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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운명 (반양장)
문재인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문재인의 운명>을 오후부터 읽기 시작해 새벽 두시에 마지막 장을 덮었다. 그만큼 흡인력이 있었다. 그가 다루고 있는 시기가 거의 동시대라 할 수 있는 근접과거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가 바라보는 한국사회에 대한 시각에 대부분 동의했고,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참여정부는 실패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성공한 정부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문재인이 이 책에서 줄곧 강조하듯이 ‘역량’의 부족이었다. 그의 과거사와 노무현과의 인연은 가슴이 아프기도 했고,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다. 그는 아마도 외모에서 풍기는 면모와 속에 품고 있는 마음결이 똑같은 보기 드문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의 이름 석 자를 알게 된 것은 이른바 <한국사회의 이해> 사건에서였다. 진주 경상대의 진보적인 교수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같은 제목의 교양서가 국보법 위반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혐의로 기소되었던 사건이다. 민노당 정책위원장을 했던 경제학과 장상환, 한때 서울대 폐지론을 말했던 사회학과 정진상, 그리고 여전히 완강한 ‘강단 트로츠키주의자’로 살아가는 정성진 등이 집필한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의 산실이 된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소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마르크스주의연구>라는 무시무시한(?) 정기간행물을 내고 있다.) 신문에는 그 사건의 변호인이 문재인이라고 나와 있었다. ‘인권변호사’하면 한승헌, 조영래, 홍성우, 이돈명 등을 떠올리게 마련이었는데, 부산에서도 이런 일로 변호에 나서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노무현이 유력한 대선주자로 떠오를 무렵, 가깝게 지내던 판사출신의 법조인은 노무현은 분수 모르고 날뛰는 ‘가짜’지만, 문재인은 ‘진짜 빨갱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명색이 판사로서 30여년 간을 일했던 그가 보여주는 대단히 ‘나이브한’ 인식에 대해 동의할 수 없었지만, 그냥 웃고 말았다. 70년대의 학생운동과 노동인권 변호사로서의 활동이 그가 말하는 ‘빨갱이’의 근거였는데, 법조인의 논리치고는 참으로 조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가짜/진짜 논리는 노무현에 대해서는 서울대도 나오지 않은 ‘상고출신’이기에 인정할 수 없지만, 문재인은 ‘비록’ 경희대 출신이지만 사법연수원 차석이라는 뛰어난 성적이 있기 때문에 인정할 수 있다는 식이었다. 아마도 서울대를 나온 법조엘리트들이 노무현과 문재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로 그러했을 것이다.
몇 해 전 참여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여름에 추천하는 책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오영교 행자부 장관은 잭웰치의 자서전을 꼽았고, 곽결호 환경부 장관은 <꿈의 도시 꾸리찌바>를 꼽았고,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선물>(스펜서 존슨)를 꼽았다. 흥미로웠던 것은 박기영 과학기술보좌관이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꼽았다는 점, 그리고 문재인이 <책 한권 들고 파리를 가다>라는 책을 추천했다는 것이었다. 정부혁신을 맡고 있는 행자부 장관이 가차 없는 구조조정으로 ‘중성자탄 잭’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잭 웰치를 ‘사부’로 삼고 있다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환경부 장관이 꾸리찌바를 말하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가는 것이지만, 김근태가 ‘대중추수적으로’ 말랑말랑한 베스트셀러를 꼽는 것을 보고 다분히 정치인스러운 추천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 프랑스비평가는 글은 곧 사람이다, 라는 말을 했지만, 이 말은 책은 곧 사람이다, 라고 바꿔도 무방할 것이다. 박기영이 사라마구의 책을 선정한 것은 ‘정치인’이전에 ‘교양독서가’로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청와대를 비롯하여 한국의 관료사회에서 사라마구의 독자를 찾기는 아마도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은 중국인 부부가 쓴 파리 여행서를 추천한 것이다. 업무상 관련이 있는 책도 아니고, 그 책이 대단히 명성높은 책도 아니었던 것이다. 아마 문재인은 정말 그 책을 읽었던 것이고, 감동도 받았던 것이고, 언젠가 파리의 유적들을 돌며 프랑스 혁명의 흔적들을 찾고 싶은 소망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참여정부 초기 민정수석을 하다 사표를 낸 뒤 히말라야 트래킹을 갔던 것이다. 어느 날 홀연히 자신의 자리를 버리고 자유를 찾아 떠날 수 있는 내면을 가진 인간, 청와대 수석 가운데 그런 희귀한 내면을 가진 사람을 보았던 것이다. 이 책에는 그런 문재인의 성향이 물씬 묻어난다.
진정성(authenticity)이 그것을 형성하는 ‘주체’와 성찰적 ‘내면’, 그리고 그 내면의 주체가 투신하게 될 ‘공적 지평’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갖는다는 김홍중의 지적(<마음의 사회학>)을 따르자면, 문재인의 얼굴은 희귀하게 그런 진정성의 표정을 갖고 있다. 이 책에서 느끼게 되는 그의 면모는 그 어떤 것으로 환원되지 않은 개인이면서 특정한 시기의 주요한 정치적 행위자였으며, 자신의 사고와 행위를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진보적 개혁과 일치시키려 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문재인은 자신의 내면과 거기서 말미암은 공공적 실천행위가 행복하게 일치하는 보기 드문 존재다.
그와 노무현을 어디에 비유할 수 있을까. 마르크스와 엥겔스? 박정희와 김종필? 전두환과 장세동? 김대중과 박지원?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지적, 물질적 후원자라는 점에서는 노-문 둘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박정희와 김종필은 5·16 쿠데타에 함께 뜻을 모았다는 의미의 ‘동지’라는 점만 빼고는 하나도 닮지 않았다. 전과 장에 비유했다가는 아마 돌에 맞을 것 같다. 김대중과 박지원은 주군과 가신으로 얽힌 엄격한 상하관계였다는 점에서 역시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노무현과 문재인은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했던 ‘동업자’였으며,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 운동의 ‘동지’였으며, 대통령과 수석, 비서실장으로 얽힌 ‘정치적 동반자’였다. 노무현과 문재인의 길고 오랜 정치적 동반의 과정은 그들이 사적 이해관계로 얽힌 존재들이 아니라, ‘가치의 공동체’였음을 보여준다.
노무현은 판사임용을 거부당한 그를 동업자로 끌어들이면서 관계를 맺었지만, 시국사범과 노동자에 대한 인권 변호를 통해 ‘가치동맹’으로 발전했으며, 참여정부의 탄생과 몰락이라는 또다른 운명까지도 함께 했다.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인 그가 지키려 하는 것은 아마도 그 오랜 세월동안 공동으로 일구었던 ‘노무현의 가치’(그것은 또한 문재인의 가치이기도 하다)일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구절,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은 이 가치의 공동체가 이룬 최고의 연대감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언론에서는 이런 ‘문재인의 운명’을 두고 정치인으로 나설 것이라 섣불리(혹은 고의적인 부추김으로) 전망하지만, 아무래도 그는 정치인의 유전자를 타고나지 않은 것 같다.
문재인은 “진보 개혁 진영이 요구하는 수준의 ‘개혁’과 ‘복지국가’를 정권의 힘만으로 해낼 수 있는가. 지금 우리 사회의 정치적 지형 속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참여정부가 증명한 것, 참여정부가 남긴 교훈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진보개혁 진영의 역량에 대한 지극히 현실적인 진단이면서, 동시에 어느 정당이든 곱씹어 봐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에만 당선되면 모든 것을 할 수가 있다거나 대통령만 사라지면 모든 악이 제거될 것이라는 생각은 일종의 메시아주의다. 우리사회의 진보는 한 국가를 책임지고 운영하기에는 정치적 능력도, 사회문화적 역량도 턱없이 부족하다. 보수는 달리 거론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참담한 수준이다. 이 책의 출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중수부장의 “오만한 태도”는 논외로 하고, 문재인이 제기한 이런 문제나 차분히 성찰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