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우주로 향한 지적인 여행의 안내서
 
너무나도 광대한 우주 그리고 그 한구석에 자리한 초라한 행성 지구. 그러나 이 행성에는 우주 모든 것의 과거와 미래를 인식하고자 하는 인간의 용감한 노력이 있으며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가치이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ㆍ1934~1996)이 그의 명저 ‘코스모스(Cosmos)’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칼 세이건은 20세기 천문학과 행성탐사의 새로운 성과들을 매개체로 삼아 과학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우리가 과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장 성공적으로 대중과 교감을 나눈 학자다. 1980년 ‘코스모스’ 책과 짝을 지어 방송된 같은 이름과 구성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방송계 최고의 상이라는 에이미상을 받았으며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60여개 국가에 소개되어 6억명이라는 엄청난 시청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코스모스’ 책 또한 20세기에 가장 많이 읽힌 과학도서라는 영예를 갖게 되었다. 이미 또 다른 저작인 ‘에덴의 용’(1977)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그는 20여권의 도서를 포함하여 일반인을 위한 수많은 글을 남겼으며 그가 저작한 과학소설인 ‘콘택트’(1985)는 이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달착륙에 이어 우주탐사의 열기가 한껏 고조되었던 1970년대 미항공우주국(NASA)의 마리너, 바이킹, 보이저 그리고 갈릴레오 계획의 책임과학자로서 활약한 칼 세이건은 연구자와 교육자의 틀에 묶여있지 않고 과감하고도 끊임없이 대중과의 대화를 시도한 과학사상가이자 계몽가였다. 과학은 소수 연구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인류가 오랜 기간에 걸쳐 함께 이루어온 발전의 과정이자 동력이었으며 인류의 미래는 우리 모두에게 과학에 대한 이해와 과학하는 심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코스모스’는 마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우주입문서다. 당시의 천문관측과 우주탐사로 알려진 놀라운 사실과 화려한 화보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이 책이 흥미롭고 신기한 새로운 지식들의 조각으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며 또한 단편적 지식의 일방적 전달을 목적으로 쓴 책이 아니라는 것을 독자는 금방 알 수 있다. 
 
칼 세이건은 이 책에서 독자의 손을 잡고 우주의 다양한 모습과 지구와 태양계 여러 행성의 신기한 특징을 하나씩 보여주는 여행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생명체의 발현과 진화에서부터 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은하와 우주의 거대한 구조가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한 주제를 차근차근 소개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놀랍고도 매우 매력적인 것은 칼 세이건의 친절한 설명이 갖는 폭과 깊이가 대단하다는 사실이다. 이들 주제 하나하나에 대해 그는 과거 고대인과 선현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러한 생각을 하게 한 문화적·역사적·사상적 이유는 무엇인지, 또 그와 같은 과거의 생각에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나중에 획기적인 인식의 발전으로 연결되었는지를 논리정연하게 정리해 주고 있다. 우주탐사선이 찍은 한 장의 천체사진은 그 자체로도 멋진 작품이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과학적 의미와 해당 주제에 대한 인류지식 증진과정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게 될 때 그 아름다움이 더욱 깊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책은 그러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20세기 과학대중도서의 가장 훌륭한 역작으로 여겨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변용익 연세대 교수ㆍ천문우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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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케인스의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 근거를 마련

“이자(利子)가 뭔지 아니?”
“만약 제가 아버지에게 반 페니(half penny)를 빌려드리고, 아버지가 그것을 오랫동안 가지고 계시면 아버지는 저에게 반 페니와 또 하나의 반 페니를 돌려주셔야 해요.”
경제학자인 젊은 아버지와 네 살짜리 아들의 대화였다. 이 아들이 약 40년 뒤인 1936년 현대 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책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이하 일반이론)’을 쓰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닐 듯싶다. 게다가 제목에도 이자라는 말이 들어 있으니 말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1883~1946년)가 쓴 일반이론은 이름만 일반이론이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특별한 이론이었다. 책이 발간된 1930년대는 그때까지 현실경제를 잘 설명해 오던 정통파라고 할 수 있는 고전학파 경제학이 크게 흔들리고 있던 시절이었다. 고전학파 경제학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와 ‘보이지 않는 손’ ‘세이의 법칙(Say’s law)’으로는 전 세계적인 대공황과 그에 따른 장기대량 실업사태를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國富論)’으로 대표되는 고전학파 경제학은 개인이 자유롭게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야말로 사회적 부(富)를 창출하는 근원이고, 그 같은 사적(私的) 이익 추구에 의해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공정하면서도 효율적인 부의 배분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또 세이의 법칙에 따르면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하므로 과잉생산 또는 과잉공급이라는 단어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시장은 완전히 자유롭게 내버려두면 저절로 최고, 최선의 상태를 이룬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대공황 이전까지는 고전학파의 주장에 큰 무리가 가는 경제적 상황이 거의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대공황과 그에 따른 실업은 고전학파의 존립 자체를 위협했다. 보이지 않는 손(=시장)에 자유롭게 맡겨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불황(=대공황)과 실업이라는 과잉생산이 발생했을 뿐 아니라 장기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황은 생산해 놓은 상품이나 서비스가 팔리지 않고 남아도는 것이고, 실업은 노동을 공급하고자 하는 사람이 원하는 직장(수요)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이의 법칙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일반이론의 시작은 “왜 대량으로 실업이 발생할까?”일 것이다. 이에 대한 케인스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기업이 일하기를 원하는 노동자를 충분히 고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왜 기업은 고용을 않거나 심지어 줄이기까지 하는 것인가? 노동자를 고용하는 이유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서인데 생산한 상품이나 서비스가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질문은 이렇게 이어질 수밖에 없다. 왜 상품이나 서비스가 팔리지 않는 것인가? 이에 대한 케인스의 대답도 단순하면서도 명쾌하다. 소비와 투자 같은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업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면 무조건 팔리는 것이 아니라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개인(소비)이나 기업(투자)의 수요 정도에 따라 기업이 생산을 늘리거나 줄인다는 것이다. 케인스는 이 같은 수요를 ‘유효수요(effective demand)라고 불렀다. 뒤집어 보면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던 시대’에서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최성환 대한생명 경제연구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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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
“인간의 본성은 진화와 유전자가 결정”
 
20세기 가장 걸출한 과학저술가를 들라고 하면 아마도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을 꼽아야 하지 않을까? 매년 그 해에 미국에서 출판된 책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저작자에게 부여하는 퓰리처상을 그것도 문학이나 인문학이 아닌, 생물학을 전공하는 과학자가 두 번이나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으니 말이다.

1929년생의 에드워드 윌슨은 소년 시절부터 개미 탐구에 열심이었지만 본격적인 개미 연구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는 1953년에 이루어졌다. 당시 하버드대학의 대학원생이었던 윌슨은 그즈음 유행하던 동물행동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대다수 쟁쟁한 연구자들이 새와 포유동물의 의사소통에 관심을 가졌던 점에 착안해서 자신은 개미들의 의사소통 방법을 밝혀보고자 노력했다고 자서전에서 밝힌 바 있다.

1955년 윌슨은 하버드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자마자 조교수로 발령을 받는다. 개미들에게서 여러 종류의 페로몬을 발견하고 그것들의 역할을 성실히 규명했던 학문적 업적이 높게 평가된 결과였다. 이후 10여년 동안 윌슨은 개미 연구로, 또 원숭이와 기타 동물의 습성과 사회적 행동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 전 세계를 누볐다.

그런데 1960년대에 이르자 미국 생물학계의 분위기는 점점 더 분자생물학이 각광을 받게 되고 또 그만큼 동물행동학이나 진화생물학 등은 홀대 받는 경향으로 흐르게 되었다. 하버드대학의 젊은 조교수 윌슨은 그런 와중에서 원숭이와 까마귀와 개미의 생활 습성을 대상으로 삼는 자신의 연구 분야가 점차 쇠퇴하는 것에 크게 자극을 받게 된다. 그는 그간의 동물행동학적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고 다듬어서 새로운 이론으로 발전시켜 보고자 하는 강력한 충동에 사로잡힌다.

타고난 종합가라고 할 수 있는 윌슨은 그때까지 동물행동학 연구가 동물행동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데에 치중했던 나머지 어느 누구도 그런 행동의 저변에 깔린 기본적인 요소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에 먼저 주목하였다. 자연에서는 침팬지들이 사냥에서 획득한 먹이를 집단 내의 다른 침팬지들에게 나누어준다든지, 또는 적의 출현을 처음 발견한 새 한 마리가 경고음을 발산해서 다른 새들을 보호하는 대신 자신은 희생의 제물이 된다든지 하는 이타적인 행동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동물행동학은 기껏해야 그런 행동이 전체 집단를 위한 개별 개체들의 희생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윌슨은 이런 동물들의 이타적인 행동이야말로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그들의 유전자 속에 각인된 본능적 행동이라고 해석하였다. 요컨대 동물의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진화와 유전자의 영향력에 주목했던 것이다.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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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인류문명을 엔트로피의 관점에서 비판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1943~ )의 1980년 저작 ‘엔트로피: 새로운 세계관(Entropy: A New World View)’에 관해 말하려면 ‘엔트로피’라는 말부터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열역학이라는 학문에서 말하는 ‘열역학 제1법칙’은 ‘에너지의 총량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는다’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그리고 제2법칙이 바로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간단히 말하면 ‘엔트로피는 언제나 증가하기만 한다’는 것인데 바꾸어 말하면 ‘물질과 에너지는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만, 또한 질서화된 것으로부터 무질서화된 것으로만 변화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에너지를 새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에너지를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변화시키는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한 에너지를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변화시킬 때 에너지는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간다. 결국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말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감소한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손대지 않은 상태 그대로의 자연자원을 개발하여 그것을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변화시킨 경우, 엔트로피가 무척 증가한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증가한 엔트로피는 다시 감소하지 않는다. 자동차는 자연자원인 석유를 가공한 휘발유를 연료로 해서 움직인다. 일단 자동차를 움직이는 데 사용된 원유를 원래 상태 그대로 회복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본다면 모든 환경오염은 엔트로피의 증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가 된다. 수력이나 풍력 등의 에너지는 엔트로피가 상대적으로 적다. 바꾸어 말하면 얼마든지 재생 가능한 에너지에 가깝다. 하지만 휘발유, 석탄 등 우리가 널리 사용하는 대부분의 에너지는 엔트로피가 무척 높은 것들이다. 더구나 엔트로피가 높은 에너지는 사용되고 나서 많은 양의 오염 물질 또는 쓰레기를 남긴다.

물론 이용할 수 있는 자연자원, 그러니까 에너지원이 무한하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자연자원은 언젠가는 고갈된다. 갈수록 줄어드는 자연자원을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은 점점 더 늘어난다. 더구나 자연자원을 변화시켜, 그러니까 엔트로피를 증가시켜 사용한 뒤 남는 오염물질과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도 늘어만 간다. 자동차가 배출하는 일산화탄소, 아황산가스, 탄화수소 등의 물질을 자동차 엔진을 돌리는 데 사용하는 휘발유로 회복시킬 수는 없다. 그런 배기가스는 우리의 눈을 쓰리게 만들고, 폐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비행기의 제트엔진에서 나오는 질소화합물, 냉각장치와 냉동공장에서 나오는 프레온가스 등은 오존층을 파괴하여 인류를 위협한다. 더구나 매연은 산성비가 되어 내리고, 이산화탄소는 온실효과를 통해 극지의 얼음을 녹여 해수면 상승이라는 위협을 가한다. 이러한 환경오염의 위기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엔트로피 증가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인류문명의 발전은 자연자원의 개발과 이용, 그러니까 엔트로피의 증가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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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양자역학이 나오기까지의 고민과 토론 보여줘

20세기 초 인류 지성사에 큰 획을 긋는 물리학의 대혁명이 일어났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출현이었다.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에 관한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획기적인 이론이었고, 양자역학은 원자, 전자 등 미시세계의 신비를 밝힌 것으로 오늘날의 반도체, 컴퓨터 등 IT기술의 밑바탕을 마련한 기념비적 위업이었다. 상대성 이론은 아인슈타인 한 사람의 깊은 사고에 바탕하여 이루어진 개인작품인 반면에 양자역학은 아인슈타인을 비롯하여 보어, 파울리,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등 수많은 과학자들이 참여하여 이룩해 낸 공동작업의 소산이었다.

‘부분과 전체(Der Teil und Das Ganze)’는 이 연구의 핵심인물이었던 하이젠베르크가 양자역학이란 학문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이들 대석학과 나누었던 대화를 중심으로 문제점의 해결을 위한 고민, 발견의 상황과 그 후 학문의 전개과정을 정리한 회상록이다. 이 책은 딱딱한 물리학의 뒤에 숨어있는 인간의 열정과 고뇌, 열띤 토론, 그리고 예술과 철학, 여행과 친교, 정치적 혼란과 전쟁, 대과학자가 부딪혀야 할 시련과 고뇌가 실감나게 잘 묘사되어 있다. 물리학은 ‘기계적인 공식의 집합’이 아니라 숨쉬는 인간의 사회와 문화의 일부임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과학저술 중 대표적 명저로 자리잡고 있다.

베르너 칼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는 1901년 남부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뮌헨 대학의 비잔틴문학 교수였다. 그는 1925년에 젊은 대학생으로서 양자역학의 기본 방정식을 만들어냈으며, 이어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견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한 대단한 천재였다. 1927년에 불과 26세의 나이로 라이프치히 대학의 교수가 되었으며, 193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1958년엔 뮌헨의 막스플랑크 연구소장을 맡았고, 1976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과학자로서 탁월했을 뿐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대중강연과 책의 저술에도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피아니스트로서도 상당한 경지에 올랐다.

원자는 핵과 전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치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듯이 ‘전자가 핵의 주위를 궤도를 따라 돌고 있다’는 것이 하이젠베르크가 원자의 연구에 들어섰을 때의 과학적 물질관이었다. 이러한 개념으로는 원자의 성질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안개 속에서 헤매는 상황이었다. ‘부분과 전체’의 제5장 ‘아인슈타인과 나눈 대화’에는 당시 연구자들의 노력과 하이젠베르크가 양자역학의 방정식을 찾아내는 과정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원자물리학도 이와 비슷했다. 1924년에서 1925년에 이르는 겨울학기에는 앞날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안개가 짙었다. 1924년 7월 이후 코펜하겐에서 강사로 있던 나는 1925년 여름학기에 다시 수소원자의 스펙트럼선의 강도에 대한 공식을 세우기 위한 연구에 들어갔다.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이 시도로부터 나는 ‘원자 안에서는 절대로 전자의 궤도를 문제 삼아서는 안되며 친구 오토가 발렌호로 가는 자전거여행 도중에 아인슈타인의 견해를 대변해서 주장하였던 그 철학대로, ‘관찰할 수 있는 양만을 원자의 결정요소로 간주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에너지의 표를 계산을 통해서 표현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최초의 1항으로서 에너지의 법칙이 확증되었을 때 나는 일종의 흥분상태에 빠져서 다음 계산이 자꾸만 틀리곤 하였다. 그 계산의 최종 결과가 나온 것은 새벽 3시가 가까워서였고, 그래서 나는 수학적으로 아무런 모순이 없는 완전한 양자역학이 성립되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의심할 수가 없었다. 흥분의 도가니에 빠진 나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본문 중에서 발췌 인용) 

소광섭 서울대학교 물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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