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사람들 창비교양문고 32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정환 외 옮김 / 창비 / 1999년 10월
평점 :
절판


그는 포츠머스에서 런던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더블린 사람들>(김정환 성은애 옮김, 창비)을 펼쳐 읽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낮은 저지대와 습지들이 지나쳐 갔다. 파란 눈의 영국인 몇 명이 타고 있었으나 그들은 아무 말이 없이 밖을 쳐다볼 뿐이었다. 앞 자리에 앉은 여인은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연신 영국 남부 지방의 들녘을 찍고 있었다. 약간 들뜬 표정의 그녀는 굳은 얼굴의 사내와 사뭇 대조적이었다. 사내는 오랜 비행시간과 객지에서의 과도한 음주로 인해 몹시 피곤해 했다. 영국의 차갑고 싸늘한 공기도 한 몫 했을 터였다. 그로서는 두고 온 일들과 기억들로 인해 마음이 무겁게 내려 앉아 있었다. 여행이 주는 이국에 대한 동경은 이미 사그라 들어 있었다.

그의 캐리어 안에는 이 책 외에도 몇 권의 책이 더 있었다. 이틀 뒤로 예정된 더블린 여행을 위해 그가 준비한 것이 제임스 조이스의 이 소설이었다. 그는 이 책을 가방에 넣으면서 더블린과 조이스를 동일시하는 자신의 속물성을 두고 쓰게 웃었다. 가방 안에는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고향>(전광식)과 존 바스의 <키메라>도 있었다. 부산의 어느 신학대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전광식의 책은 철학적 고향의 의미를 묻는 책이었다. 지리적, 공간적 의미의 고향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자리의 근원, 그 불변의 흔적을 성찰하기 위해 캐리어에 넣은 것이었다. 현자들이 오래 전부터 설파한 대로 사람은 자기 땅에서 멀어질수록 본래의 자신을 되돌아보는 존재인 법이다. 그는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이 늘상 입버릇처럼 되뇌던 ‘선험적 고향상실성’을 따져볼 참이었다.

<키메라>는 오래 전 고려원에서 이윤기의 번역으로 출간된 적이 있었다. 몇 달 전 고인이 된 이 솜씨 좋은 번역가는 이 책을 초역할 때만 해도 풋내기 번역가였을 것이다. 그는 오래 묵은 종이냄새가 풀풀 나던 그 책의 첫 소설에서 많은 악문과 비문을 발견했던 경험을 기억해 냈다. 그의 가방 안에 든 <키메라>는 이윤기 번역본이 절판된 이후 민음사에서 다시 번역해 출간한 것이었다. 그는 런던행 비행기 안에서 이 책에 실린 첫 소설 ‘두냐자디아드’를 아주 버겁게 읽었다. 이윤기는 세헤라자드의 동생인 이 여자들 ‘더냐자드’로 번역했었다. ‘아라비안 나이트’ 이야기를 패러디하고 재해석한 이 소설은 포스트모더니즘 작가 특유의 장난질로 가득했다. 그의 19세기적 감성은 자주 모더니즘 이후 소설들에 생래적인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잠시 창밖을 내다 봤다. 우중충한 하늘 밑으로 습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이 나쁜 공기와 축축한 습기라면 음산한 고딕소설이 나온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침침해진 눈을 비비고 나서 조이스 소설에 눈길을 주었다. <더블린 사람들>은 아일랜드의 이 작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것이었다. 그 일상은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유머러스하지도 않았다. 작고 소소한 이야기들 속에는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은 화석의 일상이 담겨 있었다. 어떤 변화도 생생한 활력도 없어 보였다. 첫 소설 ‘자매’부터가 그랬다. 한 좌절한 신부의 죽음을 소재로 한 이 단편은 첫 장부터 ‘마비’(痲痺)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신체를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를 뜻하는 이 단어는 이 소설의 전반적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었다. 일상에 침윤되어 마비된 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들. 더블린은 과연 그런 동네일까.

이웃집 처녀를 남몰래 연모하는 어린 소년은 그녀를 위해 선물을 사러 바자회에 간다.(애러비) 거기서 소년은 영국 남자들과 희롱하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고 “허영심에 내몰리고 조롱당한 짐슴 같은 내 모습”을 본다. 상처받기 쉬운 소년에게 자신이 연모하는 식민지 아일랜드의 ‘여자’들은 창녀처럼 영국인들에게 꼬리를 흔드는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조이스는 더할 나위 없이 차분하고 담담하고 세심한 문장으로 이런 소소한 마음의 결이 움직이는 것을 예민하게 써내려 갔다. 그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다음의 부분이었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아버지를 보살피며 살고 있는 젊은 여자 이블린이 무료하고 무기력한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몰래 결혼을 약속한 남자와 배를 타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막 떠나려하는 대목이었다. (이블린)

“그는 서둘러 개찰구를 지난 다음 그녀에게 따라오라고 외쳤다. 길 막지 말라고 사람들이 그에게 고함을 질렀지만 그는 여전히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힘없는 짐승처럼 순순하게, 창백한 얼굴을 그에게로 돌렸다. 그를 향한 그녀의 눈빛엔 사랑이나 이별 혹은 그를 알아보는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일상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과 연인에 대한 애정을 간직한 여인이 자신의 연인과 결별하는 장면이다. 여자가 가진 ‘유정’(有情)은 순식간에 ‘무정’(無情)으로 변한다. 그는 모든 이별의 순간은 아마도 저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날의 그도 그런 표정을 본적이 있었다. 감정의 변화를 저런 한 문장으로 쓸 줄 아는 작가, 그래서 조이스가 대가이리라. 사내는 말없이 그 대목에 연필로 밑줄을 그었다.

더블러너스들은 철딱서니 없는 젊은애들(경주가 끝난 후), 여자를 꼬시는 건달들(두 건달), 하숙집 여주인과 그녀의 딸, 그리고 딸과 바람난 나이든 하숙생(하숙집), 시를 쓰지만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사내(구름 한점), 술에 취한 말단 사무원(상응), 유부녀와 바람난 남자(가슴아픈 사건), 정치판의 떡고물을 바라는 사내들(선거 사무실의 아이비 기념일), 친영파로 살아가는 글쟁이(죽은 사람들) 같은 사람들이었다. 더블린의 하늘도 이 사람들처럼 무채색에다 무거운 공기일까. 그는 지난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모델처럼 부각되던 아일랜드를 생각해 냈다. 한국의 언론들은 아일랜드의 대외개방적 경제가 우리의 살길이라며, ‘강소국’인 이 나라를 배워야 한다고 떠들었다. 1인당 GNP에서 영국을 추월했다며 수백년 간 영국의 지배를 받은 이 나라가 이제는 영국에 대해 콧대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었다.

사내는 한국의 언론들이 이 나라의 성장 배경이 되었던 노동, 정부, 정당, 자본간 사회적 타협에 대해서는 별로 부각시키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내고 냉소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저 노동계의 비타협적 태도와 폭력적 파업만이 모든 것의 원흉이었다. 그렇게 아일랜드는 한국의 발전모델로 주목받았건만 2008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어느 새 이 나라는 한국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연평균 1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던 이 나라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유럽에서 첫 번째로 경제위기에 빠진 나라가 됐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우리의 살 길이라고 목청 높였던 사람들은 아일랜드 경제의 침몰에 대해 침묵했다. 사내는 조이스가 보여준 더블린의 무기력이 21세기에도 되풀이 되고 있을 것만 같아 새삼 이 섬나라가 서글퍼졌다.

키가 작아 꼬마 챈들러로 불리는 시인은 “성공하고 싶으면 떠나야 했다. 더블린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튼 다리를 건너면서 그는 강 아래 더 낮은 선창을 바라보았고, 그 가난하고 일그러진 집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구름한점)” 상사의 명령을 거부한 채 대낮부터 흑맥주에 취해 템플 스트리트의 술집을 전전하던 사내는 결국 집에 돌아와 불을 꺼트렸다고 애꿎은 아들에게 주먹질을 해댄다.(상응) “몇 세기 동안 더블린에서는 어떤 사회혁명도 발발하지 않을 것”이며 “삶의 향연에서 추방된 자”(가슴 아픈 사건)들만이 있을 것 같았다. 사내는 조이스의 세계와 책 밖의 세상과 자신의 내면이 하나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자신을 청승맞고 주책스럽다고 생각했다.

“그의 영혼은 무수히 죽은 자들이 사는 영역에 접근한 것이었다. 그는 그들의 불안정하고 깜박이는 존재를 의식했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자신의 정체성은 만져지지 않은 어떤 잿빛의 세계 속으로 스러져 가고 있었다. 견고한 이 세계 자체가, 이 죽은 자들이 한 때 키웠고 세웠고 또 그 안에서 살았던 그곳이 해체되고 또 줄어 들고 있었다.

몇 번 가볍게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는 몸을 창 쪽으로 돌렸다. 다시 눈이 오고 있었다. 그는 졸린 눈으로 가로등에 비스듬히 내리는 은빛나는 어두운 색의 눈송이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서쪽으로 여행을 떠날 때가 온 것이었다. 그랬다, 신문이 옳았다. 눈은 아일랜드 전국에 걸쳐 내리고 있었다. 어두운 중앙 평원의 방방곡곡에, 나무 없는 언덕 위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앨런 늪 위에 소리 없이 내리고, 더 서쪽으로 시커멓게 솟구쳐 오르는 섀넌강 파도 위에 소리없이 내렸다. 눈은 또한 마이클 퓨리가 묻혀 있는 언덕 위 외로운 교회마당에도 구석구석 빠짐없이 내렸다. 눈은 바람에 흩날려 빙퉁그러진 십자가와 묘석들 위에, 작은 문의 뾰족한 문설주 위에, 메마른 가시나무 위에 내렸다. 눈이 온 세상에 희미하게, 그들의 종말이 내려오는 것처럼 모든 산 자와 죽은 자들 위에 희미하게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영혼은 천천히 정신을 잃었다.”(죽은 사람들)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은 스르르 감겼다. 온 몸에 피로가 몰려왔다. 어제는 평소에 비해 너무 많이 걸었다. 먼 땅에서 그리움과 안타까움과 서글픔과 쓸쓸함으로 빚은 독주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이기도할 것이다.  땅에 발을 딛고 살기에는 그는 지나칠 만큼 삶의 형이상학에 몰두해 있는지도 몰랐다. 그날 저녁 더블린은 눈이 아닌 보슬비가 내렸다. 비는 템플 스트리트에도, 제임스 조이스의 동상위에도, 기네스 맥주 공장 굴뚝 위에도 내렸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트리니티 대학의 젊은 대학생들 얼굴 위에도 내렸다. 지도를 들고 두리번 거리는 낯선 여행객의 가방 위에도 몇 방울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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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 2010-10-21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일하러 간 거유 놀러 간 거유? 어쨌든 부럽긴 매한가지지만.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