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미지 되살리는 佛작가 알랭 플레셔 국내 첫 전시
죽은 여인 얼굴·명화 장면 등을 암벽·건물에 투영한 뒤 사진찍어
“준비과정에 엄청난 시간 들이고 결과는 우연의 법칙에 맡깁니다”
모터 달린 장난감 자동차가 뒤에 작은 거울을 매달고 달린다. 거울 위에는 명화의 여성 누드 이미지를 영상으로 쏜다. 어느 순간 이 모델이 신비하게 움직이는 듯한 모습으로 잡힐 때에 사진을 찍는다. 마치 컴퓨터로 합성한 듯한 이미지가 나오지만, 실은 철저하게 물체의 움직임을 계산하고 시간을 들여 만든 것이다.
알랭 플레셔(Alain Fleischer·62)는 온갖 독특한 방법을 써서 사람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비현실적인 순간을 현실 속에 나타나게 하는 프랑스의 유명한 사진·영상 작가다. 죽은 사람의 얼굴 사진을 땅 위나 물 위에 쏘아 한밤에 유령이 나타난 듯 만들고(‘얼굴들의 밤’), 컴컴한 밤 건물 외벽에 영화를 상영하고 사진을 찍어 환상적인 ‘영화도시’를 만든다(‘치네치타·cinecitta’). 성곡미술관에서 첫 국내 초청 전시회를 하는 그를 만났다.
▲ 알랭 플레셔가 작품‘치네치타’를 보여주고 있다. 한밤에 로마의 한 건물 옥상 벽에 영화를 상영하면서 뒷배경인 바티칸시티가 보이도록 사진을 찍어‘영화도시’를 연출했다/최순호기자 | |
“나는 절대 사진을 변형하거나 오려붙이지 않아요. 다만 물체가 움직이도록 연출해서 죽은 이미지에 ‘제 2의 삶’을 주는 겁니다. 19세기 화가 앵그르의 그림은 루브르 박물관 밖으로 나올 수 없지만, 그 그림 영상을 시드니에 있는 어느 집 부엌 벽에 대고 쏘면 현대의 앵그르로 다시 태어나는 거지요.”
그래서 자기 작품을 “투사(projection)와 투영(refl ection)을 통해 죽은 것을 살아나게 하는 놀이”라고 그는 요약했다.
플레셔는 소르본 대학과 프랑스 사회과학 연구원에서 문학·언어학·인류학을 전공한 뒤 사진·영상 작가가 됐다.
“아버지는 제가 인문학자가 되기를 원했기에 전 늘 두세 가지를 동시에 공부해야 했어요. 그래서 평생 네 시간 이상 자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인문학 공부는 미술작업에 큰 도움이 됩니다.”
현재 프랑스 국립영화학교 ‘르프레느와’의 디렉터인 그는 파리 퐁피두센터가 올해 30주년을 맞아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를 감독하기도 했다.
“어느 작품에나 여성 모델이 등장한다”고 말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맞다. 난 여성 이미지를 좋아한다. 미술사는 곧 여성의 역사다”라고 답했다.
“여인의 몸은 예술적 영감으로 가득합니다. 여성을 통해 아름다움, 시간, 세월, 사랑, 꿈, 역사란 주제를 다 표현할 수 있어요. 예술가들이 남자보다 여자의 몸을 좋아하는 건 그 때문이지요.”
▲ 얼굴들의 밤’시리즈. 검푸른 밤바다 암벽에 죽은 여인의 얼굴 영상을 쏜 뒤 사진을 찍어 거친 바위표면이 여인의 피부처럼 보이게 했다/성곡미술관 제공 | |
그는 자기 예술을 ‘깜짝 예술(art of surprise)’이라고도 표현했다. 포토샵 등 기교를 쓰지 않고 영상과 물건이 제멋대로 움직이도록 연출만 한 뒤 어떻게 나올 지 모르는 결과를 잡아 찍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보통 결과에 시간과 공을 들이지만, 전 준비과정에 시간을 엄청 들이고 결과는 우연의 법칙에 맡겨버리는 거지요.”
그는 소설과 에세이를 20여 권 쓴 소설가이기도 하다. “난 사진을 찍을 때, 영화를 찍을 때, 소설을 쓸 때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고 그는 말했다. ▶내년 1월 21일까지 성곡미술관. 5000원. (02)737-7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