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물 소리
황석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루카치는 소설을 ‘근대의 서사시’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매우 깊은 울림을 준다. 기껏 종이쪼가리에 쓰여진 글자더미에 불과한 ‘소설’이 어떻게 인류사의 발전과 조응할 수 있다는 것인가. 어떻게 하나의 예술장르에 불과한 소설 따위에 거창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 루카치의 이 호언장담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숱한 젊음들이 ‘문학’이라는 모닥불을 향해 불나방처럼 몸을 던졌다. 소설을 읽고/쓰는 행위는 밀실에 갇힌 고독한 개인의 작업이 아니라 근대적 주체의 집단적 열망의 표출이었다.


황석영의 새 소설 <여울물 소리>는 일찍이 소설에 부과되었던 역사적 의미를 묻는 작품이다. 근대 소설의 맹아적 형태를 근대초의 이야기꾼에서 찾고, 그의 삶을 통해 근대의 서사시로서 소설의 ‘운명’을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루카치가 인류의 보편사라는 측면에서 소설의 지위를 말하고 있다면, 황석영은 그것을 지극히 한국적인 근대 상황속에 접목시키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근대초기에 등장했던 방각본 소설을 낭송하는 이야기꾼이면서 동시에 동학혁명에 참여하고 있는 인물이다. ‘양반의 서자’라는 봉건체제의 주변부에서 태어나 나레이터로 ‘이야기꾼’의 자질을 얻고, 동학혁명이라는 봉건체제 극복 운동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운명은 근대의 소설가(근대적 소설가의 탄생 이전이겠지만)가 소설이라는 근대적 예술형식을 만들어가는 것이면서 동시에 근대를 향한 투쟁에 가담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적 근대의 소설가는 예술과 혁명이라는 두 과제를 필연적으로 짊어지고 있는 근대 주체인 셈이다. 너무 거창한 독법인가.


이 소설을 보니 황석영은 역시 아직 녹슬지 않았다. 근대초의 풍경과 습속의 세목을 알뜰하게 복원해내는 솜씨며, 주인공 연옥과 이신통의 사랑을 살뜰하게 그려내는 재주 또한 그러하다. 연옥은 세상의 바람이 들어 전국을 떠도는 ‘오딧세이’ 신통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그의 흔적들을 좇는 여인이다. 그녀는 부실한 제 서방을 박차고, 하룻밤의 사랑이었던 신통을 선택하는데, 세속과 대결하는 그녀의 강단과 신통에 대한 애정의 곡진함이 눈물겹다.


연옥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기 바로 전날 만나 사랑을 나누었던 둘은 수년이 지나서야 겨우 다시 만난다. 연옥과 신통은 서로 말없이 술을 따르고 마신다. “언젠가 꼭 만나고 싶었소”라는 신통의 말에 그녀는 “야속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방바닥에 똑똑 떨어졌다.”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이런 여인상을 그려내는 것을 보면, 황석영은 마초다. 그것도 고급 마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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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01-03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사가 늦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개인적으로 황석영 작가의 책을 그리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솔직히 그의 팬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이님의 리뷰를 읽고나니, 일단 황작가의 책을 좀더 많이 - 초기부터 현작까지 - 읽어본 후에 결론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이지, 저는 제가 모르는 딱 그 만큼만 떠들어대는 것 같습니다. 조금 부끄럽네요. (물론 MB와 함께 한 여행은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철학과는 좀 거리가 있어보였기에, 더욱 비판적인 마음이 들긴 했습니다만)

모든사이 2013-01-07 15:1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제가 너무 오버해석을 한 게 아닌가 싶어서.. 하지만, 그래도 황석영 만한 작가가 없는 거 같습니다. 그의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한계(?)는 제쳐두고라도 말이지요.. 방문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