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 걸

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ㅣ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일단 표지가 참 예쁘다. 띠지처럼 싸는 표지가 불편해서 무척 싫어하긴 하는데, 이쁘긴 하다.

<랩 걸>이 무엇인가. 했네.

한 '여성'과학자의 일과 사랑과 삶에 대한 아주 진솔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전히 '여성'에는 구분짓는 작은 따옴표를 넣어서)

지루하고 오랜 작업을 끈기를 가지고 해내고, 수많은 실패를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순수 과학자에 대한 경외심도 일었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일하는 구나.. 정말 나는 한번도 경험하거나, 행여라도 그런 생각조차 한 적이 없는 세상은 이렇구나 싶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동등한 평가를 못 받는 것에 대해서는 덧붙여 이야기할 것도 없겠지만 여전히 속상했고, 아기를 가지고 보내는 힘든 시간(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당하는 처우, 일을 하지 못하는 것 등)을 읽으면서는 가슴이 아팠다.

식물들에 대한 여러 정보들도 물론 흥미로웠고. 빌과의 관계도 따뜻하고 놀라웠다.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며, 풍성한 읽기를 가능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사람을 식물과 같다. 빛을 향해 자라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과학을 선택한 것은 과학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의 집, 다시 말해 안전함을 느끼는 장소를 내게 제공해준 것이 과학이었다.

 수없이 많은 계획서를 냈으니 그중 한 개쯤은 언젠가 계약 성사로 이어질 테니까.

선인장은 사막이 좋아서 사막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사막이 선인장을 아직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사는 것이다. 사막에 사는 식물은 어떤 식물이라도 사막에서 가지고 나오면 더 잘 자란다. 사막은 나쁜 동네와 많은 면에서 비슷하다. 거기서 사는 사람은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어서 가기서 사는 것이다. ... 식물이 인간 사회에 가지는 의미는 세 가지 뿐이기 때문이다. 식량, 의약품, 목재.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사막에서는 얻을 수가 없다. 그래서 사막 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는 종국에 가서는 자기 분야의 비참함에 이골이 나고 만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고통을 날마다 견뎌낼 자신이 없다.

떠나면서 그녀가 우리에게 주고 간 선물은 한 번 고칠 때마다 엄청나게 양이 늘어난 그녀의 '논문'이었고 나는 그 논문이야말로 새로운 문학 형식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주장했다. 그 논문은 모든 면에서 말이 안 됐다. 14폰트 크기의 파라티노 서체부터 제본할 때 불행하게도 몇 페이지를 거꾸로 묶은 것에 이르기까지. 불면증의 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나는 말이 안되는 마시의 세 페이지짜리 문단 하나를 읽고, 바로 뒤를 이어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한 부분을 읽었다. 그리고 빌에거 어느 것이 누구 작품인지 알아맞추고 비판적 분석와 함께 그 이유를 대라고 말했다.

사랑과 공부는 한순간도 절대 낭비가 아니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저 여자가? 그럴 리가. 뭔가 실수가 있었겠지." 전 세계 공공기관 및 사립 기구들에서는 과학계 내 성차별의 역학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이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결론지었다. 내 제한된 경험에 따르면 성차별은 굉장히 단순하다. 지금 네가 절대 진짜 너일리가 없다는 말을 끊임없이 듣고, 그 경험이 축척되어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 바로 성차별이다.

"아, 넌 잘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에드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때까지 너무 지치지 않도록 조심해. 알았지?"

내 몇 년에 걸친 노력을 완곡하게 인정해준 그의 말 덕분에 이별이 더 가슴 아팠고, 갑자기 목이 메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