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내일을 묻다 - 중국 최고 지성들과의 격정토론
문정인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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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문정인 교수의 <중국의 내일을 묻다>를 읽으면서 느끼게 된 것은 우리의 중국에 대한 인식이 많은 부분 미국의 시각에 의존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중국과 역사적으로 ‘조공체제’로 얽힌 관계 속에 놓여있는 터라 우리에게는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 내지는 경계심이 큰 것이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합리적 경계심을 넘어서 중국의 실제적인 자기인식과 대외인식을 과장해서 인식한다면 그것은 상당히 불행한 사태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동아시아에 대한 패권적 지배 혹은 정치경제적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고, 이는 심한 경우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도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그것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나 한미일 삼각동맹을 통해 확인하고 있는 바이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중국위협론이다. 중국이 조만간 미국의 단일패권에 도전하는 국제적 지위로 올라설 것이며, 궁극적으로 세계적 패권을 노리고 있다는 시각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에서 정비젠 교수 등이 말하는 ‘화평굴기론’은 때로 이런 중국위협론의 위장된 버전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옌쉐퉁 교수처럼 아예 대놓고 ‘중국굴기론’을 말하며 중국위협론의 실제적 근거를 제공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 중국 지식인들의 자기 인식은 상당히 자기부정적이다. 한마디로 말해 중국은 그럴 만한 정치군사적 힘도 보편적 가치의 전파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패도’를 펼치기에는 힘이 약하고, ‘왕도’를 펼치기에는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보편적 이데올로기의 담지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한반도의 현실과 관련하여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북한후견론’이다. 중국과 북한은 한국전쟁 당시 ‘피’로 얽힌 ‘혈맹관계’로 비유되고 있으며, 실제로 북한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원투수를 자임했다. 그런 까닭에 남한에서는 중국이 현재의 북한체제를 전폭적으로 긍정하고 있으며, 북한의 체제안정화를 위한 노력을 통해 북한을 영향권 하에 두려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이 책에 나타난 중국 지식인들의 생각은 북한에 대한 생각은 그보다 훨씬 현실주의적(realistic)이다. 김정일 체제 및 후계체제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인식이 존재하고, “중국이 북핵 문제에서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북한에 대해 정책적 레버리지를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라는 인식(왕지쓰)도 존재한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지지의 강도는 그리 강력하지 않아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을 뺀 5자회담을 제안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대북 전략은 이익의 균형을 만들어내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이 책에 등장하는 중국 지식인들은 한결같이 MB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데, 실상 그것은 북한고립화를 통해서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에 위협을 초래하기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문정인 교수는 지난 정부의 한미동맹이 악화되었다는 현정부의 시각에 대해 “미국 국무부, 국방부의 주요 당국자들도 한미동맹에 문제가 없다고 하는 마당에 보수세력만 나빠졌다고 한다”며 “이런 잘못된 정세판단 하에 결국 남북관계, 한중관계, 한러관계 모두 악화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는 현정부 내에 주요 외교당국자들이 친미적인 학자 관료그룹만이 존재하고, 중국, 북한전문가가 한명도 없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깊을 것이다.

세 번째는 중국에 대한 동북아패권론의 시각이다. 동북아에서 중국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이는 정치경제적 종속관계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시각이다. 과거의 ‘조공체제’와 같은 지배-종속관계를 재창출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시각 말이다. 하지만, 중국 지식인들은 그보다 중국 내부 문제(소수민족 문제, 지역간 경제적 불균형 등)가 더욱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라고 인식한다. 이들은 과거 역사의 교훈을 통하여 중국 내부의 안정적 관리가 중국 전체의 지속적 성장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이쯤해서 돌아볼 것은 우리 사회에서 떠들썩했던 ‘동북공정’ 문제이다. 중국 지식인들은 이 문제가 학술적 차원에서 진행된 것으로,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 주장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만은 없겠지만, 동북공정을 둘러싼 우리사회의 이상 민족주의 열기는 상당히 과장된 바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중국에서 벌어진 어쩌면 사소한 문제를 두고 우리는 온국민이 공분하여 문제를 더 키우고 말았던 것이다. 문정인 교수는 ‘조공체제’ 조차도 실제로는 한국과 일본, 베트남 등에서 아주 부분적으로 행해진 것일 뿐 과거 중국과 주변국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라고 말한다. 라이샤워의 과장된 해석이라는 것이다. 좀더 차분한 눈으로 중국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네 번째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중국 지식인들의 패러다임이 공산당 및 중국정부의 공식적 시각과 달리 매우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공산당의 지배적 이념 혹은 공식적 견해외에도 중국 지식인들은 서구의 그것에 가까운 자유주의, 제국주의적 인식에 가까운 패권론, 중도적 시각, 때로는 국제관계에 대한 이상주의적 접근까지도 존재한다. 하나의 이념, 하나의 시각이 존재하는 곳은 아니라는 얘기다. 특정한 하나의 시각을 가지고 중국 전체를 말할 수 없으며, 공식적 이념이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사회도 아니라는 얘기다. 어쩌면 중국 지식인 사회는 패러다임의 백화제방이 이뤄지고 있다는 게 보다 사실에 가까운 얘기일 것이다. 이 대담집을 읽으며 놀랐던 것도 바로 이런 다양한 이념과 시각의 공존이었다.

여기 등장하는 많은 지식인들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학위를 한 사람들이다. 문 교수에 의하면 이들은 자신들의 자녀를 미국에 유학시키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미국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미국적 패도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미국식 표준에 대해서는 은근한 욕망을 보여주고 있는 셈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이 책에서 보여주는 많은 것들은 그들의 전통사상에서 이끌어낸 이론적 패러다임이다.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천하체제론’이나 국제관계를 패도와 왕도로 설명하는 방식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천하체제론에서 국제관계는 평등하며 패권적 지위에 존재하는 국가는 없다. 하늘 아래 모든 국가가 평등하게 공존할 수 있다는 ‘몽상적’ 인식이라 말할 수 있으나, 이상주의적 열정을 인정한다면 그런 세계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대담으로 엮인 책을 읽는 것은 좀 부담스럽다. 가령, 그것은 <창작과 비평>같은 계간지에서 특집으로 엮인 대담 혹은 좌담을 읽는 것과 다르다. 단행본 한권 분량 전체가 대담으로 이뤄져 있다면 하나의 일관된 주제가 발전적으로 전개되는 것과는 달리 주제가 분산되고 난삽하게 진행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대담집 가운데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갔니>(민음사) 였다. 이윤기, 최재천, 이문열, 도정일 등 문제적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기도 하고, 그 중에 입심 쎈 입담꾼들이 여럿이라서 흥미로웠을 것이다. 혹은 에커만이 괴테와 만나 대화를 나눴던 기록인 <괴테와의 대화>도 그중 재미있었다. 이 책에서 괴테의 ‘말씀’은 조화와 균형이라는 고전주의적 기율이 무엇인지를 아주 잘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책은 한권으로 주욱 읽어갈 게 아니라 그때그때의 참고서로 유용하리라는 생각이다. 한중관계, 북중관계, 중국의 대외전략 등 주제별로 참고삼아 읽는 것이 좋을 듯 하다는 생각이다. 가장 먼저 읽어야할 사람들은 누구일까? 두말할 나위 없이 MB 정부의 외교관리들이다. 중국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북중관계에 대한 중국의 인식은 어떤지 좀더 냉정하고 차분한 접근을 위해 이들은 이 책을 참고해야 한다. 그들의 머릿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미국중심의 세계인식을 교정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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