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정원의 붉은 열매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일시품절


권여선의 <내 정원의 붉은 열매>(문학동네)를 읽다. 오래 전 <상상>에서 그녀의 데뷔작인 ‘푸르른 틈새’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질 않는다. 스토리가 기억나지 않는다하더라도 어떤 이미지와 인상만은 남을 수 있을 것인데 그조차도 없다. 이건 내 부실한 기억력 탓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소설에 내게 어떤 매혹도 가져다주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그 뒤로 읽은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은 반복적 독서를 허용하지 않을 만큼 내게 재미를 주지 못했다. 그녀의 서술이 주는 단단함과 분석적이고 예민한 관찰이 돋보일 뿐이었다. 이 쓸쓸하고 스산한 늦가을에 어울리는 완미한 소설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몇 개의 단상들.

 1) “아름답고 매혹적인 운명의 모서리” - 어떤 운명에의 예감

 “강아지는 내 품에서 잠들었다. 이미 어둠이 내려 더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유행가 같은 시, 코끝을 맴도는 향수, 관자놀이를 울리는 웃음소리, 가슴께가 터질 듯 옥죄는 실내용 드레스, 풍성하게 늘어진 들장미 송이와 끝없이 휘돌며 도망치는 넝쿨 가지들 .... 그때 나는 캄캄한 어둠과 혼란스런 상념 속에서 어떤 아름답고 매혹적인 운명의 모서리가 뾰족하게 솟구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이 가시면류관처럼 쓰라린 내 미래이기도 하리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어린 아이의 시각으로 예술가가 살지 않는 ‘예술인 마을’에서 벌어진 소소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단편 ‘웬 아이가 보았네’는 이렇게 끝난다. 담담한 서술에 돌연 시간적 비약이 일어나면서 읽는 자의 눈길을 확 잡아챈다. 흑백필름 같은 장면에 갑작스런 컬러가 등장하는 대목이다. 이 단편은 이 마을에 들어온 요리사와 그의 젊고 예쁜 ‘여류시인’ 아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본디 배운 것이 없으나 두뇌가 명석하여 글자를 배우자마자 시인이 되어 버린 요리사의 아내는 마을 사람들의 선망과 질투를 한 몸에 받지만 어느 날 마을에서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급기야는 자신의 남편에게서조차 떠나버린 여자.

이 마지막 진술에서 이제껏 어린아이의 시각을 빌려 숨어 있는 화자는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이미 성인이 된 화자가 어린시절을 회상하고 있음을 표나게 드러낸다. 소설 전반의 내러티브가 잔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상당히 돌출적이고 선명한 인상이다. 그것은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저 그런 마을에서 ‘아름답고 매혹적인 운명’을 동경하는 영혼이 마악 눈을 뜬 순간이며, 때로는 그것이 ‘가시면류관’을 쓴 것 같은 고통을 줄지라도 감히 그 운명에로 나아가려는 ‘기투의 의지’가 발동하는 순간이다. 바람인지 무엇인지 모를 욕망 때문에 집을 나가버린 이 여류시인처럼, 화자는 어린 시절 이후의 자신의 삶이 그녀의 운명을 반복할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여류시인의 ‘아름답고 매혹적인 운명’은 위의 인용처럼 이국적 쾌락과 관능적 매혹의 이미지를 흠씬 풍기며 이 마을의 일상을 한층 누추하게 만들어 버린다.

누구에게나 그러한 순간은 존재하지 않을까. 유년기의 어느 한순간, 너무도 생생하고 강렬하게 정신을 사로잡았던 장면 말이다. 채 성숙하지 못하여 혹은, 갑작스런 충격으로 당시에는 그 의미가 잘 파악되지 않았지만, 나중에야 그것이 자신의 운명을 예비했던 순간이었음을 아프게, 때로는 기쁘게 자각하는 경험 말이다. 내게 그것은 쥘리앙 소렐의 최후를 급하게 읽어 내려가던 순간이었을까, 스산한 가을날 빈 들녘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순간에 들려오던 메마른 기침소리였을까, 버스 밖으로 내다보이던 소도시의 낡은 간판 불빛이었을까, 어느 겨울 추운 새벽녘 신촌 지하철 저 너머로 냉담하게 사라져가던 얼굴을 보았던 순간이었을까. 이 문장을 써내려가는 순간 권여선의 손길은 갑작스런 단절과 비약으로 바삐 움직였으리라.

2. “너 요즘 고민이 뭐니?” - 미망, 혹은 기억의 현전
 

대학시절을 함께 보내고 남자와 여자가 다시 만나 옛 기억을 더듬어 가는 소설 ‘내정원의 붉은 열매’. 이 대화의 과정에서 여자는 자신이 대학시절 세미나 지도를 해주었던 선배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녀는 “만두 속 즙 터지듯 기억의 물방울이 톡 터졌다”고 말한다. 친구와 선배의 섹스를 목격한 순간 “자고 갈래요”하고 찾아들었던 선배 P의 방. 선배 P는 그녀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술만 한잔 하고 가라고 냉담하게 말한다. 그녀는 P가 술을 사러 나간 사이 그 방을 나와 버린다. 그녀와 선배 P는 채 사랑에 이르지도 못한 채 어물어물 관계가 끝나고 마는데, 소설은 이 ‘찌질한’ 첫사랑에 대한 뒤늦은 회고담이다.

“무엇인가 완성되는 순간은 그것을 완전히 잃고, 잃었다는 것마저 완전히 잊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우연이 그 언저리를 헛짚는 순간이다. 택시기사가 보았다시피 한겨울 새벽거리를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는 심야 택시의 묵시록적인 관통 속에서 휙 지나가듯 내 첫사랑은 완성되었다. 그리고 완성된 순간 비스듬히 금이 가버렸다. 하지만 혹시 말이다. 사태는 너무 늦었고 나는 너무 늙었지만 말이다. 만약 산타가 아니라 P형이 그날 밤, 그 비스듬한 화분 방에서 목을 살짝 기울여 내 귀를 버찌 열매처럼 빨갛게 물들이며 이렇게 속삭여 주었다면 어땠을까.
너 요즘 고민이 뭐니? 나는 네가 너무 나를 닮아서 걱정이다.
어쨌든 P형은 첫눈에 나를 알아보았고 마찌꼬바를 마찌꼬바라고 분명이 말할 줄 알았던 내 첫 선배였으니 말이다.”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어버렸고 자신도 늙어버렸다. 첫사랑이 완성되었을지도 모를 그 순간을 지금 회고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하지만, 무엇인가 이뤄지기 직전의 그 “버찌 열매처럼” 붉은 마음은 두고두고 회고할 만한 것이 아닐까. “너 요즘 고민이 뭐니?”는 두 사람 사이의 소통의 문을 열어 젖히는 말이다. 이 질문에 대한 그녀의 답변은 봇물 터지듯 이어졌으리라. “나는 네가 너무 나를 닮아서 걱정이다”라는 상호동질성의 확인은 급기야 첫사랑의 완성을 불렀으리라. 미완의 첫사랑이므로 그것은 너무 늙은 지금에도 지속적으로 현전한다. “기억의 물방울”이 툭 터지듯 현전하며 완성의 순간을 기다린다. 잃고 잊었을 때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아이러니, 기억과 갑작스런 회상 속에서만 완성되는 ‘붉은 열매’ 같은 첫사랑의 순간들.

3. “그녀는 오지 않고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 믿음의 역설
 

6년의 세월을 엇갈리며 남자를 사랑해온 여자.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실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서른 다섯 살의 남자. “그때 찬물을 먹었어야 했는데”라고 뒤늦은 한탄을 하는 남자. 하지만, 모든 것은 “괜찮니?, 괜찮네”다. 이제 모든 것은 ‘소소한 과거사’가 되었다. 두 번째 소설 ‘사랑을 믿다’는 서로 다른 실연의 기억들을 공유하고 있는 두 남녀가 기차처럼 긴 술집에서 나누는 대화와 회상이다. “그녀는 오지 않고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 사랑이 보잘 것 없다면 위로도 보잘 것 없어야 마땅하다. 그 보잘 것 없음이 우리를 바꾼다. 그 시린 진리를 찬물처럼 받아들이면 됐다.” 사랑을 믿지 않게 되고, ‘시린 진리’를 깨닫게 되는 나이 서른 다섯. 그들을 맞을 곳은 이제 동네의 ‘단골 술집’ 밖에 없다. 그걸 아는 것도 ‘찬물’ 같은 시린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동네에 단골 술집이 생겼다는 건 기억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이지만 청춘에 대해서는 만종과 같다. 사랑을 믿던 한 시기가 끝났으며, 뒤를 돌아보아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지금 서른 다섯이라는 인생의 한낮을 지나고 있다. 태양은 머리 꼭대기에서 이글거리지만 이미 저묾과 어둠을 예비하고 있다. 내 생애의 조도는 여기가 최대치다. 이보다 더 밝은 날은 내게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서른 다섯이 인생의 한낮이라는 문장은 시리다. 동네에 단골술집을 만들고 거기 가서 소줏잔을 기울이기에는 아직 이르다. 동네 치킨집이거나 선술집의 쓸쓸하고 퇴락한 공간에 몸을 부리기에는 아직 미련이 남을 것이다. 권여선 소설 속의 이 때 이른 자각의 주인공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된다는 전언처럼 들린다. 여자는 오지 않고 사내는 사랑을 믿지 않게 되었지만, 소설의 제목은 역설적이게도 ‘사랑을 믿다’이다. 이것은 ‘아직도’ 인가, ‘그래도’인가, ‘이제야’ 인가. 분명한 것은 주인공 사내와 여자 모두 ‘실연’을 당했거나 엇갈려 사랑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 요컨대 그들은 사랑에 실패한 인간들이다. 실패한 자들만이 온전히 믿음을 간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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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 2010-11-12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뷰 잘 봤는데 표제작에서 '친구(현수)와 낙타 형의 행위'는 비역질이 아니죠.
현수는 여자유. 작중 '나'와 같이 늙어 '노파가 될'이란 표현에서나
'콤팩트' '화장을 한' 등의 수식어로 봐서 '비역질'은 형의 오독이우.
그리고...30대 중반의 '읽기'와 40대 초반의 '읽기'가 참 다르군요.
돌이키기에 늦긴 하지만 표제작에서 화자의 태도는 담담하기 이를 데 없던데.

모든사이 2010-11-13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 수정하겠네. 그런데, 40초반이 되면 네 읽기도 달라질 것이니, 그리 타박하지 말거라.
 
저녁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6
송기원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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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원의 새 시집 <저녁>(실천문학사)을 읽다. 1947년생이니 그도 벌써 예순이 훌쩍 넘었다. 몇 년 전인가 인도로 가서 도사가 되어 돌아오더니, 이제는 조금 이르다싶을 정도로 ‘죽음’ 타령이다. 바로 이 시집 전체가 죽음의 냄새로 진동할 정도로 죽음에 대한 천착으로 일관돼 있다. 그런데, 그의 죽음은 송장 썩는 냄새가 나질 않는다. 냄새는커녕 죽음의 흔적조차 없는 것 같다. 가볍고 가볍게 죽어 바람이 되어 이 세상을 휘이 떠돌 듯 활강하며 여기저기 싸돌아다닌다. 메우고 성긴 데가 없이 쉽게 죽죽 읽히는 시행들과 어렵지 않은 시어 사이에서 이 늙은 시인은 자신의 죽음에게서 깊은 절망을 걷어내고 초연하고 담담하게 다음 생을 바라본다.

10월 초 교보에서 이 시집을 사면서 나는 ‘감옥’과 ‘여자’와 ‘인도’로 요약되는 그의 한 생애가 이번에는 어떻게 펼쳐져 있을까 조금 궁금했다. 먼저 ‘감옥’. 70년대 유신반대 운동의 앞자리에 선 송기원에게서 ‘투사’의 흔적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지금은 절판이 된 소설집 <월행>에 실린 리얼리즘 소설들도 그러하거니와 무엇보다도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실천문학사)에 실린 시편들도 당시의 민중적 감성을 촉촉하게 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왕년의 역전 앞 건달이 다소 치기어린 감상으로 노래하는 운동권 문학청년의 정서 같은 것이었을 터이다. 가령 표제작인 이런 시. “별빛 하나에도/우리를 빛낼 수는 있다//한방울 눈물에도 우리를 씻을 수는 있다//버려진 정신들을 이끌고,/바람이 되어//한반도에 스민 잠을 흔들 수는 있다//춥고 긴 겨울을 뒤척이는 자여./그대 언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더이상 시를 써서/시를 죽이지 말라.//누군가 엿보며 웃고 있도다./웃고 있도다.”

이 시집의 ‘발문’은 시인 이진행이 썼는데, 그것은 송기원의 두 번째 시집 <마음속 붉은 꽃잎>에 실린 고은의 발문과 더불어 가장 뛰어나고 감동적인 시집의 발문이리라. 뛰어난 발문은 시인의 됨됨이와 그와의 인간적 연대를 날 것으로 드러내며, 시인 자신의 인간됨을 통하여 시가 예비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요즘에는 그런 발문을 보기 어려운데, 이번 시집 <저녁>에도 시인 유용주의 감동적인 발문이 실려 있다. 유독 송기원에게서 감동이 있는 발문이 많은 까닭은 그가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의 인간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일 터다. 정치적 올바름의 관점에서라면 필시 문제가 많았을 그의 시와 소설을 내가 오랫동안 읽어온 내력도 그런 것이 아닐까. 내가 읽은 시집 가운데에서 또 하나의 뛰어난 발문을 들자면, 그것은 김영현의 <겨울바다>에 실린 김명인의 발문 <발문으로는 조금 긴 우리들의 자서전>일 것이다.

다음 여자. 그런 송기원에게 ‘여자’에 대한 탐미주의적 집착이 공존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기도 했다. 그는 일찍이 전국의 사창가를 돌아다니며 <송기원의 뒷골목 기행>이라는 르뽀집을 낸 인물이기도 하다. 이 몸으로 쓴 기록(?)은 후일 <마음 속 붉은 꽃잎>에 실린 상당수 시들의 원형이 되었고, 거기서 서러운 창녀들의 생애는 “내 몸뚱아리를 스쳐 지나간/수많은 남자들이/단 한 남자로만 밝아오는/저 환장한 보름달”과 같은 절창으로, 대학로의 연극으로도 만들어진 눈물겹게 아름다운 단편 <늙은 창녀의 노래>로도 쓰여졌다. 민주화 운동의 투사임에도, 어찌할 수 없는 욕정을 간직한 그의 탐미성은 장편소설 <여자에 관한 명상>을 통해 본격적으로 자신의 여자-육체에 대한 탐닉의 욕망을 골똘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소설의 남근주의적 성격을 둘러싼 페미니즘 진영의 문제제기가 생각나기도 한다.

다음 인도. 민주화 투사에서 여자에 대한 탐닉은 이어 갑작스런 노장사상과 인도 몰입으로 급선회 했다.(<인도로 간 예수>) 감옥과 여자와 인도 사이의 이 아득한 거리, 인생의 행정이 이렇듯 극단적으로 오고 가는 삶이란 소설가의 삶이 아니라 시인의 삶일 것이다.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 혹은 삶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전체상을 조망할 수 있는 산문적 인식이 아닌 시적 인식에서만이 급격한 단절과 비약, 극적인 선택이 가능할 것이다. (일찍이 쿤데라가 <생은 다른 곳에>에서 설파한 서정시인의 덕목이 바로 이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송기원의 이런 시적 삶은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었던 듯 하다. ‘사람’에게서 아름다움의 본질을 발견하는(동인문학상을 받은 <아름다운 사람>) 그는, 인간에 대한 탐구, 자신의 삶에 대한 내적 발견을 위해 인도로 떠나게 되는 것이다.(<인도로 간 예수>) 시골장터의 깡패(<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가 감옥과 여자에 대한 탐닉, 그리고 인도를 거쳐 이른 곳은 다름아닌 ‘죽음’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지 않은가.

“여자의 알몸을 처음 대한 스무 살에, 맙소사/깊이 사정을 한 것은 벌써 죽음이었다.//서른에는 아이도 태어나고, 마흔에는 징역도 가면서/참으로 열심히 나는 죽었다./히말라야에 갔던 쉰, 장가계에서 사진 찍은 예순 후로/나는 내가 죽었다는 것마저 잊었다.”(자연사) 그러고 보면, 나는 이 작자의 스무살 청춘부터 죽음에 이르는 예순까지의 삶을 힐끗힐끗, 단속적이지만, 참으로 열심히 읽어온 셈이다. 이미 스무 살 무렵부터 죽음이었으니 죽음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다르지 않다. “꽃들이 한꺼번에 벙글어지는 봄날/너와 나도 한꺼번에 벙글어진다면/삶과 죽음은 어차피 둘이 아니다.”(교감, 부분) 봄날, 그 환장할 꽃몸살에 취했을 때 우리는 벌써 죽은 것이니, 그 까닭은 한꺼번에 벙글어지는 생의 절정을 맛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생의 절정에서 보면 이쪽은 죽음이고, 저쪽은 삶이다. 정상은 오르막의 끝이지만, 내리막의 시작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러니 그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일 밖에. 그것은 때로 “메줏덩이 안팎에, 무모하게/푸른 곰팡이로 살아온 걸 네가 알까”(곰팡이, 부분)에서처럼 ‘곰팡이’(곰팡이는 죽은 것도 산것도 아니다)이거나, “무서리가 내린 초겨울 아침에, 두엄에서 내가/모락모락 하얀 김으로 피어오른다고 여기자”(두엄, 부분)는 ‘두엄’(두엄은 썩는 것, 생명을 다하며 죽어가는 와중이다.)이거나, “물방울로 현현할 수도 있을 거다/.../저 가볍게 허공을 떠도는 것들의 현현”(물방울, 부분)에서처럼 ‘물방울’(물방울은 죽은 것이로되 살아 허공을 떠다닌다.)이거나, “밤하늘에 내가/푸른 불빛으로 박혀 있다.//죽는다는 것도, 애오라지/푸른 불빛으로 박혀 있는 순간일 뿐”(붓, 부분)에서처럼 ‘밤하늘의 별’(별은 죽은 것이거나 산 것이다)이다.

여자에 대한 명상에서 ‘진리’를 찾았던 송기원이니 “일찍이 네가 흘린 애액을 핥으며/넉넉히 배가 부르고//일찍이 네가 흘린 애액에 몸을 적시며/흠뻑 잠이 들었거니//여기에서 더 이상 무슨 공부를 만나랴.”(애액)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에게서 '여자'는 곧 '인도'로 가는 길이었던 것. 왜냐하면, “이렇게 몸이 없이 사방을 돌아보면, 아아/몸 이외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몸이 없는 곳에는 그 어떤 것도 없구나.”(몸)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걸 두고 남성적 욕망의 근원에 자리한, 구원과 쾌락의 동시적 제공자로서 우주적 창녀 운운하지 말자. 그것은 지독한 외로움의 산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네 살을 만지고/네가 내 살을 만진다/ .... 외로움이란 그런 것이다///내가 내 살을 만지고/네가 네 살을 만진다/.... 외로움이란 그런 것이다.”(살) 상대의 ‘살’에 대한 이끌림도, ‘몸’에 대한 욕망도 외로움이요, 자신의 몸에 대한 ‘발견’도 외로움이다. 아니, 너와 내가 몸 속에서 외로움으로 이미 하나이다.

삶은 살을 맞대고 있어도 외로운 것이니, 이승의 삶은 생의 무게로 무겁다. “바람이 불면, 문득 무게가 그리워지네/나도 한때는 확실한 무게를 지니고/바람이 부는 언덕에서/한껏 부푼 부피도 느끼며/군청색 셔츠를 펄럭였지/마치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그렇게/누군가의 안에서 언제까지라도/지워지지 않을 것처럼”(무게) 죽음은 이 무게를 벗어나는 것, 삶의 중력이 부과하는 무게감의 긴장에서 벗어나 가벼워지는 것. 스무살 청춘부터 예순까지 이미 죽어있던 송기원에게서 죽음은 더없이 가볍고 발랄한 것이다. 히말라야 설산에 가서 발견한 것은 죽음 이후에야 그가 삶의 무게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래 묵은 때처럼, 나는/지워지질 않는구나//이를 테면 나는 한번도/땅을 밟은 적이 없다.//만질 수 없는 허공속에서/둥둥 떠다녔으리라.//히말리야 설산에서는/죽은 사람들이 눈사태를 일으키고//나는 비로소 밟는다/풍장이 되어 날아가는 땅을”, 땅) 삶의 형이상학에 몰두한 청춘에게 애시당초 현실적 근거(땅)는 희박했던 것, 죽어 날아가야 온전히 자유다. ‘맨발’로 세상을 박박기며 살아온 시인이 변산반도 곰소 앞바다의 숭어떼를 만나러 가는 길, 그게 “내가/내 죽음의/절차를 견디는 일”(임종)이다. 

해발 4천 킬로가 넘는 히말라야 산길에서
맨발을 만났다.
어림잡아 일흔이 넘는 노구와
또 어림잡아 십 킬로는 넘는 곡식푸대 걸망을
할머니의 맨발이 버팅기면서
경사 가파른 바윗길을 잘도 걷고 있었다.
내 운동화가 맨발을 뒤따르는데,
갑자기 맨발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변산반도 곰소 앞바다 숭어떼가 나타났다.
때마침 멸치잡이 배를 뒤따라온 숭어떼가
철퍼덕, 철퍼덕, 힘차게 꼬리치는 소리까지 들렸다.
맨발은 이미 세상 밖으로 떠나갔으리라.
맨발은 한번도 본적이 없는 곰소 앞바다에 가서
숭어 떼에 섞여 힘차게 유영하고 있으리라.
어느 순간 나도 세상 밖으로 떠나가고, 맨발과 함께
숭어 떼가 되어 해발 4천킬로의 바윗길을
철퍼덕, 철퍼덕, 힘차게 꼬리쳤다. 
 -  맨발
 

이런 죽음은 슬프지 않다. 시집 전체가 죽음을 노래하고 있음에도 송장 냄새가 나지 않는 까닭이다. 삶과 죽음 사이를 활달하게 유영하며,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폭넓은 긍정의 지평 위에 올려 놓는 것, 그건 몇 번 죽어본 자만이 할 수 있는 달관이리라. 감옥에서 죽고, 여자에 죽고, 갠지스 강물위에서 죽어 봤지 않은가. 
 

드디어 죽었구나. 
 

멀리 상갓집 등불에
내 모습이
어른대고 있다. 
 

굿바이.
 

씨익 웃으며
내 모습에
손을 흔든다
- 굿바이
 

사는 게 심심하고 쓸쓸하여 송기원 시집이나 읽었는데, 다 읽고 나니 역시 마찬가지. 그만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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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내일을 묻다 - 중국 최고 지성들과의 격정토론
문정인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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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교수의 <중국의 내일을 묻다>를 읽으면서 느끼게 된 것은 우리의 중국에 대한 인식이 많은 부분 미국의 시각에 의존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중국과 역사적으로 ‘조공체제’로 얽힌 관계 속에 놓여있는 터라 우리에게는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 내지는 경계심이 큰 것이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합리적 경계심을 넘어서 중국의 실제적인 자기인식과 대외인식을 과장해서 인식한다면 그것은 상당히 불행한 사태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동아시아에 대한 패권적 지배 혹은 정치경제적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고, 이는 심한 경우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도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그것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나 한미일 삼각동맹을 통해 확인하고 있는 바이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중국위협론이다. 중국이 조만간 미국의 단일패권에 도전하는 국제적 지위로 올라설 것이며, 궁극적으로 세계적 패권을 노리고 있다는 시각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에서 정비젠 교수 등이 말하는 ‘화평굴기론’은 때로 이런 중국위협론의 위장된 버전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옌쉐퉁 교수처럼 아예 대놓고 ‘중국굴기론’을 말하며 중국위협론의 실제적 근거를 제공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 중국 지식인들의 자기 인식은 상당히 자기부정적이다. 한마디로 말해 중국은 그럴 만한 정치군사적 힘도 보편적 가치의 전파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패도’를 펼치기에는 힘이 약하고, ‘왕도’를 펼치기에는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보편적 이데올로기의 담지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한반도의 현실과 관련하여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북한후견론’이다. 중국과 북한은 한국전쟁 당시 ‘피’로 얽힌 ‘혈맹관계’로 비유되고 있으며, 실제로 북한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원투수를 자임했다. 그런 까닭에 남한에서는 중국이 현재의 북한체제를 전폭적으로 긍정하고 있으며, 북한의 체제안정화를 위한 노력을 통해 북한을 영향권 하에 두려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이 책에 나타난 중국 지식인들의 생각은 북한에 대한 생각은 그보다 훨씬 현실주의적(realistic)이다. 김정일 체제 및 후계체제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인식이 존재하고, “중국이 북핵 문제에서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북한에 대해 정책적 레버리지를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라는 인식(왕지쓰)도 존재한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지지의 강도는 그리 강력하지 않아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을 뺀 5자회담을 제안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대북 전략은 이익의 균형을 만들어내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이 책에 등장하는 중국 지식인들은 한결같이 MB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데, 실상 그것은 북한고립화를 통해서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에 위협을 초래하기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문정인 교수는 지난 정부의 한미동맹이 악화되었다는 현정부의 시각에 대해 “미국 국무부, 국방부의 주요 당국자들도 한미동맹에 문제가 없다고 하는 마당에 보수세력만 나빠졌다고 한다”며 “이런 잘못된 정세판단 하에 결국 남북관계, 한중관계, 한러관계 모두 악화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는 현정부 내에 주요 외교당국자들이 친미적인 학자 관료그룹만이 존재하고, 중국, 북한전문가가 한명도 없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깊을 것이다.

세 번째는 중국에 대한 동북아패권론의 시각이다. 동북아에서 중국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이는 정치경제적 종속관계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시각이다. 과거의 ‘조공체제’와 같은 지배-종속관계를 재창출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시각 말이다. 하지만, 중국 지식인들은 그보다 중국 내부 문제(소수민족 문제, 지역간 경제적 불균형 등)가 더욱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라고 인식한다. 이들은 과거 역사의 교훈을 통하여 중국 내부의 안정적 관리가 중국 전체의 지속적 성장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이쯤해서 돌아볼 것은 우리 사회에서 떠들썩했던 ‘동북공정’ 문제이다. 중국 지식인들은 이 문제가 학술적 차원에서 진행된 것으로,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 주장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만은 없겠지만, 동북공정을 둘러싼 우리사회의 이상 민족주의 열기는 상당히 과장된 바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중국에서 벌어진 어쩌면 사소한 문제를 두고 우리는 온국민이 공분하여 문제를 더 키우고 말았던 것이다. 문정인 교수는 ‘조공체제’ 조차도 실제로는 한국과 일본, 베트남 등에서 아주 부분적으로 행해진 것일 뿐 과거 중국과 주변국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라고 말한다. 라이샤워의 과장된 해석이라는 것이다. 좀더 차분한 눈으로 중국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네 번째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중국 지식인들의 패러다임이 공산당 및 중국정부의 공식적 시각과 달리 매우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공산당의 지배적 이념 혹은 공식적 견해외에도 중국 지식인들은 서구의 그것에 가까운 자유주의, 제국주의적 인식에 가까운 패권론, 중도적 시각, 때로는 국제관계에 대한 이상주의적 접근까지도 존재한다. 하나의 이념, 하나의 시각이 존재하는 곳은 아니라는 얘기다. 특정한 하나의 시각을 가지고 중국 전체를 말할 수 없으며, 공식적 이념이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사회도 아니라는 얘기다. 어쩌면 중국 지식인 사회는 패러다임의 백화제방이 이뤄지고 있다는 게 보다 사실에 가까운 얘기일 것이다. 이 대담집을 읽으며 놀랐던 것도 바로 이런 다양한 이념과 시각의 공존이었다.

여기 등장하는 많은 지식인들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학위를 한 사람들이다. 문 교수에 의하면 이들은 자신들의 자녀를 미국에 유학시키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미국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미국적 패도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미국식 표준에 대해서는 은근한 욕망을 보여주고 있는 셈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이 책에서 보여주는 많은 것들은 그들의 전통사상에서 이끌어낸 이론적 패러다임이다.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천하체제론’이나 국제관계를 패도와 왕도로 설명하는 방식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천하체제론에서 국제관계는 평등하며 패권적 지위에 존재하는 국가는 없다. 하늘 아래 모든 국가가 평등하게 공존할 수 있다는 ‘몽상적’ 인식이라 말할 수 있으나, 이상주의적 열정을 인정한다면 그런 세계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대담으로 엮인 책을 읽는 것은 좀 부담스럽다. 가령, 그것은 <창작과 비평>같은 계간지에서 특집으로 엮인 대담 혹은 좌담을 읽는 것과 다르다. 단행본 한권 분량 전체가 대담으로 이뤄져 있다면 하나의 일관된 주제가 발전적으로 전개되는 것과는 달리 주제가 분산되고 난삽하게 진행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대담집 가운데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갔니>(민음사) 였다. 이윤기, 최재천, 이문열, 도정일 등 문제적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기도 하고, 그 중에 입심 쎈 입담꾼들이 여럿이라서 흥미로웠을 것이다. 혹은 에커만이 괴테와 만나 대화를 나눴던 기록인 <괴테와의 대화>도 그중 재미있었다. 이 책에서 괴테의 ‘말씀’은 조화와 균형이라는 고전주의적 기율이 무엇인지를 아주 잘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책은 한권으로 주욱 읽어갈 게 아니라 그때그때의 참고서로 유용하리라는 생각이다. 한중관계, 북중관계, 중국의 대외전략 등 주제별로 참고삼아 읽는 것이 좋을 듯 하다는 생각이다. 가장 먼저 읽어야할 사람들은 누구일까? 두말할 나위 없이 MB 정부의 외교관리들이다. 중국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북중관계에 대한 중국의 인식은 어떤지 좀더 냉정하고 차분한 접근을 위해 이들은 이 책을 참고해야 한다. 그들의 머릿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미국중심의 세계인식을 교정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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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창비교양문고 32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정환 외 옮김 / 창비 / 1999년 10월
평점 :
절판


그는 포츠머스에서 런던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더블린 사람들>(김정환 성은애 옮김, 창비)을 펼쳐 읽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낮은 저지대와 습지들이 지나쳐 갔다. 파란 눈의 영국인 몇 명이 타고 있었으나 그들은 아무 말이 없이 밖을 쳐다볼 뿐이었다. 앞 자리에 앉은 여인은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연신 영국 남부 지방의 들녘을 찍고 있었다. 약간 들뜬 표정의 그녀는 굳은 얼굴의 사내와 사뭇 대조적이었다. 사내는 오랜 비행시간과 객지에서의 과도한 음주로 인해 몹시 피곤해 했다. 영국의 차갑고 싸늘한 공기도 한 몫 했을 터였다. 그로서는 두고 온 일들과 기억들로 인해 마음이 무겁게 내려 앉아 있었다. 여행이 주는 이국에 대한 동경은 이미 사그라 들어 있었다.

그의 캐리어 안에는 이 책 외에도 몇 권의 책이 더 있었다. 이틀 뒤로 예정된 더블린 여행을 위해 그가 준비한 것이 제임스 조이스의 이 소설이었다. 그는 이 책을 가방에 넣으면서 더블린과 조이스를 동일시하는 자신의 속물성을 두고 쓰게 웃었다. 가방 안에는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고향>(전광식)과 존 바스의 <키메라>도 있었다. 부산의 어느 신학대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전광식의 책은 철학적 고향의 의미를 묻는 책이었다. 지리적, 공간적 의미의 고향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자리의 근원, 그 불변의 흔적을 성찰하기 위해 캐리어에 넣은 것이었다. 현자들이 오래 전부터 설파한 대로 사람은 자기 땅에서 멀어질수록 본래의 자신을 되돌아보는 존재인 법이다. 그는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이 늘상 입버릇처럼 되뇌던 ‘선험적 고향상실성’을 따져볼 참이었다.

<키메라>는 오래 전 고려원에서 이윤기의 번역으로 출간된 적이 있었다. 몇 달 전 고인이 된 이 솜씨 좋은 번역가는 이 책을 초역할 때만 해도 풋내기 번역가였을 것이다. 그는 오래 묵은 종이냄새가 풀풀 나던 그 책의 첫 소설에서 많은 악문과 비문을 발견했던 경험을 기억해 냈다. 그의 가방 안에 든 <키메라>는 이윤기 번역본이 절판된 이후 민음사에서 다시 번역해 출간한 것이었다. 그는 런던행 비행기 안에서 이 책에 실린 첫 소설 ‘두냐자디아드’를 아주 버겁게 읽었다. 이윤기는 세헤라자드의 동생인 이 여자들 ‘더냐자드’로 번역했었다. ‘아라비안 나이트’ 이야기를 패러디하고 재해석한 이 소설은 포스트모더니즘 작가 특유의 장난질로 가득했다. 그의 19세기적 감성은 자주 모더니즘 이후 소설들에 생래적인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잠시 창밖을 내다 봤다. 우중충한 하늘 밑으로 습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이 나쁜 공기와 축축한 습기라면 음산한 고딕소설이 나온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침침해진 눈을 비비고 나서 조이스 소설에 눈길을 주었다. <더블린 사람들>은 아일랜드의 이 작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것이었다. 그 일상은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유머러스하지도 않았다. 작고 소소한 이야기들 속에는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은 화석의 일상이 담겨 있었다. 어떤 변화도 생생한 활력도 없어 보였다. 첫 소설 ‘자매’부터가 그랬다. 한 좌절한 신부의 죽음을 소재로 한 이 단편은 첫 장부터 ‘마비’(痲痺)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신체를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를 뜻하는 이 단어는 이 소설의 전반적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었다. 일상에 침윤되어 마비된 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들. 더블린은 과연 그런 동네일까.

이웃집 처녀를 남몰래 연모하는 어린 소년은 그녀를 위해 선물을 사러 바자회에 간다.(애러비) 거기서 소년은 영국 남자들과 희롱하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고 “허영심에 내몰리고 조롱당한 짐슴 같은 내 모습”을 본다. 상처받기 쉬운 소년에게 자신이 연모하는 식민지 아일랜드의 ‘여자’들은 창녀처럼 영국인들에게 꼬리를 흔드는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조이스는 더할 나위 없이 차분하고 담담하고 세심한 문장으로 이런 소소한 마음의 결이 움직이는 것을 예민하게 써내려 갔다. 그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다음의 부분이었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아버지를 보살피며 살고 있는 젊은 여자 이블린이 무료하고 무기력한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몰래 결혼을 약속한 남자와 배를 타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막 떠나려하는 대목이었다. (이블린)

“그는 서둘러 개찰구를 지난 다음 그녀에게 따라오라고 외쳤다. 길 막지 말라고 사람들이 그에게 고함을 질렀지만 그는 여전히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힘없는 짐승처럼 순순하게, 창백한 얼굴을 그에게로 돌렸다. 그를 향한 그녀의 눈빛엔 사랑이나 이별 혹은 그를 알아보는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일상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과 연인에 대한 애정을 간직한 여인이 자신의 연인과 결별하는 장면이다. 여자가 가진 ‘유정’(有情)은 순식간에 ‘무정’(無情)으로 변한다. 그는 모든 이별의 순간은 아마도 저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날의 그도 그런 표정을 본적이 있었다. 감정의 변화를 저런 한 문장으로 쓸 줄 아는 작가, 그래서 조이스가 대가이리라. 사내는 말없이 그 대목에 연필로 밑줄을 그었다.

더블러너스들은 철딱서니 없는 젊은애들(경주가 끝난 후), 여자를 꼬시는 건달들(두 건달), 하숙집 여주인과 그녀의 딸, 그리고 딸과 바람난 나이든 하숙생(하숙집), 시를 쓰지만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사내(구름 한점), 술에 취한 말단 사무원(상응), 유부녀와 바람난 남자(가슴아픈 사건), 정치판의 떡고물을 바라는 사내들(선거 사무실의 아이비 기념일), 친영파로 살아가는 글쟁이(죽은 사람들) 같은 사람들이었다. 더블린의 하늘도 이 사람들처럼 무채색에다 무거운 공기일까. 그는 지난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모델처럼 부각되던 아일랜드를 생각해 냈다. 한국의 언론들은 아일랜드의 대외개방적 경제가 우리의 살길이라며, ‘강소국’인 이 나라를 배워야 한다고 떠들었다. 1인당 GNP에서 영국을 추월했다며 수백년 간 영국의 지배를 받은 이 나라가 이제는 영국에 대해 콧대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었다.

사내는 한국의 언론들이 이 나라의 성장 배경이 되었던 노동, 정부, 정당, 자본간 사회적 타협에 대해서는 별로 부각시키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내고 냉소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저 노동계의 비타협적 태도와 폭력적 파업만이 모든 것의 원흉이었다. 그렇게 아일랜드는 한국의 발전모델로 주목받았건만 2008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어느 새 이 나라는 한국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연평균 1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던 이 나라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유럽에서 첫 번째로 경제위기에 빠진 나라가 됐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우리의 살 길이라고 목청 높였던 사람들은 아일랜드 경제의 침몰에 대해 침묵했다. 사내는 조이스가 보여준 더블린의 무기력이 21세기에도 되풀이 되고 있을 것만 같아 새삼 이 섬나라가 서글퍼졌다.

키가 작아 꼬마 챈들러로 불리는 시인은 “성공하고 싶으면 떠나야 했다. 더블린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튼 다리를 건너면서 그는 강 아래 더 낮은 선창을 바라보았고, 그 가난하고 일그러진 집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구름한점)” 상사의 명령을 거부한 채 대낮부터 흑맥주에 취해 템플 스트리트의 술집을 전전하던 사내는 결국 집에 돌아와 불을 꺼트렸다고 애꿎은 아들에게 주먹질을 해댄다.(상응) “몇 세기 동안 더블린에서는 어떤 사회혁명도 발발하지 않을 것”이며 “삶의 향연에서 추방된 자”(가슴 아픈 사건)들만이 있을 것 같았다. 사내는 조이스의 세계와 책 밖의 세상과 자신의 내면이 하나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자신을 청승맞고 주책스럽다고 생각했다.

“그의 영혼은 무수히 죽은 자들이 사는 영역에 접근한 것이었다. 그는 그들의 불안정하고 깜박이는 존재를 의식했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자신의 정체성은 만져지지 않은 어떤 잿빛의 세계 속으로 스러져 가고 있었다. 견고한 이 세계 자체가, 이 죽은 자들이 한 때 키웠고 세웠고 또 그 안에서 살았던 그곳이 해체되고 또 줄어 들고 있었다.

몇 번 가볍게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는 몸을 창 쪽으로 돌렸다. 다시 눈이 오고 있었다. 그는 졸린 눈으로 가로등에 비스듬히 내리는 은빛나는 어두운 색의 눈송이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서쪽으로 여행을 떠날 때가 온 것이었다. 그랬다, 신문이 옳았다. 눈은 아일랜드 전국에 걸쳐 내리고 있었다. 어두운 중앙 평원의 방방곡곡에, 나무 없는 언덕 위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앨런 늪 위에 소리 없이 내리고, 더 서쪽으로 시커멓게 솟구쳐 오르는 섀넌강 파도 위에 소리없이 내렸다. 눈은 또한 마이클 퓨리가 묻혀 있는 언덕 위 외로운 교회마당에도 구석구석 빠짐없이 내렸다. 눈은 바람에 흩날려 빙퉁그러진 십자가와 묘석들 위에, 작은 문의 뾰족한 문설주 위에, 메마른 가시나무 위에 내렸다. 눈이 온 세상에 희미하게, 그들의 종말이 내려오는 것처럼 모든 산 자와 죽은 자들 위에 희미하게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영혼은 천천히 정신을 잃었다.”(죽은 사람들)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은 스르르 감겼다. 온 몸에 피로가 몰려왔다. 어제는 평소에 비해 너무 많이 걸었다. 먼 땅에서 그리움과 안타까움과 서글픔과 쓸쓸함으로 빚은 독주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이기도할 것이다.  땅에 발을 딛고 살기에는 그는 지나칠 만큼 삶의 형이상학에 몰두해 있는지도 몰랐다. 그날 저녁 더블린은 눈이 아닌 보슬비가 내렸다. 비는 템플 스트리트에도, 제임스 조이스의 동상위에도, 기네스 맥주 공장 굴뚝 위에도 내렸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트리니티 대학의 젊은 대학생들 얼굴 위에도 내렸다. 지도를 들고 두리번 거리는 낯선 여행객의 가방 위에도 몇 방울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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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 2010-10-21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일하러 간 거유 놀러 간 거유? 어쨌든 부럽긴 매한가지지만. 쩝
 
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프리모 레비 지음, 김종돈 옮김 / 노마드북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이 아니면 언제?>는 프리모 레비가 쓴 장편소설이다. 그의 다른 책들은 일종의 수기(手記)라 할 만한 것인데, 이 책은 그중 드문 소설이다. 단테를 애독하는 화학자인 그는 두루 알려져 있다시피 이탈리아 유태인으로, 반파시즘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아우슈비츠에 수감되었다. 그의 대부분의 책들은 수용소 경험을 토대로 쓰여진 것들이다. 서경식 선생의 책을 통해 그를 알게 된 이후 이 책을 포함해 세권을 읽었다.  이 책은 그중 가장 무겁지 않은(?) 책이다. 사람이 가진 잔학성의 끝간 데를 보여주는 레비의 다른 책들에 비해 조금 가볍다 싶을 정도로 잘 읽힌다. 아마 소설이어서 그럴 것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 멘델이 빨치산 부대를 찾아가는 과정, 빨치산 주둔지에서의 생활, 몇 번의 전투, 그리고 2차대전의 종전과 이탈리아로의 귀환과정을 다루고 있다. 빨치산 소설이기는 해도 나치와의 전투과정이나 냉혹한 빨치산 전사의 투쟁 같은 것이 도드라지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파시즘이 지배하는 유럽 하늘 아래서 살아가야 하는 유태인들의 생존방식이 오히려 또렷하다. 당시의 유럽 빨치산은 종류도 유형도 가지가지여서 유태인만으로 구성된 빨치산 부대가 있는가 하면, 러시아 빨치산, 폴란드 빨치산도 있고, 여러 국가와 인종들로 구성된 혼합 빨치산도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처럼 지리산 언저리에 고립된 채 존재했던 빨치산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들 빨치산들은 그렇게 모여 서로 사랑도 하고, 기아선상에서 헤매기도 하고, 축제를 벌이기도 하고, 때로 전투와 죽음을 겪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읽었던 이태(본명은 이우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의 <남부군>을 떠올렸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이전에 이병주의 <지리산>이 있었고, <지리산> 이전에 남부군 전사였던 이태와 박현채 선생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이병주의 지리산은 이태의 구술에 빚을 졌고, 조정래의 소설은 박현채의 회고에 빚을 졌다. 빨치산 출신인 이태는 김영삼의 민주산악회에 들어가 보수 정치에 몸을 담았고, 박현채 선생은 재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 살다가 죽었다. 이태의 삶이야 보수 반공주의가 득세하는 한국사회에서 그가 목숨 부지하고 살아가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현채 선생은 조정래가 그의 소설에서 그려낸 것처럼 소년 전사 ‘조원제’의 나머지 삶을 오롯하고 충실하게 살았다.

빨치산 소년 전사인 박현채 선생에 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중부경찰서 앞의 연구실에서 책 더미를 쌓아두고 원고를 쓰던 그의 모습과 그 형형한 눈빛이 기억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입영 훈련소 화장실에서 새벽에 몰래 담배를 피다 보게 된 신문 쪼가리에서 선생의 부음기사를 읽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건장한 체구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를 침을 튀기며 까대던 그의 기개는 사라지고 오랜 암 투병생활로 흉하게 마른 선생의 얼굴이 거기 있었다. 빨치산과 아우슈비츠 이후 프리모 레비의 삶은 박현채 선생의 길과 달랐다. 마르크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박현채 선생은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한국 사회와 자본주의를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실천적 대안을 마련하는 길로 나아갔고, 레비는 그의 과거를 ‘기억’하고 ‘증언’하는 것으로 삶을 다 했다.

이태의 남부군에 등장하는 연희전문 출신 ‘청년 시인’ 김영은 어떻게 되었을까. 김영은 산에서 내려와 빨치산 정신을 그대로 간직한 채 영등포 시장의 과일 노점상으로 평생 시를 쓰며 살았다. <깃발 없이 가자>(청맥)라는 그의 시집이 나온 것이 1988년이니 이 시인도 아마 유명을 달리했으리라. 레비의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난 책 없는 빨치산 배낭은 실탄없는 총이나 조종사 없는 전투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네. 그런 자들은 좋은 세상이 와도 살 자격이 없는 쓰레기들이지. 그리고 책은 읽고 난 다음엔 반드시 덮게. 모든 길은 책 바깥에 있으니까.” 책을 읽는 빨치산과 시를 쓰는 빨치산은 전투의 와중에서도 자신의 영혼을 간직하려 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내가 살아남은 것은 고전과 교양 때문 이었다”라고 고백한다. 빨치산 투쟁의 와중에서 책을 읽고 시를 쓰는 자들은 영혼이 맑은 자들이다.

사랑에 대한 열정도 ‘청춘의 형이상학’이지만, 이념에 대한 열정도 그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한 레비가 자살을 선택하고, 김영이 익명의 노점상으로 홀로 시를 쓰며 살아간 것(일종의 정치적 자살)은 유사한 선택인 것이다. 김영의 시 한편. “목숨이 백개 있어도 모자라는 싸움/매일 몇 번이고 죽음의 고개를 넘었다./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던 아들도 죽고/동생의 한을 푼다던 누나도 갔다./쌍치면 피재 한의 능선/수천의 탄환 중에 하나가 흰나리의/가슴을 뚫고 지나갔는데/나는 비껴서 무사한지 알 수 없다./억새풀 우거진 영마루에 강성구의 시신을 버리고/잡목 무성한 골짜기에 노병서의 묘비를 세웠다./죽어서 깃발로 펄럭이는 흰나리/삶을 넘어 죽음을 지나/용하게도 총알은 나를 피해갔건만/목숨이 백 개 있어도 모자라는 싸움에서/살아남은 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인 것을.”(김영, 사선)

유태인으로서 레비의 인식은 시온주의자들의 그것과는 한결 다르다. 이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 “키에프 강경파 시오니스트 지도자들이 나치와 모종의 거래 조건으로 서민층 유태인들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가 하면, 자기네들의 신성한 시오니즘 운동에 반대한다고 유태인 이민자 252명을 태운 배를 하이파 항에서 폭파시켜 버렸다네.” 이것이 바로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하는 포위된 요새론일 것이다. 적에게 공격받고 있는 포위된 요새 안에서는 다른 목소리, 다른 주장은 억압되거나 배제될 수밖에 없다. 레비는 빨치산 대장 율리빈의 말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자민족 약자들을 무시하고 학살하는 시오니스트들에게 타민족의 고통에 대한 배려가 있을 리 없겠지. 그들에겐 오직, 어쩌면 나치보다도 더 잔인한 인종주의와 백인 우월주의가 깊이 뿌리박고 있을지도 모른다네.” 동질성에 기반한 모든 집단주의의 망령은 이렇듯 흉물스럽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유태인 빨치산들이 팔레스타인을 택하지 않고 이탈리아를 택하는 이유도 이 나라가 가진 개방성과 자유로움 때문이다. 프리모 레비 자신이 이탈리아 인이어서였을까. 하여간 이탈리아는 로마 가톨릭이 유태인들을 고리대금업자라고 경멸했을 때나 무솔리니 치하의 인종차별법 하에서도 유태인 학살이 한번도 없었다. 이탈리아는 “이방인은 적이 아니고, 법의 준수보다는 시민의 불복종을 더 매력적으로 생각한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새삼 이탈리아를 달리 보게 된다. 그래서 이탈리아 공산당이 그렇게 뿌리 깊은 생명력을 유지하고, 마피아가 고향으로 삼을 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흥미로운 발견이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 유태인 수용소를 찾아간 빨치산들이 대량학살에 어쩔 수 없이 동원된 유태인들을 만나는 장면. 이들은 총이 무서워 동료 유태인들에게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레비는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이것이 인간이란 말인가?”라고 묻는다. 여자 빨치산인 라인은 “내가 살기 위해 당신 가슴에 총을 쏘아도 괜찮다는 얘긴가요? ... 왜냐하면 인간은 생각할 줄 아는 동물이니까요. 그런데, 저 포로들은 자기들이 살기 위해 그런 생각을 모조리 유보해 버린 거예요! 무뇌아나 짐승이 됐단 말예요”라고 말한다. 인간이 다름아닌 호모사피엔스임을 말하는 이 대목은 이 책 전체의 주제를 집약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프랑신은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삶에 대한 애착’이었다고 말한다. 삶에 대한 애착으로서의 운명애(amor fati)와 그럼에도 끝까지 호모사피엔스임을 포기하지 않는 것. 레비가 그의 온 생애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일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된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는 총살되기 직전 나치에게 허용 받은 30분 동안 써내려간 시의 한 대목이다. 3연으로 된 이 시는 마지막 연은 이렇다.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면/과연 누가 나를 위해 대신 살아줄 것인가?/내가 또한 나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과연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이 길이 아니라면 어쩌란 말인가?/지금이 아니라면 언제란 말인가?”  


ps. 눈 덮인 러시아 평원에서 본 자작나무가 인상적이었는데, 러시아를 포함한 동유럽 사람들에게 자작나무는 아주 유용한 삶의 도구였던 모양이다. 다음과 같은 대목.  


“특히 시베리아의 광활한 설원에 눈보라에 맞서 쭉쭉 솟아있는 자작나무에 대한 관심이 깊었지요. 잘 아시다시피 자작나무는 기름덩어리라 추위에도 거뜬하고 우리 빨치산들로서는 횃불로도 아주 유용하게 쓰지 않습니까. 불에 잘 타니까 땔감으로도 안성맞춤이구요. 또 얇은 껍질들을 벗겨 편지쓰기에도 좋지요.”
“편지도 써요?”
“그럼요. 아주 옛날엔 두루마리 대신 성경이나 코란, 토라, 탈무드 같은 것들을 기록했는데, 수백년이 지나도 썩지 않으니까 그만이지요.”
“말하자면 천연방부제인 셈이군요.”
“그리고 천연생수이기도 하죠.”
“천연생수요?”
“어, 아직 그 기막힌 맛을 보지 못한 모양이군요. 나무에 구멍을 뚫으면 수액이 나오는데, 아주 달짝지근해요. 무병장수제로 통하지요. 그리고 그 자작나무가 죽으면 버섯이 자라는데, 그게 또 암치료에 특효약이지요.”
“허 만병통치약이 따로 없군요.”
“물론이지요. 게다가 술꾼들이 최고의 술로 꼽는 순도 높은 보드카도 바로 마지막 제조공정으로 자작나무 숯에 걸러낸 술이지요. 그런데, 무엇보다도 나를 매혹시킨 건 그런 실용성에 앞서 자작나무 자체가 갖는 순도 높은 미학이지요. 혹한의 눈보라에도 아랑곳 없이 하늘을 향해 아득하게 솟구친 그 수직의 염결성이 나를 숨막히게 하지요. 내가 죽으면 인디언들이 이름을 붙인 그 ‘서 있는 키 큰 형제들’ 아래에 묻히고 싶을 정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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