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생각 -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
안철수 지음, 제정임 엮음 / 김영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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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생각>을 먼저 읽은 동료가 “이 책은 평소 신문 칼럼을 열심히 읽은 사람 수준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안철수가 특별한 내공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 언론에서 보편적으로 지적해왔던 수준의 아젠다를 제시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물론, 그가 말하는 언론은 조중동이 아니라 한겨레나 경향과 같은 진보성향의 신문을 뜻하는 것이었다. 동료의 말은 다소간 안철수의 내공이 실망스럽다는 것이었으나, 나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사회의 개혁과제에 대해 특별한 비방을 가지고 있는 자가 있다면, 나는 오히려 그런 사람이 의심스럽다. 오로지 자신만이 경제를 살릴 수 있고, 복지체제를 앞당길 수 있으며, 자신은 그 방법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건대, 100% 사기꾼이다.

 

2011년 무르팍 도사 출연과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거치면서 안철수가 부상했을 때, 나는 그것을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흔히 나타나는 ‘제3의 인물’에 대한 지향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에 박찬종과 이인제, 그리고 정몽준에게 몰렸던 정치적 지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나라당(새누리당)과 민주당으로 양분되어 있는 정치지형상, 두 개의 거대정당을 거부하는 부동층은 얼마간 존재하게 마련이고 그 균열을 깨는 ‘신선함’이 갖춰지면 언제든지 제3의 인물이 등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현상이 반복되는 것은 정당정치의 건전한 발전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일종의 메시아주의와 정치혐오증이 결합된 부정적 양상이라고 생각했다.

 

안철수라는 인물의 ‘권력의지’에 대해서도 다른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같이 회의적이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간지’를 말한 바 있다. 이런 정치에 대한 현실주의적 태도는 온갖 음모론과 이합집산이 난무하는 한국정치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그래서 김대중은 정치인이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더 나아가 유시민은 “정치는 야수의 탐욕과 싸우기 위해 짐승의 비천함을 겪으면서 성인의 고귀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예리하게 지적한 바 있다. 유시민의 진단처럼 나 역시 안철수가 ‘짐승의 비천함’을 견뎌낼 수 있을지, 아니 견뎌낼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박근혜가 후보로 선출되고, 민주당의 문재인이 경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도 안철수의 향배는 오리무중이다. ‘안철수 현상’이 일년 이상 지속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한 개인의 고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일은 정상은 아니다. 이쯤 되고 보면, 이 현상의 근원에는 야당인 민주당의 한심한 정치력과 취약한 역량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란 다수 대중의 열망을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것일 텐데, 현재의 민주당은 그럴만한 그릇도 역량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 현상은 정당정치, 특히 야당의 정치적 실패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의 반증인 셈이다. 평소 최장집 교수의 정당정치론에 대해 옹호를 해왔는데, 요즘 한국의 정당체제에 대해 회의를 넘어 환멸이 느껴진다. 정당내부의 민주화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 리더십이 아닌가 한다.

 

<안철수의 생각>을 내 식대로 요약하자면, ‘강남좌파의 진보주의’쯤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강남좌파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쓴 것이 아니다. 강남은 안철수가 속한 계급적 위치를 중립적으로 지칭하는 것이고, 좌파는 그의 입장이 한국사회에서는 좌파적 성향으로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부유층의 정치적 위선이라는 강준만식의 규정은 아니다. 진보주의라는 규정은 안철수가 이 책에서 피력하고 있는 많은 아젠다가 그동안 진보성향의 언론과 지식인, 정치인들이 줄곧 반복해왔던 주장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안철수는 이 책에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진보진영에서 암묵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최저선의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평화, 정의, 복지라는 세가지 키워드는 굳이 안철수가 아니더라도, 김대중의 햇볕정책, 경제민주화, 복지국가라는 종래의 진보적 아젠다를 압축한 버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동료가 신문사 칼럼의 주장을 정리한 것이라는 주장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안철수를 ‘상식적 사고’를 하는 인물로 평가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산 것은 책이 출간된 지 열흘 정도 지난 뒤였는데도 19쇄판이다. 그만큼 많이 팔리고 있다는 얘기인데, 이 점에서 이 책과 안철수가 한국사회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진보적 상식을 문재인이거나 민주당 정치인이 펴냈다면 ‘종북주의자의 편견어린 주장’이라는 마타도어가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종북시비와는 전혀 무관한 안철수의 입으로 남북화해,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말한다는 것은 적어도 중립적 성향의 사람들에게 상당한 계몽적 효과를 갖는다고 본다. 한겨레나 경향이 오랫동안 주장해왔던 것보다 안철수의 책 하나가 더 큰 정치적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아젠다의 확장에 있어 ‘말하는 자’의 위치와 신뢰자본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가. 적어도 이제는 보편적 복지를 말하고, 남북간의 교류를 말하고, 재벌의 폐해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좌파’들만의 전유물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안철수는 이 책에서 복지, 재벌개혁, 남북관계, 고용과 성장, 교육개혁, 한미FTA, 강정마을과 용산참사, 여성과 장애인 등 거의 모든 우리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런데, 복지문제나 고용문제, 교육 문제 등에서 안철수의 답변은 너무나 교과서적이다. 반면, 재벌 문제나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남다른 식견을 보여주기도 한다. 말하자면, 어떤 것은 벼락치기 공부로 답변하고 있는 반면, 어떤 것은 경험적 터득을 통해 체감된 지식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얘기다. 지식은 자신의 사유와 경험을 경유하여 비로소 통찰과 안목, 숨길 수 없는 내공으로 드러난다. 그가 여러 아젠다에서 보여주는 식견의 깊고 얕음은 어느날 갑자기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한 저간의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원론과 원칙’만을 이야기하는 박근혜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암기’가 잘 되어 있다.

 

강남좌파와 진보주의에 하나의 키워드를 덧붙이자면, ‘현실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가령, 강정마을 해군기지에 대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등 서로 다른 4개의 정부가 같은 결론을 내렸으면 그것이 옳다라고 주장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강정마을에 가 있는 시민단체나 반대주민들로서는 맥 빠지는 주장일 수 있으나, 안철수식의 ‘현실주의’의 시각에서 보자면 정치적/사회적 합의를 거친 것이며 따라서 해군기지 건설이 마땅한 것이다. 안철수의 생각으로는 “주민을 소외시킨 채 건설을 강행한 것이 문제”일 뿐인 것이다. 원전의 안전성 문제에 대해 “기술이 앞서더라도 제도나 문화적 요인 때문에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거나, “고용없는 성장은 자본에도 독이 된다”고 말하거나 광우병 촛불집회가 “이명박 정부의 과정관리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할 때, 그의 현실주의는 또렷이 드러난다.

 

현실주의가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그의 현실주의를 구성하는 것은 김대중이나 노무현처럼 정치인으로서의 경험과 학습을 통해 연마된 것이 아니라, 기업 경영과 경영대학원 수업을 통해 얻어진 것일 터이다. 오히려 바로 그런 점이 우려스러운 바인데, 이 책에서 안철수가 인용하는 인물들은 주로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에릭 슈미트, 손정의 등과 같은 기업 경영자들이다. 그가 스스로 많은 독서를 했다고 하지만, 이 책에서 거명하고 있는 사람들은 경영학 내지는 교보문고의 분류로 ‘경영/실용’에 해당하는, 매우 좁은 영역에 한정된 사람들이다. 안철수의 독서편력은 그 정도 범위에 한정된 것이고, 정치인 안철수에게 있어야할 철학의 자리에는 상식이, 정치학 대신 경영학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 상식이 ‘보수우파의 몰상식’을 대신하고, 그 경영학이 ‘배제와 독점의 우파 정치학’을 대신한 것까지는 좋은데, 거기에서 멈추어 있다면 그것은 사실 실망스럽다. 하여간, 지금의 상황에서는 보수우파의 박근혜와 맞서 야당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문재인과 안철수의 단일화, 그것도 감동적인 단일화 하나 밖에 없을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한국사회의 정치공학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 그 순정한 진정성의 정치학이 역사적 퇴행을 막아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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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2-09-21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는 현실정치적인 부분에서 비정치인이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정치계에 입문하는 것, 그리고 성공여부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입니다. 안철수님도 장고끝에 출사표를 던졌고, 무엇인가 복안이 있겠지만, 현실정치와 정치비판은 좀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일단 정치판에 들어가면 본인의 주변인물들이 본인의 뜻대로만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의도와는 다른 결과나 모습이 나올 수도 있고해서, 개인적으로는 문재인으로 단일화되었으면 하네요. 안철수님이 그렇다고 단일화쇼를 위해 출사표를 던지지는 않았을 것이니까, 현실은 좀더 예측불허이긴 합니다만.

모든사이 2012-09-27 14:12   좋아요 0 | URL
저도 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