

미디어 산업에서도 이런 창조적 융합이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영상산업에서 지상파 방송을 제외할 때 강자는 CJ와 오리온이었다. 영화산업에서 2강(强) 구도를 굳히면서 문화콘텐츠 산업의 중심에 있었다.

여기에 통신회사들이 뛰어들었다. SK텔레콤은 서울음반을 인수하고 연예기획, 영화제작, 배급사를 계열사로 둔 IHQ의 최대 지분을 확보했다. KT도 영화제작사 싸이더스의 지분에 참여했다. 통신회사들이 직접 콘텐츠를 만드는 분야에 뛰어들면서 이제는 2강 구도에서 4강 구도로 변했다. 유통을 주도하던 회사들이 콘텐츠 산업에 뛰어들면서 미디어 산업의 수직 통합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유통 기반을 가지고 있는 통신회사들이 제작 부문에 진출해서 수직 융합과 수평 계열화를 이루어 나가고 있다.

콘텐츠 기업이 유통 채널을 확장해 나가기도 한다. 미국의 디즈니는 ABC 방송과 ESPN 등을 인수함으로써 콘텐츠 유통 채널을 확대하고 있다. 기기를 만드는 회사는 서비스와 콘텐츠를 같이 융합하는 전략으로 시장을 휩쓴다. 애플은 하드웨어인 iPod와 서비스인 iTunes를 결합한 음악 서비스로 음악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통신회사의 콘텐츠 산업 진출에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무분별한 내용이 시장을 휩쓸어도 곤란하고 독과점 체제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한다. 통신회사와 중소제작사가 협력관계를 구축할 필요도 있다. 해외시장으로 나가기 위한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 정부와 업계에서 공동으로 수출시장 개척을 위해서 콘텐츠 제작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불법 복제로 나타나는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창조적인 융합의 추세는 비단 미디어 산업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학계에서도 융합의 추세는 나타난다. 최근 강연에서 만난 미국의 미래학자는 원래 공학을 전공했다. 공학 기반을 바탕으로 경영학과에서 가르친다. 새로운 기술이 시장에서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지 미래예측을 하는 일이 그의 전문 분야다.

공학과 경영학의 만남은 이미 전혀 어색하지 않다. 경영학에서 디자인 관련 책이 나오고, 소설가 출신 국문학과 교수가 디지털 미디어학과에서 온라인게임의 스토리를 생산한다. 인문학의 위기를 외치지만 실제로 인문학의 위기는 창조적인 융합을 거부하는 과거 집착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변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 변화에 맞춰나가는 사람, 그리고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면 무조건 빨리 변해야 한다는 삶의 태도를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하다. 변화가 싫어서 일부러 느리게 사는 방식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변화가 다 비인간적인 것만은 아니다. 변화가 살벌하지 않고 즐거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창조’라는 유쾌한 단어 덕분이다.

강미은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http://weekly.chosun.com/wdata/html/news/200611/200611140000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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