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인간이 감각을 극복 할 수 있을까? 만약 감각을 극복한 인간이 있다면 그는 어떤 인간일까?
그 사람은 일흔 두 살 먹은 노인이었다. 옆집 할아버지처럼 비쩍 마르고 볼품없는 체구를 가진 평범한 사람이었다. 베트남의 승려로 평생을 살아온 그의 이름은 틱쾅둑(Thich Quan D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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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베트남의 정부는 불교를 금지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과연 종교가 인민의 아편일까. 실제로 지배계급은 종교를 이용했고, 종교는 체제에 봉사하는 측면이 있었다. 맑스의 말 대로 그것은 인민의 용기를 거세하는 '아편'이기도 했다. 체제의 권력을 이용해 종교를 멸절하겠다는 베트남 정부의 생각은 그런 의미에서 진보적이었다. 존 레논이 말한 종교없는 세계의 이상. 어쩌면 그들은 그 세계를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틱쾅둑은 그들의 맞은편에 서기로 했다.
나는 틱광둑의 삶에 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다. '고승'이었다는 세간의 평판으로 봐서 아주 어린 시절부터 불가에서 잔뼈가 굵은 이일 거라고 추측 할 뿐이다. 그가 구체적으로 정부의 종교 탄압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자신이 태어나 평생 살아온 하나의 세계가 부정 당하는 것에 절망했을까? 아니면 종교라는 이름의 다양성을 거세하려는 정부의 시도에서 파시즘의 징후를 읽어냈을까? 어쩌면 종교라는 아편 없이 살기 힘든 중생들의 안위를 내다 본 것일까?
#. 2
통증감각기에 감지된 외부의 충격은 신경섬유를 따라서 척추로, 척추에서 P라는 아미노산 결집체를 건드리고 P는 뇌로 통증의 정보를 전달한다. 이 단순한 자극의 인식경로가 바로 '통증'의 매커니즘이다. 이 간단한 매커니즘은 인간과 인간의 역사를 지배한다.
오른 어깨를 담뱃불로 지져본 적이 있다. 아주 짧은 순간, 어깨의 한 점 밖에 안되는 살에 뜨거운 것이 닿았을 뿐인데 심장이 저리고 손이 저절로 후들거린다. 반사적으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온다. 그리고 남은 건 밤새 욱신거리는 아픔과 후회. 또 꼭 담배의 동그라미와 비슷한 지름의 상처, 그리고 통증에 대한 초라한 증명 뿐이었다.
보통 사회과학에서는 '권력'을 '남에게 어떠한 일을 강제적으로 시킬 수 있는 힘'이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이 정의에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다. '어떻게?' 바로 통증에 의해서다. 채찍으로 후려 치고 굶겨 배고픔을 느끼게 만드는 것. 시대가 변해도 방법은 변하지 않는다. 현대에도 결정적인 순간에 국가는 육모 방망이를 빼 들고 시민의 머리통을 후려갈긴다. 물론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진보한 측면도 있다. 일시에 다수의 숨통을 틀어 막는 화학가스를 살포하고 추운 날 모인 시민들의 얼굴에 찬 물을 끼얹는 방식. 고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기술적 진보가 아닌가.
그렇게 시민들은 '통증'이 유발되기 쉬운 상태에 있기 때문에, '통증'이 잘 유발되지 않는 상태로 전환되길 원한다. '어떻게?' 체제에의 순응을 통해서.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고, 좋은 학벌을 갖기 위해 공부하며, 다수에 미감에 맞춰 외모를 꾸민다. 결국, 대중은 통증을 지배하는 것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는 것이다. 실상 무엇이 그렇지 않은가. 가족, 부족, 국가, 학교, 병원, 군대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누구나 그렇게 지배당하고, 그렇게 길들여 진다. 나도 내 나약한 신체에 가해진 무수한 고통들 앞에서 무력했을 따름이다.
길들여진 육체로는 길들여진 사고를 할 수 밖에 없다. 현대 교육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행동주의 심리학은 심신이원론에 가렸던 이 진실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그리고 체계적으로 인간의 육신을 길들이는 방법을 고안해 내기 시작했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들 이전에도 거의 본능적으로 그러한 체계를 발견해 낸 자들이 있었다. 고문실의 주인들. 그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인간의 감각에 고통을 퍼부음으로써 인간의 육체와 사고를 컨트롤했다. 그것은 늘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팁. 이명박을 지배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명박의 고통을 지배해야 한다. 방법이 없다고? 혹시 아는가 열심히 집회에 참석하다 보면 우연히 TV에서 그 모습을 본 이명박이 스트레스성 위산과다로 속이라도 쓰리게 될지. TV에 당신의 모습이 자주 나오고 이명박의 위산과다가 그 횟수에 비례하게 된다면 그도 당신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게 될 수 밖에 없을 거다. 마침내 당신은 '권력'을 획득한 것이다.
#. 3
틱쾅둑은 그의 심장에 불을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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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씨 수천도의 불은 그의 나약한 육체를 집어 삼켰다. 불꽃과 유독가스가 살을 태우고 숨통을 틀어맏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 그는 가부좌를 틀고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꼿꼿히 세웠다. 미동이 없다. 피부에 수포가 맺혀 터지고 체액이 터진 상처 틈으로 기화한다. 어느새 옷은 타들어가 시커먼 재로 변했고, 그의 오감은 이미 살았을 때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의 자세는 아직도 단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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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멈추지 않고 타들어가 딕쾅둑의 질량을 빛과 열로 연소시켰다. 남은 그의 몸은 한 줌 밖에 안 되는 잿더미. 바람이 불어 가벼워진 그의 시신을 쓸어 넘겼다. 아주 가벼운 육신의 껍데기가 고치처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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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금지된 나라에서 사람들은 타오르는 그의 신체를 앞에 두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한다. 아마도 그들 모두가 불교도는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이제 그들 모두에겐 종교(從敎), 따를 가르침이 생겼다. 이제 자신을 모두 연소시킨 틱쾅둑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타오르기 시작했으니까.
어떻게 그는 통증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나는 적절하게 그 현상을 설명할 방법이 없고 따라서 '몸'과 '정신'이 일치한다는 현대 과학의 보고서에 대해서 판단을 유보 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감각을 극복한 새로운 인간과 사회의 가능성에 대해서 고려해 보게 되었다. 통증과 통증을 불러일으키는 권력, 혹은 폭력이 감히 인간의 행동양식을 규제 할 수 없는 사회를.
#. 4
틱쾅둑은 자신의 감각을 극복했고, 의도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베트남 정부라는 '체제'도 극복했다. 틱쾅둑 이후 국내, 국제사회의 여론에 부딪히던 베트남의 디엠 정권은 군부 쿠데타에 의해 몰락하였고, 종교 탄압 정책은 결국 종교를 실용적으로 활용하는 실용정책으로 개선된 것이다.
내가 올린 마지막 순간 그의 사진은 사진작가 말콤 브라운에 의해 촬영된 것으로 말콤 브라운은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훗날 락 그룹 RATM의 쟈켓 사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