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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밤 ㅣ 슈테판 츠바이크 소설 시리즈 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원당희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8년 7월
평점 :
츠바이크의 책을 샅샅이 뒤져 읽는 터라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이숲의 올빼미)와 <환상의 밤>를 경기도 모서점에서 발견했을 때 반갑기 그지 없었다. 한때의 박완서가 그랬듯이 내게 츠바이크는 책읽기기가 지루해졌을 때마다 찾게 되는 작가다. <크리스티네>는 1차 대전으로 급격하게 몰락한 오스트리아의 시골마을 우체국에서 일하는 '아가씨'의 이야기다. 부유한 미국인이 된 이모의 초대로 스위스의 유명 관광지 호텔에 초대받은 그녀가 '상류층 문화'에 눈뜨게 되고 급기야는 우체국 예금의 횡령을 모의하게 된다는 스토리. 이 아가씨의 초라한 자신의 처지에 대한 인식과 신분상승에의 욕망을 맛깔스럽게 묘사하는데, 그 과정은 드라마틱하고 리얼하다. 프로이드와 동시대를 산 심리소설의 대가가 쓴 작품답다. 다만, 촌스럽고 천박해보이는 표지 디자인은 불만이다. 이 정도 소설이면 대접을 제대로 해줘야 할 것인데, 싸게 만든 티가 심하게 난다.
<환상의 밤> 역시 츠바이크의 심리에 대한 묘사가 오롯한 작품이다.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소설을 보는 듯한, 부르주아/귀족주의 문화의 공존과 음습하고 저열한 욕망이 병행하는 비엔나의 윤리적 이중성을 개인의 심리적 변화과정을 통해 보여주는 이야기. 귀족주의적 세련 저 너머에 숨은 '욕망'이 껍데기를 벗고 드러나는 과정은 해방에의 충일감 같은 심정으로 표현된다. 꼭 동여맨 코르셋과 단추를 모두 채운 비엔나 귀족 수트의 아랫도리에 숨겨진 욕망. 츠바이크가 비엔나의 이중성을 비판하려 했다기 보다는, 당대의 억압적 분위기를 욕망의 해방과정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 두 책 모두, 그의 작품들이 대개 그러했듯이, 영화적 서사로 풀어낼 수 있을 만큼, 잘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