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인간적인 삶
김우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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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인 빛은 모든 것을 어둡게 한다.’는 하이데거의 말은 이미 반세기 전의 진단이지만, 모든 사실과 언어가 대중 매체의 언어 조작이 되어버린 오늘에 특히 맞는 말일 것이다. 무세계의 어두운 시대는 오늘도 계속된다고 할 수밖에 없다. - P. 36

  김수영의 영원한 시적 탐구가 ‘자유’로 귀결된다면, 지금은 사람들의 삶이 자유로워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으로 지칭해도 좋을 김우창의 <자유와 인간적인 삶>은 깊은 ‘자유’에 대한 철학적 사색과 현실적인 삶에 대한 고민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한 시대나 세대를 대표하며 생의 정리 단계에서 쏟아내는 감성과 이성 그리고 심미적 세계에 대한 선생의 발언들은 문장 하나하나가 쉽게 읽히지 않는다. 문장의 내적 긴장과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 고리에 팽팽한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고 있으며 전체가 단단하게 구조화되어 있다. 특히 마지막 3부 심미적 질서 부분이 그러하다. 1부에서는 무세계의 세계성에 대해 2부에서는 적극적 자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이 부분들이 책의 핵심적 사유를 드러낸다. 심미적 질서는 쉴러의 저작과 사상에 대한 해석들이고 선생 자신의 생각들이 교차되고 있지만 세상의 질서에 대한 미적 기준과 역할들을 꼼꼼하게 짚어주고 있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나누어 적극적 자유 의지를 실현하는 개인적, 사회적 역할과 의미를 다루는 부분에 핵심적인 내용이 숨어 있다. 자유를 위한 투쟁은 목표를 위한 투쟁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목표를 이룩하기 위해 상황과 환경을 만들어 가는 투쟁에 불과하다. 철학과 역사에서 이야기하는 자유에 대한 의미가 조금 다르게 보일 수 있지만 저자의 선언은 조용하고도 분명하다.

인간의 역사는 자유를 향한 진보의 역사이다. 이 역사 발전에서 도덕은 매우 착잡한 현실적 연관을 가지면서 나타나게 된다. 도덕은 너무 쉽게 왜곡되어, 인간의 자유에 대한 외적 구속으로 작용한다. 그 왜곡은 그 자체의 속성보다도 현실 상황으로 인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 P. 123

법이나 도덕을 외면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종교에서 신적인 것을 성스러운 것이라기보다 힘으로써,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 P. 123


  법과 도덕과 자유에 관한 개인의 생각과 태도는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이 외연적 요소들이 왜곡되고 뒤틀려서 개인과 사회에 미쳤던 해악과 위험들에 대해 우리는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소홀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입장에서 과연 신자유주의와 매스미디어와 자본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러시아의 수학자 페렐만의 삶을 예로 들어 자유와 현대인의 삶을 반추하고 있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수학적 난제를 해결하여 수백만 달러의 상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인터넷에 풀이과정을 공개하고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메달 수상을 거부했으며 돈과 명예가 보장된 직위들을 모두 거부한 채 어머니를 모시고 등산을 하며 버섯을 따는 일이 하겠다는 페렐만을 단순히 이 시대의 기인으로만 여길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과연 공적인 빛은 모든 것을 어둡게 하는 것인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당장 오늘 하루와 내일에 대한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한 상황에서 자유의 의미를 묻는 것은 배부른 유행가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인간적인 삶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은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숙명이 아닌가 싶다.

  ‘사람은 자유 속에 태어나지만, 어디에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는 말로 루소는 <사회계약론>을 시작한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선언인지도 모른다. 과연 ‘자유’란 무엇이며 저자의 말대로 ‘진실 안에 산다’는 말이 그렇게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인가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내 몸에 묶인 사슬을 끊고 진실 안에 살 수 있는 삶은 스스로의 노력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할 사회의 중심적 가치가 아닌가?


070809-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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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탄생 -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박종성 옮김 / 에코의서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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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모든 것들이 엉망이 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이반 일리히는 <학교없는 사회>에서 “학교제도는 기회를 평등하게 한 것이 아니라 기회의 배분을 독점하고 말았다”고 선언했다. 살아가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사회성을 기르기 시작하는 첫 걸음을 학교라는 체제에서 출발하게 된 것은 당연히 근대적 사회 제도 안에서 받아들여야만 했다. 반성적인 성찰 없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생각하는 방법과 틀조차 정형화 규격화되어 버린다. 자본과 권력에 좀 더 쉽게 접근하기 위한 지름길을 모색하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몸부림은 끊임없이 사유의 폭을 좁히고 닫힌 세계 속으로 개인을 몰아간다.

  생각이라는 것은 가정에서 혹은 학교에서 만들어질 수 없다. 역설적으로 어느 곳에서든 만들어지는 것이며 일회적이지도 순간적이지 않다. 모든 곳에서 지속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변화를 일으킨다. 기본적인 사고의 방향과 틀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가치관과 세계관이 형성된다. 성장기에 굳어진 생각들이 끊임없이 외부적인 요소나 조건에 따라 흔들리기도 하고 변화 발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하는 힘과 방법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특히 창조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처절한 몸부림으로도 얻기 힘들어 질 수 있는 것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초상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아니 인정받을 수 없는 학교 제도에 묶여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와 판단이 옳다고 굳게 믿는 교사들에 의해 강요받은 생각과 전쟁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방법을 세뇌당하는 사람들의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지나치게 부정적인 판단일 수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이런 상황들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많지 않다. 공부와 공부를 거듭하여 실업계나 인문계를 결정하고 점수에 맞춰 전공을 선택하고 죽기 살기로 취업에 목숨 걸거나 시험에 도전하고 안정된 직장과 높은 연봉을 꿈꾼다. 자본과 권력을 향해 부나방처럼 몰려가지만 그 끝은 허망하기만 하다.

  <꽃들에게 희망을>의 책장을 넘기다가 문득 떠오르는 자신의 모습처럼 우리의 삶은 지향을 잃고 맹목적으로 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연 ‘생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루트번스타인 부부의 <생각의 탄생>은 ‘창조적 사고’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삶의 목적과 방향을 설정하고 나와 세계를 고민하는 사유로서의 생각은 아니다. ‘창조성’에 찍힌 방점은 책의 마지막까지 지워지지 않는다. 21세기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대와 세대를 넘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생각의 능력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추상적인 것 같지만 자세히 읽다보면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면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생각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도구라는 표현을 썼지만 창조성을 발휘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열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이 그것이다. 단순한 사고 기능이나 창조성을 돕기 위한 방법들의 나열은 아니다. 계통적으로 체계화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관찰로 시작해서 마지막 통합에 이르기까지 학문과 예술 등 인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거나 천재적 창조성을 보여준 사람들의 실증적인 예가 중심이 된다. 각각의 능력이나 방법들이 왜 중요하며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될 수 있는지 설명하고 그 분야에서 탁월한 정신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의 말을 인용해서 근거를 갖추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그림이나 도표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재미있게 읽어 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매력은 창조적 사고와 통합적 이해라는 능력의 상관관계를 잘 풀어내고 있다는 데 있다. 부분의 합이 전체는 아니지만 ‘통합’이라는 관점에서 모든 것들을 유기적으로 엮어내는 방법도 창조성을 위해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과정과 절차를 설명하고 개별적인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마지막에 이 모든 것을 위한 ‘통합’의 과정으로 이끌어내는 방법은 한 권의 책을 완결성 있게 만들어 준다. 더구나 마지막 장을 ‘전인을 길러내는 통합교육’으로 설정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방법들을 살펴보자.

통합교육에는 여덟 개의 기본목표가 있다. 첫째, 학생들에게 보편적인 창조의 과정을 가르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둘째, 창조과정에 필요한 직관적인 상상의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셋째, 예술과목과 과학과목을 동등한 위치에 놓는 다학문적 교육을 수행해야 한다. 넷째, 혁신을 위해 공통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교과목을 통합해야 한다. 다섯째, 한 과목에서 배운 것을 여러 분야에 응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섯째, 과목 간의 경계를 성공적으로 허문 사람들의 경험을 활용해야 한다. 일곱째, 모든 과목에서 해당 개념들을 다양한 형태로 발표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여덟째, 상상력이 풍부한 만능인을 양성해야 한다. - P. 415

  개인적인 냉소적이고 삐딱하기 때문일까?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가능한 것은 몇 번째 항목일까? 예체능 과목은 내신과 수능에서 제외하려는 움직임과 상황들이 가시화되고 있으며 분과 학문별, 과목별 이기주의는 극단적이다. 당장 없어져야할 ‘교육부’에서도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통합논술’은 ‘통합’ 아니라 과목 간 ‘짬뽕논술’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공교육과정에서 가르치지 못하거나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을 평가하겠다고 공언하는 대학들의 배짱은 언제나 가진 자의 거만함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교육’이 아니라 ‘선발’에 올인하는 기득권 대학들의 행태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침이 마르도록 이 책을 칭찬하는 이어령은 미래 사회의 방향과 목표가 이쪽이어야 한다는 원론만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나아갈 바를 모색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은 누구의 몫일까? 이 책이 지향하는 바와 방법론에 대한 공감과 별개로 암울한 현실이 먼저 고개를 쳐든다. 생각의 도구가 없거나 방법을 모르지 않을 텐데, 이 책에 열광하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모을 수 있는 실천론이 궁금해진다.


070808-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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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인성(wholeness)을 위한 사고의 체계화 "생각의 탄생"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09-25 17:38 
    생각의 탄생 -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박종성 옮김/에코의서재 전반적인 리뷰 2007년 9월 25일 읽은 책이다. 430여페이지의 책이었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떤 특정 분야에 관심을 두지 않고 다방면의 지식을 습득하려고 했던 나였기에 여기서 제시하는 부분들이 가슴에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나 스스로도 어떠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부분을 느끼게 만드는 책이었다. 어찌보면 나도 사고의 틀을 완전히 깨지..
 
 
 
광기와 천재 - 루소에서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고명섭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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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절망해 본 사람들은 모른다. 박제가 된 천재가 바로 당신이라는 사실을. 생물학적 기준으로 높은 IQ와 수학과 과학에 관한 문제 해결 능력이 천재의 조건은 아니다. 삶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광기에 가까운 집념으로 거탑을 쌓은 사람들은 모두 천재라고 불러도 좋겠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사람이나 노력하지 않는데도 높은 성과를 거두는 사람이 천재는 아니다. 주변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모든 수재와 영재와 천재들은 유전적인 요소에 의해 태어난 머리 좋은 바보인 경우도 많다.

  고명섭의 <광기와 천재>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전기 작품 <천재와 광기>에서 제목을 빌려왔다. 하지만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생물학적으로 뛰어난 지능이나 능력의 소유자에 대한 감탄과 경외와는 거리가 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회적 관점에서 주목받았던 인물 탐구에 불과하다. 혹여 그들이 가지고 있었을지 모를 천재성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각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전기와 생의 절정에서 벌어진 상황들을 그들의 성장배경이나 내면의 풍경들을 되짚어 보는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아돌프 히틀러, 세르게이 네자예프, 조제프 푸셰는 정치인으로 장-자크 루소, 나쓰메 소세키, 프란츠 카프카는 작가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마르틴 하이데거, 미셸 푸코는 철학자로 묶었다. 전체 9명의 천재 아닌 천재들에 대한 이야기는 담박하다. 기자인 저자가 직업의식에 투철하게 객관성과 공공성을 담보로 쓴 책은 아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감상적이지도 않고 해석의 과잉이 없다. 비교적 객관적인 사실들을 나열하고 해석하며 감각적인 문장으로 그들을 평가한다. 어떤 책도 객관적일 수 없다. 다만 저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풍경일 뿐이고 그의 설득력과 목소리를 독자가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느냐에 문제만 남는다고 본다면 고명섭의 이야기는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지식의 발견>을 통해 나는 고명섭을 발견했다. 녹녹치 않은 독서와 꼼꼼한 내공은 이 책을 통해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단순하게 천재성을 발휘한 사람들에 대한 특징을 나열하거나 보통 사람들과 다른 부분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거나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이 아니다. 9명 모두 그들이 살아내야 했던 시대와 상황을 예견할 줄 알았던 혜안과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세르게이 네차예프의 이야기가 특히 흥미로웠으며 동성애자였던 푸코의 삶이 그의 사상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할 수 있었으며 나치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하이데거의 행적들은 씁쓸했다. 히틀러나 카프카, 비트겐슈타인의 경우는 다른 책이나 밝혀진 사실들에 대한 정리와 해석일 뿐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이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일 수 있었던 것은 ‘광기’일 것이다. 태생적인 성격이 아니라 생의 어떤 순간, 선택의 시점에서 보여준 무모한 혹은 냉정한 판단과 추친력은 이 책의 성격을 보여준다. 극한 상황까지 자신을 밀어 올리며 내면의 욕망과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그대로 한 편의 영화처럼 역동적이다. 유럽 역사의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히틀러나 신경쇠약에 가까울 정도의 감수성과 내면의 풍경을 보여주었던 소세키는 그 영향력 면에서 비교될 수 없다. 하지만 상반된 인물들이 가진 성장 과정과 갈등 상황을 풀어 나가는 방식들은 우리가 단순히 천재 혹은 천재성을 지닌 인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광기는 천재성의 발현이며 천재는 광기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 소개된 9명이 인류의 역사에서 주목받아 마땅한 천재들이 아닐 수도 있다. 물론 그 밖에 더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나 훨씬 더 중요한 학문적 성과를 이룩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책 제목에서 밝히고 있듯이 ‘광기’는 불행한 의식이다. 끊임없는 모험과 투쟁을 통해 자신을 이겨냈거나 그 능력의 한계치를 확인한 사람들의 내면은 외롭고 쓸쓸했다.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욕망의 극한을 확인하거나 절망의 바닥을 보여주거나 때로는 작은 희망을 보여주었던 우울한 천재들의 모습은 우리 인류가 걸어온 길에서 만난 특별함으로 기억될 것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천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그 천재성을 길어 올리고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광기에 가까운 치열함으로 즐길 수 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에게 혹은 우리 모두에게 그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일은 지루하고 고통스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확인하고도 외면했기 때문에 버려진 천재성이 훨씬 더 많은 곳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070807-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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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4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eptic 2007-10-02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퍽퍽한 건 내용때문인것 같고...뭔가 부족한 것에 대한 느낌은 있는데 새롭고 신선한 것이 아니라...기존의 것들에 대한 재해석과 관점의 차이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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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위기는 ‘요즘 애들 큰일이다’처럼 식상한 우려와 시대마다 반복되는 장난일 뿐일까?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작가들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대중성을 확보했다고 해서 소위 말하는 훌륭한 작가라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대중매체를 통해 엄청난 광고와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책을 파는데 열중하는 출판사를 믿을 수는 없다. 2010년쯤 되면 또다시 지난 10년간의 문학적 성과와 문학계를 정리하는 특집들이 계간지에서 마련될 것이고 그 흐름을 주도했던 순간들은 과거의 기억 속에서 더듬거리는 작품들이 될 것이다.

  세태를 반영했던 수많은 소설들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가 어떠했든 정이현의 <오늘의 거짓말>은 <낭만적 사랑과 사회>만큼 별 볼일 없다. 80년대에서 90년대 등장한 여성 소설가들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저마다 날선 칼날과 비판적 시각이 있었으며 부드러운 감수성과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여류’라는 수식어 자체가 주는 차별적 시각을 불식시켰고 문학적 성과는 그저 작가의 입장에서 정리되기에 이르렀다.

  소설이 단순히 독자 개인의 취향에서 오호를 논하고 내용이나 형식을 지껄이는 것으로 치부된다면 독자의 반응은 물론 다양하게 살필 필요도 없다. 하지만 가볍고 무거움을 떠나 소설이 주는 진정성은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독자에게 오해될 소지가 충분하다. 정이현의 소설들은 동시대인의 초상들을 전면에 배치한다. 하지만 전형성은 상실되고 오히혀 밋밋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가득하다.

  작가의 장점이라면 세태를 읽어내는 감각과 현재성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모습들 속에서 잊혀 질 수 있거나 스치기 쉬운 부분들을 단면을 적절하게 제시한다. 그것에 대한 쓸데없는 진지함과 지나친 감상을 걷어낸다. 때때로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은 독자들을 편안하게 하고 냉소와 허무에 가까운 시선들은 인물이나 사건들을 뒤집고 비튼다. 하지만, ‘어금니’의 화자나 ‘위험한 독신녀’의 채린 같은 인물들은 굳이 이 시대를 대표하지도 특별한 감동도 가질 수 없는 평범한 소품처럼 보인다.

  전면에 배치된 ‘타인의 고독’, ‘오늘의 거짓말’, ‘비밀과외’ 등은 전작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두 번째 소설집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제 자리를 맴돌고 있으며 다음에 대한 기대와 흥분을 일으키지 못한다. ‘삼풍백화점’이나 ‘익명의 당신에게’ 그리고 ‘어두워지기 전에’는 소재의 특별함이나 접근 방식이 독특해서 눈에 띠긴 하지만 긴장감도 없고 여운도 남지 않는다. 단막극 드라마나 방송 작가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충분히 갖춘 작가의 단편들은 소설이 주는 특별함을 찾을 수 없어 난감했다.

  가벼움과 무거움, 냉정함과 강렬함이 부족하고 전복적이지도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지도 않는 소설이 이제 재미없어지는 것은 개인적인 성향의 변화인지 소설 장르의 위기인지 알 수 없으나 좀 더 자극적이고 재밌는 소설을 기다리는 독자들의 이기적 욕망은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것이 설령 나 만의 욕망일지라도.

070803-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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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03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핫!
달콤한 나의 도시를 읽고는 이거 정말 아니구나 싶어서
읽기를 보류하고 있었습니다.
정이현 작가에 대해 뭔가 과대평가가 있는 걸까요? :)
잘 읽었습니다 ^^

프레이야 2007-08-03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작가의 작품을 읽지 않았지만 대개의 리뷰들은 호평이더군요.
님의 날카로운 비평이 좋은 채찍질이 될 것 같아요. 추천합니다.

sceptic 2007-08-07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고양이님, 혜경님 주관적인 평가와 해석이니 다른 사람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겠지만...저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오월의시 2007-08-12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난 느낌이 저와 다르지만, 그래도 이 리뷰, 정말 잘 봤습니다.^^ 추천하고 갑니다.
 
여럿이 함께 - 다섯 지식인이 말하는 소통과 공존의 해법
신영복 외 지음, 프레시안 엮음 / 프레시안북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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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의 역할과 태도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이 땅에 참언론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답은 각기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피상적이고 원론적인 수준에서 언론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요구하는 독자들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어찌 보면 모든 언론에서 ‘객관성’이 가능한가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하나의 관점은 하나의 태도이다. 편향된 관점의 언론이 사람들의 눈과 입을 대변한다면 건전한 비판 기능과 다양한 시선들은 사라지게 된다.

  시장점유율과 언론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소위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 언론의 태도와 입장은 정치권력과 사회현상에 대해 일관성 있는 입장을 표명하지 못한다는데 가장 큰 문제점이 있다. 특정 집단이나 사회적 소수자가 아닌 소수 기득권의 이익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역할을 부끄럼 없이 자임하고 나선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 언론을 통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계급과 입장과 상반된 태도와 의견을 마치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착각한다.

  우민화된 대중은 다중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사회를 보는 눈과 귀가 흐려진다. 사회 변혁의 힘과 추동력은 하나로 결집되지 못하고 그들만의 리그가 반복된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면서도 자신의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본의 힘에 기대어 한미FTA나 경제성장만이 나의 생활을 개선해 줄 거라는 막연한 환상을 품는다.

  인터넷은 탈근대를 향한 마지막 비상구가 될지도 모른다. 종이신문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고 정보의 제공과 분석 능력은 독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터넷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여론의 형성과 독자들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실천되고 끊임없이 고민되어야 마땅하다. 오마이뉴스나 프FP시안과 같은 매체의 등장은 새로운 대안 언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나가고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하며 우리가가 믿고 있는 세상에 대한 시선을 교정해 줄 필요가 있다. 판단은 물론 독자의 몫이 될 것이다.

  한겨레는 출판을 겸하고 있다. 프러시안도 출판을 선언했다. 그 첫 번째 책으로 출판된 <여럿이함께>는 창간 5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시대의 지식인 다섯 명의 특강을 정리했다. 신영복, 김종철, 최장집, 박원순, 백낙청이 그들이다. 이들이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우리 사회가 나갈 방향과 미래 삶의 지표들을 올바로 제시하고 있다는 믿음 또한 순진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비판적 관점에서 미처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나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부분들에 대한 성찰을 통해 독자들의 눈을 열어줄 수 있는 실마리는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매년 봄에 한겨레 창간 10주년을 기념하면서 매년 특강을 책으로 묶어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 <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을 펴냈다. <여럿이 함께>도 프레시안의 창간 5주년과 함께 독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나섰다. 진보와 개혁의 이름으로 우리 사회의 변화와 대안을 제시하는 이들의 말과 행동은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보다 큰 진폭을 가질 수 있는 파괴력을 지녀야 한다.

  대립과 갈등의 시대에 진정한 ‘소통’에 방점을 찍은 신영복, 한미FTA의 대한 반론을 제기하며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김종철, 민주화 운동이 현실적인 ‘정치’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최장집, 시민운동을 블루오션이라고 주장하는 박원순, 한반도 통일의 해법을 제시하는 백낙청의 목소리는 저마다 큰 울림과 공감을 이끌어 낸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실과 진실 사이를 가로지르는 눈과 귀를 열어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섯 명의 대표적 지식인의 몫이 아니라 그것은 우리들 모두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이 시대를 살아내는 힘은 우리에게서 나온다. 정치와 권력을 목적으로 자본의 힘과 본질을 호도하는 신문이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전해줄 수 있는 언론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한 권의 책이 주는 힘은 1년치 신문에서 발견하지 못한 인식의 힘과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대중의 눈과 귀를 씻어주고 미래의 삶에 대한 전망과 현실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갖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과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철저하게 개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아니라 <여럿이함께> 나아갈 수 있는 여유과 자세를 바라보게 해야 한다. 그것이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방법이며 삶의 목표가 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럿이함께> 걷다 보면 길은 그 뒤에 생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과거가 우리에게 제언한 유일한 교훈이다. 미래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할 시공간들이기 때문이다.


070802-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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