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오리지널 소설처럼 고풍스럽고 어딘가 정적이며 진지한 분위기 대신
너무나 가볍게만, 장난치는 듯이 보이는 2009년도판 '셜록 홈즈'는
도대체 믿음이 가질 않았다. 그래도 궁금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흑백 영화의 옛날 '셜록 홈즈' 영화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마침, 새로운 먹거리인 주문한 책이 생각보다 늦게 도착한다는
비보를 접하고 배고픔에 굶주려 있던 나에게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는
상태였으니까. 속는 셈 치고 조용한 새벽, 1시 50분 영화를 보러 갔다.
결과는 90% 만족이었다.
여러 번 웃었고(어째서 다른 사람들은 웃지 않았는지 유머센스가 나와
너무 다른 거 아닌가.-_-), 여러 번 기분 좋은 코웃음을 쳤으며(대체로
나는 공감이나 긍정의 표시를 하고자 할 때 코로 감탄사를 한다), 여러 번
왼쪽 검지 손가락을 치아 사이에 물고 집중하였다.
소설 속에서의 인물 묘사 및 행동력과 영화에서의 연출이 다른 것을 비교
하면서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그 변화를 시도한 것이 성공했으니
다행이지, 만일 형편 없었다면 '너무 멋진 오리지널을 망친 얼간이'라는
비난을 많은 셜록 홈즈 팬들로부터 받았을 수도 있다.
소설에서는 흔히들 알듯이, 홈즈는 깔끔한 외모와 옷차림에 문화 생활을
즐기는 고상함과 신사다운 언행을 하는 멋쟁이이며 대부분 혼자만의 사색
에서 단서와 실마리, 문제 해결 능력까지 보여주는 '안락의자형' 탐정이다.
게다가 주인공에 비해 외모나 다른 면에서 약간 부족한 것이 조연의 공식
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소설 속의 왓슨은 평범하고 조수 역할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포스터를 보고 '누가 홈즈야?' 하고 헷갈릴 정도로 왓슨은
상당히 매력적이며 활동적이고 의리가 강한데다 지팡이와 모자만 보더라도
영락없이 홈즈 분위기이다. 파이프를 물고 수염만 깎았으면 우겨도 되겠다.
그에 비해 정작 홈즈는 부시시한 머리에 지저분한 옷차림,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격투 실력과 실버스타 스텔론처럼 흐리멍텅한 눈동자로 좀 모자른 듯한 인상까지
준다. 셜록 홈즈 골수팬들은 아마도 이런 캐릭터에 경악하며 분노할지도.(웃음)
보아라, 조심스럽게 문을 따려는 모습은 침착하고 민첩하며 품위 있어 보이기보다는
숙련된 좀도둑처럼 소심하며 신중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엉성하다.
그에 비해 왓슨은 눈빛 하나까지도 지극히 홈즈스럽지 아니한가. -_-
그렇다고 해서, 영화 속의 홈즈가 실력마저 실망스러운 것은 아니다.
어딜 가나 한 번 보았던 사물이나 상황들을 때에 따라 적절히 기억 재생하여
단서나 실마리로 연결하는 탁월함이나 굉장히 빠른 두뇌 회전, 화학과 식물 등
여러 분야에 대한 박식함은 여전하다.
더욱 재밌는 것은, 영화 속의 홈즈는 매력적인 여성을 보고 쑥쓰러워 눈빛을
돌리거나 유일한 친구 왓슨이 '메리'라는 여성과 결혼하는 것을 유치스럽게
방해해서 계속 자신 곁에 남기를 바라는 어리광스러운 인간미가 보여 좋았다.
친구를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위험에 함께 뛰어들 정도의 남자다운 의리를 가진
왓슨, 그런 그에게 언제나 일상의 지루함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괴짜 탐정 홈즈.
여지껏 만화, 영화, 책을 통해 본 그 어떤 [셜록 홈즈]보다 가장 유쾌했던 작품이다.
이로써.. 또 하나.. 홈즈의 DVD가 하나 더 늘겠구만. -_-
홈즈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