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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ㅣ 클래식 레터북 Classic Letter Book 4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황성식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2년 3월
평점 :
1998년 5월의 어느 날 밤, 자전거를 타고 N을 데리러 방송국에 갔었다.
뒷자석에 앉은 N은 내게 한 마디 내뱉었었다.
"M.H가 죽었대. 자기 집에서. 5월 2일날."
"그래?"
하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밟고 있는 폐달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유난히 고요했던 도로에는 그 죽음을 추모라도 하듯 노란 불빛을 은은하게 빛내던 가로등들이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았다.
M.H가 어느 해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보냈었다.
나름대로 멋지게 준비했었을 그 파티장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이브날에는 각자의 약속으로 바쁘다는 것을 잊어버린 그의 실수였다.
"다시는 파티를 열지 않을 거야."
꽤나 충격적이었던 듯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러나 그의 장례식에는 5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흰 국화 한 송이를 들고 찾아왔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의 나이 아직 30대 중반이었을 때 일이다.
그리고 사후 3년이나 되어서야 나는 그가 남긴 예술과 사랑에 빠졌었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자살'이냐 '타살'이냐 혹은 '사고사'냐 등등
온갖 루머가 나돌았다. 나는 자살이었을 확률에 70%를 걸고 있다. 그 때나 지금에나.
도대체 '개츠비'가 누구길래? 왜 그렇게 유명한가? 피츠제럴드에게는 미안하지만 소설의
초반부에서는 읽는 내내 '도대체 왜 이 정도(수준)의 책이 높게 평가 되어지는가' 하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흔하고 흔해빠진 1920년대의 부유층 젊은 사람들의 그렇고 그런 이야기
아닌가. 단순히 '개츠비'가 젊은 나이에 엄청난 부를 가지고 멋지게 사는 것 만으로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118페이지에 도달하기까지 나는 계속 고개를 갸웃거려야만 했다.
게다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거기에 어린이 책에나 실을 법한 촌스런 삽화까지!
(그러나 나중에는 그 삽화들 보는 재미에 빠지고 말았다...)
119페이지부터 오기스런 궁금증이 생겼다. '개츠비가 왜 위대한지'에 대하여.
그리고 드디어, 152페이지에서 나는 더할나위 없는 재미를 느끼고 말았다.
355페이지, 마지막 페이지에 도착해서는 비로소 나는 맛있게 먹은 책을 내려놓고 숨을 쉴 수가 있었다.
'개츠비'는 매 토요일마다 성대한 파티를 연다.
초대받았든 그렇지 않든 매번 수 백명의 사람들이 그의 대저택에 와서는 칵테일을 마시며 춤을 추고
웃고 떠들며 놀다가 가곤 했다. 그 많은 사람들은 정작 집 주인인 '개츠비'의 얼굴조차 모르면서.
한 마디로 돈 지랄 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던 그의 화려한 파티가 단 몇 문장으로 '한 여자를 너무나
사랑해서' 라는 순수한 열애로 바뀌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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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난 6월의 그 밤, 개츠비가 갈망하듯 바라보고 있던 것은 단지 별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아무런 목적도 없는 화려함 속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한 인간으로 내게 다시 나타났다.
조던이 하던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그는 당신이 데이지를 집으로 초대한 날, 자신도 초대해줄 수 있는지 알고 싶어해요."
그의 소망이 너무나 소박한 것에 나는 감동하고 말았다. 그는 7년이나 기다린 끝에 대저택을 샀고,
그곳으로 모여드는 하루살이들에게 빛을 나누어 주었다. 정작 그 자신은 어느 날 오후 남의 집 정원으로
'초대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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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부러 사랑하는 그녀가 살고 있는 저택의 강 건너편에 대저택을 샀고, 매 토요일마다 파티를 열었다.
그 시대 부유층 사람들이 대게 그러듯 '사교계 문화의 하나'일 뿐인 파티에 참석하러 그녀가 올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러나 그녀는 한 번도 오지 않았고, 결국 조던 베이커라는 여성을 통해 바로 옆집에 살고 있던
('나'라는 소설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 닉 캐러웨이에게 저런 부탁을 하게 된 것이다.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7년이나 참고 기다릴 수 있다니!
그것도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버린 그녀를 계속해서 사랑할 수 있다니.
그는 그녀의 집으로부터 바로 지척에 살고 있음에도 스스로 다가서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 순수한 사랑에 빠져
있었다. 아니, 사실 자연스럽게 그녀와 다시 만날 수 있는 '거리'가 없었기에 그는 매번 파티를 열었던 걸지도.
친구가 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닉에게 도움을 청할 정도로 그는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결국 그는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자신의 집 수영장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지만, 명예롭지 못한 오명을 쓴
죽음은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쓸쓸한 장례식을 만들었다.
M.H와 달리 그는 늘 성공적으로 파티를 했으나 사랑하던 그녀마저 없는 초라한 장례식을 치뤘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외로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늘 모두에게 사랑받고 조명받기는 하지만 정작 본인은 해소되지 않는 지독한 외로움에 몸부림 치는 삶.
평론가들은 그가 가식과 허영, 신의도 돈으로 살 수 있는 시대에 순수한 이상을 품었다는 이유로 그에 '위대한'
이라는 미사어구를 쓰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 소설이 1920년대, 대공황 전의 '로스트 제너레이션' 사회상을
제대로 풍미했다는 것에는 공감을 하나, 과연 사랑과 이상에 빠져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는 것 만으로 '위대'라는
호칭을 붙여줄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물론, '위대한' 이라는 미사어구는 소설 속 화자인 '닉'이 처음으로 붙여준 말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순수한 사랑을 찾아보기 힘든 요즘에, 자신의 테라스에서 강 건너 사랑하는 그녀의 저택을 바라보는 개츠비의
뒷모습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영화 <스타더스트>에서, 지구에 떨어지면서 금발의 여인이 된 '별'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인간의 온갖 추한 모습을 보면 질려버리죠. 하지만 그들이 사랑할 때는, 오 세상에-
우주에서 그것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어요."
나는 과연, 내가 사랑했을 수도 있었던 사람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개츠비처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점점 흐려진다 해도,
순간의 환상처럼 지나갔던 그 소중한 감정들 하나 하나를 가슴에 별처럼 박아서 기억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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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오늘 오후엔 뭘 하죠?'
데이지가 외쳤다.
"그리고 내일은요? 앞으로 30년 동안은 뭘 할 거죠?"
"제발 별나게 굴지 좀 마세요."
조던이 말했다.
"가을이 오고 날씨도 선선해지면, 또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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