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을 살았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직선적인 시간 개념 속에 한 토막을 정리하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 언제나 그렇듯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일들이 정리되었다. 책을 정리하는 것만도 생이 벅차다. 한 걸음 내딛는 2007년이 되기를 희망한다. 과정에 충실하고 가슴에서 발로 가는 길을 찾는 한 해가 되었으면 싶다.

 

나의 독서 경향은 잡식성이다. 반성하자면 깊이가 없고 체계적이지 못하다. 변명하자면 그것이 내가 책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아무 목적없이 책 사이를 주유하다 보면 물 흐르듯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게 된다. 인식의 힘을 키우고 사유의 폭을 넓혀 세상과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이해의 폭이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실천적인 힘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길은 없었다.  걸음 또 한 걸음 길을 걷다 보면 길이 생길 것이라는 노신의 말을 기억한다. 그렇다고 나는 개척자도 선구자도 아니다. 내 생에 있어서 주인이 되고 싶을 뿐이다. 세상에 시비걸고 다함께 더불어 사는 재미를 찾고 싶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2007년에는 독서량을 줄이고 집중 수렴해 볼까 싶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를 유지하고 늘 새로움에 도전하는 삶이고 싶다. 니체처럼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라고 말할 자신은 없지만 후회없이 열정을 다할 것.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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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행복한 책읽기 목록(145권)

 

Ⅰ. 문학 - 40권

 

[시] - 15권

1. 토종닭 연구소, 장경린, 문학과지성사, 2005

2. 환상통, 김신용, 천년의 시작, 2005

3. 말랑말랑한 힘, 함민복, 문학세계사, 2005

4. 아나키스트, 장석원, 문학과지성사, 2005

5. 초록 거미의 사랑, 강은교, 창비, 2006

6. 꽃의 고요, 황동규, 문학과지성사, 2006

7.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 이승희, 창비, 2006

8. 밤 미시령, 고형렬, 창비, 2006

9. 그래서 당신, 김용택, 문학동네, 2006

10. 안녕, 후두둑씨, 이용한, 실천문학사, 2006

11. 냄비는 둥둥, 김승희, 창비, 2006

12. 가재미, 문태준, 문학과지성사, 2006

13.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 남진우, 문학과지성사, 2006

14.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마종기, 문학과지성사, 2006

15. 바람의 사생활, 이병률, 창비, 2006

 

[소설] - 20권

16. 인간의 힘, 성석제, 문학과지성사, 2003

17. 중국에서 온 편지, 장정일, 작가정신, 2003

18. 밤이여, 나뉘어라, 전경린 외, 문학사상사, 2006

19. 비밀과 거짓말, 은희경, 문학동네, 2005

20. 거기, 당신?, 윤성희, 문학동네, 2004

21. 강산무진, 김훈, 문학동네, 2006

22. 아내가 결혼했다, 박현욱, 문이당, 2006

23. 센티멘털, 히라노 게이치로, 양윤옥 역, 문학동네, 2006

24. 동굴, 주제 사라마구, 김승욱 역, 해냄, 2006

25. 그 후, 나쓰메 소세키, 민음사, 2003

26. 인간연습, 조정래, 실천문학사, 2006

27. 국자 이야기, 조경란, 문학동네, 2004

28.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작가정신, 2003

29. 빛의 제국, 김영하, 문학동네, 2006

30. 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한은경 역, 민음사, 2006

31. 악어떼가 나왔다, 안보윤, 문학동네, 2005

32. 어지러운 세상, 인연의 배를 띄워 : 최적전, 황혜진, 나라말, 2006

33. 엄청나게 시끄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송은주 역, 민음사, 2006

34.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허호 역, 웅진닷컴, 2002

35. 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 레지스 조프레, 백선희 옮김, 푸른숲, 2006

 

[기타] - 5권

36.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 조현설, 한겨레출판, 2006

37. 고전문학사의 라이벌, 정출헌, 고미숙, 조현설, 김풍기, 한겨레출판, 2006

38. 사유의 열쇠 : 문학, 김성곤, 산처럼, 2006

39. 근대문학의 종언, 가라타니 고진, 조영일 역, 도서출판비, 2006

40. 상상력과 가스통 바슐라르, 홍명희, 살림출판사, 2005

 

Ⅱ. 인문사회 - 59권

 

[역사] - 7권

41.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한국생활사박물관(1) : 선사생활관, 사계절, 2002

42.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한국생활사박물관(2) : 고조선 생활관, 사계절, 2002

43.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한국생활사박물관(3) : 고구려생활관, 사계절, 2002

44. 세계의 역사 교과서, 이시와타 노부오, 고시다 다카시 편, 양억관 역, 작가정신, 2005

45.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오 휴버먼, 장상환 역, 책벌레, 2000

46. 47. 한국 속의 세계 (상) (하), 정수일, 창비, 2005

 

[철학] - 14권

48. 감시와 처벌 : 감옥의 역사, 미셸 푸코, 나남출판, 2003

49. 사유의 열쇠 : 철학, 박이문, 산처럼, 2004

50. 사랑의 철학, 이정은, 살림출판사, 2004

51. 존재와 시간, 하이데거, 이기상 역, 살림출판사, 2006

52. 철학 콘서트, 황광우, 웅진지식하우스, 2006

53. 플라톤의 국가론, 플라톤, 집문당, 1997

54. 논리-철학 논고,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이영철 역, 책세상, 2006

55. 혁명이 다가온다, 슬라보이 지젝, 이서원 역, 길, 2006

56. 노자와 21세기 1, 김용옥, 통나무, 1999

57. 노자와 21세기 2, 김용옥, 통나무, 1999

58. 노자와 21세기 3, 김용? 통나무, 2000

59. 논술과 철학 강의 1, 김용옥, 통나무, 2006

60. 논술과 철학강의 2, 김용옥, 통나무, 2006

61. 철학, 삶을 만나다, 강신주, 이학사, 2006

 

[사회] - 19권

62. 대담 :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도정일, 최재천, 휴머니스트, 2005

63. 우리 시대의 상식론, 박호성, 랜덤하우스중앙, 2006

64. 당신들의 한민국 2, 박노자, 한겨레출판, 2006

65. 사이시옷, 손문상 외, 창비, 2006

66. 귀환, 안토니오 네그리, 윤수종 역, 이학사, 2006

67. 편견을 넘어 평등으로, 김동춘, 한홍구, 조효제, 창비, 2006

68. 파시즘의 대중심리, 빌헬름 라이히, 황선길 역, 그린비, 2006

69. 사회를 보는 논리, 김찬호, 문학과지성사, 2001

70. 검은피부, 하얀가면, 프란츠 파농, 이석호 역, 인간사랑, 1998

71. 과격하고 서툰 사랑 고백, 손석춘, 후마니타스, 2006

72. 민주주의의 민주화, 최장집, 박상훈 편, 후마니타스, 2006

73.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하종강, 후마니타스, 2006

74. 행복은 자전거를타고 온다, 이반 일리히, 박홍규 역, 미토, 2004

75. 학계의 금기를 찾아서, 강성민, 살림출판사, 2004

76. 당신의 인생을 미모작하라, 최재천, 삼성경제연구소, 2005

77.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정운영, 웅진지식하우스, 2006

78. 거짓말, 정혜신 외, 한겨레출판, 2006

79.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 김선욱 역, 정화열 해제, 한길사, 2006

80. 인간사색, 강준만, 개마고원, 2006 [경제] - 5권

81. 괴짜경제학, 스티븐 레빗, 스티븐 더브너, 안진환 역, 웅진지식하우스, 2005

82. 세계화 이후의 부의 지배, 레스터 C. 서로우, 현대경제연구원 역, 청림출판, 2005

83. 부의 미래, 앨빈 토플러, 김중웅 역, 청림출판, 2006

84. 소유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이희재 역, 민음사, 2001

85. 국가의 역할, 장하준, 이종태/황혜선 공역, 부키, 2006 [인문] - 14권

86. 욕망의 힘, 빌리 파시니, 이옥주 역, 에코리브르, 2006

87. 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이재원 역, 2004

88. 은유로서의 질병, 수전 손택, 이재원 역, 이후, 2002

89.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하태환 역, 2001

90. 의산문답, 홍대용, 이숙경, 김영호 공저, 꿈이있는세상, 2006

91. 나비와 전사, 고미숙, 휴머니스트, 2006

92.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막스베버, 문예출판사, 1996

93. 리바이어던 : 국가라는 이름의 괴물, 김용환, 살림출판사, 2005

94. 무신학의 탄생, 미셀 옹프레, 강주헌 역, 모티브북, 2006

95. 문화의 기원, 르네 지라르, 김진식 역, 기파랑, 2006

96. 중세는 정말 암흑기였나, 이경재, 살림출판사, 2003

97. 우경화하는 신의 나라, 노 다니엘, 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98. 폭력의 기억, 앨리스 밀러, 신홍민 역, 양철북, 2006

99. 개념어 사전, 남경태, 들녘, 2006

 

Ⅲ. 예술기타 - 46권

 

[예술] - 4권

100. 현대미술의 풍경, 윤난지, 한길아트, 2005

101.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 금난새, 생각의나무, 2005

102. 해석에 반대한다, 수전 손택, 이민아 역, 이후, 2002

103. 철학, 예술을 읽다, 철학아카데미, 동녘, 2006

 

[인물] - 8권

104. 카프카, 권력과 싸우다, 박홍규, 미토, 2003

105. 다산 정약용 : 유학과 서학의 창조적 종합자, 금장태, 살림출판사, 2005

106. 시인 신동엽, 김응교, 인병선 유물보존, 공개, 고증, 현암사, 2005

107.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허영철, 보리, 2006

108. 이휘소 평전, 강주상, 럭스미디어, 2006

109. 마르크스 평전, 자크 아탈리, 이효숙 역, 예담, 2006

110. 금지를 금지하라, 지승호, 시대의 창, 2006

111. 최초의 아나키스트, 윌리엄 고드윈, 피터마셜 편, 강미경 역, 지식의 숲, 2006

 

[기타] - 34권

112. 삼색공감, 정혜신, 개마고원, 2006

113. 멘탈 모델이 미래를 결정한다, 제리윈드, 콜린 크룩, 로버트 건서, 류동완 역, 럭스미디어, 2005

114. 내가 멘토에게 배운 것, 스티븐 스콧, 류동완 역, 더난출판사, 2005

115. 글쓰기의 공중부양, 이외수, 동방미디어, 2006

116. 진화하는 전쟁, 존 에드워즈, 류동완 역, 플래닛미디어, 2006

117. 국어 교육의 바탕과 속살, 김수업, 나라말, 2005

118. 모국어의 속살, 고종석, 마음산책, 2006

119. 탐독, 이정우, 아고라, 2006

120. 죽음, 또 하나의 세계, 최준식, 동아시아, 2006

121.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권진욱 역, 한문화, 2005

122. 삶은 기적이다, 웬델 베리, 박경미 역, 녹색평론사, 2006

123. 축구의 역사, 알프레드 바알, 시공사, 1999

124. 축구의 문화사, 이은호, 살림출판사, 2004

125.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프랭클린 포어, 안명희 역, 말글빛냄, 2005

126. 피버 피치, 닉 혼비, 이나경 역, 문학사상사, 2005

127. 행복한 이기주의자, 웨인 다이어, 오현정 역, 21세기북스, 2006

128. 커피 이야기, 김성윤, 살림출판사, 2004

129. 아파트의 문화사, 박철수, 살림출판사, 2006

130. 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세종서적, 2000

131. 법의학의 세계, 이윤성, 살림출판사, 2003

132.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안정효, 모멘토, 2006

133.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 김치샐러드, 학고재, 2006

134. 색의 유혹, 오수연, 살림출판사, 2004

135. 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 윌리엄 슈니더윈드, 박정연 역, 에코리브르, 2006

136. 과학혁명의 구조, 토머스 S. 쿤, 김명자 역, 까치, 2002

137. 어느 날 사진이 가르쳐 준 것들, 천명철, 미진사, 2006

138. 야구의 물리학, 로버트 어데어, 장석봉 역, 한승, 2006

139.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헤르만 헤세, 김지선 역, 뜨인돌, 2006

140. 장정일의 공부, 장정일, 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141. 모로코의 낙타와 성자, 엘리아스 카네티, 조원규 역, 민음사, 2006

142. 학교 없는 사회, 이반 일리히, 심성보 역, 2004

143. 144. 임사체험(상) (하), 다치바나 다카시, 윤대석 역, 청어람미디어, 2005

145. 이오덕 삶과 교육사상, 이주영, 나라말,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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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30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독을 하셨네요.
저같은 일상으로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에요.
제목처럼 행복하셨겠어요.
내년도 님께서 원하는 시간 마음껏 누리는 행복한 한 해 되세요.

이잘코군 2006-12-30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많이 보셨네요. 책 제목의 무게감도 상당한걸요? 2006년 한해 수고하셨습니다.

짱꿀라 2006-12-31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독하신 인식의 힘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정말 많이 읽으신 님께 박수를 드립니다. 2007년에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ceptic 2007-01-01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들 건강과 행복 가득한 한 해 맞으시기 바랍니다.

2007년에도 후회없이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책읽는 즐거움도 포기할 수 없겠죠. 저도 항상 좋은 글 읽고 배우러 갑니다.

marine 2007-01-03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보셨군요 반갑습니다 ^^
그리고 저도 끌리는데도 막 읽는 게 좋아요

sceptic 2007-01-05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린님 저도 그렇습니다...^^

잉크냄새 2007-01-10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 나네요. 존경스러워요.^^

sceptic 2007-01-11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러운 댓글을...^^ 즐거운 독서하시기 바랍니다...
 
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 - 2005 페미나상 상 수상작
레지스 조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푸른숲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사랑 때문에 자살하는 인간은 없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는 자살을 했을 것이다. - P. 107

다소 도발적인 주인공의 고백이 이 소설의 내용을 압축한다. 어떤 고전 소설을 인용하든 사랑에 관한 가장 확실한 정의는 없다. 규정지을 수도 결론 내릴 수도 없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래서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도 미래에도 사랑에 관한 소설은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또 읽는다. 이번에는, 이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지가 궁금하다. 그래서 연애소설을 읽는다. 비록 그것이 시간 낭비일지라도.

레지스 조프레가 쓴 <스물 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는 우선 제목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나이에 관해서라면 연령을 불문하고 다들 한마디씩 하고 싶어진다. 특히 스물 아홉은 더 그렇다. 내 경우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아직도 핸드폰 벨 소리로 쓸만큼 지겹게 듣고 있으며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삼십세>를 읽으며 스물 아홉을 보냈다. 누구에게나 나이에 관한 충격이 한번쯤은 온다. 이 소설이 스물 아홉에 관한 소설은 아니다. 나이와 무관한 소설을 제목으로 뽑은 출판사 편집자의 능력에 일단 감탄한다. 원제(Asiles de fous)는 불어라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이 소설은 혼합 시점을 사용한다. 서른 한 살의 남자 다미앙은 평소와 다름없이 영국으로 출장을 떠난다. 그리고 느닷없이 다미앙의 아버지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낡은 수도꼭지를 교체하고 아들을 대신해 스물 아홉 지젤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아들의 물건과 옷가지를 챙기며 끊임없이 쏟아놓는 독백들을 진저리를 치며 들어야 하는 지젤은 이 믿기 어려운 상황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이후 진행되는 이야기나 줄거리는 거의 없다. 지젤의 시점으로 이별의 순간과 남자친구의 아버지에게 대신 이별을 전해 듣는 과정을 서술하는 것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다미앙의 아버지가 진술한 후 남자친구의 어머니 입장에서 아들과 남편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다음은 다미앙이 술 취한 상태에서 어머니와 상황을 묘사한다. 다시 지젤의 입장으로 돌아와 소설은 마무리된다.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고백과 독백 형식이다. 대화 장면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이 독자들을 향한 독백이든 내면의 고백이든 상관없이 마치 판소리 사설처럼 요설적이고 직설적이서 말의 홍수 속에 갇혀 버리는 느낌이다. 미끈한 비유와 은근히 비꼬는 방식으로 소설이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즐거움을 전해준다. 영화와 소설의 형식상 차이는 이런 소설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영화로 만들기 어려운 소설이다. 어쨌든 스토리 위주의 소설은 아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사랑 자체에 관해서만 말하고 있지 않다. 사랑을 둘러싼 상황만 주변을 언급한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따져보는 알랭 드 보통식의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 특히 중산층 가정의 허위의식과 위선 -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성을 실감나게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자녀들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통제는 그대로 폭력이다. 부모 자식간의 관계가 타자화되지 못하고 혈연관계 그 이상을 넘어 설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비극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사랑할 때 가족을 고려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스물 아홉 ‘지젤’이라는 평범한 여자가 겪는 일상과 사랑은 누구나 한 번 쯤 겪었을 법한 이야기다. 사랑을 하면 이별을 하게 된다. 그 이별의 과정도 각자 다르겠지만 이런 특별한 이별을 통해 그리고 이후의 관계에 대해 지젤은 사랑을 이렇게 말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사랑이란 거의 있을 수 없는 감정이다. - P. 145

당신들에게 진실을 말하자면 사랑은 정말이지 우리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고심해본 적이 없으며, 무신론자들이 신용카드를 잃어버렸을 때 무심코 ''오, 하느님''을 외치듯 그저 기계적으로 사랑을 말할 뿐이다. - P.241


그녀에게는 미래가 있다. 지나버린 시간들과 주어진 현재를 넘어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희망’이라는 마약의 다른 형식이다. 꿈꾸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 그래서 우리는 한 해를 뒤돌아 보고 다가올 2007년을 어떤 형태로든 ‘미래’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행복한 마음으로 미래를 기다렸다. 마치 멋진 기억을 되새기듯. - P. 257


06123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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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3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이란 거의 있을 수 없는 감정이다'
사랑이란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일 뿐 가슴 속에 감정이 있어 그걸 증명할 수는 없죠.
그리고 입에서 내뱉는 사랑이라는 말조차도 그게 진짜인지 말하는 동안,듣는 동안 확신이 안 설 수도 있어요.
모호한 감정들을 사랑이라는 말로 표현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보고 있게 만드는 수단으로 보여질 수도 있구요.
스물 아홉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었어요.
남자든 여자든 새로운 나잇대에 접어든다는건 그만큼 기대보다는 두려움과 책임이 생기니까요.
저한테 스물아홉은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 않았지만 서른 아홉때는 서른즈음에를 끼고 살 정도로 혼란스러운 해였어요.
생각을 많이하게 하는 책이네요.
 
이오덕 삶과 교육사상 - 교사를 위한 국어교육의 길잡이
이주영 지음 / 나라말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한 사람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환산할 수 있을까?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하다보면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상상한다. 세상을 살면서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고 사회를 변화시킨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는 일은 어떤 형태로든 아름답다. 개인적 삶을 넘어 자신의 신념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주영의 <이오덕 삶과 교육사상>을 읽으면서 숙연해졌다. 그 분의 책을 읽으면서 피상적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또 다른 형태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이오덕 선생님이 가르치려고 했던 바른 우리말과 글 속에는 그 분의 삶이 오롯이 녹아 있다. 한 인간이 신념을 갖고 그것을 실천한다는 것은 존경받을 만한 삶이다. 더구나 개인적 이익에 반하고 사회의 억압적 분위기 속에서 이기적 욕망들을 버려야 하는 일이라면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이오덕 선생님의 삶과 사상은 그런 면에서 선명한 빛깔로 미래를 제시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빛바랜 낡은 사상도 있고 시대를 앞선 생각들도 많이 있다. 이오덕 선생님은 이 땅의 교육 민주화와 글쓰기 교육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숱한 후배 교사들에게 진정한 선생의 모습을 몸소 실천하셨다. 석사학위 논문으로 쓰여진 글을 수정해서 출간한 이 책은 단순한 이오덕 선생에게 바치는 헌사와 다르다.

이오덕 선생님의 삶을 통해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을 앞세워 출범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사상적 배경까지 읽어낼 수 있다. 단순한 이익 집단으로 볼 수 없는 단체의 출범은 이오덕 선생님의 생각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 분이 걸어온 길과 민주화를 선언한 교육계의 목표는 어디를 지향하고 있을까. 과연 민주 교육은 무엇인며 삶을 가꾸는 교육인 인간화 교육은 무엇인가. 한 권의 책으로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은 그 질문들에 대해 선생님의 삶을 통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배운다. 누구에게 무엇을 배우느냐 하는 것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이 학교교육의 가장 큰 단점이다.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에 맞춰 교사들이 가르치는 내용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우리의 배움은 시작된다. 그렇다면 부모는 물론이지만 교사의 역할은 얼만큼 중요한가.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한 사람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참 스승 한 사람을 만나는 일은 망망한 대해에서 밝은 등대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우리에게 그런 선생님이 계신가 돌아보게 된다. 이오덕 선생님은 충분히 그러한 존재이다. 살아생전에는 물론이고 2003년에 타계하신 후에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한 개인의 작은 노력으로 이루어진 책이 아니라 선생님의 뜻을 기리고 존중하며 그 가르침을 이어가는 노력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모든 분들의 바람과 마음들이 이 책을 통해 전해진다. 수많은 단체들에 관여하면서도 개인적 이익이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참교육을 위한 피나는 노력을 후학들은 알 것이다.

‘논술’이라는 괴물이 온 나라를 흥분시키고 있다. 이오덕 선생님의 수많은 책들 중에서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한 권만이라도 제대로 읽어본다면 우리가 지향해야할 교육의 목표와 방향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듣고 말하는 것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국어 교육의 내용이 아니라 우리들 삶의 형식이다. 국어지식과 문학 이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이오덕 선생님이 평생을 지켜온 생각이 아닌가 싶다.

밝고 화려하게 빛나는 등불이 아니라 희미하지만 어둠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길을 밝혀 주는 이오덕 선생님의 삶과 사상은 이 땅의 수많은 후배 교사들과 교육자들 그리고 선생님의 제자들을 통해 전해질 것이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같이 걸어가다 보면 길이 생길 것이다. 그 길은 이제 시작은 아니다. 선생님이 걸어간 길을 넓고 단단하게 하는 일이 남겨져 있다. 참다운 인간 교육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이 땅의 모든 부모들과 교육자들이 읽어보았으면 하는 내용이다.


061228-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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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2-29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sceptic 2006-12-30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한 새해 맞으세요.
 
임사체험 상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윤대석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죽음은 삶의 그림자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죽어 간다는 말이다. 분리할 수 없는 두 세계를 우리는 늘 분리된 세계로 인식한다. 불연속적 세계관이나 통합된 하나의 눈으로 보면 시간과 공간이 일직선상에 놓여 질 수 없다. 죽음과 어깨동무하고 늘 곁에 두고 함께 걸어가지만 호기심이나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다. 죽음은 그렇게 우리에게서 멀리 있지 않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자주한다. 아침에 헤어지는 가족과의 만남이 마지막일 수 있다. 내일을 맞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부정적이고 염세적인 세계관과는 다르다. 모든 순간에 충실하고 싶은 것이다. 이 순간을 사랑하고 싶다.

죽어본 사람은 없다. 다만 죽음과 유사한 경험을 한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 혹은 잠시 죽음의 상태를 경험한 사람들은 많다. 그 사람들은 특별한 체험을 하기도 한다. 그러한 체험을 임사체험이라고 한다. 죽음의 경계까지 가본 경험, 거의 죽었다고 판단되었지만 살아난 사람들의 경험, 그것을 임사체험이라 부른다. 명칭이야 어떠하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간혹 들어본 적이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임사체험>은 이런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었다. 기억될 만한 책이다. 철저하게 저널리즘에 입각한 서술도 마음에 들었고 정확한 취재와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전개도 이 책을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신비주의 관점에서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확신을 전해주는 책도 아니고 과학의 시선으로 그것을 부정하는 책도 아니다.

삶에 대한 애정과 집착만큼이나 죽음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거부감을 갖고 있다. 왜? 알지 못하기 때문일까. 단순히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 익숙한 세계인 이 세상과의 이별때문일까. 소유한 것들에 대한 욕심일까.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련일까.

죽음 저편으로 갔던 사람들은 누구도 그 과정에서 얻은 지식을 이쪽으로 보내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영원한 수수께끼고, 영원한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 (하) P. 401

정확하지 않지만 다치바나의 이 말이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영원한 불안과 공포의 대상인 죽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간 축적된 연구 성과에 대한 분석과 직접 취재를 통해 접근하고 있는 이 책은 죽음 이후에 대해 설명한다.

임사체험 연구의 선구적 역할을 했던 연구자들의 사례를 통해 터널체험과 체외이탈 등 공통적인 경험들을 분석하는 것으로 이 책은 죽음의 세계에 접근하기 시작해서 실제 사례를 통해 임사 체험의 최대 쟁점인 ‘뇌내 현상설’과 ‘현실 체험설’에 대해 모두 점검한다.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서술되는 저자의 주장은 오류를 범할 때가 많다. 주관적이진 않더라도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할 만한 논거들 속에는 항상 반론의 여지가 남아 있다. 그런면에서 다치바나의 방법은 신뢰할 만하다. 어느 쪽에도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과학이든 아니든 기준도 관점도 중요하지 않다.

이 책은 마지막 장에서 말하고 있듯이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삶의 관점에서 바라본 죽음을 찾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어떤 삶의 자세를 가질 것인가는 물론 각자의 몫이다. 죽음 이후에 대한 논쟁을 하든, 종교를 갖든 버리든 상관없이 결국 문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로 귀결된다. 죽음을 맞는 태도와 죽음 이후에 대한 자세도 삶이 없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삶의 연장선에서 바라보는 죽음이야말로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한국인의 죽음에 대한 김열규의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와 최준식의 <죽음, 또 하나의 세계>와 또 다른 방식으로 쓰여진 이 책은 죽음을 앞 둔 사람들이나 죽음 자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보다 생에 대해 환멸을 느끼거나 삶의 목적과 방향이 모호한 나같은 사람들에게 적합한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림자처럼 늘 우리 몸에 드리워져 있는 죽음을 두려워말자.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내 삶의 주인이 되려는 노력이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내게는 결국 죽음도 ‘지금-여기’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귀착된다. 이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의 삶에 충실하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저자의 말을 되새겨본다.

‘네가 죽음을 무서워하고 있는 동안은 죽음은 아직 오지 않았다. 진짜로 죽음이 다가왔을 때는, 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너와 죽음이 만나는 일은 없다. 죽음에 대해 고뇌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 (하) P. 404


061225-142(상), 061227-143(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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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27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한 해 죽음에 대해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인지 댓글도 썼다 지웠다 했답니다.
마음이 심란해지는 책이네요.

sceptic 2006-12-28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이란 늘 그런 느낌이지만 다른 태도와 방법도 필요하지 않은가 싶어요. 저물어 가는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행복하시길...
 
철학, 삶을 만나다
강신주 지음 / 이학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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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철학이 무척 바쁘다. 철학이 바빠진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우리들 삶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철학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그래도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싶을 때 철학에 기대기도 한다. 철학이 바쁠 만도 하다.

강신주의 <철학, 삶을 만나다>는 제목이 너무 뻔해서 식상할 정도다. 철학이 영화도 만나고 예술도 만나고 바쁜 생활 속에 이번에는 당연히 만나야 할 ‘삶’을 만났다. 철학의 역할과 기능을 따져 볼 필요는 없다. 학문적 대상으로 아카데미즘에 매몰되어버린 철학이 세상 밖으로 걸어나온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철학자는 감옥에 갇힌 수인이 아니라 생활인이다. 우리들 삶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과 사람을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새로움과 낯선 생각을 나누어 주고 고정관념을 하나 둘 쯤 깨뜨려주면 그만이다.

모든 사람이 다 철학자다. 철학이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생활 속에서 당연히 마주치는 일들이 많다. 그 마주침과 부딪힘 속에서 습관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던 문제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다르게 바라보고 거기서 작은 깨달음을 얻고 우리들의 행동이 달라진다면 가장 훌륭한 철학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의 관점이 중요하다.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가. 아니 어떤 관점에서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는가는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관점이나 시점은 세상을 보는 전제 조건에 해당한다. 전제가 잘못될 경우 전체가 틀려버린다. 물론 다양하지 못한 하나의 관점은 가장 경계해야할 시선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다양한 논의들도 재미없다. 뚜렷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그런 책을 만나는 건 독자에겐 축복이다.

이 책은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철학적 사유와 인문학적 경험들을 통해 철학의 흐름을 짚어주고 2부에서는 사랑과 가족 이데올로기 그리고 국가와 자본주의에 대해 설명한다. 일상에 매몰되어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한 거시적 조망이다. 늘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매일 가족과 부딪히면서 그것들 자체에 대해 깊이 고민하거나 생각해 보지는 않는다. 그래서 관계가 어긋나거나 부자연스러울 때는 이유를 모른채 불만에 가득 차거나 화가 난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합리적으로 사유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철학은 우리에게 많은 얘기들을 건넨다. 그 말들이 어렵지도 딱딱하지도 않다면 금상첨화다. 저자는 쉬운 말로 독자와 대화를 시도한다.

쉽다는 것이 가볍거나 얇다는 말과 상통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방법의 문제일 뿐이다. 숨많은 철학자와 고전을 쉽게 풀어 인용하고 씨줄과 날줄로 묶어 절적하게 배치하는 것은 당연히 저자의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거기에 자신의 철학적 성찰까지 담아내야 한다. 가벼운 내공으로 만만하게 시작할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철학, 삶은 만나다>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마지막 3부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과 즐거운 주체로 살아가기 그리고 타자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한 부분이 이 책의 핵심이다. 철학사를 안다고 해서 철학책을 읽었다고 해도 삶과 유리되어 있다면 쓸데없다. 머리와 가슴이 따로 국밥이라면 무의미하지 않은가. ‘타자’라는 놀음판의 ‘따짜’와 다르다. 철학에서 사용하는 타자의 개념을 몰라도 좋다. 다만 ‘타자는 나의 미래!’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크리스마스가 되면 사람들은 많은 선물을 주고받는다. 데리다는 선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호 관계, 반환, 교환, 대응 선물, 부채 의식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기대하거나 대가를 바라는 선물은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다. 진정한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하다. 내와 타인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나와 세상과의 관계를 점검하는 것은 살아 숨쉬는 동안 끊임없이 해야하는 삶을 위한 철학적 성찰이다.

한 해가 저물어 가고 또 한 해를 맞이하면서 산다는 것은 쉽게 규정되지 않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어리석음이 아니라 방법을 찾고 고민하는 시간들이 조금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생각들이 가슴과 다리로 이어진다면 좋겠다. 생활 속에서 주어진 상황 속에서 참여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 본다.


06122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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