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요괴 도감
고성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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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창조론을 바탕으로 진화론에 반박하는 ‘창조과학’(과학이라는 명칭이 붙는 것도 부적절)을 포함해 우리는 여전히 종교, 신화, 이야기들을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 스티븐 호킹 『시간의 역사』의 첫 장도 우리의 그런 점을 보여주고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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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 년 전 한 유명한 과학자(어떤 이들은 그가 버트런드 러셀이었다고 한다)가 천문학에 관한 대중 강연을 했다. 그는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태양은 거대한 별들의 모임인 이른바 우리 은하계의 중심의 주위를 돈다고 말했다. 강의가 끝나자 뒷좌석에 앉아 있던 키 작은 할머니가 일어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의 이야기는 말도 안 돼요. 세계는 거대한 거북의 등 위에 얹혀 있는 평평한 판이라구요.” 그 과학자는 여유 있게 미소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 거북은 무엇의 위에 서 있지요?” 그러자 할머니는 “똑똑하군요, 젊은이, 아주 똑똑해”라고 비아냥거린 후 이렇게 대답했다. “그 아래로는 그렇게 끝없이 거북들이 있지요.”

- 스티븐 호킹 『시간의 역사』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지구가 둥글다는 관찰이 있었지만 신이 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믿음처럼 ‘지구평면설’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존재한다. 거북이 지구를 받치고 있다는 이야기는 힌두 신화부터 중국 등 여러 문화권에서 발견된다. 한국에서도 사방을 지키는 사신 중 현무는 대지를 상징한다. 각 문화는 자신만의 독특성을 내세우려고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의 문화는 서로 닮았다. 이를테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지옥문을 지키는 삼두견(三頭犬) 케르베로스(Cerberus)가 있는데, 한국에는 암흑대왕의 불개(《조선민담집》), 저승의 삼목대왕이 이승으로 와 개로 변신한 삼목구(눈이 세 개인 개) 이야기(《청장관전서》) 등은 현실에서 우리가 개를 가까이하며 사는 것과 같이 이계에서도 비슷한 형상을 그린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머리가 셋에 다리가 하나인 ‘삼두일족응(삼두매)’, 태양에 사는 다리가 셋인 까마귀 ‘삼족오’를 통해서도 숫자 ‘3’을 완벽한 숫자로 여기는 동서양의 문화가 동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고기에 대한 신성시도 종교와 민간 모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성배 『한국 요괴 도감』은 짐승 혹은 사람처럼 생긴 ‘괴물’, 혼백이거나 자연의 정기에 의해 만들어진 ‘귀물’,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난, 독특한 능력을 갖춘 물건들인 ‘사물’, 오래전부터 인간과 함께 해온 한국의 ‘신’ 이렇게 네 분류로 소개하고 있다. 도깨비, 달걀귀, 손각시(처녀귀신), 몽달귀(총각귀신)처럼 익숙한 한국 요괴들부터 현대 도시괴담 속 자유로귀신, 콩콩콩귀신, 홍콩할매귀신, 한강괴물 등 신종 요괴들까지 두루 등장한다.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한국에는 요괴가 많지 않고, 억울한 죽음으로 인해 만들어진 귀신이 많다는 게 내 소감이다. 많은 요괴들의 출몰 시기가 조선 시대인 것도 흥미로운데 기록 때문에 요괴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역설도 된다. 관련된 인물이 유명인이면 더욱 그렇다. 괴이한 지네가 등장하는 김자점 탄생 설화(괴오공), 금돼지가 등장하는 최치원 탄생 설화(금돼지), 동명왕이 길렀다는 기린(기린), 박혁거세가 죽자 장사를 방해한 큰 뱀(대사), 선덕왕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침실에서 늙은 여우를 죽인 일화(매구-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천 년 묵은 늙은 여우), 나라가 망할 징조인 여우들이 의자왕의 궁에 들어오는 장면(백여우) 등.

 

 

 

 

 

 

 

 

 

 

 

 

 

 

 

 

 

 

 

한국 요괴들을 종합하면 몇 가지 특이사항이 있다. 영노, 장자마리, 주지 등 탈춤에만 소개되는 독특한 괴물이 있다. 불교가 민간신앙으로 오래 전해져 왔기에 불상과 관련된 요괴 이야기도 많다. 동식물 모습의 요괴들은 이 땅의 기후와 지역 특색에서 등장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은 호랑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듯 호랑이 귀물도 많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노래도 있고 금을 두꺼비 형상으로 만들 정도로 한국에서는 재물에 관련된 두꺼비가 많은데, 아닌 게 아니라 업신·조왕신·터주신으로 두꺼비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식물로 만들어진 병사인 녹두병, 죽엽군처럼 전쟁에서 도움을 주는 병사가 있었다는 것도 특이하다. 우렁각시나 선녀처럼 도와주는 여성 존재도 많고, 중국에서 불로장생약을 찾아온 곳이 한국이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병을 낫게 해주는 물이나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물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한국의 요괴 이야기들은 생활과 관련된 게 많아 염원을 담은 실용, 교훈 측면에서도 다양하게 탄생한 것 같다. 제주도에서만 출몰하는 요괴 소개는 섬 문화만의 특이한 문화 탄생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한국은 오래전부터 어떤 것을 신성시했고 터부시했는지 그리고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여전히 작용하고 있는 문화를 살펴볼 수 있었다. 이런 자료들은 재미나 이야깃거리로만 소비할 게 아니다. 여기엔 지금의 나, 세계의 뿌리들이 강력히 작용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 19라는 전대미문의 역병 앞에 우리의 두려움은 많은 것들을 또 만들어낼지 모르는데, 우리의 두려움이 그것들의 힘을 키운다는 걸 직시해야 한다.

ps)

이 책을 통해 몇 가지 잘못 알고 있는 것도 숙지할 수 있었다.

봉황은 특정 새가 아니라 수컷인 ‘종’과 암컷인 ‘황’을 합쳐 부르는 신령한 새로 고귀함의 상징이다.

기린도 수컷을 ‘기’, 암컷을 ‘린’이라 통틀어 기린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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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09-12 2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어보여요! 저 요즘 우부메의 여름 읽고 있어서 우리나라 요괴도 조사해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나 한 발 앞서가주시는 아갈마님!! :) 좋은 밤 보내세요!

2020-09-12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2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20-09-13 05:37   좋아요 0 | URL
심오할 것까진 없는데요^^;

『시간의 역사』 내용은 기존 지식에 편향돼 세상을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정도로 해석하면 되지 않을까요^^? 앞으로 과학적인 사실이 더 바뀔 수도 있겠지만 거북이가 지구를 받치고 있다는 생각은 이젠 폐기해야죠.

겨울호랑이 2020-09-12 22: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국 요괴 도감>을 보니 요괴들을 설명했다는 점에서 중국의 <산해경>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귀신, 요괴를 소개했다는 점에서는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귀신>과도 통하는 것도 있어 보입니다. 다만, <조선의 귀신>은 많은 귀신이 소개되었습니다만 제가 읽은 책에서는 그림이 많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한국 요괴 도감>은 이보다 편하게 다가오는 책으로 보입니다.^^:)

AgalmA 2020-09-13 06:17   좋아요 1 | URL
책에서도 산해경을 언급하며 중국 요괴와 비교를 자주 합니다. 하지만 미세하게 다르더군요. 다른 문화와 섞이면 다양성이 나오듯이요.
『조선의 귀신』이란 책도 있었군요ㅎ 무속에도 관심이 많아서 서정범 교수님의 연구에 관심 많았는데 억울한 사건으로 그리 되셔서 참 마음이 안 좋았어요.
『한국 요괴 도감』 보면서 책도 예쁘고 내용도 간단해서 아이들 키우는 분들은 그림 보며 같이 읽기 좋겠다 하긴 했습니다^^

 

이론들은 시간과 새로운 기술이 우리에게 준 증거를 반영하며 발전해야 한다. 미국의 위대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과학은 가능과 불가능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더 가능성이 큰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그는 미확인 비행물체의 존재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내 주변 세계의 지식에 따르면, 비행접시와 관련한 보고는 알려지지 않은 외계 지식에 대한 이성적 노력이라기보다는, 잘 알려진 지상 지식에 대한 비이성적 노력의 결과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DNA의 분자구조 해명 및 유전정보 전달 연구로 모리스 윌킨스Maurice Wilkins와 함께 196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내가 이 상을 함께 나누었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로절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이다. 그녀는 과학 역사상 가장 부당하게 대우를 받은 여성 중 한 명이었는데 상을 받기 4년 전에 사망했다. 영국의 생물 물리학자였던 그녀는 브래그 부자의 이론을 바탕으로 DNA 구조를 밝히기 위해 X선 촬영에 몰두했다. 이 작은 분자들에 반사된 X선은 사진판에 영원히 남게 되었는데, 그 당시 가장 정확하고 명확한 것이었다. 특히 그녀는 특별한 사진을 발견하고 51번이라는 숫자를 붙였다. 그러나 왓슨과 크릭은 그녀의 허락 없이 그것을 사용했다. 또한, 그 사진을 통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를 발전시켜나갈 중요한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니까 그 원자 자체는 영웅도 악당도 아니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아무도 탄소나 질소 원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매일 우리가 먹는 음식 속에도 들어 있다. 그러나 이들을 조합하면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시안화물cyanide이 될 수 있다. 삶과 죽음의 차이는 그 자체로는 악의가 없는 원자들 사이의 미묘한 재배치에 있다. 또한, 복용량도 중요하다. 카페인에도 독성이 있지만 이걸 마시고 죽으려면 24시간 이내에 커피 100잔 이상을 마셔야 한다.
티메로살의 경우에는 수은이 체내에서 제거될 수 있는 분자로 줄어든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 물론 아이들에게 투여할 화합물에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수십 년간의 독립적 연구 끝에 티메로살이 함유된 백신과 자폐증에는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과학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런데도 대부분 선진국의 의무 백신 접종 프로그램에서 티메로살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이 화합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여전히 이에 관해서 토론하고 있고, 부모가 자녀의 백신 접종을 거부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었다. 영국의 경우 3가 백신을 맞은 아이들의 비율이 1996년에는 92%였는데, 2009년에는 73%로 감소했다. 그 결과 백신으로 보호할 수 있는 병들을 증가시켰다. 그리고 결국엔 티메로살을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방부제를 제거한 국가에서 자폐증 발병률이 떨어지지 않았다. 또한 자료들을 비교해 보면, 자녀의 몸속에 생선 섭취로 쌓인 수은의 양이 전체 예방 접종으로 쌓인 수은의 양보다 훨씬 클 가능성이 높다.

왜 국그릇은 사과 파이보다 훨씬 더 빨리 식을까?

그 해답은 바로 대류 작용에 있다. 상승하는 액체는 차가워져서 내려오고, 열기가 있으면 밖으로 열기를 내놓기 위해 다시 위로 올라간다. 그러나 반대로 속이 꽉 채워진 사과 파이는 점성 때문에 액체가 빨리 움직이지 못해서 겉 부분이 빨리 식는다. 또한, 내부에서 올라오는 열은 훨씬 느린 전달 방법인 열의 전도를 통해 겉으로 올라온다.

태풍도 대류의 좋은 예이다. 거대한 태풍이 불면, 구름의 왕이라고 부르는 적란운이 생기는데, 이것은 놀라운 자연 현상 중 하나이다. 작은 물방울과 빙정이 쌓여 거대한 층을 이루는데 높이가 무려 20km까지 나타난다. 이것은 그릇 바닥에서 장국이 올라가는 것과 비슷한 원리로 지상 근처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상승할 때 형성된다. 뜨거워진 공기는 더 가볍기 때문에 상승하고 싶어 한다. 그럴 때 따뜻한 공기가 팽창하고 냉각되면서 올라가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공기 내에 충분한 습기가 있고 온도가 빨리 떨어지면 다른 현상이 발생한다. 즉, 습기가 응축되고 작은 물방울이 생기는데, 그 과정에서 열이 방출된다. 다시 잠열이 나왔다. 액체가 증발할 때 잠열을 흡수하고(주변 냉각), 반대 과정(응결)에서는 잠열을 방출한다. 그렇게 되면 공기가 열을 유지하면서 위로 올라가려는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그러면서 미소 입자와 같은 물방울들은 우리 앞에 기류를 드러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보는 구름이다.

그는 1940년도에 MIT의 방사선 실험실에서 레이더 스크린 설계에 참여하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면 과학 관련 기업이 사회와 관련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일에 생명력을 불어넣게 될 것이다"라고 글을 썼다. 그리고 이후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이루어진 미국의 원자폭탄 제조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해 원자탄용 타이머 시스템 전자 장치를 담당했다.
브룩헤이븐 계측 그룹에는 발사체 궤도와 튀어 오르는 물체를 시뮬레이션하도록 설계된 아날로그 컴퓨터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비행기에서 폭탄이 떨어지는 위치를 계산하기 위해 개발한 것이다.
게임에 관한 히긴보덤의 생각 속에는 모든 것이 섞여 있었다. 이것은 제어 시스템과 전자 이미지, 이용 가능한 컴퓨터, 그 당시 대중화되기 시작한 독일 트랜지스터 및 화면 상의 오오실로스코프oscilloscope에 대한 엄청난 경험이었다. 3일 만에 그는 〈테니스 포 투〉의 디자인을 끝냈다.
(중략)
그러나 그 게임은 상업적 특허를 받지 못했다. 1958년에서 1959년 사이에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 방문객이 참여한 사람들에게만 알려졌다. 오늘날 비디오 게임은 우리 사회,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 사이에 가장 많이 침투한 발명품 중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인터넷이다. 대부분의 네트워크 주소에 들어가는 약자인 ‘www’는 유럽 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물리학자가 고안했다. 유럽 입자 물리학 연구소는 브라우-앙글레르-힉스의 보손을 발견한 유명한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로 세간에 화제를 뿌린 바로 그 실험실이다. 팀 버너스리Timothy John Berners-Lee는 세계 곳곳의 입자 물리학 실험실에서 생성된 많은 양의 정보를 자동으로 신속하게 공유해 달라는 과학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그는 1989년에 www와 함께 컴퓨터가 서로 통신할 수 있게 해주는 프로토콜인 하이퍼텍스트 전송 규약Hypertext Transfer Pro-tocol(약자인 ‘http’는 즐겨 사용하는 검색 엔진에 쓰는 네트워크 주소 앞에 씀)과 그 외 오늘날 인터넷 검색을 하게 해준 기술들을 만들었다.

종종 위대한 혁신이 일어날 때처럼, 이 발명도 중대한 사건으로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게 아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그 개발 덕분에 폭넓고 새로운 응용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비디오 게임과 ‘www’는 물리학 연구소에서 전혀 새로운 발명을 의도하지 않았던 사람들에 의해서 탄생했다.

여기에서는 농약과 비료 및 유전 공학이 마치 악당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런 악당을 물리치는 농업 덕분에 우리는 가공되지 않은 더 건강하고 맛있고 환경을 보호하는 자연산 유기농 제품을 얻는다. 그러나 정말 그런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와 관련한 열띤 과학 토론을 보면 이런 제품들의 효과가 그렇게 크지 않아 보인다.

첫째, 비료와 살충제가 그렇게 나쁜 걸까? 분명 어떤 화학 물질에 독성이 많이 함유될 수는 있다. 따라서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 이것은 의약품과 세제, 음료수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런 규제는 합성 제품뿐만 아니라 자연산 제품에도 똑같이 중요하다. 우리 밭에서 자란 버섯이 자연산이라고 해서 무조건 치약보다 더 치아에 좋은 건 아니다.

그리고 유전공학도 생각해 보자. 유전공학은 해충에 대한 내성이 강하고, 과일의 크기와 영양가를 높이고, 더 먹음직스러운 색과 맛 등 우리가 원하는 특징을 가진 새로운 종을 만들기 위해 식물의 DNA를 개량한다. 우리는 그렇게 얻은 제품이 건강이나 생태계에 해로울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류가 수천 년 동안 해온 품종 개량 역시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단지 훨씬 천천히 진행되었을 뿐이다. 여기에선 우연히 돌연변이가 일어나길 바라고, 다음에 경작하는 생산물이 더 좋아지게 개량한다.
찰스 다윈은 이 과정에서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이것은 특수한 환경에서 더 잘 적응하는 형질을 지닌 돌연변이가 진화를 끌어낸다는 이론이다. 품종 개량에서는 그것을 원하는 대로 선택한다. 예를 들어, 옥수수는 천 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볼품없는 조상인 테오신테teosinte만 있었다. 이것은 키가 몇 센티미터 되지 않고 낱알도 얼마 붙어 있지 않는 옥수수의 근연종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수천 년간 그것을 길들여 오늘날의 옥수수로 변형시켰다. 즉, 인간은 약 만 년 동안 유전공학의 한 형태를 실행했다.

오늘날 식물이나 동물의 DNA에 원하는 유전자를 직접 넣을 수 있게 되면서 농산물을 개량하는 데 필요한 수천 년의 시간이 절약되었고, 이렇게 이 과정이 크게 발전했다. 다시 말하지만, 규제는 필요하다. 아직은 우리의 건강이나 환경을 위협할 정도로 기술이 발달한 건 아니지만, 몇몇 비양심적인 과학자들과 사업가들, 정치인들이나 조사관들의 관행에는 규제가 필요하다.

어느 한 시인이 "한 잔의 와인 속에 우주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라고 했다. 시인들은 이해받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기에, 아마도 우리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절대 모를 것이다. 그러나 와인이 담긴 잔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 우주를 보게 될 것이다. 거기에는 물리적 요소들이 있다. 소용돌이치는 액체, 유리잔에서 일어나는 반사, 그리고 상상력이 추가시키는 원자들, 그리고 바람과 기온에 따른 증발. 유리잔은 지구의 암석을 정제시켜 만들었기에 그 원자 구조로 우주의 나이와 별들의 진화 비밀들을 알 수 있다. 와인에는 어떤 화학 성분이 들어 있을까? 어떻게 조합된 걸까? 여기에는 효모와 효소, 그리고 여기에 반응하는 물질들과 생성된 결과물이 들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매우 일반적 사실을 알게 된다. 즉, 모든 삶이 발효라는 것. 수많은 질병의 원인을 밝혀내야 와인의 화학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지켜보는 줄 알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와인의 이 생생한 검붉은 빛을 보라! 우리의 보잘것없는 지성으로 와인 한 잔을 놓고 이 우주를 물리학, 생물학, 지질학, 천문학, 심리학 등의 부분으로 나눈다고 해도, 자연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는 걸 기억해라. 그러므로 이제 그것들을 다시 하나로 모으고,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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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장점은 여러 가지인데 내게는 과학 공부에 좋은 자극제다. 《테넷 tenet》 관람 후 즐거운 과학 공부가 또 시작되었다.

 

리처드 파인만의 『물리법칙의 특성』 읽다 보니 놀란이 《테넷 tenet》에 대해 "이해하려 하지 말고 즐겨라"라고 한 건 과학계 명언가 파인만한테 배운 거 아닌가 싶었다. 대칭성이 강조된 영화 이미지도 파인만의 '물리법칙의 대칭성' 챕터에서 영감을 받은 거 같고. 워낙 유명한 이론물리학자니 그의 책을 안 봤을 리 없고 파인만에게서 영감을 많이 받았을 듯. 봉고를 연주하는 자유로운 예술가이기도 했던 파인만과 통하는 게 많았을.

 

"나는 오늘날 양자 역학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강의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라. 내가 설명하고자 하는 바를 어떻게 형상화시켜서 꼭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긴장을 풀고 즐기는 기분을 갖기 바란다."

ㅡ 리처드 파인만 『물리법칙의 특성』

 

 

 

그러나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라"는 그럴싸한 말이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지각과 경험, 직관으로 접근하기에는 이 영화는 논리로 움직이고 구조적 짜임새가 상당하다.

이해 안 된다고 말들 많지만 스티븐 호킹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 한 권만 봐도 거론된 난제들이었다. 이론물리학자 킵 손이 각본을 봐줬다지만 《인터스텔라》보다는 시각적 구현이 잘 안된 거 같다. 익숙하지 않은 사고까지 해야 하니 사람들이 어려움을 호소할밖에.

몇몇 액션들은 좋았는데(그동안 찍은 영화 액션 총출동. 군사 동원은 《덩케르크》 영향ㅎ?) 놀란의 이전 영화에 비해 씬들이 매끄럽게 붙지 않아서 좀 지루했다. 창작자가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고 만들지 못한 책임일 수도 있지만, 물리적 구현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다. 시간 여행은 무수히 다뤄졌기에 예전처럼 뿅 하고 왔다 갔다 하는 식으로 얼렁뚱땅 표현하면 코미디가 되기 십상이라 고민이 많았을 듯. 논리적으로 풀자면 양자 얽힘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서사를 얹어 시각적으로 푸는 건 SF 물의 어려운 과제다.

이 영화는 이해의 어려움보다 설득되지 않는 게 많다.

 

그림 1) 스티븐 호킹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

 

1.

영화 속 '회전문'은 입자/반입자 쌍의 시간 이동을 시각적으로 적절히 표현했다. 괴델은 우주 전체가 회전한다고 봤는데, 그렇게 시공을 보면 출발하기 이전 시점으로 돌아오는 시간 여행이 가능해진다. 이 전제를 따르려면 빛보다 빠른 여행이어야 한다. 《인터스텔라》에서는 (빛보다 빠르기는 어려울 거 같아서? 웜홀에서 딸에게 중대한 정보를 보내야 하기 때문에!) '웜홀'로 시간 여행을 제시했다. 그래서 더 공상 과학 판타지 같다는 소릴 듣는 거 같다;;; 지금까지 제시된 시간 여행 이론은 어디까지나 이론적 가설이다. 이 영화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은 엔트로피를 되돌리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시간 여행을 제시한다.

리처드 파인만은 물리 법칙의 대칭성을 논하며, '회전'은 그와 관계된 모든 것을 되돌려 놓는 것이라고 했다. 이 영화는 인버전(엔트로피의 역전)을 이용한다면서 거꾸로 움직이는 건 맛보기 정도로 짧게 보여주고 대부분 스토리에 맞춰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다-,-);

 

 

2.

드니 빌뇌브 영화 《컨택트(Arrival)》와 원작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때와 같은 물음이 남는다.

시간 여행의 역설 '무모순적 역사 접근(consistent histories approach)'

영화에서도 언급된 '할아버지 역설'이 여기 해당하는데, 시간 여행이 가능해 과거로 간다 해도, 기록된 역사는 바꿀 수 없다는 것. 과거와 미래는 정해져 있고 우리는 역사를 따르는 위치다. 이 세계에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 테넷은 인류의 파멸을 막을 운명이고 피할 수 없다. 죽음의 결과를 받아놓고 살아가는 인간 삶과 마찬가지로.

시간 여행의 역설은 다른 것도 있다. 시간여행자가 기록된 역사와 다른 대체 역사 속으로 들어가 제약받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대체 역사 가설(alternative histories hypothesis)', 물리 법칙들이 거시적인 물체가 과거로 정보를 운반하는 것을 막는 '시간 순서 보호 가설(chronology protection conjecture)'이다. 호킹은 '대체 역사 가설'을 '파인만의 역사합산'과 비교한다. 파인만의 방법은 우주가 단 하나의 역사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각각 고유한 개연성을 가진 수많은 역사들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각각이 개별인 만큼 가시화된 역사는 모순이 없어야 하는 동일한 역사여야 하므로 그의 방법은 '무모순 역사 가설'과 비슷하다.

호킹은 경고했다. "과거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면, 모순에 빠진다."

이 영화의 문제는 '무모순적 역사 접근'(일어난 일은 일어난다)을 내세우면서도 실상 방법은 '대체 역사 가설'이다. 스토리 진행상 어쩔 수 없었겠지만 물리 법칙들은 무시하며 자유롭게 장면을 끌고 나간다. 양자역학에서는 물질입자들 사이의 모든 힘 혹은 상호작용이 입자들에 의해서 운반된다고 가정한다. 힘- 운반 입자의 방출(-)과 흡수(+)는 불가결하다. 이 영화 속에서 인버전이 작용하면 총알이 되돌아오는 발사처럼. 물체는 그렇다 치고 인간의 몸과 의식이 미래 정보를 가진 채 과거로 되돌아가는 건 굉장히 인간 중심 원리(anthropic principle)다. 인간은 수많은 기억과 정보로 이뤄진 유기 생명체이자 이 세계를 이루는 네 힘(중력,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에 영향받는 물리적 원자이다. 그러니까 시간 이동에서 모든 것(가장 불완전한 의식 포함)이 온전한 채 과거로 가서 힘을 행사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생긴다. 시간 이동에서 각종 정보와 힘들이 충돌하게 되는데, 고전 SF 영화의 충격적 장면처럼 그런 시공간이라면 파리와 얽혀 파리 인간으로 전송되는 가능성이 더 현실적이다. 호킹이 블랙홀과 웜홀을 설명할 때 온전한 정보량으로 이동할 수 있는지에 회의적이었던 것처럼.

영화에서와 달리 대부분의 시간 이동 이론들은 미래로의 이동은 가능하지만 과거나 정확한 시점으로의 이동이 어렵다 말하는 건 불확정성 원리, 엔트로피(무질서의 증가) 이유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성을 가진다. 단지 우리가 그렇게 보기 때문에 그렇다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상당수의 숨은 정보량을 모르고, 이 시공간의 자연현상은 균형을 이루는 물리 법칙 속에 함께 흘러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10차원을 말하는 끈이론을 이해하기 어려워하고 다른 차원을 볼 수 없는 것도 이 세계의 물리법칙이 작용하는 시공간의 영향 때문이다. 이 영화가 굴러가는 핵심 논리는 '엔트로피를 제어하는(시간을 뒤집는) 인버전 기술로 시간과 상황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것만으로는 모든 걸 조정할 수 없다. 불확정성 문제, 현재에 작용하는 중력은 무시된 채 인버전이면 다 될 것 같은 이 영화의 논리대로라면 과거로 사람이 오가는 복잡한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다. 정확히 원인의 시작점을 알고 모든 물리 법칙을 제어 가능한 기술력까지 있다면 미래에서 간단히 조작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면 영화가 안 되잖아-_-)...

 

3. 영화 《컨택트(Arrival)》와 원작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보면서 가진 내 의문 하나가 풀렸다. 빛은 최단 시간을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택한다는 페르마의 원리에 따라 테드 창도 ˝광선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를 선택하기도 전에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결정해야 한다"라는 문장을 썼다. 페르마의 원리에서 도출한 결과ㅡ'미래를 안다는 건 자유의지가 양립할 수 없다 -> 선택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미래를 아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 미래를 안다면 그 미래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ㅡ에 따라 주인공의 삶과 미래는 무모순적 역사 접근을 따랐다. 나는 빛이 목적론적으로 움직인다는 설명이 도무지 수긍되지 않았다. 이번에 스티븐 호킹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 를 읽으며, '파인만의 역사합산'이 합리적 설명으로 이해시켜줬다. "전자와 같은 한 입자는 가능한 모든 경로를 거친다." 즉 빛은 여러 경로로 출발하고 '빛의 최단 시간'은 우리가 도출해낸 결과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은 바꿀 수 없는 인과론적 결론(빛의 최단 시간)이 아니라 바꿀 수 있는 목적론적 결론(빛의 여러 경로)을 실험해보는 과정이었다.

 그림 2) 스티븐 호킹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

 

 

 

4.

이 영화는 '그렇다 치고'가 너무 많다. 미래와 소통하며 인류 파멸을 계획한 빌런 캐릭터 사토르(케네스 브래너)만 등장해 아쉬움이 많은데 정작 그 힘을 가진 미래인의 정체, 그 힘이 이 현실에 어떻게 주어졌는지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게 영화의 답답함을 더 키웠다. 거두절미하고 시간 중첩이 가능하다는 논리 아래 과거의 것들이 지금 현실에 중첩되며 모든 것이 혼재하고, 사물과 사건이 리플레이되듯 움직이며 '나'가 '나'를 만나는 것 등 근사한 이미지들이었지만 그것은 끝과 시작을 구분할 수 없는 에셔의 그림처럼 직관적이고 예술적인 나열이지 설득도 근거도 아니다. 그래서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라"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 과거의 자기를 만나면 존재가 사라지므로 절대 만나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나온다. 그것은 과학적인 설정이다. 원자는 구성 입자에 대응해 쌍을 이루는 반대 성질의 반입자를 가진다. 리처드 파인만의 이론에 따르면(위 그림 1 참조) 시간을 거슬러 움직이는 반입자와 입자가 만나면 둘은 소멸한다. 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과거의 자신과 싸우는 장면은 기묘해진다. 자신을 몰라봐야 하니까 방독면을 쓰게 만든 설정이 이해도 됐다. 그러나 엔트로피를 거꾸로 돌려 인버전된 과거의 존 데이비드 워싱턴을 반입자라고 볼 때 이론적으로 (이미 무시되고 있지만) 그들이 못 알아보므로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접촉하는 순간 섬광과 함께 사라져야 한다. 이 영화를 분석하면 할수록 나도 억지 가설로 빠지고 있는 것만 같다-_-

인류와 에일리언의 기원을 설명한 리들리 스콧 《프로메테우스》(2012) 같은 후속작이 나오면 많은 게 설명될까. 그러자면 설명해야 할 물리법칙들이 만만찮을 것이다. 놀란 감독 앞으로 영화 찍기 더 힘들 듯. 엔트로피 성질상 이미 이런 식으로 사고한다면 더 복잡하게 가지 후퇴하진 않을 거 아닌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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α

그럼에도 이 영화는 '입자의 위치와 속도 같은 한 쌍의 양들이 동시에 정확하게 예측될 수 없다'라는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원리를 (스토리의 재미를 위해선지) 나름 따르고 있다. 인버전으로 반복해 과거로 돌아가지만 계속 목표를 놓친다.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인버전을 반복한다. 어떤 역사에서는 존 데이비드 워싱턴도 로버트 패틴슨도 죽는다. 이 영화는 '성공' 결괏값만 보여준 엔딩이었다. 대칭성을 고려해 끝에서부터 앞으로 가는 인버전 관람을 한다면 결괏값은 '실패'다. 이 영화를 보고 생각을 정리하며 '진리'는 우리가 원하는 '운명'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ps)

주연 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캐스팅 실패였다. 존재감이 너무 없어 영화가 더 흡입력이 떨어졌다. 로버트 패틴슨은 닐 역에 잘 어울렸다. 엘리자베스 데비키 나오는 많은 장면도 그렇고, 정장 차림에 번지점프 작전이라니 거 너무 007 오마주 아니오! 뭐, 어울려서 칭찬.

내가 이 영화를 봤다는 미래 결과 때문에 봐야 했다. 이 영화의 대사 '일어난 일은 일어난다' 패러디.

아이맥스도 포기하고 사람 없을 조조로 관람했는데 나를 포함해 총관객 6명.

2시간 30분 정도 보는데 마스크 벗고 음료나 과자를 꼭 먹어야 하는지... 그 넓은 데서 바로 앞에 앉은 사람이 그러길래 불편했다. QR 코드 체크해서 함부로 위치를 이동해선 안 된다. 호기심과 즐거움 추구도 좋지만 공중 위생을 더 생각하며 즐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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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9-01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보셨군요.
저도 보고 싶어 죽겠는데 현실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제게 스포될 것 같아 쓰신 첫문장만 봤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꼭 보고 소감 나누고 싶습니다. ^^

AgalmA 2020-09-01 21:51   좋아요 1 | URL
놀란 감독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재미가 확실히 있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북다이제스터님은 어떤 리뷰 남기실지 궁금합니다/

2020-09-01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1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20-09-01 22:42   좋아요 1 | URL
아 마침 저희 집 귀요미가 웃고 있어요 ㅋㅋ
 
[eBook] 김지은입니다
김지은 지음 / 봄알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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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없는 한강변에서 자유롭게 바람을 쐤던 작은 일상조차 큰 행복이었다는 김지은 씨 경험담에

그녀의 책과 함께 공원을 걷고 싶었다.

 

 

 

제임스 설터의 에세이집 중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원제 'don't save anything'의 반어성을 살린 국내 번역 제목)이 있다. 김지은 『김지은입니다』는 그보다 더 절박하다. 쓰지 않으면 철저히 왜곡된 채 기한도 제재도 없이 떠돌 것이기에 어떻게든 남겨야 했다. '제발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 이 책에 얼마나 많은지.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사회는 민주주의든 자유주의든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신변의 위험을 느껴 살아남기 위해 본명과 얼굴을 공개해야 했던 김지은은 민주주의, 진보주의, 인간의 존엄을 정치로 실현하겠다는 자들이 모인 곳이 가장 권위적이며 이기적이고 폐쇄된 착취의 온상이었다고 고발한다. 여성이었기에 더 무시당하고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 책은 성폭력이 전면에 나와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인간이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폭력적인 사회', '권력', '위력', '갑질'을 행사하는 자들이 개인을 얼마나 파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위계 사회'의 문제점을 깊게 생각게 한다. 위력을 향위하는 자는 성폭력이 최상위 폭력임을 알기에 그것을 행사하고 그 힘을 만끽한다. 거기 인간은 없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은 '폭력'에 대한 전면적 거부이자 평화 메시지로 수렴된다. 그녀가 고발을 결심한 것이 단지 자신의 피해만이 아니라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에도 있을 피해를 막기 위해서였다는 점도 그것을 시사한다. 안희정의 핵심 참모였던 문 선배가 자신의 인간관계와 안락한 미래보다 '정의'를 위해 김지은을 돕기로 한 결정적 첫 도움도 그러한 의미다. 그녀의 삶은 정말이지 노예의 삶이었다. 누구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모든 사안에 객관성과 신중을 요구하는 내 모습이 2차 가해가 되지 않는지 자주 고민한다. 이해나 공감조차 희박하지만 이해나 공감이라는 것이 일회성 구세군 모금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계이고, 정확한 사실 관계가 뚜렷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변을 내놓다 보면 실수는 돌이킬 수 없어서다. 사행성 언론, 찌라시와 가짜 뉴스, 악플이 이런 폭력을 무수히 낳고 있는 걸 매일 보니까.

최종 유죄 선고 후 나는 이 책을 마주했다.

아프고 불편한 것을 더더 마주하고 이겨내야 하는 세상이기에

나를 포함한 세상의 많은 김지은 씨, 힘내십시오.

 

 

 

📖

"10개월짜리 단기 행정 인턴에서 시작해 기간제 근로자, 연구직을 거쳐 계약직 공무원이 되었다. 계약 연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일밖에 모른다고 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6년을 버텼고 학교도 어렵게 졸업했다. 나는 금융채무자이자, 병환 있는 가족을 부양하는 실질적 가장이자, 성과로 평가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안희정 측 변호인이 나를 가리켜 말한 ‘고학력 엘리트 여성’은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결과일 뿐이었다. 내 또래의 많은 이가 나와 비슷하게, 제각기 노력하며 살고 있다."

 

📖

"제일 처음 인계받은 내용은 지사가 구두를 편히 신을 수 있도록 어떤 위치에 어느 정도의 각도로 놓아야 하는지였다. 지사가 공관에서 나가서 들어오기까지의 모든 것이 다 수행 업무라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시작이 지사의 구두였다. 구두를 신고 나서는 순간부터 지사의 일정이 시작된다. 수행비서는 그 전에 모닝콜로 깨워드리고, 일정 준비, 가방 들고 나오기, 문 열어드리기로 업무를 시작해 지사가 일정을 마친 뒤 공관에 짐 넣어드리기, 문 닫아드리기까지 해야 일단 지사와의 동행 수행 업무가 끝난다. 그리고 다시 내일의 업무를 위해 다음 일정 자료를 숙지하고 설명할 수 있도록 재차 확인하고 동선을 모두 파악하여 필요한 연락이나 조치를 취한다. 수행비서는 지사보다 2시간 일찍 일정을 시작해 1시간 늦게 끝마치는 패턴이었다.

그리고 아주 세세한 사항들까지 교육받았다.

“멍 때리지 마라, 절대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격식 있는 자리인지 미리 확인해라, 지위에 맞지 않는 자리를 싫어하신다, 행사 시 앉는 자리에 착석하는 끝까지 봐야 한다, 보안이 필요한 식사는 수행비서 개인 카드로 결제해라, 사우나, 미용, 마사지 등 지사의 개인 일과 비용도 수행비서 개인 사비로 써라, 지사 가족들의 비용도 수행비서가 부담한다, 현금을 넉넉히 가지고 다녀라, 한도 500만 원짜리 카드를 만들어라, 지사의 식성을 파악해라, 아주 세세한 음식 기호를 외워서 맞춰드려야 한다, 얼굴이나 이름을 못 외우니 수행비서가 보조 기억 장치로 있다가 옆에서 알려드려야 한다, 각종 신고서도 수행비서가 써서 챙겨드려라, 경제 용어도 외워라, 못 알아들으면 안 된다, KTX를 탈 때 수행비서 앞에 있는 받침대는 지사의 커피와 가방을 놓을 수 있게 펼쳐놓아라, 아메리카노에 각설탕은 1개, 시럽일 때는 2번 펌핑해야 한다, 빵을 사 오라 하면 크루아상이나 따뜻한 플레인 베이글을 사라, 크림치즈와 나이프를 같이 준비해드려라, 가끔 단 것을 찾으시면 그럴 땐 옛날 꽈배기를 사라, 우유는 예전에는 커피우유만 드셨으나 요즘에는 흰 우유를 주로 드신다, 꼭 빨대 챙겨라, 자주 부르고 자주 심부름을 시키신다, 병장을 웃기는 이등병의 마음을 가져라, 공식 일정 이후 시간, 기업, 친구, 여자 이야기는 주변에 함구하라, 특히 여자 관련해서는 인수인계서 메모에서도 삭제해라, 단어 언급조차 하지 말고 어디에 쓰지도 마라, 보고 듣고 알아도 비밀을 유지하고 반드시 함구하라, 중요하니 재차 강조한다 (…)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인수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사님 기분’이다, 여기에 별표 두 개를 그려라, 인수인계 사항들은 모두 지사님 기분을 맞춰드리기 위한 것이다."

 

📖

"세 명의 판사는 피고인 안희정에게는 묻지 않았다.

‘왜 김지은에게 미안하다 말하며 여러 차례 농락했는가?’

‘왜 직접 페이스북에 합의에 의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썼는가?’

‘왜 세 번이나 입장을 번복하였는가. 일관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왜 검찰 출두 직후 휴대폰을 파기했는가?’

왜 법원은 가해자 안희정에게는 묻지 않았을까?

‘위력은 존재하나 위력이 아니다. 거절은 했지만 유죄는 아니다.’

‘합의하지 않은 관계이나 강간은 아니다.’

‘원치 않은 성관계는 있었으나 성폭력은 아니다.’

도대체 뭐가 아니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재판부가 내게 했던 것처럼 안희정에게도 16시간을 질문했다면 1심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1심 내내 안희정에게 무언가를 묻지도 확인하지도 않은 재판부는 그의 말이 더 일관되고 진실하다고 판단했다. 최초 나의 언론 고발 직후 안희정은 합의되지 않은 관계였음을 인정했고,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했으며, 미안하다고도 했다. 범죄에 사용한 휴대폰은 파기했다. 진술을 여러 차례 번복했고, 증거를 스스로 없앴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을 심문하지 않았다. 묻지 않았다."

 

📖

"나를 음해하고 공격했던 사람들이 바로 전자의 그 시선을 이용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주요 행위주체들의 담론분석 결과,) 가해자 측은 성범죄 사건을 ‘합의에 의한 관계’ ‘불륜 관계’로 정의하면서 ‘법적 문제’에서 ‘도덕적 문제’로 전환시키고, ‘꽃뱀’ 담론을 끌어와 생존자를 가정 파탄을 초래한 ‘가해자’로, 안희정과 그의 주변 사람을 ‘피해자’로 이미지화했다. 또한 ‘성적 자기결정권’에 관한 페미니즘 담론을 재해석하여 성폭력의 책임을 생존자에게 돌리는 전략을 취하며 성폭력 문제를 ‘개인화’했다”.

어느 한 가해자만의 특수한 방어 전략은 아니다. 가해자의 가족, 특히 아내들은 적극적으로 2차 가해에 동참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오직 가족과 관련해서 의리를 지킬 것을 요구한다. 여성의 명예와 평판은 여전히 정상가족을 잘 유지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그 결과, 친족 성폭력의 피해자에게 친엄마가 나서서 침묵을 종용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피고인을 대통령 만들겠다고 여러 해를 바쳐왔던 사람들뿐 아니라 피고인의 가족들에게도 나는 철천지원수나 다름없었다."

 

📖

"상사에게서, 교수에게서, 선배에게서 힘의 작동 원리에 따라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함께 적용되는 것이 위력이다. 위력의 무서운 점은 위협적인 말을 듣지 않아도, 스스로 몸이 굽혀진다는 것이다. 위력은 상대를 압도하는 힘이다. 타인의 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유형적·무형적인 힘이다. 폭행이나 협박을 동원한 경우는 물론,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이용하여 의사를 제압할 경우도 포함된다. 우리는 살면서 그런 힘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고, 느끼고, 경험하고 있다. 때로는 직급으로 인해, 때로는 성별로 인해, 때로는 나이로 인해, 때로는 조직이나 재물로 인해……. 그렇게 각자의 일상에 위력은 늘 존재하고 있다. 그 위력에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참는 일은 많다. 그럼에도 개인은 그 안에서 자신의 업무나 학업을 쉼 없이 이어나간다. 위력이 존재한다고 해서 학교나 직장을 바로 그만두지는 않는다. 그것이 위력의 실상이자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이다."

 

📖

"24시간 업무 중인 수행비서에게 상사의 지위는 24시간 그대로 유지된다. 그것을 고의적으로 성범죄에 이용한 가해자는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현실은 이 중요한 판단을 기피하였다.

나는 더 이상 노동자가 아니다. 일도 하지 못하고 수입도 없다. 생계를 늘 걱정한다. 고소 이후 일 년이 넘게 재판에만 임했다. 노동자로서 성실히 살아왔던 내 인생 전체가 한 노동자의 삶으로서 인정받기 이전에 피해자다움과 배치되는 행동으로 평가받았다.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기를 바라며 대학원에 간 것은 ‘범죄를 거절했어야 마땅한 판단력 있는 고학력 여성’이라는 가해자의 논리에 사용되었다. 이전 일을 그만두고 선거 캠프에 들어간 것은 팬심에 의한 것이 되었고, 근무 시간 제한 없이 일에 매진했던 것은 피고인을 좋아해서였다고 매도되었다.

만약 당시 정상적인 노동자로서의 삶을 보장해달라고 더 강하게 요구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일을 외면하고 현실에서 도망치면 피해자다운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직장이 절실했던 내가 당장 관두고 다른 일을 찾았다면 피해자다운가? 이미 안희정 사단으로 꼬리표가 붙은 내가 오도가도 못 한다는 건 함께 일했던 이들이 가장 잘 알았다. “본인이 관뒀대.” “일도 잘 못해.” 평판조회 한두 번이면 끝이다.

‘안희정 무죄’라는 판결문을 받아 든 날도 있었다. 끝내는 ‘안희정 유죄’라는 정당한 판결문을 손에 쥐었지만 여전히 내 삶은 쏟아지는 2차 가해 속에, 기울어지고 삐딱한 시선 속에, 일하지 못하는 처참한 비(非)노동자의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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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8-19 2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참 기가 막히고 가슴이 답답합니다. 여전히 가해자를 비호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람들 머리에 뭐가 들었는지 보고싶어요. 김지은씨가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ㅠㅠ

AgalmA 2020-08-23 22:41   좋아요 0 | URL
그래서 사람들이 권력, 돈, 인맥을 기를 쓰고 쌓으려는 거겠죠. 뭘 하든 방어막이 되어 주니까. 인터넷 발달로 여론 조성도 쉽지만 그만큼 부정적인 효과도 있어서 피해자가 법적 싸움만 하는 게 아니라 더 어려운 싸움이죠. 정부 일하던 실력을 발휘해 성폭력 재활 시스템에서 좋은 역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보르헤스의 상상 동물 이야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남진희 옮김 / 민음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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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면 이 책은 '상상동물' 이야기로 통칭할 수 없다. 천사와 악마, 요정, 거울 같은 사물 등도 나오기 때문에 인간의 '상상이 만든' 이야기라거나 『El Libro de los seres imaginarios』 원제 대로 '상상 존재들'이 합당하다.

이 책에 나오는 '상상 존재'에 대한 평은 대체로 이렇다.

'아무도 그것을 본 사람이 없고, 실체를 보려고 하면 사라지거나 본 자가 죽기 때문이다.'

"그리핀은 사자를 여덟 마리 합쳐 놓은 것보다 크고 독수리를 100마리 합쳐 놓은 것보다 힘이 세다"(존 맨더빌 경 『동방 여행기』 85장)라는 표현처럼 상상 존재의 압도적 규모과 능력까지 고려하면 이것은 신에 대한 설명과 비슷하다. 세비야의 성 이시도로스 『어원학』은 예수를 "예수는 사자이시다, 왜냐하면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독수리이시다. 왜냐하면 부활해서 하늘에 오르셨기 때문이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말이다. 유대교 신비주의 저서 「에제키엘」에서는 "복음서를 쓴 네 명의 사도가, 마태는 때때로 수염이 난 인간의 모습으로, 마가는 사자의 모습으로, 누가는 송아지의 모습으로, 요한은 독수리에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했듯이 여러 문화에서 가져온 상상 존재 이야기는 상당히 종교적이며 신화적이다. 종교적 관점에서 애니미즘(무생물적 자연 현상과 동·식물에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는 세계관 또는 원시 신앙)에서 다신교, 일신교로 발전했던 것과 겹치는 게 많다. 상상 존재의 이야기들이 왜 대부분 경고의 의미를 지니는가도 유추할 수 있다. 공자와 엮이는 상상 동물이 꽤 되니 아주 옛날 얘기..(아니)..인가.

대부분 '동물'이라는 점에서 상상 동물들은 지상의 계통발생 특징을 하나씩은 다 갖고 있다. 호랑이, 사자, 코끼리, 코뿔소, 사슴, 말, 개, 황소, 돼지, 고양이, 원숭이, 뱀, 새, 거북, 물고기 등 실제 생물의 유사성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 꿈의 해석처럼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전달하자면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세계의 모습과 우리의 상상으로 조합된 해석은 기묘하고 우습고 재치 있다. 동물들은 말을 하면 사람들이 일을 시킬까 봐 침묵하며, 아프리카 부시먼 족에 의하면 동물들을 증오하던 "호치간"이 동물에게서 말하는 능력을 빼앗았다는 이야기 이면엔 인간의 욕망과 착취, 소통 욕구 등을 읽을 수 있다.

과거 '지진'에 대한 동서양의 해석은 지금으로서는 우화나 다름없다. 탈레스는 지구가 선박처럼 물 위를 떠다녀 그 물의 소용돌이로 지진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면, 일본은 지구 아래 메기같이 생긴 '가미' 신이 움직이면 땅이 흔들리므로 가미 머리에 칼을 깊숙이 꽂아야 한다는 전승이 있다. 18세기 한 봉건 영주가 칼끝을 보려고 땅을 팠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일본 열도를 등에 진 지진 물고기 때문이라는 전설도 재밌다. 요괴 얘기가 많기도 하지만 일본의 상상 동물은 참 유니크한 듯.

달나라 토끼는 중국에서 유래되었는데, 부처의 전생에 그의 배를 채워주고자 토끼가 자기 몸을 바친 걸 고마워해 부처가 토끼의 영혼을 달나라로 보내준 것이라고ㅎㅎ 한국의 《토끼전》이 달리 생각되려 한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호모 사피엔스가 딱 좋아할 만한 소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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