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름다운 - 2014년 전면 개정판
제프 다이어 지음, 한유주 옮김 / 사흘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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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 재즈란 용어는 있지만 프리 클래식이란 용어는 없다. 흑인의 저항과 역사를 대변하는 재즈와 백인의 역사라 할 클래식을 굳이 대결 구도로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의 재즈도 더 이상 게토의 삶을 대변하거나 반항적인 모습이 아니고, 그 역시 재즈의 전통에 사로잡혀 있긴 마찬가지다. 용어가 비평가들이 만드는 구분일 뿐이지만, 두 음악의 특징 면면을 생각해보면 그 정형성과 대비는 흥미롭다. 어떻게 표출하든 예술에서 대전제는 동일하다. “예술에 대한 최고의 독법은 예술”(조지 스타이너 『그리스도의 실재』)이고, 훌륭한 음악은 예술의 본질에 대한 물음과 답변을 내놓는다. 예술가가 아닌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난관이지만, 우리가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면 지금의 많은 예술 작품들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앞선 시대의 누구의 영향을 받아 이런 연주를 하게 되었는지 모르는 채 후대 재즈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앞선 시대 연주자들의 특별함을 깨닫기 어려울 것이므로 제프 다이어는 재즈는 반드시 연대기적으로 감상해야 한다고 당부했지만, 재즈의 즉흥성처럼 그의 글 특징처럼 이 책은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재즈 하면 자동적으로 떠오르게 되는 거장 루이 암스트롱이나 존 콜트레인, 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거장들을 거론하며 계보를 좇지 않는다. 제프 다이어는 1940년대에서 1950년대 재즈를 이끌었던 대표 뮤지션들에 집중했다. 모든 흑인 뮤지션들은 인종차별과 모욕을 피할 수 없어 쉽사리 경찰에게 두들겨 맞았다. 약과 술에 취해 병원에서 허물어지던 뮤지션이 부지기수였는데, “뉴욕 벨뷰 병원은 현대 재즈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버드랜드와 거의 동등한 위치”라고 할 정도였다. 레스터 영(1909~1959), 텔로니어스 멍크(1917~1982), 버드 파월(1924~1966), 찰스 밍거스(1922~1979), 벤 웹스터(1909~1973), 쳇 베이커(1929~1988), 아트 페퍼(1925~1982)의 이야기가 이어지며, 공연을 위해 이동하는 길 위에서의 시간이 많았던 듀크 엘링턴(1899~1974)과 해리 카나(1910~1974)의 여정이 막간처럼 툭툭 끼어든다. 이 구성 때문에 짐 자무시 《커피와 담배》 같은 영화를 보고 있는 기분도 든다.

음악계든 문학계든 천재 예술가들의 불운과 요절 소식은 역사적으로 자주 있었지만 재즈 뮤지션만큼 혹독하게 겪은 예술가도 없다. 색소폰 연주자 레스트 영은 군대 징집으로 엉망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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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 결과 그는 매독을 앓고 있었다. 그는 늘 술에 절어 있었고, 약에 취해 있었다. 암페타민 중독이었던 까닭에 그의 심장은 시계처럼 째깍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체검사를 통과했다. 그들은 레스터를 군대에 집어넣기 위해서라면 그런 것쯤은 무시하기로 한 것처럼 보였다.

자신만의 소리를 낼 수 있는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연주하는 방식을 찾아낼 수 있는가, 이틀 밤 동안 결코 똑같은 연주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재즈란 무엇인가에 결부된 질문들이었다. 그러나 군대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같기를, 동일하기를, 식별 불가능하기를, 닮아 보이기를, 같은 생각을 하기를, 내일도 모든 것들이 오늘과 똑같이 남아 있기를,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를 원했다. 모든 것들은 정확한 각도를 형성해야 했고, 예리한 날을 세워야 했다. 그의 침대 시트는 사물함의 금속 모서리처럼 정확하고 반듯하게 접혀 있었다. 그들은 나무토막을 대패질하는 목수처럼 그의 머리를 박박 밀어버렸다. 마치 머리통을 정사각형으로 만들려는 듯. 군복조차도 신체를 사각형으로 개조하려는 목적을 위하여 재단되었다. 곡선도 부드러움도, 색도, 침묵도 없었다. 군대는 마치 한 사람이 2주 만에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공간처럼 보였다.

(중략)

훈련하다 부상을 입어 찾게 된 병원에서 그는 신경심리학과 과장에게 몇 가지 질문을 받았다. 의사인 동시에 군인이기도 했던 그는 전장에서 못 볼 것들을 너무나 많이 본 나머지 정신이 나간 사내들을 주로 담당했다. 영의 문제가 전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의 동정심도 한순간에 날아가버렸다. 영이 무의미하고 터무니없는 답변을 할 때마다 퉁명스럽게 반응하던 의사는 그가 동성애자라고 확신했지만, 진단서에는 보다 복잡하게 썼다. ”약물 중독(마리화나, 바비튜레이트), 만성 알코올중독, 떠돌이 생활로 인해 야기된 종합적인 정신병적 상태……. 전적으로 규율 부족 문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위의 기록들을 요약하기라도 하듯, 한 단어를 부가했다. “재즈.”▦



영은 삶이 군대 전과 후로 나뉘어버렸고,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다. 그들에게 감옥과 정신병원과 군대는 언제라도 서로 제 역할을 바꿀 수 있는 곳이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 재즈 연주자들은 ‘재즈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태양은 구리 심벌즈로 보였을 것이다. 평소에도 불안정한 재즈 피아니스트 버드 파월이 감옥을 견디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텔로니어스 멍크는 약물 소지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기도 했다. 결국 마약 소지 죄로 감옥에 갔던 파월은 감옥에서 정신 발작을 일으켰는데, 재즈계에 복귀하고서도 그리 긴 음악 생활을 하지 못하고 생을 마쳤다. 제프 다이어는 신경 쇠약과 약물 중독에 빠졌었던 버드 파월의 당시를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펼쳐 놓았다.

큰 덩치에 쉽사리 분노에 휩싸였던 벤 웹스터와 찰스 밍거스의 이야기는 funk(Jazz, R&B, Soul 음악이 혼합된 리드미컬하고 춤추기 좋은 음악)처럼 진행됐다면, 백인 재즈 연주자 쳇 베이커와 아트 페퍼 이야기는 무드 발라드처럼 펼쳐진다. 쳇 베이커 음악에 대한 제프 다이어의 해석은 100% 동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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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뮤지션들은 옛 곡의 선율이나 악구를 직접 해석하고 변형하거나, 그 곡에 완전히 자신을 흡수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쳇의 경우, 곡이 온전히 이런 역할을 수행했다. 쳇이 한 일이라곤 그저 곡들에 담겨 있는 상처 입은 부드러움을 끄집어내는 것뿐이었다.

이런 이유로 그는 결코 블루스를 연주하지 않았다. 그가 블루스를 연주한다고 하더라도, 진짜 블루스라고는 할 수 없었다. 블루스에 함축된 유대감과 믿음에서 그는 멀리 있었기 때문이다. 블루스는 그가 결코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

그는 트럼펫을 침대에 남겨두고 화장실로 향했다. 문이 달각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녀는 이 사소한 순간에조차 슬픔이 서린다는 것에 놀랐다. 그의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순간들은 다가올 이별의 순간을 예고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가 연주하는 곡의 모든 음이, 마지막 순간의 전조처럼 들리는 것처럼.

그는 항상 떠나고 있는 사림처럼 보였다. 당신은 그와 약속을 잡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서너 시간쯤 늦게 오거나, 아예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고, 전화번호도 남기지 않거나 최소한의 설명도 없이, 며칠이고 및 주고 훌쩍 사라져버릴 수도 있었다. 이런 사내를 이토록 쉽게, 중독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가. 그에게 버림받았다는 기분은 다른 이들에게 동지애마저 느끼게 했다. 그는 누구나 지니고 있는 외로움을, 반쯤 빈 전철에서 만난 낯선 이의 애절한 얼굴에서 흘긋 엿볼 수 있는 외로움을 가져다줬다. 사랑을 나누고, 그가 그녀에게서 빠져나간 뒤, 몇 분 지나지도 않아 그녀는 그를 잃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다. 누군가와 사랑을 나눈 뒤 여인의 몸에는 자궁 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와 같은 열정의 각인이 남는다. 그가 곁에 없어도 여인은 그로, 그의 사랑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쳇은 그에 대한 갈망뿐인 공허함을 남긴다. 다시 한번 그대를, 다시 한번 그대를, 하는 바람만을 남긴다. 그 순간 여인은 그는 결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없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오직 그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언젠가 쳇의 한 친구가 그녀에게 그의 연주에 대해 했던 말을 기억해 냈다. 그가 음을 다루는 방식은 여자가 울기 직전의 순간을, 그녀의 얼굴이 유리잔에 가득 담긴 물처럼 아슬아슬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순간을, 그래서 그녀를 다치게 하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무슨 일이든 하게 되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는 말을.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 고요하고, 너무나 완벽해서 이러한 아름다움이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순간만큼은, 영원할 그 무언가를 가진 듯 보인다. 그녀의 두 눈에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해온 모든 말들의 역사가 담겨 있다. 이제 그녀에게 "울지 마, 울지 마"라고 말하지만, 바로 이런 말들이,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그녀를 울게 한다…….▦



제프 다이어는 후기에 재즈 역사와 의미에 대한 훌륭한 비평을 덧붙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해당 재즈 뮤지션들의 음악도 찾아 들으며 도움이 아주 많이 됐다. 이를테면 듀크 엘링턴이 어머니가 사망했을 때 열차 속에서 작곡한 「템포 속의 회고 Reminiscing in tempo」에 대한 제프 다이어의 곡 해석은 적확했다. “이 곡은 남부를 달려가는 기차의 모든 리듬과 움직임이 담겨 있었다. 기차의 재잘거림과 휘파람은 꾸준히 그의 음악을 파고들었다. 특히 루이지애나에서 소방관들이 휘파람 같은 엔진 소리에 맞추어 연주한 블루스는 여자들이 밤에 부르는 노랫소리처럼 그를 홀렸다. 철로는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동시에 미국 흑인들의 역사를 관통했다. 흑인들은 철로를 건설했고, 철로에서 일했고, 철로를 따라 여행했고, 그는 철로를 따라가며 작곡했다. 기찻길은 그가 상속받은 전통이었다.”





이 책은 재즈 음악 전문가에게도 입문자에게도 전혀 문외한에게도 충만한 경험을 줄 책이다. 품절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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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0-11-30 16: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내서 읽어야겠어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AgalmA 2020-12-18 21:40   좋아요 0 | URL
도움이 되셨다면 다행이고요^^ 연말 재즈와 함께 훈훈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서니데이 2020-12-10 20: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시고,
항상 행복과 행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AgalmA 2020-12-18 21:41   좋아요 2 | URL
그렇게 되었더군요. 감사드려요. 서니데이님도 축하드리고요. 이 시즌 되면 늘 이렇게 덕담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거 같아요^^
날이 많이 춥더군요. 건강 또 건강하세요.

2020-12-10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18 2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18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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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 깨졌고 과실이 상대에게만 있다고 생각할 때 순애보의 영화 대사처럼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한다면 상대는 광고 카피처럼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고 자신을 변호할 수도 있다. “네 탓이야.”라고 말하지 않고 제 마음이 변했다고 자인하는 것만으로도 칭찬(?) 받을 일이다. 대면도 하지 않고 카톡 한 줄로 끝나는 이별도 수두룩하다. 현실뿐 아니라 문학, 영화, 연극, 드라마, 음악 등 인간의 거의 모든 콘텐츠에는 사랑과 이별이 넘쳐난다. 모두가 원하지만 잘 안되고 필요한 만큼 얻을 수 없는 게 ‘사랑’이라 그렇다. 이 책의 저자 에리히 프롬도 “사랑처럼 엄청난 희망과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다가 반드시 실패로 끝나고 마는 활동이나 사업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라고 말하고 있다. 실패조차 할 수 없는 솔로도 가득하지만 요즘의 ‘사랑’은 그 가치가 ‘연애’, ‘결혼’의 가교처럼 여겨지는 것도 같다. 1900년 태생인 에리히 프롬도 당시 이런 문제점을 느꼈다. 그의 마지막 저서인 『사랑의 기술』은 1956년에 발행되어 34개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혀왔다. ‘기술’이라는 단어가 픽업아티스트의 용어 같기도 하지만 프롬이 ‘기술’이라는 단어를 쓴 건 깊은 뜻이 있다. 프롬은 사람들이 사랑을 ‘감정’으로만 생각할 때의 문제를 지적한다. 사랑할 줄 아는 자신의 ‘능력’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지’만 고심하고, ‘대상’의 문제로 전가하며 ‘인간의 애정 관계를 상품의 교환 가능성’처럼 여기며, 사랑을 ‘머물러 있는 상태’로 인식하기 때문에 정작 사람들이 사랑을 배우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사람의 원초적인 분리 불안은 고립의 공포와 고독에서 끊임없이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여러 합일의 형태들을 찾게 되는데, “과거나 현재에 있어서 사람들이 가장 자주 해결책으로 채택하고 있는 합일의 형태, 곧 집단-그 관습, 관례, 신앙-과의 일치에 바탕을 둔 합일”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다른 합일의 방식도 모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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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 상태에서 생기는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으로서의 일치와 함께 현대 생활의 다른 요인, 곧 일상적인 노동과 일상적인 오락의 역할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인간은 ‘평균화’되고 노동력 또는 사무원이나 관리자의 관료적 힘의 일부가 된다. 그는 주도권을 갖지 못하고 그가 하는 일은 이 일을 관리하는 조직에 의해 지시된다. 계급의 높고 낮음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그들은 모두 조직의 전체적 구조에 의해 지시된 일을 지시된 속도로 지시된 방식에 따라 수행하고 있다. 심지어 감정조차도 지시받고 있다. 쾌활함, 믿음직함, 모든 사람과 마찰 없이 지내는 능력까지도.

오락도 그리 격렬한 방법은 아니더라도, 역시 상투적인 것이 된다. 책은 독서 클럽에 의해 선택되고, 영화는 필름이나 극장 소유자에 의해 선택되고, 광고 슬로건도 그들에게 지불을 받는다. 휴식 역시 일정하다. 곧 일요일의 드라이브, 텔레비전 연속물, 카드놀이, 사교 파티 등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월요일부터 다음 월요일까지, 아침부터 밤까지 모든 활동은 일정하고 기성품화되어 있다. 이러한 상투적 생활의 그물에 걸린 인간이 어떻게 자신은 인간이고, 특이한 개인이며, 희망과 절망, 슬픔과 두려움, 사랑에 대한 갈망, 무無와 분리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단 한 번 살아갈 기회를 갖게 된 자임을 잊지 않을 것인가?”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말한다면,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자아도취가 아니라 자립적 인간의 자발적인 행동이다. 이 순수한 생산적 활동은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을 적극적으로 수반한다. 프롬의 입장에서 프로이트 이론은 대단히 잘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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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양극성의 문제는 사랑과 성에 대해 더 많은 검토를 요구한다. 나는 전에, 프로이트가 성욕을 사랑과 합일의 요구가 나타난 것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사랑에서 성적 본능의 표현─혹은 승화─만을 보려고 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잘못은 더 심각한 것이다. 그의 생리학적 유물론과 일치하는 바, 그는 성적 본능을 몸속에 화학적으로 생긴, 고통스럽게 해방을 갈망하는 긴장의 결과라고 본다. 성욕의 목적은 이 고통스러운 긴장을 제거하는 것이고 성적 만족은 이러한 제거에 성공하는 것이다.

유기체가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할 때 굶주림이나 갈증이 생기는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성욕이 생긴다고 하는 점까지는 이 견해가 타당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욕은 갈망이고 성적 만족은 갈망의 해소이다. 이러한 성욕의 개념을 갖는 한, 사실상 자위自慰는 이상적인 성적 만족이리라.

매우 역설적이지만 프로이트가 무시한 것은 성욕의 심리적·생물학적 측면, 남녀의 양극성, 그리고 결합에 의해 이 양극을 연결하려는 욕망이다. 아마도 프로이트의 극단적인 가부장주의는 이처럼 기묘한 잘못을 촉진했을 것이다. 가부장주의 때문에 그는 성욕을 본질적으로 남성적이라고 가정하게 되었고, 따라서 독특한 여성의 성욕을 무시하게 되었다.

그는 <성의 이론에 대한 세 가지 공헌>에서 이 사상을 전개하면서, 리비도libido는 남성 안에 있는 리비도든 여성 안에 있는 리비도든 관계없이 원칙적으로 ‘남성적 성격’을 가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린 소년 또한 거세된 ‘남성적 성격’을 가졌다고 말한다. 또한 소년은 거세된 남성으로서 여성을 경험하고, 여성 자신은 남성 성기의 상실에 대해 여러 가지 보상을 구하고 있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에서도 똑같은 사상이 합리적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여성은 거세된 남성이 아니며, 여성의 성욕은 ‘남성적 성질’을 가진 것이 아니라 여성 특유의 것이다.

양성 간의 성적 매력은 부분적으로 긴장을 제거하려는 욕구에 그 동기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성의 극과 합일하려는 욕구이다. 사실상 색정적 매력은 결코 성적 매력에 의해서만 표현되지는 않는다. ‘성적 기능’과 마찬가지로 ‘성격’에도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있다. 남성적 성격은 침투, 지도, 활동, 훈련, 모험이라는 성질을 가진 것으로 정의된다. 여성적 성격은 생산적인 수용성受容性, 보호, 현실주의, 인내력, 어머니다움으로 정의된다. (각 개인에게는 두 성격이 혼합되어 있으나 ‘남성’ 또는 ‘여성’의 성과 관련된 것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임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프로이트 사상은 부분적으로 19세기 정신의 영향을 받았고 부분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몇 년 동안 유행한 정신을 통해 인기를 얻었다. 통속적 생각과 프로이트의 개념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이 몇 가지 있는데, 우선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관습에 대한 반발을 들 수 있다. 프로이트 이론을 결정한 두 번째 요인은 자본주의 구조에 바탕을 둔 인간 개념이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중략)

프로이트의 사상은 19세기에 유행한 전형적인 유물론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사람들은 모든 정신적 현상의 근원을 생리학적 현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프로이트는 사랑, 증오, 야심, 질투 등은 여러 가지 형태의 성적 본능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프로이트는 근본적 현실은 인간 존재의 전체에 있다는 것, 곧 첫째,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인간의 상황, 둘째, 사회의 특수한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생활상의 실천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러한 유형의 유물론을 넘어서는 결정적 조치는 마르크스의 ‘유물사관唯物史觀’에 의해 취해졌고 유물사관에서는 신체나 식욕, 소유욕 등 본능이 아니라 인간의 전체적 생활 과정, 곧 인간의 ‘생활상의 실천’이 인간 이해의 열쇠가 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모든 본능적 욕구에 대한 충분하고 억압되지 않은 만족은 정신적 건강과 행복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나 명백한 임상적 사실을 보면 자신의 생활을 무한한 성적 만족에 바친 남자들─그리고 여자들─도 행복을 획득하지 못하고 대체로 신경증적 갈등이나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모든 본능적 욕구에 대한 완전한 만족은 행복을 위한 기초가 아닐 뿐 아니라 정상적 정신조차 보증하지 못한다. 그러나 프로이트 사상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기에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자본주의 정신에 일어난 변화 때문이었다. 곧 자본주의 정신은 절약을 강조하는 데서 낭비의 강조로, 경제적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자기 억제로부터 끊임없이 확대되는 시장을 위한 바탕으로, 그리고 불안해하고 자동 기계화한 개인을 위한 주된 만족으로서의 소비로 변했다. 어떠한 욕망이든 충족을 지연하지 말라는 것이 모든 물질적 소비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성적 분야에서도 주류가 되었다.”


 프로이트는 “사랑을 리비도의 나타남이라고 보고 리비도는 다른 사람을 향하거나(사랑), 또는 자기 자신을 향한다(자기애)고 가정”했다. 자기애를 자아도취적 낮은 단계로만 해석한 프로이트 이론에 반박한 프롬의 지적은 옳다고 생각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에 대한 그의 견해도 전통적 가부장적 해석에서 아주 벗어났다고 볼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사랑을 특정한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태도’이자 ‘의지’로 해석하는 것에 동의한다. 프롬은 프로이트 외에도 현대 정신분석학자 H. S. Sullivan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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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반의 정신분석 체계에서 우리는, 프로이트 체계와는 대조적으로, 성욕과 사랑의 엄격한 구별을 발견한다.

설리반의 개념에서 사랑과 친밀감의 의미는 무엇인가? “친밀감은 두 사람을 감싸고 있는 상황의 어떤 유형으로서, 개인적 가치의 모든 구성 요소를 확인시키는 것이다. 개인적 가치의 확인에는 내가 제휴collaboration라고 부르는 관계가 필요하다. 제휴라는 말은 점점 더 동일해지는, 다시 말하면 더욱더 가까워지는 상호 만족 추구에 있어서, 그리고 점점 더 유사해가는 안전성의 효과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상대가 표명한 욕구에 대해 명백히 정식화된 방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적응시키는 것을 나타낸다.

만일 우리가 설리반의 약간 까다로운 어법에 말려들지 않는다면, 사랑의 본질을 두 사람이 “우리는 자신의 명예와 우월감과 공명심을 유지하기 위해 게임의 규칙에 따르고 있다”고 느끼는 제휴 상태에서 볼 수 있다.

프로이트의 사랑 개념이 19세기 자본주의의 관점에 선 가부장적 남성의 경험을 기술한 것처럼, 설리반의 기술은 20세기 소외된 시장형 퍼스낼리티의 체험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두 사람만의 이기주의’, 곧 공통된 이해관계를 갖고 적대적이며 소외된 세계에 함께 대항하는 두 사람에 대한 기술이다. 사실상 설리반의 친밀감에 대한 정의는 원칙적으로 ‘공동 목표를 추구하는 데 상대방이 표명한 욕구에’ 모든 사람이 ‘행동을 적응시키는’ 협동적인 팀의 어떠한 감정에도 타당하다(여기서 설리반이 ‘표명한’ 욕구라고 말한 것이 적어도 두 사람 사이의 ‘표명하지 않은’ 욕구에 대한 반응을 포함하지 않고는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뜻이라면 주목할 만하다).

상호 성적 만족인 사랑과, ‘팀워크’로서 고독으로부터의 피난처인 사랑은 현대 서양 사회에서의 사랑의 붕괴, 사회적으로 유형화된 사랑의 병리학의 두 가지 ‘표준적’ 형태다. 사랑의 병리학에는 여러 가지 개별적 형태가 있지만 이것은 의식적인 괴로움에서 생기는 것이고 정신과 의사에 의해, 또한 점점 그 수효가 늘어나고 있는 비전문가들에 의해서도 신경증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사이비 사랑의 형태를 사랑이라 착각한다. ‘우상 숭배적 사랑’, ‘감상적 사랑’, ‘투사적 사랑’ 등 “다른 사람들의 가공적인 경험에 참여함으로써 대상적으로 사랑을 경험하든, 또는 사랑의 경험이 현재에서 과거 또는 미래로 옮겨지든, 이와 같이 추상화되고 소외된 사랑의 형태는 개인의 현실적 고통과 고독과 분리감을 완화해주는 마취제로서 작용한다.” 마치 상품처럼 가질 수 있다는 인식을 고치지 않는 한 그런 이에게 진정한 사랑은 성취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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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세속적 생활이 의거하는 원칙은 무관심과 이기주의의 원리이다(후자는 흔히 ‘개인주의’ 또는 ‘개인의 창의創意’로 불린다). 참으로 종교적인 문화를 익힌 사람에게는 조력자로서의 아버지가 필요한데, 이를 아버지의 가르침과 원칙을 자기 생활에 받아들이기 시작한 여덟 살 난 어린아이에 비교할 수 있다.

현대인은 오히려 세 살 난 어린아이, 곧 아버지가 필요할 때는 아버지를 찾으며 울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놀이를 할 수 있는 한, 전적으로 자기만족을 느끼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다.

이러한 점에서, 다시 말하면 신의 원칙에 따라 생활을 바꾸지 않고 갓난아이처럼 신인동형적 신상神像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중세의 종교적 문화보다는 오히려 우상 숭배를 하는 원시 부족에 더 가깝다. 다른 점에서, 우리의 종교적 상황은 현대의 서양 자본주의 사회에만 특유한 새로운 특징을 보이고 있다.

나는 이 책 앞부분에서 말한 것을 지적할 수 있다. 현대인은 자기 자신을 상품으로 만들었다. 현대인은 자기 자신의 생명력을 퍼스낼리티 시장에서 자신의 위치와 상태를 고려하여 최고의 이익을 올려야 할 투자로서 경험하고 있다. 현대인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동료로부터,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현대인의 주요 목표는 자신의 기술, 지식 그리고 자기 자신, 곧 ‘인격의 패키지 상품’을 다른 사람─역시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과 공정하고 유익하게 교환하는 것이다. 인생에는 다른 게 없다. 오직 있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목표, 공정한 교환이라는 원칙, 소비한다는 만족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의 개념은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가? 신의 개념은 본래의 종교적 의미에서 성공을 중심으로 하는 소외된 문화에만 적합한 의미로 바뀌었다. 근래 그것이 종교적으로 어떤 형태로 되살아났는가 하면, 신에 대한 신앙은 인간을 경쟁적 투쟁에 더 적합하게 만드는 심리적 책략으로 바뀌었다. 종교는 인간의 사업상의 활동에서는 인간을 돕기 위해 자기 암시 및 심리 요법과 제휴한다.”


 프롬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요소로 ‘전 생애를 통한 훈련’, ‘정신 집중’, ‘인내’, ‘최고의 관심’을 거론했다. 또한 자아도취와 반대되는 겸손, 객관성, 이성의 발달도 사랑의 기술에 요구된다. 자본주의의 극복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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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선口頭禪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종교적 이상을 수없이 되풀이하고 있지만, 우리의 관계는 기껏해야 현실적으로는 ‘공정성’의 원리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공정성은 상품과 용역의 교환에서, 그리고 감정의 교환에서 사기와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질적 재화에서나 사랑에서나 ‘받은 만큼 준다’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보편적인 윤리적 격언이다. 공정성 윤리의 발달은 자본주의 사회의 특별한 윤리적 공헌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이러한 사실의 바탕은 자본주의의 성격 자체에 있다. 전前자본주의적 사회에서 재화의 교환은 직접적인 힘이나 전통, 사랑 또는 우정이라는 개인적 유대에 의해 결정되었다. 자본주의에서 모든 일을 결정하는 요인은 시장에서의 교환이다.”▦


 프롬의 이 책은 그의 자전적 경험과 시대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가부장적 아버지와 애착적 어머니 영향에 대한 극복, 아내 헤니와의 사별과 애니스와의 사랑, 나치를 피해 도미한 사정과 냉전시대를 겪으며 정치 사회에 대한 실존적 고민 등은 그의 이전 저서에서 계속 반영되었다. 프롬은 1980년에 작고했는데, 그가 우려한 대로 이 시대는 더욱 피폐해졌다. 우리들은 사랑하는 능력을 많이 상실했다. 역자의 말처럼 “형이상학적 천착이나 종교적 설교, 도덕적 교훈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수 천년이 넘도록 많은 이들이 말하지 않았던가. 참된 자아를 찾으라고. 쉽게 얻으려 들지도 말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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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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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의 몸, 재산, 인간관계, 추구하는 가치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소유욕은 본능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무소유의 숙명이 ‘한 번 사는 인생 ……’ 운운하며 우리의 욕망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계몽주의 시대의 정치철학자 존 로크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몸, 노동, 정신 능력을 소유한다’고 주장했지만, “재산은 고정 불변의 개념이 아니라 통용되는 특정한 시대와 장소의 기호와 변덕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유동적 개념”이 되었고, 소유’보다 더 넓은 ‘접속’의 세계로 넘어오면서 우리의 존재 양상은 다른 국면을 맞게 되었다. “재산을 시장에서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능력은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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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의 역할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파급 효과는 엄청나게 크다. 근대 이후로 재산과 시장은 줄곧 동의어로 쓰였다. 실제로 자본주의 경제는 재산을 시장에서 교환한다는 발상 위에서 성립한 것이다. ‘시장’이라는 단어가 영어에 처음 등장한 것은 12세기였다. 시장은 판매자와 구매자가 상품이나 가축을 교환할 수 있도록 마련된 물리적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18세기 말이 되면 시장이라는 용어는 공간적 지시 대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서 물건을 사고파는 추상적 과정을 묘사하는 데 쓰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에 너무나 깊이 얽혀 있어, 이제 우리는 인간사를 시장이 아닌 다른 틀로 이해한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시장은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어 오는 힘이다. 우리 모두는 시장의 분위기에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 시장이 잘 굴러가면 우리의 생활도 잘 굴러가는 것 같다. 시장이 건강하면 우리 마음도 밝아진다. 시장이 맥을 못 추면 우리는 상심한다. 시장은 우리 삶의 안내자이며 상담자이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새로운 경제에서는 물건이 아니라 개념, 아이디어, 이미지가 실리를 가져온다. 부는 이제 물적 자본에서 나오지 않는다. 부는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력에서 나온다. 거듭 강조하지만 지적 자본은 여간해서는 교환되지 않는다. 공급자는 지적 자본을 단단히 거머쥔 채 제한적으로 임대하거나 사용권을 빌려준다.

(중략)

예전에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시장의 주역이었지만 이제는 공급자와 사용자가 주역이다.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시장을 통한 거래는 줄어들고 전략적 제휴, 외부 자원의 공유, 이익 공유가 활성화된다. 기업들은 이제 서로에게 물건을 파는 것보다는 집합 자원을 공유하여 광범위한 공급자–사용자 네트워크를 통한 공동 경영을 선호한다.

경제 활동의 기본 구도가 달라짐에 따라 경제를 주도하는 기업의 성격도 당연히 달라진다. 시장이 중심이었던 시절에는 물적 자본을 많이 가진 기업이 판매자와 소비자의 상품 거래에서 주도권을 행사했다. 네트워크의 시대에는 가치 있는 지적 자본을 많이 보유한 기업이 장땡이다.”

“사유 재산이 한 인간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뜻했고 또한 ‘인간을 재는 잣대’로 오랫동안 간주되었던 세상에서, 소유의 의미가 퇴색하게 되면 인간 본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더 중요한 문제인지도 모른다. 접속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는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인간형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노동을 상품화하는 것이 산업 시대의 특징이었다면, 접속의 시대에는 문화 생산이 중요하며 놀이의 상품화가 특징이다. “제의, 예술, 축제, 사회운동, 영성 수련과 공동체 활동, 시민적 참여를 개인적 오락으로 유료화하는” 경향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여러 플랫폼에서 우리가 매일 즐거워하며 올리는 수많은 인증숏과 후기, 공유 피드를 생각해보라. 상업 영역이 서비스 중심에서 현재는 체험 중심으로 변화했다. 2050년이 되면 성인 인구의 불과 5퍼센트만으로도 기존의 산업이 운영 관리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우리의 삶은 더욱 상품화되고 공리의 영리의 경계선은 점점 허물어진 채 우리 대다수는 그저 소비자로 살아갈 것이다. 리프킨이 가장 주목하는 문제점은 ‘자본의 문화 잠식’이다.



📖

“인류 문명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화는 줄곧 시장보다 우위에 있었다. 사람들은 공동체를 만들고 정교한 사회적 규약을 만들었다. 공유할 수 있는 의미와 가치를 재생산하고 사회적 자본의 형태로 사회적 신뢰를 구축했다. 사회적 신뢰와 사회적 교환이 어느 정도 발전한 다음에야 공동체는 비로소 상업과 교역에 뛰어들었다. 요컨대 상업 영역은 언제나 문화 영역에서 파생되었다. 상업 영역은 언제나 문화 영역에 의존했다. 문화는 합의된 행동 기준을 낳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 합의된 행동의 기준이 신뢰할 만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런 믿을 만한 환경 속에서 상업과 교역은 발생한다. 그런데 상업 영역이 문화 영역을 삼키기 시작하면-우리는 2부에서 이것을 자세히 분석할 것이다-상업적 관계를 낳는 사회적 토대 자체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문화 영역과 상업 영역의 적절한 균형을 회복하는 것은 어쩌면 접속의 시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인지도 모른다. 산업 시대에 자연 자원이 인간의 남용으로 고갈되어 버릴 위기를 맞이했던 것처럼, 문화 자원도 과도한 영리 추구로 인해 언제 고갈되어 버릴지 모른다. 상품화된 문화 체험에 점점 무게 중심이 놓이는 지구 네트워크 경제에서 문명의 생명수라 할 수 있는 풍요로운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고 끌어올릴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이 새로운 세기의 으뜸가는 정치적 숙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다른 산업에서 연예 산업이 조직되는 방식을 본뜨려고 애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음반업, 예술계, 텔레비전, 라디오를 아우르는 문화 산업은 물리적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경험을 상품화하고 포장하고 마케팅한다. 문화 산업이 재화로 쌓아두고 거래하는 것은, 현실을 모방한 세계와 의식을 고양시키는 세계로 잠시 접속할 수 있는 권리이다. 물건과 서비스를 상품화하던 것에서 경험 자체를 상품화하는 단계로 변모하는 글로벌 경제에서 이것은 더없이 이상적인 모델이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공급자와 사용자의 관계는 문화 기업이 그동안 관객과 맺어온 관계를 점점 닮아간다. 우리는 시간과 정신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가 상품으로 판매되는 지적 자본주의의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주고받는 물리적 상품의 제조와 거래(소유)는 특히 지리적 공간에 기반을 둔 시장에서는 여전히 우리 일상 현실의 일부로 존속하겠지만 차츰 경제 활동에서 주변적 지위로 밀려날 것이다. 경제 활동의 중심부에서는 인간의 경험이 판매되고 구입될 것이다. 소비자 개개인의 일상 경험이 무대의 순간, 극적 사건, 개인적 변신의 끝없는 연속으로 상품화되고 탈바꿈되는 새로운 시대의 선두 주자가 바로 영화 산업이다. 경제의 모든 영역이 지리적 시장에서 사이버스페이스로 이동하고 물건과 서비스의 판매에서 모든 인간 경험 영역의 상품화로 옮겨가기 시작하면 할리우드의 조직 모델은 상업 행위를 조직하는 전범으로 여겨질 것이다.”


 어떤 영화가 히트하면 너도나도 그것을 보러 가고, 모르는 건 유튜브나 위키피디아에서 찾으면서 10억 명 이상이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는 세상이지만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전화를 걸어본 경험이 없다. 이 세계는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의 격차보다 접속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가 더욱 크다.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 두 개의 뚜렷이 구별되는 문명 속에서 우리는 사이버 권력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양분되고 있다. 요즘 뜨는 직업이 유튜버인 게 단순히 시류가 아닌 거다.

시장에서 교환할 수 있는 사유재산의 관념이 산업 시대의 근간이었고, 그것이 일상생활의 조건을 규정지으며 정치 담론을 지배, 인간의 지위를 판가름하는 잣대 노릇을 했지만, 접속의 시대는 상거래, 정치 참여의 방식, 의식 등은 네트워크 속에서 자라난다. 산업 시대에서 살았던 애덤 스미스의 경제 이론은 타인을 배제하고 재산을 모은 사람이 시장에서 승리하는 세계를 제시했지만, 네트워크 경제 시대에는 상호 관계의 네트워크 안에서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규모의 경제가 속도의 경제로 바뀌면서 시장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소유하더라도 단기간 쓰고 파는 소비자에 맞춰 제품 주기는 더욱 빨라졌다. 경제 생산물의 무게가 가벼워진 만큼 우리의 소비 패턴도 빠르고 일시적이다.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24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 이상으로 전자 상거래는 성장했다. 1995년에는 불과 1,430만 명이었던 전자 상거래 이용자는 1997년 말 4천백만 명이 넘었다. 첫째도 위치, 둘째도 위치, 셋째도 위치에 달렸던 장사의 성패가 ‘지리적 시장에 기반을 둔 시대’에서 ‘사이버스페이스의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시대’로 변화하며 부동산은 짐이 되거나 줄여야 할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예능 《골목식당》을 봐도 알 수 있듯 네트워크에서 인기를 끌면 지금의 소비자는 찾아간다. 요즘 현금 들고 다니는 사람이 많이 없듯이 돈도 탈물질화 추세가 진행된지 오래다. 1970년대 등장한 신용카드도 이젠 관리하기 귀찮은 물건이다. OO페이에서 어떻게 더 바뀔지 궁금할 지경이다. 비정규직도 이런 시장 변화의 수순이었다. 이제 기업에겐 물건보다 아이디어와 이미지가 성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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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꼽는 아웃소싱의 장점은 여러 가지이다. 첫째, 아웃소싱을 하면 기업은 돈을 버는 데 집중하고, 조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긴 하지만 수익 창출과는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는 지원 기능을 외부 지원업체에 맡길 수 있다. 둘째, 아웃소싱을 하는 기업은 해당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가진 업체로부터 저렴한 가격으로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셋째, 값비싼 설비를 구입하거나 기업의 수익 창출에 직결되지 않는 주변적인 업무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쓸데없는 돈을 낭비하지 않아서 좋다. 끝으로, 리스처럼 아웃소싱도 상품의 주기가 점점 짧아짐에 따라 정신없이 바뀌는 시장 상황에 기업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아웃소싱 계약은 그러나 불순한 의도에서 출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웃소싱은 경영진이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즐겨 쓰는 수단이 되었다.”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에서 사고파는 것은 아이디어와 이미지이다. 이런 아이디어와 이미지의 물리적 구현물은 경제 과정에서 점점 부차적 존재로 밀려난다. 산업 시대의 시장에서는 물건을 교환했다면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물리적 형태 안에 담겨 있는 개념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거래한다.

새로운 상행위의 저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바로 나이키이다. 나이키는 내용으로 보아도 그렇고 추구하는 바도 그렇고 이제는 가상 회사가 되어버렸다. 일반인들은 나이키를 운동화 제조업체로 알고 있지만 사실 나이키는 정교한 마케팅 원리와 유통망을 갖춘 연구 디자인실이라고 보아야 옳다.”

“사업 방식의 체인화라는 비교적 새로운 분야와 생명과학이라는 좀더 새로운 분야는 이 점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전자는 사업 방식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앞세워 거대한 점포 네트워크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후자는 유전자 특허를 앞세워 농부에서 연구원과 보건 전문가까지 폭넓은 사용자를 아우르는 전속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이 두 가지 예는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역학 관계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물품이 점점 정보 집약화, 쌍방향화하고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물품의 성격도 바뀌고 있다. 물품은 제품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진화를 거듭하는 서비스로 탈바꿈한다. (중략) 서비스에 역점을 두는 추세는 제품을 혁명적으로 설계하려는 움직임에도 반영되어 있다. 이제 기업은 제품을 고정된 특징과 일회적 사용 가치를 지닌 고정된 품목이 아니라 온갖 유형의 업그레이드와 부가 가치 서비스를 실어 보낼 수 있는 ‘플랫폼’으로 여긴다. 새로운 제조업의 풍토에서 중시되는 것은 서비스와 업그레이드이다. 플랫폼은 이런 서비스를 실어 나르는 통에 불과하다. (중략) 고객이 정말로 구입하는 것은 물품에 대한 소유권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접속권이다.”

“불과 2,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팔아서 수익을 내던 정보 기술 분야의 많은 기업들이 너도나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변신하고 있다. IBM, 제너럴 일렉트릭, 제록스, 휴렛팩커드 같은 기업들은 물리적 제품만 팔아서는 이렇다 할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맹이를 담는 통 혹은 플랫폼을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점점 싸지고 제품의 질이 거의 엇비슷해지는 상황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서비스의 형태로 고객에게 노하우를 제공하는 것이다. (중략) 제품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고 물품과 서비스의 이동 영역이 날로 확대되는 네트워크 경제에서 부족한 것은 사람의 관심이지 물건이 아니다. 잠재 고객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해 물건을 그냥 주는 것은 마케팅 전략으로 점점 각광을 받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여러 형태의 사회조직에 의존하지 않고 대부분 시장에 의존한다. 의식주 해결은 물론 놀이, 감정의 해소, 타인의 공감과 관심도 사이버 네트워크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그 플랫폼은 상업적 네트워크이다. 리프킨을 비롯 많은 미래학자들은 이 현상이 인간의 ‘최후의 심판’까지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고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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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벨을 비롯한 많은 미래학자들이 예상하지 못한 두 가지 변화 때문에 최후의 심판은 가까운 시일 안에는 오지 않을 것이다. 첫째, 사유 재산 체제의 보루였던 물품 자체가 순수한 서비스로 변형되면서 소유가 사회생활의 기본을 정의하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둘째, 서비스 자체의 성격도 바뀌고 있다. 전통적으로 서비스는 물품과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독립된 단위의 거래로 계약되었다. 하나하나의 서비스는 독립된 시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자 상거래와 정교한 데이터 피드백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서비스는 서버와 클라이언트 사이의 장기적이고 다면적인 관계로 재창조되고 있다.”



 접속의 시대에서는 ‘근면’이 아니라 ‘개인성과 창조’가 부각되며, 일은 즐겁게 버는 ‘유희’여야 한다. 최근 밀레니얼 세대 열풍으로 그들의 문화적 특징이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제러미 리프킨의 이 책을 보면 그것은 접속의 시대가 낳은 특징에 불과하다. 공유하는 문화도 미디어 시장으로 인정사정 없이 끌려 들어가 상업화되는 걸 그들은 현재 우려하고 있는가. 기업은 재능 있는 젊은 작가, 화가, 지식인을 영입해 상품을 문화적 기호로 포장하는 임무를 맡기며 소비자와 지속적 관계를 도모하고 있다. 체험 경제의 선봉장인 관광 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업으로 떠올랐고 우리는 그것을 누리기 바쁘다. 인류의 공동 자산인 유전자도 기업이 특허로 사유화하며 마음대로 유전자 조작을 하는 것에도 속수무책이고, 함께 누리던 공공 재산이 줄어가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권리를 얻으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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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크는 자아가 개인의 사유 재산이나 마찬가지라고 우리에게 가르쳤지만, 인간 행동을 연출적 관점에서 파악하면 이제 자아는 더 이상 개인의 사유 재산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어빙 고프먼이 말한 대로 자아는 ‘그가 공유하기를 갈망하는 사람에 의해 [한 인물에게] 부여된 감각’에 가까워진다.”

“기술 혁명이 막 일어나던 무렵이었던 1970년대 중반에 이런 지적을 했다는 것은 그의 남다른 통찰력을 말해 준다. 우리는 그 혁명이 전 세계적으로 미친 여파를 지금에야 겨우 감지하고 있다.

맥퍼슨은 우리의 머릿속에 지금 들어 있는 소유 개념은 대부분 17세기와 18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분석을 시작한다. 맥퍼슨에 따르면 근대적 소유 개념의 첫 번째 특징은 타인을 배제하는 권리다. 우리는 이 지엄한 소유의 원칙을 너무나 맹신한 나머지 더 먼 옛날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어떤 것의 혜택을 보거나 어떤 것을 이용하는 데서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도 엄연히 소유 개념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망각했다고 맥퍼슨은 지적한다.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사회는 공공 소유라는 소유의 두 번째 범주를 만들어 이 안에 공원, 도시 거리, 공유지, 수로를 집어넣었다. 개인은 누구든지 이런 공공 재산을 사용하거나 향유할 수 있는 데서 배제당하지 않을 법적 권리를 보장받았다. 사유 재산과 공공 재산이라는 소유의 두 형태는 사회의 모든 성원이 개별적으로 누리는 재산권의 일부분이었다. 사유 재산은 타인을 배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고, 공유 재산은 타인으로부터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했다.

그러나 근대로 넘어오면서 공유 재산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고 맥퍼슨은 말한다. 공공재라는 관념은 정부에 남아 있고 공유 재산이 무엇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지만 모든 개인에게 포함의 권리와 배제의 권리를 동시에 보장하는 이중 소유 체제가 엄연히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제러미 리프킨은 기계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현대문명을 비판하고 에너지의 낭비가 가져올 재앙을 경고한 『엔트로피』(1980)로 전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노동의 종말』(1995)은 정보화 사회로 일자리를 잃게 될 현대인에게 경고를 보냈다면 『소유의 종말』(2000)은 그러한 접속이 우리의 일상과 인류 문화를 휩쓸고 있는 실상에 대한 경고다. 이 책을 쓰는 데 꼬박 6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350권의 책과 1천 여편의 논문, 5만장의 색인 카드와 약 2천 개의 주석을 동원한 역량을 독서하는 내내 실감할 수 있었다. 그의 세계 동향 분석은 어떤 분석가보다 포괄적이다. ‘지리적 공간에 뿌리를 둔 문화적 다양성을 지켜나가는 것만이 인간의 문명과 건강한 공존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는 한 문장으로 이 책을 설명하기엔 방대한 정보가 있다. 리뷰로 많은 걸 전달하려 했지만 직접 읽어야 이 책의 저력을 실감할 것이다.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답답하고 적절한 해석을 원하는 독자라면 일독해야 할 책이다. 코로나19를 겪는 지금도 그렇지만 점점 더 네트워크 접속의 문화가 정교해질 걸로 예상되는데 우리는 또 어떻게 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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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을지로 수집
설동주 지음 / 비컷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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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테를 마시며 "나 때는 말이야"가 수긍 가는 을지로 이야기를 읽는다. 을지로를 좋아해서 이 책이 나왔을 때부터 꼭 읽어보고 싶었다. 내가 떠나온 곳보다 서울에서 더 오래 살아 고향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서울 곳곳의 이야기가 생경하지만도 않다. 을지로 인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의 독특한 풍경, 영업이 끝난 조명 가게 조명이 고즈넉이 거리를 비추는 판타지 한 광경, 서울 중심가인데도 다른 시공간으로 온 듯한 기시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듯한 기분을 잊지 못한다. 첨단 도시와 구멍가게가 공존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이곳의 풍경은 서울에서 유일하다.

설동주 저자가 짚어낸 을지로의 이미지는 내가 느꼈던 것과 동일했다.

 

*

"을지로의 간판은 직설적이다. 명함, 와이어, 프레스, 가공, 도장 같은 단어들이 이거 돼요, 이런 건 어때요, 하고 말을 건다. ‘이런 걸 할 수 있어요’라는 결과물을 바깥에 대문짝만 하게 걸어놓기도 한다. 틈새 없이 늘어서 있는 간판들은 이 골목 사람들이 차곡차곡 쌓아온 기술을 닮았다."

 

 

을지로의 낡은 상가들은 재개발로 무너져도 좋은 퇴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책이 전하는 이야기는 황정은 작가의 소설 속 암울한 청계 상가 풍경과 다르다. "1층에는 인쇄, 타일, 공구, 조명, 분식집과 다방, 오래된 맛집들. 2층과 3층에는 젊은이들이 찾아오는 소담한 카페, 독특한 가게들. 마치 10년 전 찍은 사진과 어제 찍은 사진이 한 롤에 들어 있는 필름"처럼 어우러져 상생하는 생활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공구 소리와 쌍화탕 향기가 공존하는 곳. 기원, 이발소, 다방, 인쇄소들이 화석처럼 아직도 거기 있다.

 

*

윤소영 : 맞아요. 먼저 계시던 분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깨뜨리지 않는 선에서 저희처럼 새로운 사람들이 스며들면 좋겠어요. 변하긴 변하겠지만, 깊숙이 파헤쳐 보면 새로운 요소가 들어와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는 정도지 모두 다 바뀌어버리는 변화는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설동주 : 라이프스타일을 깨뜨리지 않는다는 말 참 좋네요.

 

김요한 :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추가로 이야기해보자면, 마지막 재료는 ‘시간’이라는 말 있잖아요. 이 건물이랑 골목, 가게 다 시간을 품고 있는데, 그런 공간과 대비돼서 저희 가게도 새롭게 보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은 시간을 품고 있는 것의 가치가 너무 낮게 평가되는 것 같아요. 이 가치가 잘 지켜지면 좋겠어요.

- 「윤소영(패션MD), 김요한(그래픽디자이너)이 만든 편집숍 <오팔> INTERVIEW 2(2019. 07. 24)」

 

 

여행의 의미가 단지 관광이 아니듯 우리는 세계를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 만지고 경험하고 싶어한다.

 

*

윤병주 : 사진관 치고는 소품이 엄청 많은데, 제가 워낙 만지는 걸 좋아해요. 예전에 로마에 간 적이 있는데, 눈으로만 보기에는 이미 익숙한 것들이잖아요. 워낙 사진을 많이 찍어서 눈으로 보는 데에는 둔감해지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한 번 만져보면 느낌이 달라요. 그런 걸 좋아해요. 어디를 가든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벽이라도 한 번 만져야 내가 여기 왔다 갔다는 느낌이 들어요. 비행기를 타고 갈 때 홍콩을 경유해서 가면 홍콩 가봤다고 하지 않잖아요. 안 만져보면 공항에만 있는 거나 다름없는 것 같아요. 경유한 걸로만 치면 세계일주 다 했겠죠.

(중략)

을지로는 지금 방향이 좋다고 봐요. 기존 가게들이 1층에 현존해 있고. 1층은 우리가 파고들지 않잖아요. 우리는 2,3층에 있는데, 우사단은 원래 있던 식당 쫓아내고 미용실 오래 했던 사람 나가게 하고 전혀 다른 게 들어오니까 완전히 변해버렸어요. 공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을지로는 가능해요. 우리는 1층에 못 들어가요. 왜냐면 을지로는 1층 분들이 건물주인 경우가 많거든요. 덕분에 2,3층 월세가 싼 거예요. 그래서 을지로는 지속 가능할 것 같아요. 이런 방향이라면 젠트리피케이션도 방어할 수 있는 거죠. 경리단길이나 망원동도 정책적으로 1층은 건드리지 않고 2,3층에 젊은 사람이 들어올 수 있게 했으면 문제될 게 없었다고 봐요. 을지로가 앞으로의 롤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윤병주 사진작가가 운영하는 사진관 겸 현상소 겸 살롱 <망우삼림>, INTERVIEW 3(2019. 07. 30)」

 

노동이 있는 곳에는 삶의 가치, 방향성에 대해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이 많다. 자본의 환경 변화에 따라 사라지는 직업에 대해 재빠르게 부응하지 않는 개인만을 탓할 수 있을까. 일은 재화의 가치만 가지지 않는다. 우리가 노력을 쏟은 만큼의 긍지와 애정도 있다. 지금 시대는 그런 재반을 간과하는 것 같다. 어떤 이는 장인이나 예술가로 추앙하면서 어떤 이는 대체 가능한 부품 같은 노동자로 치부하면서.

 

*

설동주 : 외부에서 노하우를 잘 알려주시나요? 영업비밀일 수도 있는데.

 

박철성 : 친절하게 알려주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죠. 그래서 리서치를 잘하는 게 중요한 거죠. 여기서 선수가 되려면 진짜 제일 바닥, 아무도 모르는 바닥의 바닥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더 고급정보를 알아야지. 예들어 어떤 사람들은 좋은 인디고집을 하나 알면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패 하나만 든 거예요. 그렇잖아요? 이 사업에 관해 패를 몇 개는 갖고 있어야 작가가 어떤 요구를 해도 해결해주죠. 하다못해 경쟁업체를 소개해주는 한이 있더라도 그 일을 내가 리드하는 게 중요한 거지.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편하고 네트워크가 있는 데를 자꾸 가려고 해요. 거기가 최선이 아니라 하더라도 몸에 밴 습성, 편의성 때문에 그렇게 되거든요.

(중략)

그동안 인쇄산업은 수주산업화해서 살아왔어요. 사실 그 패러다임이 가장 큰 문제였던 거예요. ‘일이 있어야 일을 하지’, 이 말에는 누군가 일을 줄 거라는 전제가 있잖아요. 우리 아버지 세대는 일을 만들어서 하는 세대가 아니었던 거예요. 그런 걸 배워본 적이 없어요. 고도성장기 때 산업이 잘 돌아가니까 사람들은 도장도 필요하고 인쇄물도 필요하고 명함도 필요했던 거야.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누가 일감을 주는 상황에서 이제는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어요.

(중략)

나는 무에서 시작하는 걸 새로운 창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기존에 있는 것을 발전시키거나 그 안에서 예쁜 것을 추구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해요. 새로 그리는 건 누구나 언제든 할 수 있어요. 이 공간을 하얀 페인트를 칠한 다음에 자기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릴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러면 이 공간에 있던 일종의 영혼은 사라지는 거야. 이곳에도 공간의 특성이 있어요. 저쪽에 홈이 파여 있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어요. 금고가 있었는지 아니면 건축이 이상해서인지 모르겠는데, 그것 때문에 이 공간이 재미있어져요. 또 여기가 지하다 보니 하중을 받치려고 위에 H빔을 넣었는데, 이런 것들이 공간의 정체성이나 재미를 주죠. 만약 층고가 높고 이 기둥이 없었으면 여긴 그냥 인쇄소 자리예요. 그런데 기둥하고 층고 때문에 일반 상용 인쇄기가 못 들어왔던 거야. 그래서 점빵의 오늘이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여기가 밋밋했으면 점빵의 느낌이 덜 살았을 거예요. 재미가 없는 거죠. 공간만의 이야기가 없으니까.

 

- 「리소 인쇄를 이용해 디자인 제작을 하고 있는 레터프레스 전문 인쇄공방 <디자인점빵> 박철성, NTERVIEW 5(2019. 08. 02)」 

 

 

비하인드 이야기가 많은 <에이스포클럽> 인터뷰는 작은 단편처럼 재밌었다.

 

 

*

설동주 : 해방 직후면 말 그대로 반세기네요. 이전 사장님은 또 여기서 20년을 지내셨고요.

 

권민석 : 강산이 두 번 변할 수 있는 시간. 20년 장사라니 말이 쉽지, 다방 운영하기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그 인생이 얼굴과 말투에 묻어 있더라고요. 사람에 웃고 사람에 지친 그 얼굴. 그래서 ‘젊은 사람이니 열심히 살아라. 이화다방을 잘 부탁한다’던 마지막 한마디가 잊히지 않아요.

(중략)

저희 오픈 준비하느라 공사할 때도 별의별 물건들이 다 나왔어요. 가짜 부동산 투자 서류, 위조지폐 만드는 틀, 6·25 참전용사증, 갖가지 의학서적 등등. 예전에는 무슨무슨 종파 몇 대손 모임 할아버지들이라거나 종묘제례 올리시는 분들이 제사 끝나고 와서 담소 나누시고 그랬대요. 다방 안쪽 방에서 종묘제례에 쓰이는 한복도 나오고, 그분들이 같이 찍은 사진도 나왔어요. 진짜 매력적인 곳이죠.

(중략)

아, 공사하느라 벽을 뜯었더니 시멘트 위에 칼로 그린 그림 같은 게 나온 적도 있어요. 사람이 앉아서 뭔가 하고 있는 모습. 누구 작품일까 알아봤는데, 옛날에는 미장이들이 미장 칼로 장난삼아 벽에 그림 그리기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어차피 위에 시멘트로 문지르건 타일을 대건 할 테니까. 하지만 얼마나 예술적이에요. 미장한 직후에는 흘러내려서 이렇게 그리기도 쉽지 않을 텐데 굳기 직전에 미장 칼로 그린 거잖아요. 남겨놓고 싶었는데… 아쉽죠.

 

- 「1959년부터 을지로를 지켰던 ‘이화다방’을 개조·계승한 카페 겸 바 <에이스포클럽> 권민석, INTERVIEW 6(2019. 07. 25) 」  

 

 

이 책은 을지로 골목 탐방 지도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뒤에 부록으로 명소 소개를 꼼꼼히 정리해 놓았다. 중구에서 을지로 투어를 무료로 하고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방산시장에서 청계 대림상가까지 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총 20개 지점을 둘러보며 을지로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본다. 지하철 을지로 4가 역 6번 출구에서 출발해 방산시장 비닐·제지와 초콜릿·베이킹 거리, 성제묘, 염초청 터, 향초·디퓨저 DIY 상가, 포장 인쇄골목을 지나 중앙아파트, 을지로 예술가 작업 공간을 거쳐 청계 대림상가, 조명거리, 마지막으로 을지로 3가 노가리 호프에서 끝난다. 중구청 도심산업과에서 사전 신청을 받으며, 4명 이상이면 해설사가 배정된다. 평일과 토요일 오후 3시에 운영되고, 참가비는 무료다."

내가 아는 명소도 있고 모르는 곳도 있는데 오래오래 운영되어 단순히 '힙지로'로 불리며 트렌드로만 소비되지 않았으면 싶다. 친구를 데려가면 아니, 여기 이런 데가 있어 하고 놀라게 하기 좋은 곳이고 비밀스러운 아지트가 많지만, 요즘은 힙스터들 때문에 어렵게 된ㅎ

 

 

저작권 때문에 수록된 사진과 그림은 생략. 정감 가는 사진과 그림이 많아서 읽는 내내 눈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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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의 세계 - 세계 석학 7인에게 코로나 이후 인류의 미래를 묻다
안희경 지음, 제러미 리프킨 외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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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N. 스턴스는 『세계사 공부의 기초』에서 역사를 공부할 때 주의할 점을 여럿 당부했는데, 각 나라의 입장과 트렌드 중심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조언을 나는 특히 유념한다. 일본 인터뷰어와 유발 하라리 외 세계 석학들의 대담 『초예측』 시리즈가 일본의 향후 전망 위주로 기술되어 있어서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오늘부터의 세계』는 2020년 5월 7일부터 총 8회 <경향신문>에 연재된 내용을 보강한 글인데, 《초예측》 과 중복되는 인터뷰이도 있어 코로나19 관련해 우후죽순 나온 이슈 쟁탈 책이 아닌지 반신반의 했다. 코로나19라는 세계 공통 관심사로 엮여 있어서 그런지 지금 한국에만 국한된 대담이 아니었고, 향후 정치, 사회, 경제, 문화를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고민은 가볍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중국이 원흉이라고 혐오와 배척하는 시각이 많은데, 리프킨은 핵심을 명확히 지적한다. 이 팬데믹은 기후 변화와 세계화의 결과라고 콕 집는다. 1) 물순환 교란으로 인한 생태계 붕괴, 2) 지구의 마지막 야생터까지 침범하는 인간, 3)야생 생명들의 이주가 큰 요인이다.

 

*

리프킨 : 생태계가 변화하는 물순환을 따라잡지 못하고 붕괴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인간이 지구에 남은 마지막 야생의 터를 침범하고 있어서예요. 1900년만 해도 인간이 사는 땅은 전체의 14퍼센트 정도였어요. 지금은 77퍼센트에 육박합니다. 야생은 23퍼센트만 남았어요. 인간은 야생을 개발해 단일 경작지로 사용하고, 숲을 밀어버리고, 소를 키워 소고기를 생산합니다. 이것도 기후변화를 유발합니다. 셋째, 야생 생명들의 이주가 시작됐습니다. 인간들이 재난을 피해 이주하듯 동물뿐 아니라 식물, 바이러스까지 기후 재난을 피해 탈출하고 있어요. 서식지가 파괴됐기 때문에 인간 곁으로 왔고, 바이러스는 동물의 몸에 올라타서 이동했죠. 최근 몇 년 동안 사스, 메르스, 에볼라, 지카와 같은 팬데믹이 발생한 이유입니다. 세계보건기구,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 세계은행 등에서 오랜 연구를 통해 지구의 공중 보건이 위기임을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시장에서 야생동물을 산다면 바이러스가 붙어 있는 야생동물을 사는 거죠.

안희경 : 기후변화로 야생동물이 바이러스의 중간 매개체가 된 것인데, 미개한 문화가 바이러스를 끌어들였다는 혐오가 오히려 본질을 호도하고 있군요.

 

리프킨 : 앞으로 더 많은 감염병이 창궐할 겁니다. 이제는 팬데믹이 올 때마다 1년 반 정도 봉쇄될 것을 예상해야 해요. 초기 단계에서 봉쇄를 해도 약 6개월 뒤에는 두 번째 파고가 찾아옵니다. 초반에 완전히 봉쇄하지 않으면 두 번째 파고는 훨씬 심각합니다. 그다음에 백신이나 항체가 나오길 기다려야 하지요. 대략 1년에서 1년 반 정도 걸립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그 안에 백신 접종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기까지 또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경제를 새로 조직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사회생활 그리고 통치 방식까지 재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희경 : 사스나 메르스, 에볼라는 세계 경제를 멈추는 단계로 번지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왜 다를까요?

 

리프킨 : 이는 세계화에 답이 있습니다. 1차 산업혁명은 국가와 국가적인 시장이라는 개념을 심었고, 2차 산업혁명은 세계화를 가져왔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과 같은 중개 조직들이 이때 나타났지요. 이 인프라는 적시 생산 방식JIT으로 재고를 남기지 않습니다. 탄력성보다는 오로지 효율성에만 의존하죠. 지금의 신자유주의 경제는 단기 이익만 추구합니다. 주식시장에서 분기별 보고서로 이익 현황을 보여줘야 하죠. 이익을 못 내면 주주의 주식이 평가절하되니 경영자에게 문제가 생깁니다. 분기마다 수익을 내려면 장기 투자, 장기 계획,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는 중복 장치를 구비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지금처럼 팬데믹이 오면 전체가 타격받고 세계화된 인프라가 붕괴합니다. 감염병이 발생하는 순간 전 세계 인프라가 무너졌습니다. 마스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인공호흡기는 어디에 있었나요? 우리의 음식을 실은 배는요?

 

- 1장 집중과 분산 [제러미 리프킨, 화석연료 없는 문명이 가능한가]

 

빅 데이터,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무인 기술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섰다고 자찬하지만, 리프킨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수직적으로 통합된 2차 산업혁명(에너지 기반 대량 생산) 인프라를 가져와 3차 산업혁명(컴퓨터와 인터넷 기반의 지식혁명)에 심으려 하기 때문에 그들이 10년도 못 버틸 거라고 전망한다. 농업에서 3D 프린팅을 활용하는 제조업에 이르기까지 아웃소싱보다 지역에서 생산하는 온쇼어링(onshoring)으로 바뀔 거라고 분석한다. 팬데믹, 테러, 기후 재난이 벌어질 때 대처하려면 국가적인 전력망과 지역 중심의 소규모 전력망이 효율적으로 움직일 구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19에 대한 한국의 대처에서도 잘 나타났고, 리프킨 대담의 소제목처럼 ‘집중과 분산’의 구조를 짜는 게 관건이다. 공공 인프라가 민영화되는 걸 저지해야 하고, 전체 공동체가 협력하는 수평적인 통치가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각자 도생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나라는 없다.

 

 

리프킨과 마찬가지로 중국 지식인 원톄쥔도 코로나19는 서구 문화, 서구적 행동을 답습하며 자연에 분리된 채 살아가는 인류가 자초한 결과라고 진단한다. 코로나19 이후는 글로컬라이제이션(지역 중심 세계화)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를 거라고 전망하는데, 미국이 선도하는 북아메리카 글로컬 체계, 러시아와 협력할 유럽 연합, 아시아가 삼각형 구조로 세계 경제의 축을 이룰 것이다.

 

 

경제학자 장하준도 단기적 효율성 중심의 신자유주의가 바이러스 사태에 흔들리게 됐다는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다.

 

*

안희경 : 메르켈 총리는 코로나19 위기를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위기라 했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75년 만에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지요?

 

장하준 : 서구 중심적인 발언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전쟁과 기근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베트남전쟁 300만 명, 6·25전쟁 3~400만 명,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콩고내전 때도 3~400만 명이 죽었죠. 1960년대 초 중국이 대약진운동을 할 때는 기근으로 1000만 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재앙적인 상황은 예외로 치더라도 가난한 나라에서는 화장실과 하수 시설 부족, 영양실조로 매년 몇천만 명이 죽습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집계는 안 되지만 기후변화로 증가한 재해 때문에 1년에 수십만 명이 희생당하고 있고요. 코로나19 사태가 느닷없는 충격으로 왔기 때문에 크게 다가올 수 있지만, 메르켈 총리의 발언은 지극히 유럽과 미국 입장에서 나왔다고 봅니다.

(중략)

관광이나 스포츠, 극장처럼 사람들이 모여야 운영되는 곳도 어려워지고, 의류나 음식을 가공하는 노동집약적산업도 취약해졌죠. 게다가 지난 3, 40년 동안 세계화를 하다 보니 전 세계가 공급망으로 얽혔어요. 코로나19로 중국 경제가 마비됐을 때 한국과 독일에 있는 자동차 공장들은 영업을 못했잖아요. 중국에서 부품이 오지 않으니까요. 경제 시스템이 안전이나 유연성보다는 효율성, 특히 단기적인 효율성 중심으로 짜여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 약점이 노출된 거예요. 비행기나 전기 공급망, 유조선처럼 한 번의 사고가 큰 재앙으로 번지는 부문은 그에 대한 대비책이 많아요. 백업이 두세 개씩 있고, 어느 한 부분이 잘못되면 격리시켜 나머지 부분을 살리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지금의 경제 시스템은 그런 장치가 없습니다. 중국 시골에 있는 공장에서 시작해서 일고여덟 단계를 거쳐 모든 공정이 순조롭게 흘러가야 가능한 경제를 만들어놓았습니다. 더 취약할 수밖에요.

 

안희경 :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전체 산업 체계가 변화할 경향이 보이나요?

 

장하준 : 같은 산업이라 해도 어떤 식으로 재조직되느냐에 따라 생산방식이 바뀌는 분야가 나올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예측하기 힘듭니다. 지나고 나면 패턴이 보일 겁니다. 다만 한 가지, 이 위기 속에서 사람들이 깨달은 게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에센셜임플로이essential-employees, 영국에서는 키워커key-worker라고 부르는 사람들이야말로 모두가 생존하는 데 기본이 되는 필수 노동을 한다는 점요. 의료진, 음식 파는 가게 직원, 배달 노동자, 양로원에서 일하는 사람들······. 지금까지 저임금으로 일해온 노동자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봉쇄 상황에서 이런 말들이 나와요. ‘이제 보니 투자 은행가는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이들 없으면 못 살겠구나!’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일이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야 해요. 코로나19 위기가 끝나고 이들 분야에서 저임금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겁니다.

 

- 3장 성장과 분배 [장하준, 왜 우리는 마이너스 성장을 두려워하는가]

 

이 바이러스를 통해 우리 문명의 누적된 모순과 갈등, 부실 시공된 세계화, 저임금 노동자와 취약한 사회계층의 문제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는 게 드러났다. 불안을 해소할 구조 조정과 공동 안전망은 전 세계적인 공조가 필요하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 정책을 브리핑했는데, 그것은 댐 짓고 길 닦는 1930년대 1차 미국 뉴딜의 제시가 아니다. 그것은 와그너법을 실행해 노조 권한을 강화하고, 사회보장법을 제정해 사회 보장 제도를 실행한 2차 뉴딜(제도 개혁)의 방향이어야 한다. 장하준의 지적은 여러 가지로 속 시원했다.

 

*

장하준 : 빚내서 돈 쓰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하면 대학 가려고 학자금 융자를 받아선 안 되고, 빚내서 사업하면 안 되죠. 빚을 내더라도 나중에 소득이 더 늘어나면 빚을 내는 게 더 잘하는 일 아닌가요? 정부가 돈을 빌려 단기적으로 재난지원금을 주고, 급여액을 올려 수요를 유지하면, 기업들도 그 속에서 돈을 벌 수 있어요. 수요가 완전히 붕괴하면 기업들은 더 망합니다. 정부가 돈을 빌려 경제 전체 생산성을 높이는 곳에 투자하면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가 더 커지죠. 지금 돈을 빌리면 안 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기업들도 부채 하나 없이 장사해야 한다고 얘기해야 해요.

더구나 한국은 재정이 엄청나게 건전한 나라입니다. GDP 대비 국채 비율이 40퍼센트 정도 되는데, 세계 최저 수준이죠.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나라들이 35~40퍼센트 사이로 가장 낮고, 한국이 그다음으로 낮아요. 한국은 2008년 금융 위기 났을 때 빼고 정부 재정이 매년 흑자입니다. 오죽하면 OECD같이 보수적인 기관에서 한국은 돈을 더 써도 된다고 그러겠어요. 저는 우리 경제를 ‘자린고비 경제’라고 부릅니다.

(중략)

우리는 복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잘못돼 있어요. 돈 있는 사람들한테 거둬서 가난한 사람들한테 주는 걸로 생각해요. 그런데 북유럽식 복지는 사회보험을 공동 구매하는 겁니다. 의료보험, 교육보험, 연금보험 등을 국민이 공동 구매하는 거예요. 미국이 복지 지출을 적게 한다고 말하지만 복지 지출이 높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많은 부분이 개인 지출이죠. 공공 지출만 보면 프랑스, 핀란드, 스웨덴 같은 나라들은 국민소득의 30퍼센트를, 미국은 20퍼센트만 지출하니까 미국이 복지 지출을 안 하는 거 같죠? 하지만 개인이 쓰는 복지 지출까지 합하면 핀란드 다음으로 많아요. 그럼에도 의료보험 체계가 잘못돼 다른 나라의 두 배를 쓰고도 선진국 중에 최하위 건강 지표를 보이죠.

(중략)

한국도 이제 선진국에 포함시켜야죠. 선진국들은 더 이상 성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후변화 때문에라도 성장을 안 하는 게 좋고요. 문제는 성장의 질입니다. 성장을 얼마나 공평하게 나누느냐에 있죠. 온 국민이 편안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경제의 목표라면 성장은 그 목표를 이룰 여러 수단 중 하나입니다. 성장을 하면 덩치가 늘어나 나누기도 쉽고 목표를 이루기 수월하죠. 문제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성장을 해도 그 과실이 상류층에게만 집중되는 데 있어요. 보통 사람한테는 별 의미를 못 줘요. 성장 수치를 셈하는 방법에도 문제가 있었죠. 브라질에서 아마존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소를 키워 소고기 수출로 돈을 아무리 많이 번다 해도 그 일로 가뭄이 들어 농사가 망하는데요.

(중략)

이번에 한국 참 자랑스럽죠.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방역을 제일 잘 했어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창피한 세계 최고 기록이 너무 많아요. 자살률 1위, 간단히 볼 일이 아닙니다. 코로나19로 사람 죽는 건 안 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서 죽는 건 괜찮은가요? 출생률은 거의 세계 최저에, OECD에서 남녀 임금 격차는 최고예요. 젊은이들이 좌절하고 이민 가고 싶다는 나라입니다. 잘한 거는 자화자찬이라도 해야 하지만 잘한 걸로 못한 것을 덮을 수는 없어요. 잘 해낸 경험을 계기로 우리가 힘을 모으면 큰일도 할 수 있구나 깨달았을 때 큰 개혁을 해야죠.

복지 제도도 제대로 도입하고, 교육 제도도 최대한 공정하게 개선하고, 세제도 최대한 공평하게 사람들의 노력을 인정하면서 연대도 조성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하고, 할 일이 많죠. 코로나19 잘 대처했다고 자축하면서 계속 건전 재정 외치고 예전처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아무것도 안 하면 이 위기가 끝나고 5년이 지난 후에도 자살률 1위, 출생률 최저, 남녀 임금 격차 최고, 그런 한심한 나라가 될 거예요. 하지 않으면 안 바뀝니다.

 

- 3장 성장과 분배 [장하준, 왜 우리는 마이너스 성장을 두려워하는가]

 

장하준이 성장이라는 양(量)이 아니라 질(質)을 고민해야 한다고 마무리했듯이, 세계적인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도 삶의 질, 인간의 품격을 갖춘 삶을 권한다. 

 

*

안희경 : 당신 말처럼 혐오는 숨겨져 있다고 하기엔 너무 일상적으로 포착됩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 강렬한 감정이 왜 이토록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는지 골몰하게 합니다. 당신이 언급한 2002년 인도 구자라트주에서 벌어진 대학살은 성지순례를 다녀오던 힌두교도들이 열차 화재로숨지며 일어났습니다. 힌두교도들은 이슬람교도가 불을 낸 것이라고 선동했고, 이들은 3개월 동안 1000명이 넘는 이슬람교도를 살해하는 무차별 보복을 자행했습니다. 이렇게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분노를 특정 집단 탓으로 돌리는 정치 방식은 대중 정치에서 점점 더 교묘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왜 민주주의마저 왜곡하는 집단 혐오가 대중의 마음속에서 위력을 발휘할까요?

 

누스바움 : 두 가지 차원의 혐오가 있다고 생각해요. 첫째는 몸에서 배출되는 분비물, 노폐물에 대해 느끼는 혐오입니다. 대소변, 피, 콧물 등 우리의 동물성에 대한 거부 표현으로 모든 사회에서 작동하죠. 시체는 확실히 혐오스럽습니다. 이 혐오에는 일종의 원시적인 두려움이 있어요. ‘나는 동물과 다르다’라는 차별 의식을 가지고 동물적 본성을 혐오하는 겁니다. 이런 사고 속에 또 다른 종류의 혐오가 파고듭니다. 문화 차원의 혐오로 저는 이를 ‘투사 혐오projective disgust’라고 불러요.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부패, 냄새, 분비물 같은 역겨운 특성을 우리 사회의 특정 집단에 투사해 그들을 종속시킬 전략으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혐오는 대체로 약한 집단을 향합니다. 그들을 동물적이라고 묘사하죠. ‘동물적인 성적 취향은 그들에게나 있지 나한테는 없다. 고약한 냄새는 그들에게서만 난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죠. 미국 백인들은 흑인들에게 고약한 냄새가 난다며 동물로 취급했지만 사실 모든 인간은 다 비슷비슷한 냄새를 풍깁니다. 이렇게 타인을 종속시키려는 전략으로 작동하는 혐오는 흑인, 여성, 성소수자 등을 동물적인 존재로 만들면서 모든 인간이 갖는 동물성을 부정해왔습니다.

코로나19 위기는 몇 가지 혐오를 다시금 강화했어요. 당신이 언급했듯이 미국에 있는 동아시아계 사람들이 편견과 낙인의 대상이 되었죠. 이는 지난 20여 년 동안 두드러지지 않았던 혐오입니다. 전에는 이렇게까지 심각하지 않았어요. 미국의 대통령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고 봅니다. 반면에 지금의 위기 속에서 어떤 편견은 오히려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편견과 혐오가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대중들이 의문을 갖고 비판하도록 작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시카고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다른 인종들에 비해 매우 불균형적으로 바이러스에 취약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어요. 흑백 분리 거주가 뚜렷이 자리 잡은 시카고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더 많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죠. 불평등한 조건이 만들어내는 현상에 대해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미국 전역에 걸쳐 매우 의미 있는 대화를 촉발시켰습니다. 주거지와 주거 상태, 건강보험 가입 여부, 그리고 영양가 있는 음식이나 식재료에 접근할 수 있는지 여부가 얼마나 건강에 근본적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었고, 이에 대한 비판 의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말하자면 지금 시카고와 일리노이주에서 저는 혐오 정치의 이면을 봅니다. 이는 자기 비판 정치, 사랑의 정치를 위해 반드시 선결되어야 하는 자아 성찰 정치라고 할 수 있어요.

(중략)

우리가 구현해야 할 정의는 인간이 각자 자신의 역량을 개발하도록 존중하는 것입니다. 정의에 대한 최소한의 개념은 제가 주장하는 역량 순위에 있습니다. 인간의 역량을 창조하는 조건을 10대 핵심 역량으로 정리했지요. 평균수명을 누릴 수 있는 조건, 건강을 보호할 권리,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신체 보전, 자존감을 지키며 타인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조건 등입니다. 모든 항목에서 최저 기준을 채운다면, 그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로 불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는 질 낮은 교육을 받아도 되고 일할 기회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동안, 평등을 추구하는 일은 어떤 분야에서건 대단히 어려워집니다. 인간의 역량을 개발하기란 참 복잡한 일이죠. 왜냐하면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품위 있을 수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자못 끔찍할 수 있거든요. 저는 노동계급의 삶이 반드시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틈에서 자랐어요. 하지만 그들은 경제적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엄청나게 성차별적이고 호모포비아적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 품격을 누리는 삶의 기본을 보장받는다면 세상의 두려움은 줄어들 겁니다. 두려움이 줄면 혐오도 줄어들죠. 우리 자신이 취약할 때 다른 집단에게 그 탓을 돌리고 싶어 하는 욕망이 생기거든요.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료 시스템을 강화하고,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모두가 교육받을 기회를 누리는 안전망이 갖추어진다면 불안은 훨씬 줄어들 겁니다. 요컨대 우리는 전방위적으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또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각 분야 활동가들을 뒷받침하는 용감한 지지자가 됩시다.

 

- 4장 혐오와 사랑 [마사 누스바움,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역학과 교수 케이트 피킷은 “미래에 감염병이 팬데믹으로 확산되는 상황을 막고자 한다면 먼저 사회 구성원들이 회복 탄력성을 갖추도록 사회 조건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

피킷 : 무엇보다 우리는 서로에게 친절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애쓰고 있다는 것을 서로 인정해주는 거죠. 우리의 말과 표정은 곧 우리의 노동조건이자 사회 환경이기도 하니까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 가치인지 보여줬습니다. 그동안 낮은 임금으로 돌봄 영역에서 일해온 이들, 슈퍼마켓 선반을 채워온 이들, 생필품을 배달해온 이들, 청소를 해온 이들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들 핵심 인력의 귀중한 역할을 계속 기억해야 해요.

 

- 5장 개별과 보편 [케이트 피킷, 우리는 질병과 죽음 앞에 평등한가]

 

 

철학과 교수이자 옥스퍼드대 인류미래연구소 소장인 닉 보스트롬은 지구적인 조절 능력을 세워내자고 요청한다. 비접촉 관계 방식 언택트는 일시적일 뿐이며, 인간은 끊임없이 마주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위기가 문명의 몰락을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국제적 협력 결핍’은 그가 발표한 「취약한 세계 가설」에서 거대한 위험 요소이다. 

 

*

보스트롬 : 방역과 관련된 일부 제품의 가격이 폭등했습니다. 기업이 소비자의 두려움을 이용해 가격을 상승시켰고, 이는 불행에서 이득을 챙기는 것과 같죠. 기업이 대중의 두려움을 통해 얻는 막대한 이윤을 막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 두려움을 자극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정책 결정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공급 부족이 일어난 이유죠. 대규모 비축물을 풀게 만드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정밀한 시나리오를 세워 기업이 따르도록 자극하는 정책을 폈어야 했습니다. 유인 구조(금전적 또는 비금전적인 혜택을 주어 특정한 경제행위가 이루어지도록 유도하는 여러 체계)에 있어 효용이 적은 부분을 특정하기는 쉽습니다. 지금은 행위자들(대중, 기업 등)이 상황을 낫게 할 수 있는 역량이 있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어요. 이는 조율하는 데 실패해서 그렇습니다. 심지어 우방으로 협력해오던 국가들조차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서로를 충분히 도왔는지 불분명합니다. 저는 이런 조정 실패가 이번 위기에만 해당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근원적인 악화 인자를 가지고 있어요. 바로 국제적 협력 결핍입니다.

(중략)

미래 어느 시점, 세상이 자동적으로 무너질 수 있는 발명이나 발견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 속에 있다는 가설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문명은 엄청난 충격으로 황폐해질 수 있는데, 제가 반무정부 상태semi-anarchic default condition라고 부르는 지점에 우리가 계속 있다면 문명은 몰락할 수 있다는 거죠. 반무정부 상태는 지구 차원에서 조정해야 할 중대한 문제를 푸는 강력한 협력 능력이 부족한 우리의 상황을 말합니다. 우리는 많은 돈을 군대에 쓰고 있습니다. 수천 개의 핵무기를 오직 사람을 죽이겠다는 목적과 위협하는 수단으로 갖고 있죠. 이는 우리가 만든 치명적인 위기예요. 또 기후변화에 대한 지구적인 강력한 대응도 부족합니다. 이 두 가지 위협으로도 취약한 세계 가설을 반추하게 만드는데요. 여기에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인류 차원에서 도저히 승인할 수 없는 파괴 행위를 도모한다고 했을 때, 이를 막을 영향력조차 부족합니다. 상상해보세요. 만약에 대규모 파멸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면, 그러니까 누군가가 수백만 명을 한꺼번에 죽이는 방법을 발견했고, 부엌 개수대에서 이것저것을 섞어서 도시로 흘려보낸다면 어떻게 될까요? 현재 우리에겐 이런 파괴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수많은 개인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하고 차단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죠. 이런 조건 속에서 세상은 취약합니다.

 

- 6장 기술과 조정 [닉 보스트롬, 세계는 다음의 위기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농부로 풀뿌리 운동 지도자이자 과학철학 박사인 반다나 시바는 생태 중심의 삶을 권장한다. GMO(유전자변형생물) 콩으로 만들 가짜 고기를 위해 아마존 열대 우림을 훼손하고 식품 소비 구조를 유전자조작 산업으로 옮기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지탄한다.

 

*

안희경 : 그래도 기후변화를 막으려면 고기 소비를 줄여야 하지 않을까요?

 

시바 : 소비자들은 고기를 더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어요. 고기 소비는 GMO 콩과 GMO 옥수수를 기반으로 하는 축산업, 거기에 대량 지원되는 보조금 때문에 증가했습니다. 미국에서 카포CAFO라고 부르는, 좁은 공간에 가축을 대량으로 길러 이윤을 극대화하는 집약적 생산 구조가 가져온 소비입니다. 여기에 실리콘밸리는 가짜 고기를 만들어서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합니다. 특히 동물 사료 산업으로 엄청난 정부 보조금이 흘러갑니다. GMO 콩을 길러 사료로 팔면 보조금을 제일 많이 받죠. 이 시스템 속에서 공장식 축사가 운영됩니다.

이런 시스템이 없다면 고기 소비는 자동적으로 줄어들 겁니다. 사람들에게 병을 유발하는, 항생제에 오염된 고기 소비도 줄겠죠. 공장형 축사를 지나갈 때 코를 싸잡게 되죠? 돼지, 닭, 소들이 너무 많이 있는 곳에서는 코로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이 고약한 냄새가 메탄입니다. 같은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보다 여든 배 더 기후에 치명적이죠. 동물 해방도 필요해요. 마음대로 움직일 동물의 자유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죠.

 

안희경 : 코로나19 위기의 주요한 원인은 무엇인가요?

 

시바 : 원인을 알기 어렵습니다. 거대한 지정학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이러스가 박쥐로부터 왔다는 겁니다. 작년에 박쥐와 관련된 정보를 나브다냐 회원들에게 들었는데, 중국과 미국 방위대가 인도 나갈랜드 지역에서 박쥐를 불법으로 채집했을 때입니다. 이는 생물자원 수탈bio-piracy이에요. 국제 규약은 아무 나라에나 몰래 들어가 생물자원을 훔치지 못하도록 허가를 받게 했습니다. 그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채취해간 겁니다. 그렇게 채취해간 바이러스를 장기 매매 시장이나 공장형 축사 또는 실험실에서 증식했을지 모릅니다. 어떻든 저는 코로나19만을 분리해서 보는 접근 방식은 비과학적이라고 봐요. 지난 30년 동안 인류에게 영향을 미친 새로운 질병은 300개 가까이 됩니다. 그중 상당수는 숲에서 왔습니다. 지금 야생종들의 질병이 이동하고 있어요. 예전에 인도 키아사누르에서 감염병이 발생했습니다. 숲을 벌채하니까 원숭이들이 마을 가까이로 왔고, 원숭이 몸에서 나온 벼룩이 인간에게 오면서 출혈성 질환이 창궐했죠. 키아사누르 삼림병이라고 불립니다. 에볼라도 숲이 파괴되면서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숲을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감염병이 발생한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구에 대항하는 전쟁을 반드시 멈춰야 하는 이유입니다. 또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라는 비유를 사용하는 것도 멈춰야 해요. 바이러스가 생물은 아니라 할지라도 스스로를 복제합니다. 인류가 살아 있는 존재에 대하여 전쟁을 선포할 때마다 결과는 좋지 않았어요.

 

안희경 : 2차 세계대전에 사용했던 독가스가 농업으로 옮겨와 살충제가 됐고, 폭약의 재료인 질소 역시 농산업의 비료가 되었습니다.

 

시바 : 그래요. 사용했던 독가스가 농산업으로 옮겨와 벌레와의 전쟁, 곤충과의 전쟁을 창조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무엇을 얻었나요? 벌들의 실종입니다! 이 전쟁으로 80퍼센트의 곤충이 사라졌습니다. 전문가들은 경고합니다. 먹이사슬 속에 있어야 할 곤충의 자리를 파괴함으로써 우리 스스로를 붕괴시키고 있다고요. 전 세계는 지금 코로나와 전쟁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저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수백만 명의 생계를 앗아가는 결과를 낳을 거라고 봅니다. 벌써 굶주림의 팬데믹이 시작됐습니다. 계속된다면 인류의 50퍼센트가 삶터를 잃을지 몰라요. 정부는 경제냐 목숨이냐를 두고 논쟁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냥 경제 속에서 생계를 꾸려가요. 제가 작은 가게를 하거나 미용실에서 일하거나 작은 공장을 운영한다면, 혹은 소규모 농사를 짓는다면 제 목숨과 생계는 하나로 붙어 있습니다. 우리는 3000만 명의 굶주린 목숨을 저버린 채 확진자 숫자만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인류가 생명의 그물망에 대항하여 전쟁을 선포한다면 이는 스스로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격이며, 그 순간 인류는 생명망에서 분리됩니다. 적어도 힘센 인간들이 나머지 인류를 향해 선포하는 전쟁이 됩니다. 그 생각만으로도 반인륜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거예요.

 

- 7장 분리와 연결 [반다나 시바,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

 

 

종합하면, 바이러스가 지금 우리의 적이 아니다. 시바의 말처럼 타인이 없으면 나도 살아남을 수 없는데, 가장 거대한 ‘두려움’ 바이러스로 우리는 서로를 적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모든 걸 산업화하고 세계화하며 이윤을 짜내려고 작동하는 글로벌 경제가 아닌 지역공동체 속에서 창조적으로 활동하는 ‘지역 경제’-‘순환 경제’ 시스템이다. 환원주의적인 기계학습에 점점 더 의존하는 지금 인류가 에고ego에서 벗어나 에코eco로 갈 수 있을까. 매일 터지는 비인간적 사건 사고는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상호 존재라는 것을 잊고 있다는 걸 상기시킨다. 누구도 혹사되지 않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나는 오늘도 꿈꾼다.

 

 

*

"소수의 부를 만드는 활동이 실제로 다수의 이익을 가져오기에 자본주의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석학들이 힘주어 이야기하는 건 실제로 우리의 경제가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금융이 금융에 투자하거나 기업이 자기네 주식을 되사들임으로써 거대한 부를 증식하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으며 시장은 홀로 다수의 이익을 만들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

페레스는 “모든 혁명은 거대한 전환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황금시대로 가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조건이 붙는다. 많은 이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때에만 그 잠재력이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기업과 사회가 함께 번성할 수 있는 포지티브섬 게임을 창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  [안희경, 혁신은 모두를 위한 이익에서 나온다] 마무리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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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09-13 08: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누스바움의 혐오에 대한 정리 좋네요. <사람, 장소, 환대>와도 왠지 좀 통하는 거 같구 요즘 고민하던 문제와도 맞아들어가서 천천히 다시 읽어보려고요. “무엇보다 우리는 서로에게 친절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애쓰고 있다는 것을 서로 인정해주는 거죠. 우리의 말과 표정은 곧 우리의 노동조건이자 사회 환경이기도 하니까요.” - 이 부분 정확하게 제가 오늘 내일 쓰려던 포스트와 일치해서 소름.. (오늘도 감사드려요! 평안한 일요일 되세요 ^^)

초딩 2020-09-13 11:41   좋아요 2 | URL
시바가 모두를 포옹 하는 운동을 하겠데요. 코로나가 진정되면. :-)
소트라테스가 말한 인류의 모든 활동은 인류의 보존을 위함이고
인류의 보존은 사랑인 것 같습니다.

하나 2020-09-13 11:53   좋아요 2 | URL
초딩님과 아갈마님께서 읽으시는 걸 보고 저도 주문했어요! 저도 읽고 또 같이 얘기 나눌 수 있음 좋겠네요 :) 남은 주말도 잘 보내시고요!

AgalmA 2020-09-30 22:37   좋아요 1 | URL
말씀하시니 저도 누스바움 <혐오와 수치> 읽고나면 <사람, 장소, 환대> 읽어봐야겠습니다.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이 점점 불명확한 요즘 상황 생각하면 우리의 공통 고민은 윤리 문제고 그게 또 끝까지 갈 화두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thanks to 감사드려요. 하나님도 읽고 싶은 거 못 참는 독서가이신 걸 인정합니다^^;

초딩 2020-09-13 1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원톄쥔 농촌 이야기, 마사 누스바움 교수의 혐오와 사랑, 반다나 시바의 자연과 인간이 평등한 민주주의를 보며, 그들이 제시한 ‘증거‘를 보면, 코로나 역시 오도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까지의 세상에서 커져가고 있던 온갖 문제들이 코로나로 분출했는데, 그것 마저 미국, 유럽 등의 열강에 의해 ‘의도‘ 되어져 그 문제들을 결국엔 신자본주의로 몰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고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이 세상은 이 큰 지구는 이렇게 다양한데, 내가 아는 뉴스는 고작 의도된 몇개 뿐인것처럼 획일화되어 살고 있구나였습니다.
건강하고 밝은 하루 되세요~

AgalmA 2020-10-01 04:38   좋아요 0 | URL
네, 동감합니다. 코로나19로 인류의 문제가 여실히 드러나서 당황스러울 정도죠. 책임 전가를 어딘가에라도 하고 싶은 중대 사안이기도 하고요. 무인도에 살지 않은 이상, 현재 이 지구상 누구라도 신자본주의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죠.

공부할수록 제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초딩님, 안부 인사가 많이 늦었는데, 추석 연휴 잘 보내시길.

북다이제스터 2020-09-13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성장 아니 역성장을 당연하고 오히려 더 좋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Gdp -1퍼센트도 벌벌 떠는데 쉽지 않겠죠.

AgalmA 2020-09-30 22:46   좋아요 1 | URL
이 책에서는 장하준 교수가 역성장에 대해서 강도높게 얘기하고 있죠. 대부분 고용 노동직 종사자니 인식 전환하자는 게 쉽지 않죠. 1인 가구 증가로 자기 노동 없이는 기댈 데도 없는 상황이니까요.

2020-09-21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30 2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