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 자본주의 사용설명서 / CEO, 정조에게 경영을 묻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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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정조에게 경영을 묻다 - 분노와 콤플렉스를 리더십으로 승화시킨 정조
김용관 지음 / 오늘의책 / 2010년 3월
평점 :
정조는 영조의 세손이자, 즉 비운의 죽음을 맞았던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사도세자가 처음부터 자신의 아버지인 영조에게서 미움만 받았던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총명함과 영특함으로 영조에게서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세자이다.
그런 그가 정신질환을 앓게 되었고 급기야 아버지의 정치에 '걸림'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영조의 그릇된 조기교육과 지나치게 엄한 후계자 교육 때문이다.
(한편으론,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약제를 먹여 서서히 미치게 했다는 설도 있기는 하지만)
2살부터 [소학]을 가르치며 요즘의 극성스런 학부모들은 따라가지도 못할 정도로 영조의
자식에 대한 엄격하고 강압적인 조기교육을 보며, 자신이 어릴 때 배우지 못했던 것과
자신의 무능력과 멍청한 부분을 자식을 통해 보상 받으려는 잘못된 방식이 예나 지금이나
왕족이나 일반 국민이나 미련한 것은 똑같구나 싶어 씁쓸했다.
지금 한국은, 초등학생이 학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나라다.
자신의 형인 경종을 독살하고 왕위에 올랐다는 비난과 스트레스에서 오는 심리적인 부담을
자식에게서 풀려고 했던 영조는 급기야 뒤주 속에 아들을 가둬 죽이는 폐륜을 범했는데
그것이 요즘의 초등학생처럼 스스로 자살하게 만드는 부모들과 뭐가 다를까 싶다.
어쨌거나 고작 11살짜리였던 정조는 아버지의 부당하고 잔인한 죽음을 겪고 난 후, 영조의
뒤를 이어 조선의 임금이 되기까지 부지런한 공부와 책 속에서 얻은 교훈을 통해 성품이 곧은
성군의 길로 가기 위해 노력하며 나이보다 조숙해지게 된다.
그는 영조의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사도세자의 묘 앞에서 울면서도, 이 부당한 죽음을 기록한,
"나는 눈물이 나서 볼 수 없으니 [승정원일기]를 모두 세초하라" (세초 : 지우는 작업)
라고 말해 자신의 분노를 삭히며 목숨을 유지하는 처세술을 부릴줄도 알았으며,
나중에 왕위 취임식에서 가장 먼저 한 말이,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이었을 정도로 '죄인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정치력을 펼줄 알았던 군주였다.
정조는 세종대왕의 '애민정책'을 선봉하고 공자의 '논어'와 '주자학'의 교훈과 가르침을 늘 실천하려 했다.
무를 천시하고 문벌 위주, 그리고 수도권 권세가문 위주로 대학생들을 뽑고 신분에 따른 차별을 했던 당시
사회에 반기를 들며 전국 각지의 인재 등용에 힘을 기울였다.
또한 일반 백성들이나 소상공인들을 불러다 함께 대화를 하며 나라의 실질적인 어려움을 해소하려고 노력
했다. 요즘의 대통령들도 잘 안 하는 '국민과의 대화'를 하늘같은 임금께서 친히 하셨다는 말이다.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의 부동산 투기가 심해지거나 부당한 세금 징수로 백성들이 괴로워하자 직접 나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왕이다. 정조는 언제나 백성들의 편이 되고자 했다.
내가 이 책의 제목에서 처음 느꼈던 것은 나와 같은 경영가가 비즈니스 세계에서 발휘하게 될 자문을
구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왕이었던 정조를 마치 CEO로, 나라였던 조선을 하나의 기업처럼 빗대어
올바른 경영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짤막한 역사책을 보는 것 같
았고, CEO가 아닌 대통령을 위한 우회적인 '나라 경영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일침하는 교육 지침서라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현재 대통령의 전직은 CEO였다.
즉, [CEO, 정조에게 경영을 묻다]라는 제목은 사실 [정조, CEO였던 대통령에게 나라경영을 가르치다]
로 해석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이 책의 내용은 일반 기업을 운영하는 비즈니스 경영가보다는
나라를 꾸리는 대통령이 보고 배워야 할 것들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권이라는 말을 가장 먼저 표현한 왕이 정조이다.
1804년 유럽에서 최초로 인권 법률안이 만들어진 '나폴레옹 법전'보다 훨씬 앞선 1778년에 '흠휼천칙'에
인권법이 기재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성 밖 거리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유골들을 위한 무덤도 만들었다)
게다가 그는 '노예해방'을 외쳤던 미국의 링컨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관노비 모두를 자유롭게 하고, 수원을
중심으로 상업과 농업 등 경제가 활발한 나라를 만들려고 했던 개혁군주였으며, 서민들이 평등과 자유를
외치며 왕과 왕비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들었던 '프랑스 혁명'과는 달리 조선은 왕이 직접 신분의
평등을 외치던, 감탄할 정도로 시대를 앞서갔던 최고의 지도자였다.
때로는 강경할 정도로 개혁을 주도했던 그이지만 늘 백성들에게는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였었다.
자신의 뜻한 바를 이루겠다고 국민을 향해 물대포를 쏴서 어린 여학생의 눈을 실명하게까지 만든 누구와는
정말 천지차이 아닌가. 칼이나 총이 아닌 촛불 들고 평화시위하는 것이 두려워 그 극성을 떨었던 그 누구와!
너무나 비교되지 않는가 말이다! 정조는 자신의 뜻한 바를 이루겠다고 백성의 피와 살을 뜯지는 않았다.
물론 그도 흠이 없지는 않았다.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배다른 형제인 '이인'을 위해 공사를 구분짓는 냉정함
보다는 자신의 애틋한 감정을 먼저 우선시해 임금의 체면에 어긋나는 행동도 하긴 했었지만, 권력의 횡포에
왕손들이나 왕족들이 피바람 속에서 대를 잇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하던 것이 어디 하루,이틀 이었나 싶은
생각을 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대에 그걸 적용하면 곤란한 일이다.
암살이 난무하던 시대에 혈육을 지키려던 것과 자식을 병역으로부터 빼돌리는 현대 정치인들과는 다른 것.
그리고 정조는 조정의 중요한 관직에 인재를 앉히는데 있어 지나칠 정도로 여기 저기 돌리는 등의 인사권을
남발한 것이 흠이긴 하지만, 그것도 '큰 인물'을 키우기 위한 엄격한 교육의 하나라고 하니 그저 깊은 뜻이
이면에 자리하고 있어서라고 이해할 수 밖에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 아닌가. 나부터도 그렇게 한다.
간부로, 임원으로 크게 키울 생각이 있는 직원은 일부러 여러 부서에서 경험을 쌓게 만들며 고생을 시킨다.
'아끼는 자식일수록 엄하게 키운다'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통하는 법이다.
철 없는 현재 대통령이 이 책에서, 정조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비단 개혁과 경제성장만이 아니다.
그의 올곧은 성품과 백성의 배고픔과 안전, 삶의 질적 향상을 최우선했던 '애민정책'이 깊은 뿌리로 내려진
현명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적을 처단하기 보다는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나의 편'으로 만드
려는 인내심과 끈기, 사사로운 이해관계나 적대감을 버리고 마음으로 표용할 줄 알았던 그의 바다와 같은
성군다운 기질을 배워야 한다. 백성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 존중할 줄 알았던 열린 마음을 얻어야 한다.
자기계발서나 일반 비즈니스 경영서 보다는 정조라는 뛰어났던 임금의 나라경영을 요약해놓은 듯한 역사책
같은 이 책은 민심을 잃어버리고 어느 길이 올바른 길인지 갈피를 못 찾는 현 대통령을 위해 집필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 많은 경영가들이여! 제목에서 낚이지 말라!
이것은 단 한 명만을 위한 책이다.
본인이 그것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