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7대 불가사의 - 과학 유산으로 보는 우리의 저력
이종호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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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를 거의 보지 않아서 대화에 끼기 어려울 때가 있다. 세간에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주몽>에 한나라의 철기군이 등장하고 고구려에서 그것을 물리치거나 배우려는 시도가 역사적으로 볼 때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이종호의 <한국의 7대 불가사의>는 특별한 구석이 있다.

  불가사의不可思議는 불교에서 온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마음속에 떠오르지도 않으며 생각할 수도 없는 오묘한 이치라고 한다. 말하자면 현실 밖의 세상을 말한다. 니나와 폴이 여행하던 4차원 세계에서나 가능한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시간여행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의 일들을 모두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은 진보하며 인간의 지식과 지혜는 누적적인 형태로 발전한다고 굳게 믿는 직선적인 세계관에 기대어 인류의 특별한 문화 유산을 두고 불가사의라고 부른다.

  먼저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보자.  ① 이집트 기자에 있는 쿠푸왕(王)의 피라미드 ② 메소포타미아 바빌론의 공중정원(空中庭園) ③ 올림피아의 제우스상(像) ④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神殿) ⑤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로스 능묘(陵墓) ⑥ 로도스의 크로이소스 대거상(大巨像) ⑦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파로스 등대(燈臺)가 있다. 그 밖에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로마의 원형극장(콜로세움), 영국의 거석기념물(巨石紀念物, 스톤헨지), 이탈리아의 피사 사탑(斜塔), 이스탄불의 성(聖)소피아 성당, 중국의 만리장성,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를 7대 불가사의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위와 같은 내용은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유적들을 불가사의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인류의 과학과 기술은 중세이후 이성 중심의 서양의 직선적 세계관에 기인한다. 지금보다 장비와 기계들이 발달하지 못했지만 인간의 지혜와 지적 능력은 오히려 뛰어났을 것이라고 판단해 볼 수 있다. 굴삭기가 발명되면 삽질하던 인간의 근육은 퇴화하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가 놀라고 있는 것들이 그 당시에는 당연하거나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이종호는 <한국의 7대 불가사의> 다음과 같이 선정했다. ① 고인돌 별자리 ② 신라의 황금 보검 ③ 다뉴세문경 ④ 고구려의 개마무사 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⑥ 고려 수군의 함포 ⑦ 훈민정음.

  위에 소개한 일곱 가지 문화유산이 과연 모두가 동의할만한 것들인가 하는 문제는 의미가 없다. 저자 개인의 선정이나 역사학자 일반인들의 견해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 문화유산의 우수성과 독창성이 세계 문화유산에 견주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저자의 신념을 들여다보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다. 신념은 지식과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 건축을 전공한 저자의 유럽의 중심지 파리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우리 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민족주의적인 것인지 하는 문제는 책을 통해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민족적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한 발상도 아니고 애국심의 발로도 아니라면 상대적으로 저평가 된 한국 문화의 가치를 새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도 위험하지만 우리 것은 무조건 안 된다는 패배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객관적인 평가야 어차피 불가능하겠지만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방법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말에게까지 철갑 옷을 입혔던 고구려의 개마무사나 서기 3000년 전에 이미 별자리를 관찰하고 고인돌에 새겨 넣었던 우리 조상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일은 책의 내용과 상관없이 즐거운 시간 여행이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문화유산에 대한 철저한 고증과 분석을 통해 우리 것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시도하고 있는 저자의 노력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제대로 알지 못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비단 문화재의 경우만은 아닐 것이다.

  과거의 불가사의에 매몰되지 않고 현재 그리고 미래에 우리가 만들어 갈 문화유산들이 우리가 걸어왔던 역사보다 더 환상적이고 재미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저자가 꼽은 문화유산들은 우리들 일상에서 마주칠 수 없는 거리감이 있는 것들이다. 민중들의 삶과 생활에서 묻어나는 불가사의나 지금보다 발달했던 물건이나 제도들에 대한 검토와 반성도 필요하다.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가장 미련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시간 여행은 계속 되어야 한다.


070425-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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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데이즈 문학과지성 시인선 327
하재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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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불며 부는대로 세상에 거스리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은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선악의 가치 판단을 삶의 방식이나 태도에 적용시킬 수는 없지만 대체로 선망하거나 부러워 하는 삶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인위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말이다. 문학에 있어서도 같은 방법을 적용해 볼 수 있겠다. 시를 쓰는데 있어 인위적이거나 작위적인 언어는 생경한 풍경을 만들고 목에 걸린다. 모호한 에너지를 사소한 말장난에 쏟아붇는다는 무식한 비난에 상처 입을 수도 있겠지만 그 언어들이 울려주는 깊은 말맛이나 감동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비판에서 시인은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시인의 약력을 들여다 보는데 나보다 나이가 어려지기 시작했다. 새로 등장하는 시인들의 경우 처음이라서 혹은 젊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과 완고하 저항감으로 심하게 거부 반응이 일어나는 시들이 있다. 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굳은 마음이 있거나 다양성과 새로움에 적응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휘파람

그림자들이 여러 개의 색깔로 물든다
자전거의 은빛 바퀴들이 어둠 속으로 굴러간다

엄마가 아이의 이름을 길게 부른다
누가 벤치 옆에
작은 인형을 두고 갔다

시계탑 위로 후드득 날아오르는 비둘기,
공기가
짧게 흔들린다

벤치, 공원, 저녁과는 상관없이

  쓰다만 시처럼 허무하게 혹은 ‘상관없이’ 떠도는 언어처럼 하재연의 <라디오 데이즈>는 무심하게 다가온다. 현실에 존재하는 것들과 언어로 표상되는 것들 사이의 간극을 찾아 읽는 재미를 선사하기에는 아직 서툴고 시어들 사이의 긴장감이나 긴밀한 알레고리를 찾아내기에도 버겁다. 하지만 ‘휘파람’과 같은 시로 시집을 여는 젊은 시인의 시집에는 겉멋이나 감정의 질퍽함은 묻어나지 않아 다행스럽다.

  세대와 연륜과 무관하게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동시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동시에’도 마찬가지다. 한 권의 시집을 통해 하재연이 말하고 싶었던 것들보다는 말하고자 하는 방식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무심함 속에서 일상에 던져진 것들과의 거리감. 혹은 일상속에 틈입된 시간과 공간의 기억들을 떠올리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동시에

그녀는 책장을 넘기고 있었고
남자가 문 열린 차를 타고 벼랑으로 내달았고
고양이가 식탁 위의 커피잔을 건드렸고
양탄자가 약간 들썩거렸고
고장난 시계 초침이 열두 번을 돌았고
소년은 마라톤 결승 테이프를 끊었고
그녀는 행운을 빌었으나
양손이 쪼글쪼글해지고
머리칼이 가늘어지고
커피는 쏟아졌고 양탄자는 젖지 않았고
남자가 녹색 지붕 아래 비행하는 순간

그러다가 문득, 봄날의 당신은 안녕하냐고 묻다가 만다. 그 안녕이 ‘안녕?’인지 ‘안녕……’인지 알 수 없다. 쉼표를 찍고 있지만 마침표보다 완고해 보인다. 안부를 묻는다기보다 작별을 고하는 안녕은 봄날의 인사치고는 서늘하다.

봄날의 인사

당신은 경비행기를 타고

젖소들은 앉았다 섰다
자동차들은 클랙슨을
로즈마리는 바람에 나부끼고

나의 눈동자는 눈동자의 마음대로 굿바이
헬로, 당신의 프로펠러가
내 뒤뜰의 나무를 망가뜨렸답니다

당신은 대기 속에 있지 않고
나는 땅 위에 있지 않고
우리 모두는 우리의 마음대로

당신의 머플러가 나의 구름을
흩어버렸답니다

봄날의 당신은 안녕,

  이별한 모든 것들에 대해, 이별할 모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시인의 자유이다. 고속도로 위에서 우리는 안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시간과 장소를 구별하지 않고 이별 선언은 가능하다. 다만 그 무모한 가능에 도전하지 않을 뿐이다. 안녕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을 하는 우리의 자세와 그 말을 듣는 당신의 태도가 문제일 뿐이다. 시인에게 안녕이라는 선언이 시작인지 끝인지 알 수 없으나 나에게는 희망없는 메아리처럼 메마르다.

  때때로 시를 읽다가 답답하거나 허무할 때가 있거든 시인이 아니라 내 잘못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내가 시를 버릴 수 없는 이유다. 하늘이 높고 바람이 푸른 하루다.

고속도로 위에서

우리는 안녕, 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일은 가운데서 만나자,
껌처럼 늘어지는 불빛들을 눈으로 가리며
너는 입술이 삐뚤어지게 웃는다
네 머리칼을 날리며 지나가는 차들의 광속 너머로
붉은 머리를 치켜든 라이트 사이로
너는 뛰어간다
네게는 무대도 코러스도 없다
등을 구부렸다 곧게 펴고서 너는 곧잘
평균대 위에서 선 아이처럼 팔을 벌린다
바람은 너의 냄새를 흩어버린다
네 맥박이 뛸 때만 너는 움직인다
우리는 안녕, 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네 발목은 금방 잡힐 것만 같다
아무 데로도 가지 않는

07042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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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23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흩날리는 꽃잎들이 떠오릅니다.

sceptic 2007-04-26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흩날리는 꽃잎보다 노을진 나무가 제 정서에는 와 닿습니다.
 
빠꾸와 오라이 - 황대권의 우리말 속 일본말 여행
황대권 글.그림 / 시골생활(도솔)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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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톱이 길다며 쓰미끼리를 가져오라고 하시던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25년 전 외삼촌을 따라 이민을 가신 외할머니는 이제 80이 넘으셨다. 어린 시절 일본어를 배우셨고 인생의 황혼무렵에 영어 때문에 고생하실 외할머니의 고달픈 언어 생활을 돌이켜보는 일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굴곡진 한국사의 일부분이다. 컵을 ‘고뿌’라고 하시고 접시를 ‘사라’라고 하시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까마득하다. 물론 우리들 주변에서 지금도 그런 말들이 쓰이고 있기는 하다.

  부모님 세대의 끝자락 쯤에서 일제 시대에 초등 교육을 받았던 분들의 기억과 언어 습관에 남아 있는 일본말 뿐만이 아니라 왜곡되고 변형된 형태로 남아 있는 일본어는 아직도 생활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공사 현장이나 당구장 등 일제 강점기에 새로 생겨난 물건이나 제도에 대한 용어들은 쉽게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야끼만두’를 시켜 먹고 ‘우와기’나 ‘가다마이’의 준말인 ‘마이’를 입고 생활하는 것은 분명 한국인이다. 정말 고치기 어려운 것이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황대권의 <빠꾸와 오라이>는 우리말에 남아 있는 일본어에 대한 철저한 확인과 분석 작업이다. 93년 1월말부터 5월까지 대략 4개월간 1만페이지가 넘는 일본어 사전을 뒤적이며 우리말에 남아 있는 일본어의 흔적과 어원을 찾아내는 일은 황대권의 영어생활 때문에 가능했겠다.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언어 생활에 대한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은 우리말에 녹아 있는 부끄러운 자화상을 그려보는 일이었을 것이다. 사실 말이라는 것이 떠오르는대로, 입에서 나오는대로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게 생활 곳곳에 깊게 자리잡은 말들을 고쳐나가는 것도 의식적인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국어 순화나 일본어의 잔재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나른한 봄 햇살을 받으며 사전을 뒤적이고 우리말에 녹아 있는 일본어에 대해 확인하는 게으른 풍경이 떠오를 정도로 그저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재미있게 그것들을 추억하고 있다. 엽서를 통해 여동생에게 이 글들을 전했고 그것들을 모아 출판한 책이니 감옥으로부터 전해진 엽서의 내용들이 하나의 주제로 묶인 책이다.

  일본어를 확인하고 어원을 찾아가는 방식이 유년 시절의 추억과 가족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정감 넘치는 60년대의 풍경과 언어 생활을 먼저 보여주고 저자의 일기장이나 에피소드를 통해 일본어가 사용된 예를 들어주니 독자들 입장에서는 수필을 읽어나가는 느낌이 든다. 같은 얘기를 하더라도 이야기하는 방식과 태도에 따라 듣는 사람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50대 이상 나이를 먹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유년 시절의 추억을 길어 올리는 흑백 필름의 역할을 해 줄 것이다. 그 속에 우리가 알지 못하고 사용했던 일본말들을 확인하고 돌이켜보는 작업은 의미 있는 일이다. 35년간 일본의 억압적인 식민지 통치 아래 생활했고 해방후 6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일본의 말과 문화의 영향은 여전하다. 세대가 달라지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차 사라지겠지만 국적 불명의 어휘들은 정확하게 그 뜻과 어원을 알고 사용하거나 정리하거나 해야 할 것이다.

  과거사 문제와 상관없이 청소년들에게 일본 문화는 매력적인가 보다. 대중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위해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일본인이 가진 정신과 생활 태도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일본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를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 대한 국민 정서나 감정은 논외로 하더라도 한 나라의 말과 글은 그 나라 사람들의 정신을 반영한다. 맑고 깨끗한 언어는 민족주의나 국수주의의 논란을 넘어선 자리에 있다고 믿는다. 내가 사용하는 말과 글에 대한 관심과 반성은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감옥에서의 추억과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 책을 펴냈을 저자나 출판사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우리말과 관련된 책들 속에 묻혀 갈 책일 수도 있겠다. 정확한 우리말과 글을 사용하기 위해서 일상속의 일본말을 확인하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접근 방법도 좋지 않을까 싶다. 기억과 학습이 경험과 결합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테니까.


07042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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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4-20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리뷰를 늘 기다리는 분 중에 한분이 인식의 힘님이랍니다. 매번 읽은 기회를 제공해 주시니 이 기쁨을 어찌 전해드려야할지....... 감사합니다.

sceptic 2007-04-23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럽습니다. 사적으로 끄적이는 글을 읽고 덕담 나눠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봄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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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과 서양의 구분과 영역은 명확하지 않다. 굳이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빌려오지 않더라도 동양은 서구 중심의 용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유럽에서 볼 때 우리는 동쪽에 위치한 중동을 포함해서 일본까지 모두 동양이 된다.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유럽과 미국은 물론 서양이 된다. 방향은 기준에 따라 달라지지만 일반적인 용어로 굳어졌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언어는 많은 것을 규정한다.

  미국인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는 동양과 서양이라고 하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정작 동양의 모태가 되었던 중동, 즉 이슬람 문화권은 빠져있다. 어쨌든 곁가지를 모두 잘라내고 나면 이 책에서 말하는 동양은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이 양념으로 들어간다. 서양은 유럽을 포함한 미국을 지칭한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통상적인 방법으로 구분한 동양과 서양을 들여다보는 일도 의미가 있을까하는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 이 책에 대한 첫 번째 느낌이다.

  그러나 기준과 전제가 불문명하고 쉽게 동의할 수 없지만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명쾌하고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 심리학자들의 실제 실험들이 얼마나 객관적이고 설득력이 있는지 따져볼 필요는 없다. 세상에는 수많은 경우가 수가 존재하고 실험의 목적과 과정 자체가 완벽하게 객관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의 인식 상태와 사고 구조에서 객관이라는 용어 자체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주관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객관성을 위한 노력들과 서로 상반된 두 개의 관점을 인정할 만하는 것이다. 2004년 4월에 나온 책을 2007년 1월에 22쇄를 찍었으니 엄청나게 팔렸다.

  많이 팔리기 위해서는 적당한 분량과 흥미 있는 내용, 간결하고 쉬운 문장 등의 요소를 갖춰야 한다. <생각의 지도>는 이런 조건들을 잘 갖추고 있다. 특히 동양과 서양을 비교하는 중심에 ‘사람’을 놓았다. 사람들의 생각과 심리적 차이는 독자들에게 매력적인 텍스트가 된다. 더구나 저자인 니스벳 교수에게 지도받은 역자 최인철은 사회심리학자로서 전문가답게 적절하고 쉬운 설명으로 번역한 책이 지니는 어색한 문장이나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들을 잘 다듬어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동양(사람)은 도를 중시하고 더불어 사는 삶과 전체를 보는 시야, 상황론, 동사와 경험을 중심으로 한다. 이에 반해 서양은 삼단 논법을 중시하고 홀로 사는 삶, 부분을 보는 시각, 본성론, 명사와 논리를 중심에 놓고 있다. 이 책은 8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이것들을 각각 비교하고 실제 실험을 통한 결과들을 제시함으로써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마지막에 동양과 서양에서 벌어지는 사고 방식의 차이는 어디에서 기원하는지, 그리고 누가 옳은 것인지에 대해 필자의 견해가 덧붙혀져 있다.

  컵은 옆에서 보면 사각형 위에서 보면 원형이다. 하나의 사물이나 사건을 놓고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이나 프랑스 영화 <라 빠르망> 등 영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법 중의 하나인 서로 다른 관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과 위치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동양과 서양이라는 문화의 지도는 정확하게 칼로 잘라 낼 수 없다. 하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서 사람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입견의 벽은 무섭다. 그러나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접근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사소한 것이 큰 차이를 만든다. 항상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화법의 주인공들에게도 유효한 책이다. 동서양의 차이나 문화의 다양성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에 대한 교훈까지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가볍게 그러나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 권해줄만한 <생각의 지도>는 당연하게 여기는 통념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기도 하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차별과 평등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늘 우리들 주변에 자리잡고 있다.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아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알고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이야기가 된다.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와 장애인과 노숙인과 동성애와 여성과 양심적 병역 거부자와 북한과 심지어 가난한 사람들까지도 서양이 동양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070417-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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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수 2007-04-18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읽은 책인데 멋지게 쓰신 리뷰를 보니 반갑습니다.
22쇄의 힘에는 분명 대학교재의 공이 크겠지만 22쇄 찍힐 만큼 많은 사람이
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짱꿀라 2007-04-18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얾음장수님처럼 저도 잘 읽고 갑니다. 저 또한 읽은 책인데 많은 도움을 받았답니다.

sceptic 2007-04-20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음장수님이나 santaclausly처럼 제게도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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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케 <두이노의 비가>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다.’는 글에서 제목을 빌려왔다는 은희경의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그의 소설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된다. 겉으로 드러난 외모의 아름다움과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미적 쾌감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아름다움’이라고 통칭되는 것들에 내재한 감각적 흥분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본능에 가까운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다만 그것이 인생에 적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에 대해 우리는 늘 안타깝게 수런거린다. 창밖의 빗소리처럼 들릴듯 말듯 속삭이는 생의 이면들에 대해 하늘의 별처럼 명료한 목표와 동경이 없어도 우리는 걷는다. 그 비루한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므로.

  시간의 누적으로 쌓여온 단편들을 묶어내는 일이 소설가에게 쉼표와 같다면 독자들에게는 시대와 세월의 나이테를 들여다 보는 일과 같다. 은희경의 소설은 아름다움으로 빛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 낯설고 허무한 생의 간극들을 확대경처럼 보여줄 뿐이다. 냉소적이거나 비관적이지 않으면서 긍정과 희망의 웃음을 함부로 흘리지도 않는다. 소설의 한 구절을 인용해서 한 권의 소설집에 나타난 특징들을 살펴볼 수는 없다. 시처럼 소설도 결국 독자들마다 다가오는 느낌이 다르고 마음의 결마다 묻어나는 향기가 다른 법이기 때문이다. 단편 ‘고독의 발견’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익숙한 목소리를 낸다.

언제부터 그랬던 걸까. 그때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언제부터인가 내 곁에서 나만 모르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언제부터일까. 나는 언제부터 이들 사이에서 제외되어 있었을까. -  P. 63

  누구나 하고 싶은 말들을 작가가 대신 토해낼 때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울컥했던 마음들이 정화되거나 확인되지 않았던 감정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은희경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아가는 것 같은 사람들의 빈 곳을 보여준다. 문장은 수려하지만 화려하지 않고 목소리는 높지 않으나 강건하다. 의심을 찬양하거나 고독을 발견하는 일은 일상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독자들의 입장에서 ‘의심’과 ‘고독’을 즐길 만큼 미학적인 사람은 많지 않다. 생활인과 소설가는 그만큼의 간격을 벌리고 서서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몸이 계급인 현대 사회에서 다이어트와 기아飢餓는 공존한다. 지구 한 구석에서는 10세 미만의 아이들이 5초에 한 명씩 굶주려 죽어가지만 또 다른 현생 인류는 몸에서 살을 제거하기 위해 가히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 있다. 단지 아름다움을 위해 목숨 걸고 살을 빼는 사람들과 구별되는 주인공의 행위도 결국에는 현대인의 모호한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으로 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결국 나를 멸시한다. 내가 아름다움을 멸시할 수는 없으므로.

  날씨와 생활은 은희경의 소설과 함께 도착한 오디오북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이다. B라는 소녀의 엉뚱한 상상을 시작으로 한 성장소설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우리들 삶이 보여주는 부조리에 관한 보고서이다. 차안에서 들려오는 차분한 성우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은희경의 소설은 라디오의 단막극처럼 건조하게 들렸다. 처음 접해보는 오디오북이 내게는 모래바람처럼 귀가에 맴돌았고 운전하는 내내 머릿속만 울리다 돌아 나가버렸다. 나는 듣는 체질이 아니라 읽어야만 하는 활자 중독증 환자다.

  활자에 중독되었든 지도에 중독되었든 현실을 견디는 비법을 누구나 한가지 쯤 지니고 있다. 현실 밖에서 곰을 만나는 일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를 여행할 확률만큼이나 낮다. 그 확률에 기대어 소설을 쓴다는 것은 상황의 우연성이 상징하는 현실의 우발성은 아닐까. 반복적이고 비루한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용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밖의 것들에 대한 모호함 때문이다. 불확실한 미래만큼 잡히지 않는 투명한 막들에 둘러쌓인 상상계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그랬을 것이다.
 
  현실계를 벗어나 상상 속의 먼 우주를 유영하는 유리 가가린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것은 우주 밖에 떠도는 우리들의 꿈에 대한 환멸이 아니라 현실 속의 암흑을 떠도는 나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특별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나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소설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삶은 그런 식으로 비루하게 이어지는 거고, 우리는 아버지들의 위선 속에 세상을 배우는 거잖아.(108페이지)’라고 툭 던지는 한 마디 속에 유리 가가린의 꿈은 좌절하고 만다. 그 두려움과 상상할 수 없는 영원 속으로 떠나고 싶게 하는 것은 신형철의 해설처럼 은희경의 소설이 아름답고, 낯설고, 허망하기 때문이다.


070415-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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