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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주는 레시피
공지영 지음, 이장미 그림 / 한겨레출판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모택동, 덩샤오핑 나이 운운하는 전근대적 유머감각과, 에모토 마사루를 인용하는 짱돌급 지성을 갖췄다면, 꼰대질은 자제하는게 맞다. 다만 ‘꿀 바나나‘등 몇 가지 레시피는 쓸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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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7-01-06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렇게 쓰면 북플에 뜨는거구나..

뷰리풀말미잘 2017-01-06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익명성에 기대고 싶었는데...

AgalmA 2017-01-07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뷰리풀말미잘 님이 <딸에게 주는 레시피> 리뷰 쓰신 게 저는 왜케 웃기죠? 왜죠?
시비 아니고 웃음을 주셔서 고맙다는 뜻 ㅎㅎ
한수철 님은 그림 내놔라 해놓고 신나게 걸어두고 어디로 도망간 건지ㅎ;;
뷰리풀말미잘 님이랑 한수철 님이 대화하는 풍경을 그리고 싶었는데 ... 보여 줘야지! 말입니다.

뷰리풀말미잘 2017-01-09 08:23   좋아요 0 | URL
금요일 오후에 이 책을 읽다가 문득 100자평이 적고 싶어서 일껏 검색을 하여 이 책 페이지에만 살짝 적었거든요? 그게 제 서재에 두둥, 떠 있네요.. 전 책 페이지에 써 놓으면 거기만 있는 건 줄 알았죠. 이미지 관리 실패.

비댓이니까 하는 말인데 한수철님은 보면 볼수록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으신 양반 같아요. 제가 왕이었으면 잡아다 아주 멍석말이를 하라고 했을 겁니다. 아니, 모든 알라디너가 갖기를 열망하는 아갈마님의 그림을 소장하게 되었으면 엎드려 절하고 용맹정진하여 글을 쓸 일이지. 잠수를 타다뇨? 내 참.

솔까말 제가 한수철님한테 댓글 달 때 표정. (-_-) 이럼.

AgalmA 2017-01-09 08:3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용맹정진...뿜))

한수철 2017-01-08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galma 님/ 이것 보세요 저 6일 아침에 올해의 첫 일기를 올렸는데요?

뷰리풀말미잘 님/ 꿀 바나나가 뭔데요? 짧게 설명 부탁합니다. 싫다고 하지 마시고.

뷰리풀말미잘 2017-01-09 08:25   좋아요 0 | URL
어머, 안녕하세요 한수철님.

꿀 바나나는 사진 페이퍼로 작성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이고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

AgalmA 2017-01-09 08:41   좋아요 0 | URL
한수철님, 제가 알라딘의 모든 글을 다 관찰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하필 1월 6일 한수철님 글은 못 본 건 인정하죠~ 하지만 12/30~ 1/6일 전까진 잠수 타셨잖아요~ 흥흥)
아니, 남의 서재에서, 그것도 딸에게 주는 레시피 글에, 꿀바나나 설명해달라는 댓글에 이 무슨 꼴사나운 댓글인가. 아놔.

그나저나 뷰리풀말미잘님 글이지만 얼굴 당기지 않아요-,.- 이 글에서 이미지가 몇 번이나 바뀜? ㅎㅎ;;; 참 재미난 분이시야.

뷰리풀말미잘 2017-01-09 09:22   좋아요 0 | URL
한수철님/ 꿀바나나 페이퍼 작성함. ㅋㅋ

아갈마님/ 해리성정체장애가 있다능.. ㅠ
 

 

 

 

 

 

 

 

 

 

 

 

#. 1

 

예수게이는 보르지긴족의 족장이였다. 어느 날 전투에서 적장을 사로잡았는데 그의 기백을 높이 사 동료가 될 것을 청했다. “함께 하겠는가.” 그러나 긍지 높은 초원의 전사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고, 예수게이는 그를 베었다. 마침, 아들이 태어났는데, 예수게이는 아이에게 죽은 전사의 이름을 붙였다. 그 아이가 테무진이다. 

 

쟌은 딸에게 내 이름을 붙였다. 그녀도 사자가 되리라.

 


#. 2

 

쟌과 나는 분기마다 만난다. 내가 사람 만나기를 달가워하지 않으므로 쟌은 내게 있어 가장 빈번하게 만나는 친구다. 그는 올 때 마다 세계의 소식을 들려준다. 중국의 발전도상, 마이클 주커버그의 회의를 참관한 얘기, 멕시코의 정치사를 듣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나도 막 신이 나서 최근의 관심사에 대해 떠들어 대는데, 중국의 석유 재고량 변화 동향이라든지, VR에서 휴먼 플랫폼으로 이어지는 기술의 발전이 인류 구원의 가능성이라든지 하는 변태 같은 얘기들을 고맙게도 주의 깊게 들어준다.

 

최근에 쟌은 남미에서 1년 만에 돌아왔다. 그 동안 스페인어를 공부했단다. 언젠가 김용옥은 일본 학자들의 아카데미즘을 말하면서 눈물이 난다고 방정을 떨었는데, 쟌이 공부한 흔적(엑셀로 공부 한 걸 정리한다.)을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수천 개의 단어를 변형태까지 완벽하게 정리한 표가 쉽게 만들어 질까. 공부를 취미처럼 하는 사람이라도 고단하고 외로웠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세 번째 언어를 거의 마스터 한 것 같다.

 

공부로 그와 쌍벽을 이룰 수 있을만한 이는 공부전문가 김늘보 뿐이다, 쟌과 김늘보 중 하나를 얻는다면 천하를 삼분할 수 있으리. 한편, 김늘보의 공부는 쟌과 사뭇 다르다. 그는 언어에 관한 한,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흡수한다. 늘보가 깨닫고 체계를 만든다면, 쟌은 바닥부터 체계를 쌓아 깨닫는 듯하다. 돈오점수와 돈오돈수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전자의 방법을 따르기에는 지모가 모자르고, 후자를 따르기에는 인내가 모자르니, 지지부진하다.

 

“늘보 소가 공부를 잘 하오, 쟌 소가 공부를 잘 하오?” 호사가가 있어, 귓속말로 묻는다면, 나는 매우 난감한 지경에 처할 것 같다. 소들 중 한 마리가 굉장히 성격이 괄괄하기 때무... 그러나 자왈,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 아마 즐기는 소가 더 잘 하게 되겠지. (아마 ..소가 더 잘 하는 것 같소.) 나는 사느라 바빠서 지지자도, 호지자도, 락지자도 아니게 된 것 같다. 문득 기분이 고자누룩해진다.


 

#. 3

 

동영상으로 만난 별이와 솔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오, 사랑스러워라. 별이는 나의 다소곳하고 나긋나긋한 매력을 닮았고, 솔이는 도도하고 시크한 매력을 닮았다. 무럭무럭 자라는구나. 그녀들이 자라는 속도를 보건대 내가 다시 동화책을 읽어줄 기회가 있을까. 시간이 섭섭하다.

 

그래서 읽어주지 않아도 보고 즐길 수 있는 책을 사 주기로 했다. 그런 책을 한 권 알고 있다. ‘동물과 대화하는 아이 티피’ 나는 이 책을 여러 번 읽고 그녀들의 아버지에게도 빌려줬었다. 지금도 가끔 꺼내보는데 볼 때마다 힐링이 된다.

 

티피 드그레는 7살 꼬마다. 꼬마의 부모 실비 드그레와 알렝 드그레는 야생동물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사다. 드그레 가족은 일정한 거주도 없이 나미비아와 보츠니아의 자연에서 십년을 살았다. 이 책은 당시의 기록이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아름다운 자연과 어린 소녀가 빚어내는 풍경이 이렇게나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우리가 그곳으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 4

 

자연에 살아 본적 있는가. 나는 있다. 아산에 해발 700미터에 달하는 광덕산과 드넓은 들이 모두 가문의 땅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윗대에 이르러서는 뺏기고 팔리고 잃어서 형편없이 쪼그라들긴 했지만, 어린 나에겐 우주처럼 넓었다.

 

비 오면 부드럽게 올라오는 흙냄새, 산허리 휘감은 아침 안개의 신비함. 타닥타닥 모닥불 타는 소리, 매운 연기에 쫓겨 하늘로 고개를 올리면, 으아아 쏱아지는 별자리들. 개구리 잡고 토끼 덫 놓고, 고둥 따고, 사슴 쫒고, 뱀 피해 도망 다니던 시절, 숲에는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느릅나무, 은사시나무가 빼곡했고, 쑥 뜯고, 버섯 따고, 철마다 앵두와 보리수와 돌배와 살구와 산수유를 먹었다. 나는 사상이든 사물이든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숲의 구멍이란 구멍마다 손을 넣어 봤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 용기를 낸 다음, 고사리 같은 손에는 늘 새롭고 흥분되는 뭔가가 들려있었다. 

 

듣자하니 유럽에서는 ‘숲 유치원’이 유행이란다. 숲 유치원에는 시멘트 건물이 없다. 숲이 학당이다. 그리고 보면 프뢰벨이 킨더가든의 개념을 떠올렸을 때, kinder(애들)가 뛰어노는 garten(정원)을 생각했을 터인데, 우리 사회의 유치원은 과연 아이들의 정원인가. 한자와 영어와 산수와 과학을 가르치는, 직장인 되는 과정은 아닌가. 그러니까 숲 유치원은 아이들에게 자연을 돌려주자는 시도다. 어떻게?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춥건, 덥건 숲에 아이들을 던져 놓는 거다. 그럼 자연이 아이들을 돌본다. 금이야 옥이야 키우던 우리아이가 학교에서 잘 못 지내는 것 같다고 교수에게 전화하는 요즘 엄마들이 그럴 수 있을까. 어쨌거나, 연구에 따르면, 숲 유치원에 다닌 아이들이 일반 유치원에 다닌 아이들에 비해 신체와 정서를 아울러 대부분의 영역에서 월등한 발달을 보인다고 한다. 

 

요즘엔 애들도 비만이 많다. 나는 이런 게 걱정이다. 의학적으로 비만은 국제질병분류기호가 할당된 ‘질병’이다.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합병증을 수반할 확률이 높다. 밥 먹으면 스마트 폰이나 쳐다봐서 그렇다. 요새는 놀이터에도 애들이 없다.

 

온갖 알러지가 난리인건 공해 때문만은 아니다. 이건 지나친 청결이 만든 병(이라고 마태님이 말했던 것 같다.)이다. 지나치게 청결한 식생활에 기생충 한 점 없이 내장이 깨끗하면, 잉여가 되어버린 이뮨 시스템이 미세한 외부적 침입에도 반응하는 것이 알러지(라고 마태님 책에서 본 것 같다.)다.

 

고로, 애들은 적당히 굴리고, 더럽혀(?) 줘야 된다. 독일의 숲 유치원에서는 밥 먹을 때 손도 안 씻는단다. 흙이라면 그냥 바짓가랑이에 툭툭 문지르고 먹어도 그만이다. 작고한 황수관 박사도 그랬다. 어릴 때 친구 여럿이 쮸쮸바 하나 돌려 빨아 먹었어도 아무 탈 없이 잘 컸다고. 좀 더러워도 괜찮다. 활동적일 수 있다면 그게 더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거다. 그래서 교육자들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 5

 

 

얘기가 좀 새는 것 같지만, 애초에 사람은 뚱뚱하게 생겨먹지를 않았다. 사람이 뚱뚱(비만 수준을 말한다.)하다는 건 잉여지방을 다량으로 축척(체지방이 체중의 25%이상)했다는 얘기고, 귀족 아닌 개인 나부랭이가 잉여지방을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18세기 산업혁명 이후에나 대략 가능했다. 증기기관과 컨베이어 벨트가 발명되고, 생산이 늘고, 덕분에 사회가 가진 부의 총량이 늘어나고, 부르주아 계급이 대두해서 그나마 분배가 자유로워진 그 시대 이후에나. 그러므로 비만이란 70만년 인간의 역사에서 약 200년 밖에 안 된 근대사회의 트렌드다. 그러니까 그 낮선 것에 몸이 대뜸 적응 할 수 있을리가 만무한 것 아닌가. 낙타가 몸에 지방을 축적하도록 진화하는 데는 수십만 년의 시간이 걸렸다.

 

물론, 비만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때로 비만은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가 상징적이다. 수렵과 채집으로만 먹고 살아야 했던 농경문명 이전의 사회에서 뚱뚱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었으니까. 피하지방은 추위를 견디게 해 주고, 더 오래 굶어도 생존성을 유지해줬다. 로마의 글레디에이터들도 뚱뚱한 편이 더 오래 살았는데, 두툼한 지방이 치명상을 방지해 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헬조선에서 뚱뚱하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사회가 개인에게 너무나 많은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는 탓이다. 사회 안전망에 구멍이 숭숭 났으니 한번만 도태되어도 영원히 소외되는 일이 부지기수. 그래서 일에 목숨을 걸고, 이를 악물어 연간 2,124시간의 노동을 견딘다.(일자리를 잡는 행운을 가질 수 있다면 말이다.) 나는 유독 날씬하고 탄탄한 몸매에 환장하는 변태성이 이런 분위기에서 연원한다고 본다. 사회의 입장에서 볼 때, 개인은 호명만 하면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오는 전사처럼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신체는 늘 긴장상태에 머물도록 강요당하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시스템에 순응적인 인간이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야 날렵하고 단단한 몸을 선호하지만, 각자가 자신의 몸에 대한 철학과 확고한 자결권을 갖기를 먼저 바란다. 그래서 헬조선의 시스템을 뜯어고치기 위해 사는 동안 가급적 노오력 할 생각이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이 잘 되는 꼴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내가 얼마 전 거금의 정치자금을 후원한 샌더스의 말로를 보라. 브리메인에 배팅한 나의 계좌를 보라. 모든 신체가 자유로워질 세상? 안될 거야 아마.

 

이 시대에서 신체에 대한 가장 자연스러운 해답은 자연이 제공해 줄 거라고 생각한다. 몸을 사용하는 방법, 스스로를 컨트롤 하는 방법. 서로가 서로와 조화를 이루는 방법. 그런 모든 것들을 말이다.

 


#. 6

 

신체에 대해 떠들었으나 사실 그런 건 부차적인 문제다. 본질적인 것은 자연과의 교감이다. 그런데 이걸 도저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연의 효용은 어디에 있는가. 제인구달이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나, 헨리 데이빗 소로우를 인용해야 할까? 논문이 될 뿐이겠지. 뜬구름 잡지만 느낌이라도 통하는 건 노자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인법지人法地(사람은 땅을 닮고), 지법천地法天(땅은 하늘을 닮고), 천법도天法道(하늘은 도를 닮고), 도법자연道法自然(도는 자연을 닮는다).

 

결국 자연을 가장 명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자연밖에 없는 모양이다. 한자를 풀어보라. ‘스스로 자’에 ‘그럴 연’.  "I am who I am!" 스스로 그렇다는데 뭘 어쩌겠는가. 걸어 들어가 보는 수밖에. 이 책은 숲으로 가는 가이드가 될 만하다.  

 

너희가 살아갈 세상은 여기 보다 자연에서 더 멀어진 곳이리라. 그 낯설고 험한 곳에서 오롯이 자신으로 살아가려면, 너희의 신체와 관념의 뿌리를 저 먼 자연에까지 뻗어야 하리라. 그 지난함을 돕기 위해서.

 

언니가 이 책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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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무력 정치사 - 민족주의자와 경찰, 조폭으로 본 한국 근현대사
존슨 너새니얼 펄트, 박광호 / 현실문화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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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덟 살이 되는 것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새 녹색 조다스 가방을 메고 학교 가던 길이 선연하다. 나는 서울 온곡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담임선생은 중년의 남자였다. 이름은 소동섭이었다.

 

그는 성격이 괄괄했다. 책상을 치다 지휘봉을 분질렀을 때 나는 소스라쳤다. 교실에서 자주 담배를 피웠는데, 애들이 판서된 글씨를 받아 적는 동안 맨 앞줄의 내게 담배 심부름을 시켰다. 나는 늘 심부름이 하고 싶어서 몸이 달아 있었고, 공 던지면 물어오는 개처럼 ‘엑스포 담배’를 사러 슈퍼로 뛰어갔다. 그러나 담배를 사다줄 때가 아니면 그는 친절하지 않았다. 우리가 떠들면 교실에서 호각을 불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책상을 걷어찼다.

 

김윤형은 같은 반 친구였다. 엉뚱한 구석이 있었다. 공상을 즐겼고, 로봇이나 곤충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 아파트 앞 동 2층에 살았다. 집에 놀러 가면 납땜인두로 모기장을 뚫어가며 놀았다. 선생은 김윤형을 싫어했다. 어느 날 그는 그의 뒷덜미를 잡아채서 교실 뒤켠으로 떠밀었다. 20kg밖에 안 나가는 얄팍하고 작은 몸이 나동그라졌고. 나동그라진 윤곽을 따라 분필로 호선을 그렸다. “넘어 오지 마. 이 새끼야.” 선생은 선의 바깥쪽에 ‘윤형 랜드’라고 적고, 웃었다. 우리 중 몇몇은 뭣도 모르고 따라 웃었다.
 
우리가 흔히 쓰던 ‘~요’라는 어미는 그에 의해 ‘~입니다’로 교정되었다. 그걸 제대로 못하는 녀석들은 비아냥을 당했다. 내가 그를 이토록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에게서 깊은 모멸감을 느낀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공교육과 그렇게 만났다.  


 

#. 2

 

이금옥은 중학교 미술 선생이었다. 30대 여자였고 호리호리하고, 차분하고, 나긋나긋했다. 그녀는 어느 날 몇몇이 미술도구를 가지고 오지 않았을 때, 칠판 앞에 나란히 세우고 살짝 한숨을 쉬었다. “내가 좋게 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말이 맺지도 않고 그녀는 무릎으로 서 있던 녀석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억, 하는 소리를 내면서 반쯤 쓰러졌을 때 그녀는 오른 주먹으로 왼 뺨을 날렸다. 퍽 소리와 함께 친구는 허물어지듯 쓰러졌고, 다음은 내 차례였다.

 

국사선생의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풍성한 머리를 조밀하게 파마해서 길게 늘어뜨렸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교실을 돌던 쪽지가 적발됐고, 그녀는 사무적인 태도로 쪽지를 압수한 친구에게 누구로부터 전달받았는지 추궁했다. 검지손가락이 교실을 삼분의 일쯤 돌아 나를 지목했는데, 나는 뒤에 앉은 친구를 말하기 싫어서 내가 썼다고 했다. “제가 썼..”까지 말 했을 때, 그녀의 풍성한 머리카락이 출렁, 했고 쫙 소리와 함께 내 얼굴이 반대편으로 홱 돌아갔다.

 

같은 배경이다. 토요일 오전이었는데 지각자가 많았다. 창밖으로 내려다보니 얼추 서른 명 정도가 ‘엎드려뻗쳐’ 상태로 운동장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잠시 후, 죽도를 든 체육 선생이 어슬렁 어슬렁 나타나서는 맨 앞 줄 부터 엉덩이를 다섯 대씩 때렸다. 풀 스윙이었다. 그는 중간쯤 까지 열을 거슬러 가다가 체력이 부쳤는지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즈음에는 죽도가 터졌고, 그는 헐떡거리며 너덜거리는 죽도를 들고 성실하게 과업을 마무리했다.

 

한번은, 수업시간에 두 명의 여자애들이 교탁 앞으로 불려 나왔다. 담임이자 수학 선생이었던 오승환 선생은 둘에게 엎드려뻗쳐 자세를 시키고 엉덩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L은 맞다가 엉엉 울면서 빌었다. 두 손으로 싹싹. 선생은 본 못 척 다시 엎드리라고 지시했다. 울고, 맞고, 빌고, 울고, 맞고, 빌고 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나가서 그날 수업은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 3

 

고등학교 시절에는 얻어터지지 않는 날이 없었다. 모두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공부를 못해서 얻어터졌고, 숙제를 안 해서 얻어터졌고, 워커를 신었다고 얻어터졌고, 머리를 길러서 얻어터졌다. 주로 하키채로 맞았고,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당하기도 했다. 속옷과 살이 피로 엉겨서 붙은 것을 떼어내느라 고생했다는 얘기는 현실적이라 그다지 괴담 축에도 끼지 못했다.  
 
Y는 유독 맞는 걸 못 견뎌했다. 무슨 일이었는지 불려나와 교탁을 짚고 섰다. 그는 열대 쯤 맞았는데, 하키채가 닿을 때 마다 진저리를 쳤다. 우리는 그 꼴을 보면서 숨죽여 웃었다. ‘미친년 널뛰듯’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말.” 이라고 국어 교사는 친절한 해설을 달았다.

 

그의 체벌은 폭력적이기도 했지만 놀랍도록 창의적이기도 했다. 내가 본 중 가장 인상적인 체벌은, 싸운 두 친구를 앞에 세워놓고 서로의 뺨을 때리게 하는 것이었다. 왼쪽이 오른쪽을 때리면, 오른쪽이 다시 왼쪽을 때렸다.
 
내가 고은의 시, ‘오라리’를 읽은 건 훨씬 나중의 일이다.

 

제주도 토벌대원 셋이 한동안 심심했다
담배꽁초를 던졌다
침 뱉었다
오라리 마을
잡힌 노인 임차순 옹을 불러냈다 영감 나와
손자 임경표를 불러냈다 너 나와

 

할아버지 따귀 갈겨봐

 

손자는 불응했다
토벌대가 아이를 마구 찼다

 

경표야 날 때려라 어서 때려라

 

손자가 할아버지 따귀를 때렸다

 

세게 때려 이새끼야

토벌대가 아이를 마구 찼다

 

세게 때렸다
영감 손자 때려봐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손자를 때렸다
영감이 주먹질 발길질을 당했다

 

이놈의 빨갱이 노인아
쎄게 쳐
세게 쳤다

 

이렇게 해서 할아버지와 손자
울면서
서로 따귀를 쳤다

 

빨갱이 할아버지가
빨갱이 손자를 치고
빨갱이 손자가
빨갱이 할아버지를 쳤다
이게 바로 빨갱이의 놀이다 봐라

 

그 뒤 총소리가 났다
할아버지 임차순과
손자 임경표
더 이상
서로 따귀를 때릴 수 없었다.

 

총소리 뒤
제주도 가마귀들 어디로 갔는지 통 모르겠다

 

혹시, 국어 선생도 이 시를 알았을까?

 

내 학창시절은 남들 보다 조금 빨리 끝났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어느 날, 나는 아홉시 쯤 일어났다. 창문을 열고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물론, 지각이었다. 가해질 폭력이 두려웠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청바지처럼 익숙한 것이었으므로. 다만, 그 날 내가 학교에 가서 해야 할 일상들이 도대체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불현듯 그 모든 것이 잘못 먹은 음식처럼 불편했다.

 

학교는 학습을 미끼로, 규범에 대한 복종을 가르쳤다. 규범이란 무엇인가. 강자의 폭력이다. 물론 당시의 나는 명제를 뒷받침할 세련된 논거는 몰랐고, 그것을 대신할 꼿꼿한 가운데 손가락이 있었을 뿐이다.

 

아, 위에 언급한 모든 이름은 실명이다. 실명을 적어가며 나는 모종의 부끄러움을 느꼈는데, 나도 삶의 어느 국면에서는 권위적 폭력의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문득 궁금하다. 나만, 그런가?

 


#. 4

 

‘오라리’는 제주도 4.3사건 당시 토벌대로 참여했던 서북청년단의 만행을 고발한다. 그들은 북한의 탄압을 피해 남으로 내려온 젊은이들로 1946년, 반공의 깃발 아래 뭉쳤다. 이후 준군사조직으로, 이승만의 홍위병으로 끔찍한 일들을 많이도 저질렀다. 제주도민 8분의 1이 죽거나 행방불명 된 48년 4.3사건과, 20만 명을 학살된 보도연맹 사건에서 그들은 암약했다. 다시 서북청년단과 마주친 건 이 책의 4장. 대한민국의 건국 이후 국가와 무력집단 사이의 관계 양상을 조망하는 부분이었다. 책은 이렇게 서술한다.

 

 

가장 폭력적인, 혹은 적어도 가장 악명 높은 불법 무장 청년 집단은 반공 성향의 서북청년회였다. 서북청년회는 (초창기의 형태이긴 하지만) 1946년 11월에 공식 설립됐는데, 미군 방첩대는 그들 고유의 비교 우위를 이용하려고 (우파 조직 중에서도) 서북청년회와 연락을 유지했다. 사실 미군과 서북청년회의 관계는 꽤 분명하다. 방첩대 보고서는 이렇게까지 언급한다.

 

‘방첩대는 부분적으로 언어 장벽과 전문 요언의 부재에서 기인한 이유들로 방첩 임무를 단독으로 수행할 수 없었다. 서북청년회, 즉 이북에서 월남한 이들로 구성된 청년 조직원들은 방첩대에 특별한 가치가 있었다. 조직원들은 저마다 공산주의자들에서 고통을 겪은 바 있었다. 불행이도 이 조직은 적에게 잔혹하게 보복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보였다.’

 

서로의 뺨을 때리던 임차순옹과 손자 임경표의 모습과, 서로의 뺨을 때리던 내 친구들의 모습이 엇갈린다. 왜 학교와, ‘가장 악명 높은 불법 무장 청년 집단’의 폭력은 닮았는가. 국가는 학교에게 교육과 더불어 폭력의 권한까지 양도했던 것은 아닐까.
 
시에서 폭력은 말 뒤에 숨어 증오의 구조를 만들었다. ‘할아버지 따귀 갈겨봐.’ 대한민국 역사를 돌아보건대, 국가는 서북청년단 뒤에 숨어 그들이 원하는 질서를 만들었다. 무엇이 또 무엇 뒤에 숨어 암약하는가. 시스템의 뒤편을 보라고, 이 책은 말한다.

 


#. 5

 

다만 역사적 사건일 뿐인가. ‘대한민국 무력 정치사’의 서론은 인사동 노점상 폐쇄 현장에서 시작한다. 인사동 메인 스트리트에서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른 노점상 상인들이 노란 조끼를 입은 용역깡패들과 맞닥뜨리는 장면이다. 150여명의 남, 녀 깡패들은 좌판을 하나하나 두들겨 부수고, 상인들을 쥐잡듯 팼다. 아니, 그럼 그 동안 경찰은 뭘 했는가. 방패를 들고, 적극적으로 이 사태를 방관했단다. 왜? 깡패들은 사실 종로구청과 ‘공식 계약’을 맺고 있었던 것이다. 소오름! 저자는 이렇게 덧붙인다. “2011년 5월 24일의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아직 싱싱한 날짜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책은 국가와 비국가 폭력전문 집단의 야합의 역사를 더듬는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폭력을 아웃소싱하는 국가적 현상의 원인과 본질을 연구한다. 저자가 밝히듯 정치학, 역사학, 사회학 등 학제 간 연구이며 양적연구 뿐 아니라 질적 연구를 포괄해 기존 연구와 차이를 뒀다.

 

저자에 따르면, 국가가 민간 폭력 집단을 이용한 것은 18세기 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정은 ‘보부상동업조합’에게 판매세를 징수하는 역할을 맡기고, 무력충돌을 조율하는데 사용했다. 이후, 해방이후 김두한의 대한민청과 서북청년회 등 폭력집단과 준군사조직이 난립했고, 이들은 특히 이승만 정부의 기저를 떠받히고, 좌익세력을 탄압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시절 시민사회와 노동세력, 빈민 이주민들에 대한 탄압도 폭력조직과 결탁한 정치권력의 연출이었다. 그런 역사적 흐름 속에서 2011년 5월 24일의 인사동을, 저자는 조망한다. 

 

국가는 왜 폭력집단을 이용하는가. 결론은 이렇다. 1. 이미지를 관리하고, 2. 책임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분명히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아웃소싱은 행정 효율성 제고 차원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식민주의와 권위주의 정권에서 자행된 잔혹한 억압의 긴 역사가 군경이 (나아가서는 국가가) 오늘날의 맥락에서 활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인들이 국가 행위자들의 (예컨대 경찰이나 군) 폭력을 바라보는 방식은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 연이은 억압적 정권들에서 겪은 삶에 의해 좌우된다. 결국 국가의 폭력에는 강한 상징적 유의성[誘意性, valence,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동원하는 힘]이 있고, 폭력을 행사할 경우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라는 애써 만들어놓은 한국의 이미지를 파괴할 위험이 있다. 21p

이 책의 메시지는 명징하게 현재성을 갖는다. 어버이연합이 청와대의 사주를 받고 움직였다는 사실이 보도된 것이 불과 한 달 전. 그들은 세월호 반대 집회에 알바 1200명을 동원했고, 각종 친정부(혹은 친박)관련 포지션에서 시위를 포함한 이슈 파이팅을 진행했다. 알려졌다시피 때로는 이슈 파이팅이 아니라 가스통을 장착한 레얼 파이팅이 되기도 했다.

 

금전적인 부분을 추적하면 검은 실루엣이 드러난다. 전경련의 자금은 최소 5억 2천만 원, 통일부는 비전코리아를 통해 4400만 원을 지원했다. 처음엔 물론 지원하지 않았다고 구라를 쳤는데, 이유야 물론 ‘1. 이미지를 관리하고’, ‘2. 책임을 회피’하고 싶었기 때문이겠지. CBS의 보도에 따르면, 뒤가 켕겼는지 돈은 차명 계좌로 분산되어 입금됐다. JTBC에 따르면 현금인출은 어버이 연합 사무실 근처의 ATM기에서 주로 이뤄졌다. 전모가 드러난 지금 전경련의 실질적 책임자인 이승철 부회장은 급하게 출국했고, 어버이연합의 지도부는 사라졌으며, 홈페이지는 삭제됐다.

 

이 모든 기획이 청와대로 보인다는 보도는 너무 이론적이어서 추론하는 재미도 없을 지경이다. 어버이연합은 청와대 허현준 행정관으로부터 집회를 지시받았다고 증언했고, ‘어버이연합 외의 다른 보수•탈북 단체들도 허 행정관의 손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으며, 허 행정관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을 경우 지원하는 예산을 자르거나 보류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77679)

 

어버이연합은 국가의 폭력을, 또는 폭력적 주장을 대행했다. 행정부는 쪽도 안 팔고, 본인들의 정치력을 비합법적 방식으로 구현하여, 정치적 입장이 다른(그들이 보기에 국가의 권위에 도전하는) 많은 시민들(잠재적 위협)에게 유‧무형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책의 출간일이 반년만 늦춰졌더라도 내용에 너끈히 포함될 사건이었다.

 


#. 5

 

최근에 꿈에 관한 두 개의 페이퍼를 적었다. 내 꿈에는 자주 폭력적 행위가 등장하는데, 총을 쏘고, 주먹을 휘두르더니 최근에는 급기야 창까지 던진다. 억눌린 무의식의 발현으로 본다. 샌드백을 곤죽으로 만들고 나서야 조금 풀어지는 이런 감정을 타인들은 어떻게 억누르고 사는지 궁금하다. 아마 컨트롤 되지 않은 우리 무의식의 총합이 이 사회 기저에 깔린 폭력성이리라. 

 

폭력의 경로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나는 내게 내재한 폭력성이 학교에서 배태되었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그것을 국가로부터 가져왔을 것이다.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개인의 신체를 지배하는 권력의 전략을 연구했는데, 그 분석의 대상이 되는 것이 감옥, 군대, 병원, 그리고 학교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고사리의 가지 모양은 잎사귀의 모양과 닮았다. 눈송이의 구조나 해안선의 모습처럼 자연은 자기유사성을 갖는다. 폭력도 마찬가지다. 국가라는 거시적 규모로 일어났던 폭력은 삶이라는 미시적 부분에서 재현된다. 그래서 오라리와, 내 학창시절의 모습이, 유시민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말 한 반성문 쓰던 고문실과 학생부실의 살풍경이, 군대와 회사의 분위기가 프랙털처럼 닮은 것이겠지.

 

 

프랙털의 중심에는 상대적 강자들이 존재한다. 국가는 상징적으로나 현상적으로나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들어앉을 것이다. 주변부는 상대적 약자들로 구성된다. 유치원 선생님에게 들은 얘기다. 그녀가 가르치는 아이의 아버지는 마석 가구공단의 비정규직 이주노동자였다. 사장은 그에게 온갖 모욕을 가했고, 그는 술에 취해 아내를 팼다. 화난 아내는 아이를 학대했고, 아무도 괴롭힐 힘이 없었던 아이는 시름시름 앓았다고.

 

우리 사회의 증오와 폭력의 방향을 가늠해 본다. 아마 그것은 중산층의 몰락으로부터 급증하는 이주 노동자들로, 차별하는 남성으로부터 차별받는 여성으로, 일반으로부터 LGBT 성 소수자들로 전개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교집합에서 증오는 폭발할 것이다.

 


#. 6

 

아직도 가끔 소동섭 선생을 생각한다. 뭘 오래 기억하는 타입이 아닌데도, 그의 얼굴과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그에게 사과를 받고 싶다. 그러나 용서를 하고 싶지는 않다. 사과는 그의 의무고, 용서는 나의 권리이므로. 그러나 내가 누구에게 사과를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사과를 할 사람을 찾았다고 한들 그는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그래서 화해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책에서 언급된 2011년의 인사동 상인들, 1989년, 쇠파이프 아래서 ‘우리 아버지는 김일성이다’라고 외쳐야 했던 현대중공업의 노조원들, 1948년, 몰살당한 제주도의 시민들은 나보다 훨씬 절박하게 국가가 사과의 의무를 이행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그다지 사과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과거사에 대해 이 사회의 인식을 알 수 있는 단적인 예가 있다.

 

"한마디의 가치도 없는 모함이다. (노무현)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이 모여 역사를 왜곡하고 헐뜯는 수작에 불과하다."(2005) “나에 대한 정치공세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한국정치의 현실이다.”(2007)  “대법원의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나요?” (2011)

인혁당 사건에 대한 어느 정치 인사의 초지일관한 촌평이다. 그는 결국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게 지금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이다.

 

올바로 기능하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없는 나라에서 공고하게 다져지는 것은 오직 지배와 증오의 구조다. 칼에 찔려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현장에서, 사회 기저로부터 들끓어가는 분노를 본다. 공교로우나 92년의 LA의 끔찍한 지옥도도 한 여성의 억울한 죽음으로부터 시작했다. 다음에 올 현상은 메갈리아처럼 질퍽한 언어의 진창이나 헤집고 있지 않을 것이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사람을 기다린다. 증오의 밑바닥에서 마침내 어금니를 사려문 인간을. 프랙탈을 박살내고 세계를 으깨어 놓을 신화적 존재를. 아비 없는 자식, 국적 없는 노동자, 성별 없는 소수자일 그를.  예수나 체 같은 최악의 테러리스트Terror-ist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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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1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01 1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06-02 0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종철 개그맨이 교장의 흉내내며, 사랑하는 온곡초등학교 학생 여러분 여러분, 한게 생각나는데.

서울이나 제가 있는 부산이나 같군여. 학교폭력의 근본은 군사문화에 시작한 체벌이 시작이라 보는데, 아이고

뷰리풀말미잘 2016-06-02 08:51   좋아요 0 | URL
딱히 그런 건 아니더라고요. 호주에 있을 때, 어느 세미나에서 폭력을 주제로 토론했던 적이 있었는데 군사문화가 강하지 않은 사우디에서도 교사에 의한 폭력이 빈번하답니다. 제 가설은 ‘권위주의 사회일수록 교사에 의한 폭력의 빈도가 높다’입니다.

그렇다면 군사문화가 없는 사회에서 폭력의 방법을 어떻게 배우느냐. 영화 ‘엑스페리먼트’로 유명한 스탠포드 심리 실험 있잖아요. 왜 감옥에 가두고 어쩌고 저쩌고. 그게 시사하는 바가 좀 있는데, 거기서 죄수들한테 통제 수단으로 체벌을 가했거든요. 그게 푸쉬 업이었어요. (간수 역할을 하는 자들이 알아서 고안했죠. 누가 가르쳐 준게 아닙니다.) 나치 수용소에서도 그랬죠. 결국, 푸쉬 업은 인간 본성에 내재한 악마의 얼차려인 것입니다.(?)
 
월하의 여곡성 - 여귀로 읽는 한국 공포영화사
백문임 지음 / 책세상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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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곡성은 모호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새벽에 종구가 잠에서 깨어나며 시작합니다. 니체는 ‘아폴론의 정연한 꿈과 디오니소스의 흐릿한 현실’에서 ‘비극’이 나타난다고 했는데, 양자가 가장 질펀하게 교접하는 시간은 새벽이 아니던가요. 종구의 잠을 깨운 전화는 살인사건을 알리는 비보였습니다. 의도했겠지만, 새벽녘에 촬영된 분량이 많습니다. 결말의 시점도 새벽이네요. 잠에서 깨어나고, 다시 잠이 드는 장면도 여러 차례 반복됩니다. 상당한 분량의 씬에서 조명을 거의 자연광으로만 처리하는데 어슴푸레한 빛만으로 폐가나, 숲에서 인물이 또렷하게 구분될 리가 만무하죠. 확신을 어렵게 만드는 건조한 미장센이 적극적으로 사용됩니다. 이런 요소가 적층되면서 영화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갑니다.

 

곡성에서 의문의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사건이 일어난 현장마다 광기가 서려있습니다. 경찰과 언론의 공식적 결론은 ‘야생 버섯 중독’에 의한 사고지만, 영화는 이 부분을 설명하는데 시간을 거의 할애하지 않습니다. 버섯 중독은 표면적인 층위의 사건이고, 영화에서 거의 무시되다시피 하는 이성의 영역입니다. 영화는 광기에 집중합니다.

 

 

블라블라 

 

 

마을에는 사건과 관련하여 외지인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짐승같은 몰골로 산 짐승을 뜯어먹고, 성추행을 저지르고, 심지어 피칠갑한 얼굴에 붉은 안광을 가진 일본인으로 마을 사람들의 심상에 박혀 있습니다. 주인공 종구는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인데, 처음엔 몇 번이나 소문을 무시하다가도 딸이 피해자들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자 점점 소문에 젖어들게 됩니다. 이 것이 일종의 방아쇠 역할을 하며 영화의 갈등구조를 비이성의 영역으로 쏘아 보냅니다.

 

영화의 심층에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자들은 모두 신적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님이라는 외지인,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무명, 무당인 일광. 빙의된 효진. 이들은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은밀한 커넥션을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감독은 야바위를 방불케 하는 플롯을 구사하며 이들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일광이 굿판을 벌이며 사태의 원흉에 ‘살을 날리는’ 장면에서 일광, 외지인, 효진의 교차편집은 화룡점정입니다. 대체로는 일광과 외지인이 대립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장승의 가슴에 못을 박으면 외지인은 가슴을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하고, 배에 못을 박으면 배를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런데, 굿 하는 동안 방에 누워있는 효진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걸로 묘사하죠. 게다가 외딴 집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외지인을 멀찌감치서 노려보는 무명의 시퀀스를 은근슬쩍 끼어 넣습니다. 모호합니다. 그 뿐 아니라 무명에 대한 의혹의 장치(머리삔, 야상), 일본인과 일광의 갈등(죽은 까마귀의 발견, 살 보내기), 일광과 무명의 갈등(코피), 일본인과 무명의 갈등(교통사고)에 더해 뜬금없이 일광과 외지인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부분(팬티)도 등장합니다. 이건 뭐, 혼돈의 카오스가 따로 없습니다.       

 

여기까지 봤을 때, 저는 영화가 노골적으로 르네 지라르를 차용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절정부에 이르기까지의 서사가 ‘폭력모방’, ‘스캔들’, ‘희생양 제의’ 등 지라르의 굵직한 이론들로 설명이 가능한 것처럼 보였거든요. 영화는 추측대로 외지인에 대한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스캔들이 발생하고), 집단 폭력의 광기가 야기됩니다. 도식적으로 외지인은 이 사태의 희생양이(지라르는 예수를 대표적인 희생양으로 보죠) 될 운명으로 보였습니다.

 

이런 건 사실, 지라르를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영화의 서사적 궤적을 따라가면 무심결에 할 수 있(도록 의도된)는 생각이죠. 게다가 오프닝에서 인용하는 누가복음 24장은 애초에 이걸 노린 감독의 포석이 아니겠습니까. 부활한 예수가 자신을 제자들 앞에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고..

 

외지인은 내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라는 둥 실존성을 의심받는데. 종구 무리에게 쫓겨 절벽에서 떨어지고 고통과 공포에 흐느끼는 장면은 그가 살과 뼈로 이루어진 인간이라는 반증이었죠. 결국 그가 희생(당)함으로서, 모방폭력의 순환이 해소되지 않을까하고, 낚였던 겁니다. 일광의 말을 빌리자면 ‘미끼를 삼’킨 것이라고 할까요. 

 

몇번이나 논리가 격절되고, 어렴풋한 단서들과, 해소되지 않는 의문들만 망령처럼 떠돌아 다닐 때 종구와 관객들은 결국 자신이 의심하는 바를 의심하게 됩니다. 그것은 모호함을, 불안을 타개하려는 인간의 본능이겠고, 또 인간이 짓는 죄의 근원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래서 심증을 잔뜩 섞어 이 사태의 원인이 무엇이라는 결론을 내릴 때, 관객은 영화 에필로그의 부제처럼 어둔 동굴 속으로 들어가 해매는 되는 꼴이 될 겁니다. 그 동굴에서 어떤 존재를 마주친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를 들여다보는 심연일 것이라고, 나홍진은 말하고 싶었겠죠.

 

결말부, ‘새벽닭이 세 번 울기 전에 집에 돌아간다면 가족이 몰살’당할 거라는 무명의 말과, ‘절대 현혹되지’말라는 일광 사이에서 번민하는 종구의 모습에 깊은 연민을 느꼈습니다. 확신이라곤 1도 갖기 어려운 아수라장에서, 선택의 궤적을 근근이 이어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런지요. 그 상황에서도 어렴풋한 확신만으로 책임이 실린 선택을 보류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눈물겨운 인간 실존의 사태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혼돈의 끝에 잘못된(듯한) 선택을 한 종구의 모습에서 늘 거지같은 선택과 후회로 일관하는, '미모만 뛰어난 어떤 인물'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결국, 서사의 내부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흡입력이 이 영화의 가장 무서운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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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 1
윤태호 글.그림 / 씨네21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내부자들:디 오리지널– 글자와 주먹의 사회사


우민호 감독 / 이병헌(안상구), 조승우(우장훈), 백윤식(이강희), 이경영(장필우) 등 출연 / 상영시간 180분 / 청소년 관람불가 

  신은 언어로 세계를 창조했다. “빛이 있으라.” 조국일보 주필, 이강희는 언어로 대한민국을 설계한다. “매우 보여진다.” 그가 주문을 외우면 존재하지 않았던 사건도 존재한 사건이 된다. 한편, 말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행동’의 의미는 평가 절하된다. “정의심? 복수? 그딴 것은 난 상관없소. 하지만 기자양반. 빌어먹을 내 손이 없어졌단 말이오.” 오프닝에서 안상구의 거친 대사는 폴란스키의 걸작 ‘차이나타운’의 유려한 인용이나, 그의 현실은 한낱 깡패 두목이다. 열정과 능력을 겸비한 검사 우장훈은 ‘족보’가 없다는 이유로 출세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언어를 담을 매체가 없거나, 언어 그 자체가 없었다.   

 

  이강희는 신문사에 미래 자동차의 광고를 끌어들여 ‘주필’의 권위를 획득했고, 막강한 자본과 정치권력을 이어 장필우를 유력한 대선 후보로 만들었다. 장필우가 성공한다면 떨어지는 중간마진은 총리자리. 이게 정치, 경제, 사회의 연합전선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그 세상의 뒷켠에서 학벌주의, 연고주의, 성상납 같은 사회의 병폐들이 곰팡이처럼 피어난다. 감독이 그리는 서울은 만화적 판타지가 거세된 고담시티를 닮았다.  

 

  호형호제하던 이강희와 안상구가 어긋난 것도 사실 글자를 둘러싼 주도권의 문제다. 안상구가 이강희에게 가져가 보관해주기를 부탁한 것은 미래자동차의 비자금 ‘서류’. 안상구는 다만 보험을 들고 싶었겠으나, 서류는 어디까지나 ‘언어’에 속하는 것이다. 금단의 영역에 손을 댄 안상구는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처럼 잔혹하게 응징 당한다. 유리천장에 부딪힌 우장훈도 사정은 비슷하다. 두 인물의 복수인지, 정의인지, 그도 아니면 분노인지 모를 인화성 재료들이 차곡차곡 쌓여 이야기는 폭발력을 얻는다.

 

  영화는 반전을 거듭하며 대한민국 사회의 치부를 까 내려간다. 직설화법의 촌스러움은 있지만, 권력의 일그러진 민낯이 드러나는 쾌감도 분명하다. 영화의 결말부에 ‘내부자’의 활약으로 연합전선은 와해되는데, 이강희의 마지막 신을 주목해 볼 만 하다. 그의 몰락은 곧, 언어의 몰락이었다. "씨발 좆됐네." 그가 읊조리는 날 것 같은 욕설에서 기름진 단어들로 치장된 사회의 가냘픈 몸체가 ‘매우’ 상징적으로 ‘보여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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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6-03-16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스물 세줄. 넘나..

곰곰생각하는발 2016-04-01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워요. 뷰리풀말미잘 님 잘지내시죠 ?

뷰리풀말미잘 2016-04-01 23:4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여. 곰곰생각하는발님. 전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한수철 2016-04-27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쯤 새 글을 쓰실 거지요?

뷰리풀말미잘 2016-04-27 15:20   좋아요 0 | URL
썼어요! 한수철님의 댓글에 감응해서 저런 꿈을 꾼듯 싶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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