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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탄생 -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박종성 옮김 / 에코의서재 / 2007년 5월
평점 :
아마도,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모든 것들이 엉망이 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이반 일리히는 <학교없는 사회>에서 “학교제도는 기회를 평등하게 한 것이 아니라 기회의 배분을 독점하고 말았다”고 선언했다. 살아가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사회성을 기르기 시작하는 첫 걸음을 학교라는 체제에서 출발하게 된 것은 당연히 근대적 사회 제도 안에서 받아들여야만 했다. 반성적인 성찰 없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생각하는 방법과 틀조차 정형화 규격화되어 버린다. 자본과 권력에 좀 더 쉽게 접근하기 위한 지름길을 모색하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몸부림은 끊임없이 사유의 폭을 좁히고 닫힌 세계 속으로 개인을 몰아간다.
생각이라는 것은 가정에서 혹은 학교에서 만들어질 수 없다. 역설적으로 어느 곳에서든 만들어지는 것이며 일회적이지도 순간적이지 않다. 모든 곳에서 지속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변화를 일으킨다. 기본적인 사고의 방향과 틀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가치관과 세계관이 형성된다. 성장기에 굳어진 생각들이 끊임없이 외부적인 요소나 조건에 따라 흔들리기도 하고 변화 발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하는 힘과 방법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특히 창조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처절한 몸부림으로도 얻기 힘들어 질 수 있는 것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초상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아니 인정받을 수 없는 학교 제도에 묶여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와 판단이 옳다고 굳게 믿는 교사들에 의해 강요받은 생각과 전쟁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방법을 세뇌당하는 사람들의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지나치게 부정적인 판단일 수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이런 상황들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많지 않다. 공부와 공부를 거듭하여 실업계나 인문계를 결정하고 점수에 맞춰 전공을 선택하고 죽기 살기로 취업에 목숨 걸거나 시험에 도전하고 안정된 직장과 높은 연봉을 꿈꾼다. 자본과 권력을 향해 부나방처럼 몰려가지만 그 끝은 허망하기만 하다.
<꽃들에게 희망을>의 책장을 넘기다가 문득 떠오르는 자신의 모습처럼 우리의 삶은 지향을 잃고 맹목적으로 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연 ‘생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루트번스타인 부부의 <생각의 탄생>은 ‘창조적 사고’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삶의 목적과 방향을 설정하고 나와 세계를 고민하는 사유로서의 생각은 아니다. ‘창조성’에 찍힌 방점은 책의 마지막까지 지워지지 않는다. 21세기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대와 세대를 넘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생각의 능력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추상적인 것 같지만 자세히 읽다보면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면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생각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도구라는 표현을 썼지만 창조성을 발휘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열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이 그것이다. 단순한 사고 기능이나 창조성을 돕기 위한 방법들의 나열은 아니다. 계통적으로 체계화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관찰로 시작해서 마지막 통합에 이르기까지 학문과 예술 등 인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거나 천재적 창조성을 보여준 사람들의 실증적인 예가 중심이 된다. 각각의 능력이나 방법들이 왜 중요하며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될 수 있는지 설명하고 그 분야에서 탁월한 정신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의 말을 인용해서 근거를 갖추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그림이나 도표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재미있게 읽어 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매력은 창조적 사고와 통합적 이해라는 능력의 상관관계를 잘 풀어내고 있다는 데 있다. 부분의 합이 전체는 아니지만 ‘통합’이라는 관점에서 모든 것들을 유기적으로 엮어내는 방법도 창조성을 위해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과정과 절차를 설명하고 개별적인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마지막에 이 모든 것을 위한 ‘통합’의 과정으로 이끌어내는 방법은 한 권의 책을 완결성 있게 만들어 준다. 더구나 마지막 장을 ‘전인을 길러내는 통합교육’으로 설정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방법들을 살펴보자.
통합교육에는 여덟 개의 기본목표가 있다. 첫째, 학생들에게 보편적인 창조의 과정을 가르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둘째, 창조과정에 필요한 직관적인 상상의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셋째, 예술과목과 과학과목을 동등한 위치에 놓는 다학문적 교육을 수행해야 한다. 넷째, 혁신을 위해 공통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교과목을 통합해야 한다. 다섯째, 한 과목에서 배운 것을 여러 분야에 응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섯째, 과목 간의 경계를 성공적으로 허문 사람들의 경험을 활용해야 한다. 일곱째, 모든 과목에서 해당 개념들을 다양한 형태로 발표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여덟째, 상상력이 풍부한 만능인을 양성해야 한다. - P. 415
개인적인 냉소적이고 삐딱하기 때문일까?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가능한 것은 몇 번째 항목일까? 예체능 과목은 내신과 수능에서 제외하려는 움직임과 상황들이 가시화되고 있으며 분과 학문별, 과목별 이기주의는 극단적이다. 당장 없어져야할 ‘교육부’에서도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통합논술’은 ‘통합’ 아니라 과목 간 ‘짬뽕논술’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공교육과정에서 가르치지 못하거나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을 평가하겠다고 공언하는 대학들의 배짱은 언제나 가진 자의 거만함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교육’이 아니라 ‘선발’에 올인하는 기득권 대학들의 행태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침이 마르도록 이 책을 칭찬하는 이어령은 미래 사회의 방향과 목표가 이쪽이어야 한다는 원론만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나아갈 바를 모색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은 누구의 몫일까? 이 책이 지향하는 바와 방법론에 대한 공감과 별개로 암울한 현실이 먼저 고개를 쳐든다. 생각의 도구가 없거나 방법을 모르지 않을 텐데, 이 책에 열광하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모을 수 있는 실천론이 궁금해진다.
070808-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