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과거가 말하고 있는 것들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 문정인·김명섭 외 지음
연세대학교출판부 | 615쪽 | 베틀북 | 2만2000원
‘삶’과 ‘죽음’이 떼어놓을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라면, ‘평화’와 ‘전쟁’도 마찬가지다. 한 인간이 죽음에 대해 고민할 때 비로소 삶의 소중함을 알 수 있듯이, 전쟁에 대해 고민하는 국가만이 평화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한국평화학회의 주도로 15명의 학자들이 함께 집필한 이 책이 ‘전쟁’에 대해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책은 먼저 근대 이후 동양에서 벌어졌던 큰 전쟁에 대해 하나씩 고찰한다. 아편전쟁이 동·서양의 문명사적 질서를 재편하는 전쟁이었다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동아시아 질서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제국주의와 반제(反帝),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파시즘과 민주세력, 그리고 문명 사이의 전쟁이었던 아시아·태평양전쟁은 보다 복합적인 전쟁이었고 지금의 한반도 문제를 낳았다.
6·25 전쟁에 대해서는 “내전(內戰)이라는 시각은 이미 설득력을 잃고 있다”고 주장한다. 새로 발굴된 소련 문서를 통해 이미 스탈린의 남침 승인과 지원 사실은 밝혀졌고, 이제는 당시 소련의 세계 전략적 목적과 그 배후를 밝히는 데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고 이 책은 분석한다. 향후 한반도 내에서 전개되는 어떤 예측 불가능한 상황도 주변 국가들에 의해 역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상황은 6·25 직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말한다.
제2부는 현재 상황에서의 전쟁 위협과 평화체제 모색에 대해 살펴본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패권 체제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급부상을 주변국이 이해하게 하려는 전략을 쓰고 있지만, 중국 민족주의가 부상할 경우 경제 불황의 상황에서 국내정치적 문제가 외부로 표출할 위험성이 있다. 그럼 일본은? 미·일 동맹체제 자체가 군국주의로의 회귀 정책으로 보기는 힘들고, 평화헌법과 ‘핵 3원칙’ 등을 명시적으로 파기하지 않는 이상 공격적 군사행동을 예단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동아시아의 영구적인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선 배타적 동맹 논리에서 벗어난 다자(多者) 안보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충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