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는 짧지 않았건만, 일년은 어느 새 또 쑥 흘러가버렸다.
올해는 회사에서 많이 부대끼지 않고 편하게 지냈다.
어쩌면 삶의 중심점을 조금 더(훨씬 더) 회사에서 멀리 놓고 편해지는 방법을 조금 더 터득한 건지도 모르겠다. 왠지 그 점이 스스로도 썩 맘에 든다. 하하.
몇몇 친구들과는 더 단단해졌고, 몇몇 사람들과의 부질없는 관계는 끊어졌다. 이것도 괜찮은 것 같다. 그렇잖아도 몇 없는 친구들이긴 하지만 부러 그 수, 늘일 필요도 없는 것이고. 쓸떼없이 산만스러운 삶 말고 요렇게 미니멀한 삶도 꽤 괜찮을 것 같다. 왜 이렇게 올해는 괜찮은 짓만 한것 같담. 하하.
그리고 또 의미있는 한 가지는 드디어 내가 번역기획한 책으로 번역서를 냈다는 것. <월간 윤종신>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어서(그 바쁜 와중에도 정기적으로 하는 뭔가를 해낸다는 '성실'의 관점에서,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본업)을 놓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나도 <월간 ***>을 내는 마음으로 올해를 보내야겠다 마음을 먹고, 한달에 하나 꼴로 기획서를 써서 출판사에 보냈다. 폴더명도 <월간 ***>이었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끝에 어쨌거나 올해가 가기 전에 내 인생의 첫 번역서를 냈다. 일하면서 좋은 인연도 만나고, 고마운 일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 과정들이 너무 신나고 재미있었다. 생활의 활력소 같은 느낌. 천천히 가더라도 꾸준히 갈 수 있기를.
올해는 내 일에 더 집중하느라고 잘 살펴주지 못하는 동안 아이들은 훌쩍 커버렸다. 첫째는 대답이 짧아지고 간혹 승질도 부리는 초딩 5학년이, 둘째는 친구들과 한 문자 좀 보여달랬더니 자기 프라이버시를 지켜달라는 초딩 3이 되었다. 초등고학년이 되어 첫째를 수학 학원을 보내보긴 했는데, 숙제하면서 하도 짜증을 내서, 돈 내고 짜증까지 덤으로 받는 건 아닌것 같아 수학학원도 끊어버리고... 다시 자기주도학습모드로 돌아가보자 하고 있지만, .... 엄마 없이 자유가 철철 넘쳐날 방학에 어쩐담 싶긴 하다. 게임과의 전쟁으로 사이가 안 좋아지는 중이기도 하고. (이거 정말 어째야 해... -,-;;)
아들이 그려온 생활계획표는 아침먹기, 자유시간, 점심먹기, 자유시간, 방과후 농구, 영어학원, 숙제, 자유시간, 저녁먹기,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내기, 잠자기...... 이런 식. 오전이 너무 텅텅 비어서 부랴부랴 한체대에서 하는 스케이트 강습을 신청했다. 집에서 걸어갈 수 없는 거리라, 둘이서 처음으로 대중교통으로 엄마아빠없이 다니는 건데 잘 할 수 있겠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일텐데도, 괜히 엄마가 더 겁을 낸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아이들도 자기들끼리 해내는 경험이 필요하다 싶어서 신청하긴 했는데, 나도 훈련이 필요하다. 자꾸자꾸.
올해는 집값과 전세값이 자꾸 올라서, 속상하고 화가 나서 나도 뭔가 분양을 받아야 하나라고 생애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보았더니, 하하.... 이미 분양을 받을 수도 없는 분양가더라고. =.=; 대출을 내더라도 살 수 있지가 않더라고. 하하......하. ㅜ.ㅜ.
회사에 번역일에 애들에... 한꺼번에 해내기에 만만히 않은 일들이었으니, 어디엔가는 구멍이 났을테고, 그럴때면 제일 만만한 가족들이 그 구멍이 되는 것 같다. 내년엔 조금더 남편과 아이들에게 신경써야지.
올해 알라딘을 수없이 들락거렸지만, 서재글들은 자세히 보지 못했다. 연말이라 책 좀 지르고, 서재를 둘러보니 책읽던 분들이 여전하셔서들 기쁘고 든든하다. 알라딘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모두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