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대학교 근처 상가에는 커다란 메모판이 설치된 곳이 있었어요.
보통 학교근처 사회과학 서점 앞이나 술집골목 초입에 있었지요.
그 판에는 포스트잇으로 
'역사연구회는 캠브리지에서 술먹고 있음' 
'인문6반 할매집'
같은 메모들이 붙어 있었지요.. 

술이 고플때면 요 판을 훑어보고,
대충 아는 사람 한둘 있음직한 곳에 쓱 삐대고 들어가면 됩니다. 
(사실 걍 메모판 안보고 단골 술집에 가 버티고 있으면 아는 인사들이 하나둘 해지기 전에 몰려들긴 합니다만..)
낯선 사람들과 술이 불콰해지고 노래도 부르고, 옆테이블에서 노래 잘한다고 막걸리도 한주전자씩 얻어먹고 말이죠 히히 

더 신기한건 이래도 모임 구멍안나고 올 사람들은 다 잘 찾아온다는 겁니다.
어찌보면 핸드폰 쓰는 요즘 보다 약속이 취소되는 비율이 현저히 낮았던거 같아요.
요즘 벙개모임보다 더 열려있는 느낌이 들지요? 

이건 다른 학교로 친구 찾아갈때도 유용합니다. 
대학로를 나왔다 성대다니는 친구를 함 보고 가고 싶은데, 핸폰은 없잖아요..
그래도 걱정 없습니다..
성대로 올라가는 큰 골목앞 메모판으로 일단 이동합니다..
(풀무질 앞에 있었던거 같아요 ^^)
그녀석이 속한 과와 동아리의 행적 바로 추적..
그 술집에 가면 그 녀석이 있지요..
(왜 낮에도 밤에도 이게 통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 

문득 이젠 없어진 학교앞 사회과학서점도 그 메모판도 그리워지네요..
고향에서 돈올라온 날이면, 술마시러 가기전 후배들 앞에서 폼잡으며, 서점문을 쓱 밀고 들어가 몇천원하던 민중가요 테이프도 사주곤 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테이프도 cd에게 mp3에 밀려 거의 사라지고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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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2-06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분이 친구에게 공테이프에 최신가요 녹음해서 선물한 얘기도 하면 재미있겠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앞 레코드점에선 무슨무슨 노래 녹음해서 주세요 하고 종이에 적어주면 테이프로 만들어서 주시곤 하셨는데 ^^ 불법인데 말이죠.. 하하

L.SHIN 2009-02-07 05:47   좋아요 0 | URL
헤에~ 짧은 글이라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기분 좋은 장면들이 상상됩니다.^^
정말 좋군요! 메모판을 보고 서로 저렇게 모일 수 있다는 것이!
저도 어릴 때, 친구가 인기 있는 라디오 내용을 녹음해서 주거나 음악을 녹음해서 준 것들이
있는데..그 때가 생각났습니다.(웃음)
예전에는, 한국의 노래방에서 노래 부른 것을 더빙도 해주고 그랬지 않았나요?

어쨌거나 휘모리님의 아날로그에게는 ☆☆☆☆☆ 그리고 뽀너스 ★

무해한모리군 2009-02-07 10:43   좋아요 0 | URL
제가 31살인데 아마 저 메모판을 실재로 사용해본 마지막세대 일 거예요. 전 스물이 넘어서 삐삐에서 시티폰으로 핸드폰으로 넘어가는 걸 지켜본 세대니까요. 엘신님의 평점 감솨감솨~~

Arch 2009-02-07 11:06   좋아요 0 | URL
나 갑자기 테이프 녹음 떠올랐어요. 히~

stella.K 2009-02-06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그런 적이 있었죠.
예전에 제가 다니는 교회에 친교실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들어가는 입구 벽에 메모판이 있었더랬죠.
예쁜 압정도 몇개 비치되어있구.
저도 그것 보고 모임 장소 찾아가구 그런 적 있었어요.
그게 어찌나 정겹고 낭만적이던지.
지금은 없어져서 넘 아쉬워요.

L.SHIN 2009-02-07 05:49   좋아요 0 | URL
와, 그런 메모판은 꽤 여러 곳에 있었나봐요? +_+ (신기)
저는 예전에 신촌의 어느 까페에 갔었을 때, 입구 벽에 [일본어 과외] [영어 과외] [한국어 과외]
안내문을 학생들이 쓴 것을 보았습니다. 그 곳은 일본인들이 가는 카페였는데요, 그것을 보고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웃음)

마노아 2009-02-06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는 분식집에 가면 그런 메모들이 빼곡히 적혀 있지만 그건 누군가와의 연락을 취할 메모라기 보다는 장난삼아 하는 낙서에 가깝지요. 재미는 있을지언정 현실적인 기능은 사라져버린. 아쉬운 아날로그에요.

L.SHIN 2009-02-07 05:50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분식집이나 술집, 혹은 카페 등에 아직 '낙서' 기능이 있기는 하지만,
'메모' 기능은 없지요. 아쉽습니다.

순오기 2009-02-07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도 메모판 이야기 쓰러 들어왔더니 벌써 올라왔네요~
나는 커피숍의 메모판이 주제였지만, 공감의 별표~~~~ ☆☆☆☆☆

L.SHIN 2009-02-08 06:54   좋아요 0 | URL
내용이 중복되면 어떻습니까. 중요한 것은 '누구의 아날로그 추억' 이냐이겠죠.^^
자기만의 에피소드, 20세기 냄새를 맡고 싶은 것이니까, 써보세요. 킁킁-

Arch 2009-02-07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메모판 기억은 없지만(나도 그만큼 나이가 먹었는데도!) 그림이 그려져요. 무연하게 메모판을 지켜보고선 다음 행선지를 정할 휘모리님 모습도 떠오르구요. 엘신님~ 요거 별을 주는거예요? 전 추천 날렸는데^^

L.SHIN 2009-02-08 06:55   좋아요 0 | URL
추천도 좋고, 별도 좋습니다.^ㅡ^
그래서 재밌는거 같아요. 서로 비슷한 시대를 살았어도 다른 아날로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웃음)

Mephistopheles 2009-02-07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 메모판에 글씨 몇개 바꿔 장난쳤던 기억이 새록새록.....ㅋㅋㅋ

L.SHIN 2009-02-08 06:55   좋아요 0 | URL
다분히...메피님 답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