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첫차를 타고 힘겹게 눈길을 걸어 올라오다 야광 페인트가 말을 걸어 반갑긴 했는데, ˝수고했어 토닥토닥˝을 ˝수고했어 토막토막˝으로 읽으며 싱긋 웃었다. 피곤하시죠? 무섭게 웃겨 드릴께요야 뭐야ㅎㅎ 그렇게 읽는 내 속의 나도 나를 웃기려는 재주를 부렸을 테지. 세상을 재밌게 보려면 어떤 것으로도 가능하다.
어느 집 앞 누군가 눈길을 쓸고 돌아간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런 순간은 꼭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다.





프랑크푸르트 북쪽
달콤해, 낮과 밤 두 개의 왕국만
있으면 인생은 서글프지 않다.
바다는 바다. 안개는 안개. 겨울
저녁 내가 찾아간 성채에 이슬처
럼 머물기 위해서도 하나의 적막
이 필요했다. 그것은 고립의 빌
라. 그것은 2만 7천 킬로미터의
빌라. 눈 내리는 독일에서 나는
달콤해, 너는 시큼해. 사람은 사
람. 나무는 나무. 낯선 고장에서
안개에 덮여 있는 밤이면 나는
생을 초월한다. 그러나 새털구름
은 새털구름. 아우토반은 아우토
반. 아으 이중 추돌은 이백중 추
돌. 햇빛이 안개를 찌르는 밤만
있으면 나는 바람을 먹고 진눈깨
비를 게운다. 넙치는 넙치. 휘파
람새는 휘파람새. 씁쓸해, 여자
와 남자 두 개의 왕국만 있으면
인생은 서글프다. 기차는 기차.
독일은 유럽의 내면. 유럽은 독
일의 내면. 초록 바다는 엽서.엽
서는 머나먼 당신의 입맞춤. 상
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여자가 그
토록 없었다. 세계는 하루 낮과
밤. 나는 오지 않는 세계. 세계는
비의 발자국. 비는 발자국으로
이루어진 세계. 춘천은 한국. 한
국은 나의 춘천. 나는 춘천의 내
면. 춘천은 한국의 내면. 겨울비
는 겨울비. 가을 바람은 가을 바
람. 달콤해, 연어와 청어 두 개의
천국만 있으면 북쪽은 서글프지
않다
ㅡ 박용하 <영혼의 북쪽> 시집 중에서
※ 이 시집의 시들은 엽서 형태로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