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하고, 도를 넘은 과잉 수사 인정하지만, 이 모든 게 진영 논리로 귀결되며 정세 구조의 문제일 뿐 아직까지는 도덕성에 문제 없다고 쉴드치는 것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털고 또 털어봐야 겨우 양산집 처마밖에 안 나오는 문통급 청렴 카타르시스까지는 아니더라도 고의는 아니었을 거란 심증 쯤은 주었어야 할 거 아닌가. 패션좌파들은 말뿐이었다는 배신감을 간신히 억누르며 마지못해 동조하고 있는데 우쭐대며 저급하게 입 털어서 환멸감마저 들게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고개만 끄덕이는 것으로 충분할 때는 절대로 말하지 말라는 충고에 따르자면 여기 이렇게 경박하게 글 올리는 것도 삼가고 모른 척해야겠지만, 세상의 그 무엇에도 걱정하지 않는 무관심은 무지(無知)와 함께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또 다른 가르침에 용기를 얻어 기어이 한 마디 내뱉는다. 

아무리 털어도 나올 것 하나 없고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정말 모르는 건가, 아니면 정치적 영향력이 미미한 을의 생각이므로 아랑곳하지 않는 건가. 스스로 떳떳하지 않으면 나대지 말고 제발 그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같은 입 좀 다물어라. 그렇게 입 털고 똥 싸고 앉아 있으니 때는 이때다 싶어 분탕 세력들이 똥파리떼처럼 꼬이는 거 아닌가. 

아, 그러고 보니 세상이 원래 이런 시궁창이었음을 나만 몰랐던 건가? 어쩌다 이런 감각 팔푼이가 됐는지 모르겠다. 감각의 역사를 다룬 책이 이번에 새로 나왔다던데, 그거나 파면서 내 지각과 감관에 문제가 있었는지 알아보고 싶다. 아무튼 미학자의 입장에서 도덕적으로 선하지 못한, 다시 말해 아름답지 못한 자들을 지지하기란 몹시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진중하고 의연한 대처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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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십 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심하게 썩어 가던 사랑니를 빼고 원인 모를 몸살로 앓아 누웠다가 귀신을 봤다.

이를 뽑은 뒤에 점점 오한이 나서 몸을 덜덜 떨면서 방에서 혼자 잤다. 그렇게 앓아 누운 지 닷새 정도 되는 날이었다. 무언가 선득한 느낌이 들어 실눈을 떠 보니 침대 발치에 커다랗고 어두운 형상이 밑에서부터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그 형상은 마치 건장한 남자가 도롱이를 입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그 도롱이는 짚을 엮어 갓 만든 게 아니라 만든 지 너무나 오래 되어서 짚들이 새까맣게 썩어가는, 짚과 짚 사이에는 더러운 것들까지 끼어있는, 그러니까 살아 있는 인간이 걸칠 만한 도롱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머리 위에 삿갓으로 보이는 것을 쓰고 있어서 그 밑으로 가린 얼굴에 짙은 그림자만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래서 그 존재의 표정이나 감정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렇게 나 혼자 앓아 누운 침대 발치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는 고열과 오한으로 신음하면서 그것의 눈빛을 살피기 위해 뒤척였다. 누구냐, 넌? 내 이 구차한 육신을 거둬가려는 사신이냐, 아니면 이 낡은 집에서 살다가 죽은 원혼이냐.

이상하다. 이곳이 예전에 무덤 위에 지었다는 얘긴 듣지 못했는데. 혹 이삼십여 년을 내 잇몸 속에 파묻혀 겨우 머리만 내놓고 연명하다가 음식찌꺼기와 함께 썩어가던 사랑니의 영혼이냐. 난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도 안 가던 그 때, 어마어마한 고통을 거스르며 그것을 겨우 노려보았고, 이내 그 음산하고도 슬픈 존재는 아무런 대답도 남기지 않은 채 자기가 올라왔던 방바닥 쪽으로 도로 가라앉으며 천천히 사라져 갔다. 

그것이 그렇게 사라지자마자 내 몸의 오한(惡寒)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정녕 나를 '사악한 추위'로 떨게 만든 악귀였나? 아니면 내 낡은 잇몸에서 떠나는 걸 아쉬워하던 동갑내기 치혼(齒魂)이었을까. 죽을 듯이 앓던 이맘때 쯤이면 가끔 그것이 생각나고, 그 썩어가는 도롱이의 감촉이 어떨지 지금도 궁금하지만, 이미 한참 전에 그 음습하고 불행했던 월셋집을 떠나왔기에 도롱이 귀신을 다시 만날 방도가 없다.


- 김인선의 괴담을 읽다가 옛 생각에 젖어 쓰다. 2019.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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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치려는 사람이 말을 어렵게 쓴다"는 유시민의 언급은 대체로 맞는 말이긴 하지만, 다 그렇지는 않다.

<문심조룡>의 몇몇 구절이 떠올랐다. 말 나온 김에 한 번 옮겨본다.

 

두독과 가구와 같은 무리들이나 유진과 반욱의 일파들은 진주를 꿰어보려 했으나 대다수는 물고기의 눈깔을 꿰는데 그쳤다. (제14장 雜文)

교훈: 물고기 눈깔이나 꿰고 앉아 있지 말자.

 

옛날에 秦나라의 처녀가 晉나라의 공자에게 시집을 갈 때 화려한 무늬를 수놓은 옷을 입은 시녀들을 함께 데리고 갔는데 그 공자는 시녀들만을 사랑하고 그 처녀는 박대했다고 한다. 또한 초나라의 상인이 정나라의 상인에게 귀한 구슬을 팔게 되어 향기 높은 계수나무로 만든 보갑에 구슬을 넣어 보냈더니, 정나라의 상인은 보갑만을 사고 그 구슬을 다시 돌려보냈다고 한다. 만일 언어적 표현이 주장하는 바의 도리를 매몰시켜 가지나 잎이 자기의 뿌리를 초과해 버린다면, 그것은 진나라의 처녀나 초나라 상인의 구슬과 다를 바가 없게 될 것이다. (제24장 議對)

교훈: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

 

사색의 길이 막힌 이들은 빈약한 내용을 풍부히 할 수 없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고, 쓸모없는 수식이 범람하는 이들은 언어 표현의 혼란을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광범위한 학식과 폭넓은 경험은 내용의 빈곤을 해결해 주는 유일한 자양분이며 일관성과 통일성은 혼란을 치유해 주는 유일한 약처방이다. 식견이 넓고 중심의 일관성을 유지한다면 창작 구상에 반드시 도움이 있을 것이다. (제26장 神思)

교훈: 공부하고 또 공부하자. 할 얘기를 분명히 하고, 버릴 건 버리자.

 

꿩이 화려한 깃털로 치장하고 있지만 한 번에 백 걸음 정도의 거리밖에 날지 못하는 원인은 살은 쪘으나 힘이 부족한 데 있고, 매가 아름다운 깃털을 지니지는 못했어도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원인은 골력이 강건하고 그 기세가 맹렬한 데 있다. 작품에 나타난 재주와 능력 역시 이러한 사정과 매우 유사하다. 만일 風과 骨은 있으되 文采가 없다면 그러한 작품은 문학의 숲 속에서 맹금과 같은 존재일 것이고, 문채는 있으되 풍과 골이 없다면 그러한 작품은 문학의 숲 속에서 이리저리 도망쳐 다니는 꿩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아마도 화려한 문채도 있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도 한다면 그러한 작품은 문학의 숲 속에서의 봉황이리라. (제28장 風骨)

교훈: 내용만큼이나 스타일은 중요하다. 설득의 힘은 문채에도 있다.

 

다채로운 사고의 소유자는 일반적으로 부연을 잘 하고, 논리적 재능의 소유자는 일반적으로 압축을 잘 한다. 압축을 잘 하는 사람은 말을 빼버려도 그 글의 사상과 내용이 줄어들지 않고, 부연을 잘 하는 사람은 말을 늘일수록 그 글의 사상을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 빼버림으로 인해 사상의 명료함에 곤란이 생기게 되면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은 논리성 대신에 사상의 빈곤일 것이다. 그리고 수사적 부연으로 인해 언어의 중복이 야기된다면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은 사상의 다채로움이 아니라 번잡함과 애매함일 것이다. (제32장 鎔裁)

교훈: 문장이 짧다고 다 무식한 게 아니고, 길다고 다 사기꾼은 아니다.

 

* 한 줄 요약: 사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면 어렵게 써도 된다.

 

위 인용에 사용한 번역본은 올재클래식스 <문심조룡>(2016)인데, 이외에도 몇 개가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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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들 등뼈가 부러지도록 노를 젓지 않나? 뭘 멍하니 쳐다보고 있나? 저 보트에 있는 놈들인가? 쳇! 우리를 도우려고 다섯 놈이 더 온 것뿐이야. 어디서 왔든 상관없어. 많을수록 좋지. 저어라, 어서 저어. 지옥불도 겁낼 것 없다. 악마들은 아주 좋은 녀석들이야. 그래, 그래, 좋아. 바로 그게 천 냥짜리 노 젓기다. 내깃돈을 몽땅 쓸어버릴 솜씨야. 향유고래기름을 가득 담은 금잔 만세! 나의 영웅들아! 만세 삼창을 하자. 만세, 만세, 만세. 모두 기운이 넘치는구나. 침착해라, 침착해. 덤비지 마라. 서두르지 마라. 왜 노를 힘껏 당기지 않나? 이 나쁜 놈들아. 뭐든지 물어뜯어라. 개새끼들! 그래, 그래, 부드럽게, 부드럽게, 바로 그거야! 잘했어! 길고 힘차게. 거기, 힘껏 저어, 저으라고! 악마가 물어갈 놈들! 거지발싸개 같은 놈들, 모두 졸고 있군. 코를 골지 말고 노를 저어! 이 잠꾸러기들아. 저으라고, 알았어? 못 젓는 거야? 젓지 않을 거야? 도대체 왜 안 젓는 거지? 무언가가 부러질 때까지 저으란 말이다. 눈알이 튀어나도록 저어라, 저어!”
“Why don’t you break your backbones, my boys? What is it you stare at? Those chaps in yonder boat? Tut! They are only five more hands come to help us―never mind from where―the more the merrier. Pull, then, do pull; never mind the brimstone―devils are good fellows enough. So, so; there you are now; that’s the stroke for a thousand pounds; that’s the stroke to sweep the stakes! Hurrah for the gold cup of sperm oil, my heroes! Three cheers, men―all hearts alive! Easy, easy, don’t be in a hurry―don’t be in a hurry. Why don’t you snap your oars, you rascals? Bite something, you dogs! So, so, so, then;―softly, softly! That’s it―that’s it! long and strong, Give way there, give way! The devil fetch ye, ye ragamuffin rapscallions; ye are all asleep. Stop snoring, ye sleepers, and pull. Pull, will ye? pull, can’t ye? pull, won’t ye? Why in the name of gudgeons and ginger-cakes don’t ye pull?―pull and break something! pull, and start your eyes out! Here!”

 

- <모비딕> 제48장 중 스터브의 격려사와 그 원문

 

이웃님들, 제가 연말까지 무척 바쁠 거 같습니다. 서재는 거의 들어오기 힘듭니다. 

다시 뵈올 그 날까지 건강들 잘 챙기시고 더욱 정진하십시오.

뭘 멍하니 보고 있으세요. 어서 '등뼈가 부러질 때까지' 노를 저으세요. 힘 내세요!

 

* 추경을 위해 타협은 없답니다. 당연한 거죠. 응원합니다. 노를 저으세요, 문통! 문빠 동지들도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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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3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13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하게 잘 지내십시오. ^^
 

사리불아, 어떻게 하면 말로 짓는 업이 청정한가. 이 사람이 세세생생에 망어(妄語)를 하지 말지니, 만일 보거나 듣지 못한 것은 끝끝내 망어를 말아라. 만일 보았거나 들었을지라도 합당한 때에 묻는 이가 있은 연후에 말할 것이요, 자신이나 어느 누구를 이롭게 하기 위하여 이어(異語)를 하지 말아라. 설사 어떤 사람이 망어를 하게 할지라도 실어(實語)를 보호하기 위하여 끝끝내 망언을 하지 말 것이며, 이쪽 말로써 저 사람에게 말하지 말며, 저쪽의 일로써 이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 두 사람의 사이가 나빠지려 할 때는 더 심하게 악화시키지 말며, 말을 내거든 능히 시비를 화해케 하라. 마음 아픈 말, 추악한 말, 괴롭고 악한 말, 즐겁지 않은 말, 사랑스럽지 못한 말, 마음에 들지 않는 말, 남을 번거롭게 하는 말, 원수를 맺는 말이거든 모두 멀리 해라. 말을 내려면 부드러운 말, 뜻에 즐거운 말, 추악하지 않은 말, 귀에 거슬리지 않는 말, 아름답고 묘한 말, 마음에 드는 말, 여러 사람이 사랑하는 말, 많은 사람이 즐거워하는 말, 사랑스러운 말, 능히 원망을 제하는 말을 하라. 언제나 이러한 가지가지 아름답고 묘한 말을 해라. 또 꾸미는 말을 여읠 것이며, 이상한 생각과 이상한 말을 하지 말 것이며, 인(印)과 다르거나 시기가 다르게 말하며 실다운 일을 가리거나 덮지 말라. 번거롭고 내용이 없는 말을 하지 말며, 때 아닌 말을 하지 말고, 항상 참다운 말을 해라. (96-97)

 

- <시등공덕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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