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발원>1권을 방금 다 읽었다. 

원효 뿐만 아니라 요석, 혜공, 혜숙, 사복 등 겨우 기억만 하던 이름들을 그 시대를 살아냈던 생생한 인물로 되살려낸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아래에 1권의 서사를 이끌어내는 두 주인공, 선덕여왕과 원효의 대화 중에서 몇 줄 옮긴다.

 

 

(황룡사 백고좌 법회에서 원효가 선덕여왕에게)
“수행자란 중생을 너무나 사랑하여 법열에 머물지 않으신 부처님을 배우고 따라가려는 이들이 아닐는지요. 이 자리는 인왕경을 설하는 자리입니다. 임금의 일 역시 이러할 것입니다. 백성을 사랑하여 일신의 안락에 머물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임금의 자리입니다. 그런 임금의 스승이 되어야 할 불제자들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절 밖의 백성이 굶주리건 말건 모든 것이 넘치고 안락한 이 절 어디에서 중생을 향한 부처님의 자비를 볼 수 있습니까?”
사자좌 승려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지장전에서 소녀를 윽박지르던 승려의 얼굴도 벌겋게 상기되어 번들거렸다.
“부처님께서는 단 한 명의 구제받지 못한 중생이 있으면 그를 위해 세상 한가운데 머문다 하셨습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황룡사 불제자들의 상구보리는 귀족과 황금입니까? 이곳의 하화중생은 게으름과 배척입니까? 여래가 세상에 온 것은 가난하고 소외되어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라 하더군요. 저기 장경각에 가득 쌓인 숱한 경전들에 말입니다!”
젊은 승려의 포효는 거칠고 뜨거웠다. 그는 포효하면서 동시에 울고 있는 듯했다. 야생의 분방함과 단독자의 고독한 통찰이 넘쳐나는 날랜 백호와도 같은 그 모습을 선덕여왕이 집요한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133-134)

 

(원효가 선덕여왕에게 신라에는 희망이 없다면서)
“삼국 간의 전쟁은 각국의 귀족 세력이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싸움에 불과합니다. 전쟁에 동원되어 죽어 간 백성들의 피가 강이 되어 흐릅니다. 백성의 삶에는 아군과 적군이 갈리지 않으나, 귀족의 삶은 아군과 적군의 구별을 필요로 합니다. 대다수 백성들이 단 한 줌 귀족의 부와 권세를 위해 희생당하지만 귀족들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신라는 불국토를 염원하나 지금과 같은 세상은 부처님 세상과 거리가 멉니다. 탁류…… 지독한 탁류의 세상이라 아룁니다.” (157)

 

(선덕여왕이 원효에게)
“그날의 백고좌 법회는 어떠했나. 화려하였지. 법회장은 말할 것도 없고, 궁에서 황룡사까지 길은 온갖 치장으로 마치 꽃놀이 행차와 같았다. 이제 신라는 점점 더 화려한 의례를 필요로 한다. 환각 같은 것이다. 눈에 보이는 장엄한 행렬이 백성들에게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왕족과 귀족을 받들면서 그 보호 아래 무탈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신라의 왕족과 귀족이 백성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때 최대한 화려하게 보이려 치장에 열중하는 것은 자신이 고귀한 신분임을 증명해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들인가. 나는 귀족과 백성의 그런 어리석음을 둘 다 미워한다.” (160-161)

 

선덕이 귀족과 백성의 어리석음을 모두 미워하는 심정, 오늘날의 지식인들 그리고 알라디너들도 다 공감하는 바가 있을 거 같다. 어찌 해야겠나? 옛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물론 원효도 알고 있었겠지.

 

이틀 전 결사 수련의 계획을 짜는 회의에서 원효와 야신은 또 한 번 충돌한 바가 있었다. 결사 수련 기간 중 무예 시간을 더 늘려 잡아야 한다고 야신은 주장했고, 1년 만에 보현지도의 학문 담당 낭두가 된 원효는 학문 정진 시간이 더 확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혜로운 선인이 이르기를, 재상 하나가 만 권의 글을 읽는 것보다 백성 만 사람이 각기 한 권의 책을 읽는 편이 낫다고 했습니다. 작금의 신라도 이러한 지혜를 살펴야 할 때라고 봅니다.”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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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마음 속에 품은 불덩어리 하나, 애타는 불빛 하나쯤은 있겠지.

잠깐 읽다가 자려고 했는데, 이건 옮겨두지 않을 수가 없어 노트북을 다시 열었다.

 

 

<그 불빛>

 

 

 

그 불빛

회현동 굴다리 밑에서 새어 나오던 불빛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엮은 진열대 위에 책 몇 권 올려놓고

내 늦은 밤의 귀가 길을 멈추게 하던,

흐린 진열창에 비쳐진 그 책들을 보며, 들어갈까? 말까?

호주머니 속의 그날 벌이를 가늠하며, 내 발걸음을 망설이게 하던 그 불빛

그렇게 망설이다가 지고 있던 지게를 벗어 굴다리 벽에 세워두고

유리문을 들어서면, 졸리운 듯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던 여자

언제나 내가 보고 싶던 그 달의 문예지 같은 얼굴로, 나를 맞아 주곤 했었다

그 문예지를 손에 들고,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또 망설이다가

기어코 책을 사, 그날 지불해야 할 양동의 방세와 방값 걱정 때문에 더 무거워진

등에, 다시 지게를 얹고 저만큼 걸어가면

그런 내 뒷모습을 무슨 희귀동물처럼 바라보던 그 불빛

언젠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혹시 글을 쓰세요? 작가 지망생이에요? 하고 물어 와

나를 당황하게 했던―, 그리고 그 날은 눈이 내렸던가?

거리마다 送年의 불빛들로 반짝이던 그 날

청계천 노점에서 막걸리 몇 잔에 얼큰해져 돌아오는 길

꼭 거쳐야 할 경유지인 것처럼 그 불빛을 찾아 들어, 글만 쓰면 배가 고파진다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주제에 글을 써야 하느냐고―, 술주정 같은 푸념을 했을 때

그 서점의 여자는 묵은 책의 먼지들 털 듯 말했었다. 쓰고 싶은 사람에게 글을 쓰게 하세요―. 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리 속은 하얗게 비어 왔었고

눈앞이 아득히 흐려졌었다

그 불빛,

아무리 배가 고파도 쓰고 싶은 사람에게 글을 쓰게 하라는―, 그 傳言.

마치 죽비처럼 내 등짝을 후려쳐, 부끄럼으로 눈 내린 밤길을 더 비틀거리게 했던―.

지금도 글을 쓰다가 문득 눈앞이 아득히 흐려질 때, 꺼내보곤 하는

회현동 굴다리 밑의

그 불빛.

- 김신용, <환상통>, 55-57쪽.

 

예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글끼리는 서로 끌어당기는 게 분명하다.

마침 읽기 시작한  <발원>에서도 원효는 마음 속 횃불을 피워낸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숙부의 것도 아버지의 것도 아닌 내 욕망은 어디를 향해 있는가?'

긴 시간을 거쳐 이 질문 앞에 도달했을 때, 숙부가 남긴 향가집에서 하나의 시편이 떠올랐다.

 

 

 

머리와 가슴에 횃불을 밝혀라. 그것이 청년의 일.

밝힌 횃불을 꺼뜨리지 않도록 힘써라. 그것이 노년의 일.

기억하라. 머리와 가슴에 횃불이 없는 자는 이미 죽은 사람.

젊어서는 너무 이글거려 괴롭고

늙어서는 자꾸 꺼지려고 해서 괴롭구나.

괴로워도 횃불이 없는 자는 산 자가 아니네.

님하, 머리와 가슴에 횃불을 잘 보호하여

대해 청산을 관통하라. 그것이 인간의 길.

 

 

 

시편을 소리 내어 거듭 읊다가 서탁을 손바닥으로 쿵, 내리쳤다. 새벽(원효)의 심장은 불덩어리 해처럼 뛰었다. 그것은 스스로의 궐기였다. (25-26)

 

원효는 열여섯에 저런 각성을 했다는데, 제대로 된 궐기를 한 적도 없는 나는 이 밤에 글이나 옮겨적고 있다.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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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6-27 0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릿저릿하네요. 김신용 시는 투박할 만큼 시구가 새련되지 못한 측면은 있지만
오히려 그 투박함이 시의 진실성을 더해줍니다.
해라, 하여라, 투의 잠언적 시에 질려서인지 김신용의 그 불빛이란 시는
간절한 시적 화자의 진실이 보여서 읽는 내내 가슴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수의 팔아서 생계를 이어가던데 장사 잘 되나 모르겠습니다.

돌궐 2015-06-27 08:19   좋아요 0 | URL
저는 투박한 거 좋아합니다. 게다가 사실 어디까지가 투박하고 세련된 건지 그 기준을 잘 모릅니다.ㅎㅎㅎ
예술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시도 그런 거 아닐까요? 아무튼 곰곰생각 님 덕분에 좋은 시집 잘 읽고 있습니다.^^
 

 

 

 

 

 

 

 

 

 

 

 

 

 

 

다음은 고려 때 문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나오는 글이라고 한다. 

 

시는 사상[意]이 기본이다. 때문에 구상이 어렵고 언어 묘사는 둘째로 된다. 구상은 또한 그 사람 기백이 높고 낮은 데 따라 깊고 얕은 것으로 구별된다. 그런데 기백이란 바탕에서 말미암은 것이요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백이 낮은 자는 시구를 다듬어 맞추는 데만 힘쓰고 시상을 앞세우지 못한다. 이렇게 지은 작품은 조각한 듯한 문장과 그려 낸 듯한 시구가 참으로 아름답기는 하다. 그러나 깊고 함축된 시상이 없으면 처음 보기에는 잘된 듯하나 다시 음미하면 아무런 맛도 없어지고 만다. (28)

 

시에는 아홉 가지 좋지 않은 체가 있으니 이는 내가 깊이 생각하여 깨달은 것이다.

시 한 편에에 옛사람의 이름을 많이 인용한 것은 수레에 귀신을 가득히 실은 체[재귀영거체載鬼盈車體]요,

옛사람의 구상을 훔쳐쓰는데 도적질을 능숙하게 했다 해도 옳지 않거니와 그 도적질조차 서투르게 한 것은 서투른 도적이 쉽게 잡히는 체[졸도이금체拙盜易擒體]요,

어려운 운을 근거 없이 억지로 단 것은 큰 활을 잘 당기지도 못하는 체[만노불승체挽弩不勝體]요,

자기 재주를 헤아리지 못하고 운을 달아 운이 고르지 못한 것은 술을 지나치게 취하도록 마신 체[음주과량체飮酒過量體]요,

어려운 말을 즐겨 써서 사람을 미혹하는 것은 구덩이를 파 놓고 소경을 인도하는 체[설갱도맹체設坑導盲體]요,

남의 글을 인용하여 말이 순하지 못한데도 애써 인용하는 것은 억지로 남을 따르게 하는 체[강인종기체强人從己體]요,

세련되지 못한 말을 많이 쓰는 것은 촌 늙은이들의 이야기 체[촌부회담체村父會談體]요,

꺼려야 할 문구를 함부로 쓰는 것은 존경할 사람을 업신여기는 체[능범존귀체凌犯尊貴體]요,

거친 시구를 다듬지 않는 것은 밭에 가라지가 가득히 우거진 체[낭유만전체莨莠滿田體]다.

 

이런 좋지 않은 체들을 극복한 뒤라야 더불어 시를 이야기할 자격이 있다.
누가 자기 시의 결함을 지적하거든 받아들일 만한가를 살펴야 한다. 그의 말이 옳으면 받아들이고 옳지 않으면 내 주장대로 할 것이니, 구태여 듣기부터 싫어하여 마치 임금이 신하가 간하는 말을 듣지 않고 끝내 제 허물을 고치지 못하듯이 하겠는가.
시를 쓴 뒤에는 보고 다시 보되 자기가 쓴 것이 아닌 것처럼 보아야 하며, 남의 것처럼 보되 평생 매우 미워하는 사람의 시로 생각하고 결점을 찾기에 노력하여 결점을 찾을 수 없이 된 뒤에 발표해야 한다. 이것은 다만 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산문도 그러하다. 古詩처럼 유려한 문장으로 구절을 조직하고 운을 다는 것은 더욱 그렇다. 우선 시상이 넉넉하면 시어도 자유로워 거침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거나 산문이거나 그 법은 한 가지인가 한다.
(29-30)
- ‘시상의 미묘함을 논한다[論詩中微旨略言]’에서, 《동국이상국집》

 

가만히 보니 내가 쓰는 글은 대체로 (잡문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만노불승체, 음주과량체, 촌부회담체, 낭유만전체가 많은 것 같다.

'수레에 귀신이 가득찬' 재귀영거체는 내 견문과 학식이 부족하여 쓰고 싶어도 못 쓰는 문체이고, 졸도이금체와 설갱도맹체, 강인종기체는 내가 싫어하는 스타일이라 쓰고 싶지 않은 문체이다.

아무튼 이규보 다른 글들을 읽어보니 비평 정신이 탁월했던 사람이더라. 기회가 되면 몇 권 찾아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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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6-16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해당되지만 특히 강인종기체强人從己體, 음주과량체飮酒過量體 두 가지가 가장 찔리네요 ^^

돌궐 2015-06-17 06:54   좋아요 0 | URL
만병통치약 님 글을 많이 봤지만 강인종기체나 음주과량체에 해당되는 글을 본 적은 없습니다.^^
사실 명문과 졸문은 한끗 차이인 것 같습니다. 저 문체에 해당되더라도 읽는 사람이 좋게 여기면 다 용서가 되거든요.ㅎㅎ

cyrus 2015-06-17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졸도이금체. 신 모 작가에게 이 한자성어를 전하고 싶습니다. ^^

2015-06-17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저녁 도서관 책을 반납하러 가는 길에 소낙비가 내렸다.

급하게 도서관으로 뛰어가서 책을 빌려 나오는 길이었다. 나는 저만치 앞서서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는 한 쌍의 키 큰 젊은 남녀를 보았다. 남자는 정장을 입었고 여자는 민소매 원피스를 입었다. 파란색 계열인 것으로 기억한다. 남자는 180 중반 정도 되는 큰 키였고 여자도 170 정도는 충분히 될 것 같았다. 여자의 원피스 아래로 드러난 다리가 길고 날씬했다. 군살 하나 없이 매끈한 몸매였다. 질끈 묶은 머리 모양은 또 얼마나 작고 예뻤는지 모른다. 가끔 이성을 보고 헉, 하고 숨이 멎을 때가 있는데 이 여자의 뒤태를 보고 딱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나도 한 때는 저렇게 애틋하게 여자의 손을 잡고 시내를 활보하던 때가 있었다. 그녀의 허리에 내 팔이 뱀처럼 휘감겨 있었었다.

그러나 이젠 허리를 감고 다닐 만한 나이는 아닌 듯하여 조금은 쓸슬해진다.

 

나는 잠시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뒤따르다가 이내 그들을 지나쳐서 내 갈길을 갔다. 그들을 지나칠 때 뒤를 돌아보고 싶은 유혹이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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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cyrus님의 "나는 음식을 먹는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마침 김사인 시인의 `먹는다는 것`을 읽었던 참입니다.
몇 줄 안되니 한번 옮겨보겠습니다.



먹는다는 것

내 안을 허락한다는 것.
너에게 내 몸을 열고 싶다는 것 내 혀와 이빨과 목구멍과 대장과 항문을 열어준다는 것 그렇게 음탕한 생각.
또한 지금의 내가 아니고 싶다는 것 지금의 죽음이고 싶은 것 다른 나이고 싶다는 것 사랑을 느낀다는 것.
너를 내 안에 넣고 싶다는 것 네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것 너이고 싶다는 생각 네가 아닌 나를 더는 견디지 않겠다는 의욕.
너를 먹네
포충식물처럼 끈끈하게, 세포 하나하나까지 활짝 열어 너를 맞네 세포 하나하나까지 너에게 내주네.
그러므로 허락이 있어야 하는 일 모든 구애가 그렇듯이
밥이건 고기건 사람이건
먹는다는 것은 먹힌다는 것 죽음처럼 아찔한 것 길고 황홀한 키스 먹는다는 것은 갖고 싶다는 것 새 자동차를 장화를 장미를 새끼 고양이를 향해 눈이 빛나는 것 같이 있고 싶다는 것 한 몸이 되고 싶다는 것.
자본주의보다 훨씬 오랜 식욕의 역사
몸 너머 영혼 속에까지 너를 들이고 싶은 것 네가 되겠다는 것 기어이
먹는다는 것은.


- <어린 당나귀 곁에서>, 5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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