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네가 맨발로 달려나와 날 껴 안는다. 좋다는 병원 데리고 가서 치료한 보람이 있는지 눈에 백탁이 많이 가라앉았다. 다행이다. 그녀의 은발은 아직도 부드럽고 성성하다.
밀린 빨래를 했다. 오래된 비디오 테이프들을 버리고, 책장을 정리했다. 백팩과 새 핸드랩과 책 몇 권을 샀다. 밀린 뉴스를 보고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부스스 일어나서는 피아노를 띵똥거렸다. 자주 치던 곡들도 이젠 초반부 밖에는 기억나지 않는다. 피아노, 조만간 너도 창고행이다.
소식들은 우울하다. 특히 그의 죽음은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노무현 죽음 이후에 그의 행보를 보며 막연히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게 아닐까 생각 했었는데 정말 이렇게 가 버릴 줄이야. 하지만 정말 슬픈 사실은 그것 말고 아무것도 변한것이 없다는 거다. 하지만 쉽게 낙담하지는 말자. 가장 어둠이 짙은 새벽이 지나야 아침이 밝지 않던가.
그 긴 시간을 고민하고서도 나는 역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삶의 방향은 진북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나침반으로도 길 찾듯 찾을 수 없었다. 이제 적은 나이도 아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해가 짧아졌다. 밤바람이 서늘하다.
가을이다.
일단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