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 - 2005 페미나상 상 수상작
레지스 조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푸른숲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사랑 때문에 자살하는 인간은 없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는 자살을 했을 것이다. - P. 107

다소 도발적인 주인공의 고백이 이 소설의 내용을 압축한다. 어떤 고전 소설을 인용하든 사랑에 관한 가장 확실한 정의는 없다. 규정지을 수도 결론 내릴 수도 없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래서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도 미래에도 사랑에 관한 소설은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또 읽는다. 이번에는, 이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지가 궁금하다. 그래서 연애소설을 읽는다. 비록 그것이 시간 낭비일지라도.

레지스 조프레가 쓴 <스물 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는 우선 제목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나이에 관해서라면 연령을 불문하고 다들 한마디씩 하고 싶어진다. 특히 스물 아홉은 더 그렇다. 내 경우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아직도 핸드폰 벨 소리로 쓸만큼 지겹게 듣고 있으며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삼십세>를 읽으며 스물 아홉을 보냈다. 누구에게나 나이에 관한 충격이 한번쯤은 온다. 이 소설이 스물 아홉에 관한 소설은 아니다. 나이와 무관한 소설을 제목으로 뽑은 출판사 편집자의 능력에 일단 감탄한다. 원제(Asiles de fous)는 불어라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이 소설은 혼합 시점을 사용한다. 서른 한 살의 남자 다미앙은 평소와 다름없이 영국으로 출장을 떠난다. 그리고 느닷없이 다미앙의 아버지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낡은 수도꼭지를 교체하고 아들을 대신해 스물 아홉 지젤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아들의 물건과 옷가지를 챙기며 끊임없이 쏟아놓는 독백들을 진저리를 치며 들어야 하는 지젤은 이 믿기 어려운 상황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이후 진행되는 이야기나 줄거리는 거의 없다. 지젤의 시점으로 이별의 순간과 남자친구의 아버지에게 대신 이별을 전해 듣는 과정을 서술하는 것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다미앙의 아버지가 진술한 후 남자친구의 어머니 입장에서 아들과 남편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다음은 다미앙이 술 취한 상태에서 어머니와 상황을 묘사한다. 다시 지젤의 입장으로 돌아와 소설은 마무리된다.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고백과 독백 형식이다. 대화 장면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이 독자들을 향한 독백이든 내면의 고백이든 상관없이 마치 판소리 사설처럼 요설적이고 직설적이서 말의 홍수 속에 갇혀 버리는 느낌이다. 미끈한 비유와 은근히 비꼬는 방식으로 소설이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즐거움을 전해준다. 영화와 소설의 형식상 차이는 이런 소설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영화로 만들기 어려운 소설이다. 어쨌든 스토리 위주의 소설은 아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사랑 자체에 관해서만 말하고 있지 않다. 사랑을 둘러싼 상황만 주변을 언급한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따져보는 알랭 드 보통식의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 특히 중산층 가정의 허위의식과 위선 -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성을 실감나게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자녀들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통제는 그대로 폭력이다. 부모 자식간의 관계가 타자화되지 못하고 혈연관계 그 이상을 넘어 설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비극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사랑할 때 가족을 고려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스물 아홉 ‘지젤’이라는 평범한 여자가 겪는 일상과 사랑은 누구나 한 번 쯤 겪었을 법한 이야기다. 사랑을 하면 이별을 하게 된다. 그 이별의 과정도 각자 다르겠지만 이런 특별한 이별을 통해 그리고 이후의 관계에 대해 지젤은 사랑을 이렇게 말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사랑이란 거의 있을 수 없는 감정이다. - P. 145

당신들에게 진실을 말하자면 사랑은 정말이지 우리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고심해본 적이 없으며, 무신론자들이 신용카드를 잃어버렸을 때 무심코 ''오, 하느님''을 외치듯 그저 기계적으로 사랑을 말할 뿐이다. - P.241


그녀에게는 미래가 있다. 지나버린 시간들과 주어진 현재를 넘어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희망’이라는 마약의 다른 형식이다. 꿈꾸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 그래서 우리는 한 해를 뒤돌아 보고 다가올 2007년을 어떤 형태로든 ‘미래’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행복한 마음으로 미래를 기다렸다. 마치 멋진 기억을 되새기듯. - P. 257


06123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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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3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이란 거의 있을 수 없는 감정이다'
사랑이란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일 뿐 가슴 속에 감정이 있어 그걸 증명할 수는 없죠.
그리고 입에서 내뱉는 사랑이라는 말조차도 그게 진짜인지 말하는 동안,듣는 동안 확신이 안 설 수도 있어요.
모호한 감정들을 사랑이라는 말로 표현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보고 있게 만드는 수단으로 보여질 수도 있구요.
스물 아홉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었어요.
남자든 여자든 새로운 나잇대에 접어든다는건 그만큼 기대보다는 두려움과 책임이 생기니까요.
저한테 스물아홉은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 않았지만 서른 아홉때는 서른즈음에를 끼고 살 정도로 혼란스러운 해였어요.
생각을 많이하게 하는 책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