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최장집 지음 / 폴리테이아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최장집 교수만큼 집요하게 정당에 의한 민주화를 주장해온 사람이 있을까. 문재인의 ‘정당정치’와 안철수의 ‘시민정치’의 결합이 주장되는 마당에, 그의 정당정치론은 어쩌면 정치일반에 대한 혐오와 비판이라는 국민여론을 도외시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에게 ‘안철수 현상’은 “노동없는 민주주의 혹은 실재하는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다루지 못했던 한국정당체제의 무기력함”이 낳은 결과이며, 그래서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이 남겨 놓은 빈공간을 ‘청춘콘서트’가 휘젓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진보학자이자 진보진영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 그에게 “독재 회귀”니 “반민주”니 하는 거창한 구호는 “추상화되고 도덕화된 담론”일 뿐, 현실의 문제를 돌파해내는 유력한 방법은 못된다. 한국정치에 대한 내 생각은 대부분 최장집에서 빌려왔고,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도 그의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그에게 한 번도 가르침을 받아본 적이 없지만, 나는 그 몰래 혼자 그를 사숙하며, 얄팍한 대로 정치와 그것의 가능성을 겨우 가다듬을 수 있었다.

 

<노동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이라는 다소 시적인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은, 최장집의 책치고는 매우 얇은 데다 이론중심의 기존 저서와 달리 ‘현장의 목소리’가 다수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이채롭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조지 오웰의 <위건부두로 가는길>을 떠올렸는데, 그것은 자생적 사회주의자였던 오웰의 북부의 탄광지대에 가서 현장의 노동자를 만나고 책을 썼던 내력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는 정치여론조사의 각종 통계와 서구이론가의 책 더미에 묻혀 정작 ‘정치’가 요구되는 현장에 대해 무지하기 이를 데 없는 정치학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에게 정치는 ‘여의도’와 조중동에나 존재할 뿐, 저자거리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해야할 정작 중요한 정치의 역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최장집의 이 책은 그의 다른 책들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고, 이른바 ‘최장집 민주주의론’의 현실적 진단과 처방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내겐 아주 유익했다.

 

책 전체의 내용을 아주 거칠고도 거창하게 요약하자면, ‘정치가 우리를 구원한다’ 쯤 될 것 같다. 정치메시아주의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일용직 노동자의 비천한 노동 앞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이 심각한 현대차에서, 봉제공장과 재래시장에서, 농민과 청년의 현실 앞에서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이들의 이익을 대표하고, 정치제도 안에서 해결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며, 그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실천을 통해 우리 사회가 좀더 민주적이고 인간적이며 윤택한 삶을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같은 정치의 중심에 바로 정당이 있다. ‘운동에 의한 민주화’를 이끌었던 재야 시민세력이나 학생운동은 이런 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 보수기득권 정당 역시 이를 해결할 수 없다. 그들은 아래로부터의 분출하는 요구를 그동안 “수동혁명의 악순환”을 통해 무마시켜 왔을 뿐이다. (박근혜의 ‘경제민주화’는 바로 이 수동혁명의 불안한 전조다)문제의 해결을 회피한 채 수동적이고 개량적인 변화만을 반복해왔던 것이다.

 

최장집은 전에도 그랬듯이 김대중·노무현 두 민주정부에 대해 좌절된 기대를 감추지 않는다. 가령, 신용불량자 문제에 대한 진단에서 그런 판단은 더욱 두드러진다. “신용불량자 문제는 이른바 개혁적 민주정부들의 대표적 정책실패의 산물이며,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무책임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례”이다. “과거이 국가주도형 산업화가 재벌중심의 구조를 만들어냈듯이, 민주정부하에서 자율적 시장 원리를 통한 국가의 금융정책은 금융자본의 비약적 성장과 이들에 의한 금융지배구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IMF 위기 이후 민주정부들은 극단적 시장중심적 발전방향을 가속화했고, “성장과 시장 효율성의 가치”, 그리고 “노동포섭적 정책과 사회복지적 정책"에서 ”보수적 요소의 강화로 전환하는 퇴행의 궤적“을 보여줬다.

 

최교수가 김대중 정부 초기 정책기획위원장으로 있으면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국정비전을 만들어냈다거나, 노무현이 대선후보였을 때, 그의 정치적 교사였다는 이력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두 정부 모두 경제관료에 의해 포섭된 허약한 정부였으며 개혁을 뒷받침할 하나의 중요한 세력을 형성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에서 그 ‘무책임성’의 근원을 따져봐야할 지도 모른다. 최장집의 시각에서는 “정당을 통해 통치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집권 이후 정당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진보정당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개혁진보 진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간 야당과 진보세력들은 격렬한 언사를 동원해 집권 세력과 보수 세력을 공격하거나, 독재로 회귀하고 있다며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태도로 일관해왔다. 이런 태도는 상대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 얼마나 강한가가 진정한 진보를 가늠하는 척도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내가 볼 때 중요한 것은 그런 종류의 공격에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정부를 대신해 집권하게 되었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심을 집중하고 그것에 맞게 조직적 능력을 최대화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시민들로부터 유능함을 인정받고 신뢰를 얻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공익에도 기여할 뿐만 아니라 선거전략으로서도 더 효과적일 것이다. 추상화되고 도덕화된 반대담론이 강해질수록, 정치의 방법으로 일을 성사시키는 ‘진지한 정치’는 필요치 않게 된다. 뜨거운 열정의 동원에 몰두하는 정치는 실제의 사회현실과 괴리될 수밖에 없고, 당연히 내용적으로 더 얄팍해진다.”

 

최장집은 독일 사민당이나 그가 좋아하는 이탈리아 공산당 등의 정당모델에서 줄기차게 대안을 찾으려 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정당현실 속에서는 오히려 비현실적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 역시 정당을 배제하거나 약화시키는 방향에서 한국정치의 대안이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개혁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이라면, 그 정당이 현실적으로 기초하고 있는 기반 위에서 정치적 이익을 조직화하고, 계층과 집단을 정치적으로 조직하며, 현실정치라는 제도적 공간안에서 이를 실현하는 정치적 능력을 갖추어야만 한다. 이런 점에서 안철수의 국회의원 의석수 축소나 탈정당정치적 행보는 그것이 다수 국민들에게 ‘후련함’을 줄 수 있을 지 모르나 결코 현실적 대안은 되지 못한다. 반정치로 대안정치를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민주당이 정당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것도 아니다. 나는 문재인이나 안철수, 그리고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대표와 당원들이 최장집의 이 책을 열심히 읽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노동 없는 민주주의”는 지속불가능하고, “사회경제적 민주화” 없이는 한국사회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철폐” “신자유주의 반대”와 같은 뜬구름 잡는 식의 진보진영의 허망한 구호는 더 이상 보기 싫다. 대처패배 이후에 영국 노동당 강령은 근본주의적 좌파 강령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긴 유서”라는 평가를 들었다. 나는 홍세화의 진보신당이나 주사파 일색인 통합진보당에게서 그 유서의 흔적들을 본다. 최장집은 칠순 나이에 정치의 ‘현장’으로 들어가 자신의 민주주의론을 확장하고 심화시키고 있는데, 정작 현실정치에 서식하는 진보정당들은 점점 현실에서 멀어지고 있는 게 바로 지금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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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2-10-31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는 현실이기에, 바깥에서 비판하면서 구호를 외치던 야당이 막상 정권을 잡으면 이 '현실'에서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시절을 보면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모든사이 2012-10-31 13:37   좋아요 0 | URL
저는 그래서 '정치적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 가 많이 깨닫게 됩니다. 카리스마가 있으냐 없느냐가 아니라, 이런저런 반대세력과 비판세력을 아우르고 포섭해 나가는 능력 말입니다.. 그래야 그 '현실'에 밀리지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