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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 전설적 포토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파의 2차대전 종군기
로버트 카파 지음, 우태정 옮김 / 필맥 / 2006년 5월
평점 :
올해 7월에 이 책을 선물로 받았을 때 이미 상황은 끝으로 치닫고 있었다. 카메라 셔터의 경쾌한 촉감도, 현상된 사진을 받아보는 그 설레임도 느껴본 지가 이미 오래 전이라, 이 책을 읽는 순간 내 생활에서 없어진 그 모든 것이 원치 않았던 이 상황 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들까 스스로 두려웠다. 살면서 지독스럽게 욕심부리는 것이 책이고, 그것도 '카파'의 책인데...
매그넘을 알게 된 건 몇 년전의 일이다. 한국에서 열린 전시회에도 몇 차례 둘러보았고, 매그넘 홈페이지에서 사진 한 장 내려받았다고 영어로 된 메일이 와서 깜짝 놀란 적도 있었다. 돈 내라는 건 줄 알고 정말 놀랬었다. 매그넘은 1947년에 이 책의 저자인 Robert Capa와 Henri Cartier Bresson, David Seymour가 창립한 보도사진 에이젼시이다. 이 책의 옮긴이의 말대로 잡지사의 청탁으로 잡지사의 요구에 맞는 사진을 찍어내기 보다, 사진사가 창의적으로 찍은 사진을 모아두고 잡지사가 사가도록 만듦으로써 보도사진의 유통체계를 바꾼 일종의 독립작가집단이라 보는게 좋을 것 같다. 흔히 자본과 검열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독립영화와 같은 체계랄까. 카파와 매그넘은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이 책을 다 읽고난 나는 서재에 굵직하게 버티고 있는 매그넘 사진집 "In Our Times : The World As Seen by Magnum Photographers"를 꺼내, 카파가 찍은 그 유명했던 사진들을 다시 뒤적이고 있었다. 한장..한장.. 만일 카파의 이 책을 읽지 않고서 매그넘 사진집에 실린 카파의 사진들을 이해하는 것은 화랑의 걸린 그림을 앞에두고 화가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만큼 말도 안되는 짓이었을 것이다. 전쟁보도사진이라면 누구나 보아도 전쟁의 참혹함을 느끼게끔 하는 수 많은 장면들이 있을터이나 나는 카파의 이 책에서 전혀 그렇지않으나 가슴이 저리는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D-Day)에 참가해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찍어온 흔들린 사진도 아니고, 병사의 처참한 죽음에 대한 사진도 아니다. 마치 퍼레이드하듯 수많은 군중이 함께 걷고있는 장면 가운데쯤 아이를 안은체 시선을 내려깔고 걷고 있는 삭발한 한 여인과 그 여인의 짐으로 보이는 보따리를 들고가는 표정없는 한 남자, 많은 군중이 함께 걸으며 곁눈질하고, 웃고있다. 그리고 저 뒤쪽편으로 건물에 프랑스 삼색기가 무심히 펄럭이고...연합군의 진격으로 해방된 사르트르 마을에서의 풍경이다. 이 당시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프랑스 도시에서는 독일군에 부역하거나 협조한 여성은 전부 삭발케 했다고 한다. 아마 이 여인은 그 마을에서 쫒겨나가는 중일터이다. 한참을 이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그리고 가슴이 저렸다.
이 책을 읽는 묘미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이 책은 사진과 세상과 더불어 그 안에 있는 사람에 대한 책이기 때문이다.
만약 아들이 종군기자와 군인의 차이를 물어본다면 "종군기자는 군인보다 술도 더 마시고, 여자도 더 많고, 월급도 더 받고, 자유도 더 누리는 사람들이었다. 더구나 이번 게임에서 그들은 자기 입장을 자기 의사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만약 도망치기로 결정했다 해서 그로 인해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심한 고민에 휩싸였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기의 판돈, 즉 목숨을 자기 마음대로 걸 수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을 골라서 걸 수 있었고, 또 막판에 돈을 자기 호주머니에 도로 집어넣어도 되는 사람들이었지.(180p)"라고 말하겠다고 했다. 그가 탁월한 종군기자인 것은 그 판돈을 위험한 전쟁마다 걸었을 뿐 아니라, 그 속에서 사람들의 표정과 생각조차도 담아내는 사진을 찍어냈기 때문이다. 카파는 탁월하고도 철저한 종군기자였다.
독일군이 물러간 해방된 프랑스에서 카파는 스페인 내전시절의 취재를 추억한다. "장애물 뒤의 병사, 전진하는 탱크, 환호하는 사람들의 무리..." 이미 어디에선가 찍었을법한 판박이 사진을 찍는 것은 더이상 그에게는 무의미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다. 다만 그 꿈으로 인해 그가 곁으로 돌아오기를 2년이나 기다린 여인은 작별키스와 함께 그만 떠나버린다. 책의 내내 전쟁의 긴장감과 함께 맴도는 것이 연인과의 긴장감이다.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묘미이다. 카파도 사람이지 않은가? 아마도 아쉬운 기억은 아픔에서 시간이 흘러 아름다움으로 변했을 것이다.
지난 7월 선물로 받은 책은 며칠 뒤 바로 돌려주었다. 그리고 얼마 뒤 관계도 끝이 났다.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의 사투 속에서 왜 사랑과 평화와 고향, 그리고 두고 온 낭만을 사람들이 떠올리는지 책을 읽는 내내 너무도 단순한 궁금증이 났다. 사랑과 낭만이 가슴에서 사라짐을 느낄 때 이 책을 들어보면 어떨지... 그리고 일상을 참으로 처절한 전쟁같이 살아보면 어떨지...하는 바보같은 단순한 생각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