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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의 당신 ㅣ 민음의 시 172
김요일 지음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김요일의 시집 <애초의 당신>(민음사)를 읽다. 책 앞 날개에 소줏잔을 들이키는 시인의 사진이 실려 있는데, 술을 좋아하는 사람인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시집 전체에서도 주정류(酒精類)의 향기가 독하게 뿜어져 나온다. 술을 마시며 사랑을 하고, 사랑에 실패하고, 혁명을 꿈꾸었던, 한때 모두가 혁명가였던 시절을 회고한다. 다행히 그의 회고취미는 누추하지 않은 것이어서 간결하고 압축적인 시어들은 그가 취기의 와중에도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가 즐겨 마시는 ‘독주’처럼, 몇 개의 시들은 가슴을 후벼 파더니 결국 저녁 술자리를 불러내어 “세속적으로, 세속적으로/빠르게 독주를 들이”켜게 만들었다. (이 점, 이 자의 시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전염력이리라.) 이 사람, 참으로 청승맞고 멜랑꼴리한 ‘술자리 낭만주의자’다.
그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카치올리’라는 집시들의 마을에서 가서도 술을 마신다. 그는 카치올리에 있는 “급진고물소(急進古物所)”의 “음표 가공수리사”인데(카치올리의 음악가), 사람들은 그가 닦고 수리한 ‘음표’를 가지고 음악을 만든다. ‘시인을 위한 카덴차’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시는, 자신의, 그리고 시인의 운명을 우화적으로 보여주는데, 그건 버려진 음표들을 닦고 만들어 거리에 뿌려 마을에 음악이 흘러넘치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낮에도 “한 잔의/태양”(낮술)인 술을 마시며, “출렁이는 선창에서는 독주 한잔에도 취하는 법”(밀항)이니, “그늘 한 점 없는 마른 나무 밑동에 기대어/그도 한 잔, 나도 한 잔”하면서 “안주는 필요치 않”(순례의 노래)으니, 어김없이 그 옆에는 “밀주든 독주든 그윽이 잔을 치던 여자”(인어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리라. 말하자면, 그는 술마시고 음악에 빠진 음유(飮遊) 시인이다.
그러니까, 그의 시가 내 눈을 끌게 된 것은 ‘우드스탁을 떠나며’라는 시 때문이다. “고백컨대, 신촌의 절반은 내것이었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는 대학로, 강남, 신촌에 퍼져 있는 몇군데의 우드스탁 중에 유독 ‘신촌의 우드스탁’을 불러내고 있다. 딱딱한 나무 의자와 잔 없이 병째 들이키는 맥주, 술집 바깥에까지 시끄럽게 울려퍼지던 음악소리, 옆 자리의 사람에게도 고함을 쳐야 대화가 가능한 그곳, 90년대 초반 신촌의 우드스탁을 떠오르게 했다. 그 때 저쪽 구석에서 뻑뻑 담배를 피며 헤드뱅잉을 하던 자가 바로 이 사람이었던가. 그때, 에릭 사티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던가, 낙서로 가득한 벽면에 걸린 그림은 에곤 쉴레의 그것이었던가. 나야 우드스탁의 그 ‘자폐적이고 매니어스러운’ 분위기가 싫어 길 건너 ‘놀이하는 사람들’에서 술벗들과 ‘anarchy in the UK'를 듣거나, ‘studio 70's’의 70년대적 낭만주의를 더 좋아했지만. 그도 아니라면, ‘케자르’에서 10여년째 철학과 박사과정을 다니며 비트겐슈타인을 공부하던 한 늙은 철학도를 술벗삼아 김추자 노래를 들으며 1천원짜리 치즈안주로 맥주를 마시거나.
철없던 계절의 뒷골목아, 안녕
뒤돌아보지 않으마
(3번테이블,볼셰비키앉아맥주를마신다)
안녕, 쓸쓸히 머리 푼 가로수야 마른 잎들아
나는 너를 떠난다
색 바랜 청동의 영웅도, 자욱한 최루탄 연기 같은 추억도
이젠 게워내련다 돌아보지 않으련다
(늦게떠나는바캉스처럼기대도낭만도담지않고이것저것아무거나배낭에구겨넣고서간다)
(에릭사티도,에곤쉴레도이젠없다이곳엔)
푸른 피 가득한 거리를 지나
냄새나는 추억을 밟고
폭설이 퍼붓기 전에 처마의 고드름 심장에 처박히기 전에
간다, 황급히 도망가련다
(깊게패인옷을입은클라라의하얀가슴위엔반달이뜬다)
(숨이막힌다흩날리는꽃잎꽃잎꽃이파리들...)
세월이 조롱할지라도, 이제 난 꿈을 꾸련다
(지미핸드릭스의기타가부서진다)
(거리엔보르헤르트,비틀대며걷는다)
누르고 참았던 슬픈 기억처럼
울컥,
태양이 솟는다, 찬란한 비애여!
건배!
- ‘우드스탁을 떠나며’ , 고백컨대, 신촌의 절반은 내 것이었다
여기엔 볼세비키와 에곤 쉴레와 볼프강 보르헤르트, 그리고 지미 핸드릭스가 공존한다. 색바랜 청동의 영웅인 레닌의 동상, 최루탄 연기와 같은 그의 옛 시절은 “냄새나는 추억”인 모양이다. 그것들이 모여 옹송대는 거리를 그는 떠나려 한다. 하지만, 울컥, 찬란한 비애가 솟는다. 이 격정적인 회상과 돌연한 결별은, 신촌에서 사랑을 하고, 사랑에 실패하고, 술을 마시고 취해본 사람만이 온전히 알 수 있으리라. 그래서, 그는 어디로 떠났는가. 별로 갈 데도 없는 모양이다. 그가 건너간 곳은 신촌 우드스탁에서 겨우 1킬로미터 이내에 있는 신촌 현대백화점 부근의 족발집이었으니, 그 이름은 ‘은경이네’다. 하기야, 술과 추억에 취한 자가 몇 걸음이나 갔겠는가.
별빛을 따라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었다.
예수를 만나지 못한 바빌론 강가의 네 번째 동방박사처럼,
사내는 오지 않을 누군가의 잔에 술을 따른다
그녀는 졸고 있다
잠쫓던 그녀의 눈처럼 반쯤 열린
문밖으로
신촌의 밤이 지나가고, 쉰내 나는, 뒷골목의 계절이 지나가고
쓸쓸한 옆 얼굴들이 지나간다
그는 어디 있을까?
종국의 생에 자리잡은 듯 사내는
말라 가는 안주처럼
무료한 눈빛으로 앉아 다른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봄이 되어도 부활하지 않는 꽃들에 대한 낡은 소문을 듣는다
전생도 영원도 확신할 순 없지만
취한다는 건 종국의 생을 선명히 떠올리는 일
사내는 세속적으로, 세속적으로
빠르게 독주를 들이켠다.
제 갈 길을 분명히 알고 떠나는 별들처럼
그도, 꽃들도 제 안식처로 유성처럼 홀연히 흘러들어 갔겠지
늙은 암탉처럼 꾸벅 꾸우벅 졸던 그녀가
푸드덕,
홰를 치며 잠에서 깨어난다
- 은경이네
지금은 소설가가 된 한강이 등단작으로 쓴 시가 ‘신촌’에 대한 시였던가. 그녀가 “기어이 떠나리라”던 신촌, 그 “쉰내 나는” 후미진 뒷골목의 족발집에 앉아 시인은 ‘종국의 생’을 생각한다. 종국의 생은, 죽음이 아닐 것인가. 바타이유가 “에로스는 죽음에 이르는 삶의 희열”이라고 말했듯이, 취하여 이르는 “명정(酩酊)”의 순간은 죽음 직전의, 생이 도달한 마지막 고비가 아닐 것인가. 거기가 시인이 가고자 하는 카치올리이자, 체게바라와 ‘아바나의 피아니스트’가 있는 곳이다. 취한 시인의 청승이자 멜랑꼴리요, ‘환멸의 낭만주의’다. 신촌의 술집 ‘섬’도 사라지고 없는 시대, 김요일이 지난 연대의 신촌에 대한 먹먹한 그리움을 불러냈던 것이다. (그런데, 시에 대한 감각만큼 미각은 발달하지 못한 모양인데, ‘은경이네’의 족발은 찰지지 못해 푸석푸석한 것이어서 그닥 단골로 삼을 만한 곳이 못된다. 아무려나, 족발 먹으러 간 게 아니라 세속적으로 독주를 들이키기 위해 갔으니, 미각을 탓해 무엇하랴.) 이 시집에 실린 시는 ‘사랑’, ‘뿐’ 두 개의 시의 다음 구절로 기억하고 싶다.
버릴 수 없다면 아무것도 낳을 수 없는 법
붉은 비에 젖어 떨고 있는
당신을, 버린 나는
당신을, 가진 나는
밥짓는 냄새에도
울컥,
입덧을 한다.
- 사랑
그래
그냥 어떤 사소한 사건이라고 못 박아 두자
꽃그늘 하나 드리우지 못하는 가여운 나무의,
그 깡마른 그림자의,
말라 가는 비애쯤이라 해두자
(........)
그냥
쓸쓸한 별의 벼랑 끝에서 잠시
아찔, 했을 뿐
황홀, 했을 뿐
뿐,
-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