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게 한걸음 -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서유미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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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작가는 비평가를 여름날 소 잔등에 달라붙는 파리에 비유했다. 소의 입장에서 보면 귀찮고 짜증나는 무익한 존재라는 뜻이다. 작가와 평론가의 관계는 적당한 긴장과 거리가 필요하다.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독려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 비평이다.

  한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공론의 장에 펼쳐진다. 어떤 의도로 왜 쓰였는지 오로지 작품으로만 말하는 것이 작가의 숙명이다. 평론가가 아닌 일반 독자의 평가는 그래서 더 두려운 법이다. 물론 전문적인 식견이 없거나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작가와 작품을 평가할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독자의 평가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믿을만한 출판사 중 하나인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이란 타이틀을 단 서유미의 소설 <쿨하게 한걸음>을 단숨에 읽었다. 이 작가는 작년에 ‘제5회 문학수첩 작가상’까지 받으며 주목받는 신인으로 떠올랐다.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소설은 고급한 장르가 아니다. 탄생부터 지금까지 그래왔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더 애정과 관심을 갖게 되는 장르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당황스러웠다. 믿을만한 출판사의 책이기도 하거니와 거창한 타이틀까지 붙었으니 지나치게 기대를 한 것은 순전히 내 탓이다. 하지만 읽어나가면서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은 없습니다’라고 하면 안되나?

  서른 셋이라는 나이를 모티브로 출발한 이 소설은 계속해서 서른 셋인 주인공과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서른 셋으로 끝을 낸다. 사실 소설이 특정 나이나 주인공, 혹은 소재나 이야기 측면에서 진부할 수도 있고 더듬거릴 수도 있다. 문제는 감동이다. 가슴으로 전해지는 느낌이 없다면 지적 호기심이나 자만감을 부풀릴 수 있을만큼 포만감을 안겨줘야하는 것은 아닐까?

  나른한 일요일 오후에 할 일 없어 켜놓은 TV의 재방송 단막극 드라마같은 느낌이었다면 작가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것일까? 신산스런 고통의 산물인 작가의 작품을 무참하게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소설을 읽고 나면 입맛이 쓴게 아니라 화가 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애인과 헤어진 주인공 연수는 인수합병 절차를 거치는 회사에 사표를 던진다. 삼심대 싱글의 특권은 그것으로 끝이다. 다니던 대학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다가 공립도서관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대학 동기를 만난다. 오랜 친구들은 조연의 역할을 한다. 네버랜드의 피터 팬에서 웬디가 되어버린 선영과 뒤늦게 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민경과 공부는 못했지만 빼어난 미모로 부자와 결혼한 사촌 연재 등 서른이 아니라 서른 셋이라는 확실한 삼십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이다.

  이십대 청춘의 저쪽에서 환멸스런 현실을 피할 수 없는 나이로 진입하는 서른 셋 친구들의 다양한 모습들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사춘기는 아련한 추억이지만 생의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주인공은 삶은 현실이다. 생에 대한 따뜻한 애정보다 답답한 현실을 견뎌야만 하는 친구들의 모습은 다분히 현실적이다. 영화에 관한 공부를 다시 시작하며 늙어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돌아보고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작가는 일정부분 성공을 거둔 듯하다.

  무언가 기다리는 독자에게 작가는 끝까지 현재 상황과 여러 친구들의 삶을 통한 현실의 지겨움과 밥벌이의 고달픔과 뒤늦은 성장통을 이야기할 뿐이다. 그래서? 도대체 소설에서 무엇을 기대하느냐고? 그것은 가슴 시린 통증과 울림이거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슬픔이거나 미친듯이 킥킥거릴 수 있는 재미이거나 철학적 깨달음을 주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적어도 이 소설에 대한 나만의 느낌이라면 다행이겠다.

  이제 문학상도 출판사도 믿을 수 없는 카라타니 고진의 말을 패러디 하자면 ‘소설의 종언’에 대해 이야기할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극단적인 비유겠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인간은 ‘이야기’ 없이 살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줄 것인가 고민하는 수많은 작가들을 바라보는 독자들의 기다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작가들이여 힘내시라. 여기 언제든 소설에 환장할 준비가 되어 있는 독자가 있으니 말이다. 이기적이지만 그래서 난 될 수 없는 작가보다 언제든 가능한 독자를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08031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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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겉과 속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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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함성.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대학 신입생 시절을 돌이켜 보면 소주와 막걸리 그리고 ‘오월의 노래’보다 이 노래가 먼저 떠오른다. 국민이라는 말에 익숙한 나에게 민중의 이름을 알게 했던 노래였고 이후 민중은 대중이라는 중화된 이름으로 내게 인식된다. 한 단어의 개념을 알고 어휘를 각인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경험적으로 알게 되는 경우와 추상적이고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경우로 대별된다. 국민과 민중과 대중 사이에 어떤 거리감이나 명확한 개념상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경험적인 단어의 의미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엉뚱하게도 <대중문화의 겉과 속 1>의 제목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은 문화가 아니라 대중에 관한 것들이었다. ‘대량 생산·대량 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사람. 엘리트와 상대되는 개념으로, 수동적·감정적·비합리적인 특성을 가진다.’는 사전적 의미가 정확하진 않더라도 대중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대중mass은 한마디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말한다. 특정한 이슈에 대해 의견을 가진 공중public과는 구별된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속에 널리 퍼진 문화 현상을 우리는 대중문화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것은 다양한 시각과 관점에서 접근 가능하지만 대표적으로 미디어에 의한 문화 현상을 다룬 것이 강준만의 <대중문화의 겉과 속 1>이다.

  TV와 광고, 활자매체와 테크놀로지를 중심으로 대중문화 현상들을 소개한 이 책은 벌써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읽으면서 대중문화의 속성상 시의성이 떨어져 지나간 시대를 돌아보는 느낌이었다. 예상 독자를 청소년으로 상정했기 때문에 책장은 신문이나 잡지처럼 스스륵 넘어가고 내용은 분석적이고 비판적이지만 어렵지 않게 설명되어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은 흥미로운 작업이다.

  예를 들어 추억이 되어버린 스포츠 신문 기사와 관련된 분석을 보자. 지금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실시간으로 스캔들이 알려지고 댓글을 통해 대중의 반응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프로야구 시즌이 끝나고 스토브리그가 시작되면 스포츠 신문은 연예인들의 스캔들로 먹고 살아야했다. 대중문화는 그 대상과 주체가 수동적이며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실체가 모호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기체와 유사하다.

  강준만은 청소년과 대중문화를 시작으로 그 용어도 아련한 신세대와 X세대의 특징을 짚어내고 스타와 청소년과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것은 시대와 상관없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분석이다. 오빠부대로 대표되는 청소년과 연예인의 관계는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왜 스타에 열광하는가? 또 스타란 무엇인가? 이것이 경제에 미치는 효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는 사실들은 우리는 애써 외면하거나 쉽게 포기해버린다.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이 책은 대중문화의 표면적 현상들에 감추어진 이면적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다. 현상에 나타난 본질을 이해하는 일은 어떤 사물과 대상을 인식하기 위한 기초적인 단계이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맹목적인 믿음과 가르침에 길들여진 청소년들을 위한 책으로 손색이 없다. 청소년들에게는 세상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텍스트이다. 읽어야 할 것들은 너무 많고 그 독법을 제시하는 책은 거의 없다. 논술 광풍에 휩쓸려 모든 책 앞에는 논술 대비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기 일쑤다. 이제 정시 논술을 보지 않는 대학들이 늘어가고 있으니 어떤 방법을 쓸지 궁금하기도 하다.

  읽을만한 책과 추천할 만한 책은 개인적 성향과 목적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독서 멘토 역할을 하는 것은 그만큼 쉽지 않다. 나의 입장과 그것을 읽어야할 사람의 입장이 다르고 배경지식과 상황과 목적도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책은 추천할 만한 책이다. 어렵지 않으니 책을 좋아하지 않는 청소년도 쉽게 읽을 수 있고, 내용 또한 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주변의 문화 현상들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생각의 힘을 길러주기 위한 좋은 재료가 될 만하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변하면서 인용된 사건과 매체의 역할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대중문화를 움직이는 기본적인 시스템과 대중들의 반응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측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현상 속에 감추어진 이면의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수레바퀴와 작은 톱니바퀴들로 맞물려 돌아가는 듯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시스템 오류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시스템에서 한 순간도 자유로울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작다. 본질을 통찰할 수 있는 인식의 힘을 키워나가는 연습은 바로 지금 시작해야 한다.


080309-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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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트렌드 - 세상의 룰을 바꾸는 특별한 1%의 법칙
마크 펜, 킨니 잘레스니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해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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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모반듯한 틀 속에 모두를 가두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머리가 길면 공부가 안되나?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면 불량한 학생인가? 그것이 왜 그런지도 모른 채,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이 우리는 네모난 상자 속에 맹목적으로 구겨진다. 일정한 규격과 틀, 고정관념과 관습들은 하나의 문화로 굳어질 수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정말 코미디에 불과한 것들이 많다.

  왼손으로 밥을 먹거나 글씨를 쓰다가 혼이 난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까? 아니면 그때 고쳐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며 살아갈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은 창조적 소수에 의해 발전된다. 뛰어난 머리와 창의력이 탁월한 인간을 길러낼 수 있는 교육 제도를 우리는 가지고 있을까? 끊임없는 질문들이 폭풍처럼 밀려온다. 현실은 참담하고 하늘은 높고 바람은 따스해진다.

  ‘세상의 룰을 바꾸는 특별한 1%의 법칙’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마크 펜과 키니 잴리슨의 <마이크로트렌드>는 머지않아 ‘메가트렌드’가 될 것 같다. 우리는 정말 수많은 고정관념에 갇혀 산다. ‘왜’라는 질문대신 지금까지 그래왔다는 말과 전체 속에 안주하고 싶은 욕망이 변화의 의지를 앞선다. 튀고 싶지 않고 손해보고 싶지 않은 이기적 욕망들은 매순간 우리의 생각과 의지를 억누른다. 그렇게 살다보면 내 몸에 맞는 편안한 옷 한 벌을 얻게 된다. 수구 혹은 보수라는 이름의 옷이다. 그것을 선택한 수많은 사람들도 변화의 물결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만 달라질 뿐이다.

  오랬동안 지켜왔던 습관의 벽을 허물고 편견과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굳게 믿어왔던 방향과 목적이 허물어지는 경험은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 작은 변화의 물결에 주목하고 그 물결의 파장과 결과를 예측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 책의 목적이다. 기업 홍보와 리서치, 컨설팅 전문회사를 운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최선 트렌드와 변화를 민감하게 읽어내고 있는 마크 펜과 키니 잴리슨은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필요에 따라 기업을 경영하고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만 필요한 내용은 아니다. 75가지 마이크로 트렌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에게 유효하고도 적절한 내용들이다.

  ‘성비와 싱글족’으로 시작해서 ‘고학력 테러리스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들을 선보이는 이 책은 600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분량과 달리 속도감있는 문장으로 쉽게 읽힌다. 인간관계에서 국제 정세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현실 생활의 면면들 속에서 소수의 변화를 읽어내는 관찰력과 객관적인 설명들은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경우에 따라 경영마인드로 가득 찬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 주관적인 해석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도 눈에 띤다. 하지만 물건을 팔기위한 트렌드에 관심을 가져왔고 선거나 판매 전략을 위한 사람과 세상에 대한 관찰과 분석을 업으로 삼은 사람의 책이기 때문에 그 정도는 눈감아 줄만하다.

  ‘성형수술 애호족’이라는 트렌드에서 한국의 성형열풍이 소개되었고, ‘자동차 시장의 사커맘족’에서 현대가 언급된다. 단 두 번의 사례가 이 책에서 한국이 언급된 것이다. 미국인의 입장에서 국제 상황들을 별첨으로 언급할 정도로 미국 내의 변화뿐 아니라 세계적인 경향과 트렌드를 반영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작은 것’을 잘 들여다 볼 줄 알아야 뭔가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역발상에 관한 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 모든 개인적인 가치와 비즈니스의 원칙들을 점검하기 위한 사람들에게 신선함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재택근무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부산보다 훨씬 먼 거리를 통근하는 사람들, 상류층 문신족, 10대 뜨개질족, 늙은 아빠, 고딩 사업가, 홈스쿨링 등 익숙한 것에서부터 황당한 것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마이크로트렌드로 가득하다. 낡은 사고와 경직된 방법으로 우리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지도 모르는 1%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없다.

  세상은 다양하고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네모난 빵틀이 아니라 손으로 빚어낸 각양각색의 신기한 모양의 과자와 빵들로 가득하다. 이것을 즐기고 음미하면서 또 다른 모양을 생각하고 도전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매일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과 정해진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지도 모른다.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사소한 것들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위해 추천할 만하다.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세상의 변화를 실감하고 싶다면 부담 없이 책장을 열어 볼 수 있는 있겠다. 이 책 한 권이 세상의 트렌드를 변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흐름과 방향을 예견하고 고민해 볼 수 있는 작은 고민거리 하나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기다림,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용기와 지혜가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지겨운 곳인가!


080305-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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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창비시선 284
신경림 지음 / 창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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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은 흐른다. 한 순간도 머물지 않고 모든 순간을 과거로 만들어버리는 시간 앞에 인간은 무력하다. 어떤 사람도 결국 죽을 것이라는 대전제만이 진실인 것 같다. 소년이었을 때 만났던 시인의 새 시집을 열다가 깜짝 놀랐다. 1935년생인 신경림 시인의 나이 때문이었다. 이제 70이 넘은 시인의 눈을 빌어 세상을 바라본다. 그가 살아온 생애와 쌓여온 시간들 속에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박완서나 이청준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인생의 황혼녘에 접어 든 시인의 눈은 부드러운 통찰과 객관적 거리감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열정이나 분노, 흥분과 절망의 극단적 감수성은 좀체 찾아볼 수 없고 달관의 경지에 이른 듯한 깨달음과 통찰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삶은 이런 것이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하나의 장면이나 태도를 통해 짐작해 볼 뿐이다. 이영희 선생님이 80이 넘어 임헌영과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지적 활동의 종료를 선언했듯 작가들도 그런 때나 나이가 있을 것이다.

  마치 죽음을 예견하듯 신경림의 표제작은 그렇게 이별 노래를 듣는 것 같다. 별과 달과 해 그리고 모래밖에 본 적이 없는 낙타의 모습은 시의 오솔길만을 고집스럽게 걸어온 시인의 모습일 것이다. 지금까지 보여준 한국 현대시의 진경과 감동은 낙타처럼 타박타박 모래 사막을 걸어온 시인의 삶에 대한 당연한 결과물이다.

낙타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길음 시장 부근에서 살던 무렵 실제 경험을 노래했던 ‘가난한 사랑 노래’처럼 시인의 마지막까지 ‘가장 가엾은 사람’과 길동무가 되겠다고 한다. 낮은 곳에서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잃지 않았고 현실의 모순과 울분들을 정확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했던 모습은 여전하다. 삶의 길과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땅이 좋아 전국 요지의 땅을 골라 사들이는 장관 후보자도 있고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사명감이나 책임감이 아니라 그곳에 눈길이 도달하고 함께 고통을 나누려는 노력은 독자들에게 감동으로 전해졌다.

  조금 다른 모습으로 노래하고 있지만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시인의 관심은 여전히 모순된 현실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빛날 것이다. 이념 대립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하지만 계층과 계급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자본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념보다 더욱 무서운 대상이 무엇인지 그 실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미래를 예견하지 못한다면 더 큰 재앙이 닥칠 것이다.



내 몸이 이 세상에 머물기를 끝내는 날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나갈 테다
나를 가두고 있던 내 몸으로부터
어둡고 갑갑한 감옥으로부터

나무에 붙어 잎이 되고
가지에 매달려 꽃이 되었다가
땅속으로 스며 물이 되고 공중에 솟아 바람이 될 테다
새가 되어 큰곰자리 전갈자리까지 날아올랐다가
허공에서 하얗게 은가루로 흩날릴 테다

나는 서러워하지 않을 테다 이 세상에서 내가 꾼 꿈이
지상에 한갓 눈물자국으로 남는다 해도
이윽고 그 꿈이 무엇이었는지
그때 가서 다 잊었다 해도


  소멸과 이별에 대한 시인의 목소리가 안타깝다. 눈은 사라진다. 눈과 비는 다르다. 형태와 물적 변화가 시각적으로 확인되는 눈으로 표현된 ‘나’의 인생은 순환론으로 이해한다. 물이 되고 바람이 되고 별이 되어 또 다시 은가루로 흩날려도 서러워하지 않는 다는 말은 생에 대한 자신감으로 보인다. 잘 살았다는 당당함이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존재론적 소멸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것은 서러움이 아니라 하나의 꿈일 뿐이다.

  <낙타>에서 시인은 다양한 내용을 선보인다. 자연에 대한 관찰과 감상, 여행에 대한 기록 등 시선이 닿는 곳마다 새로운 감각과 상념들이 정갈하게 표현된다. 낮은 목소리로 편안하게 토해내는 시편들이 결코 단순하거나 이완된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누구나 쉽게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식상함이라면 굳이 신경림의 시를 읽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숨어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

숨어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
들리지 않아 아름답고 보이지 않아 아름답다.
소란스러운 장바닥에서도 아름답고,
한적한 산골 번잡한 도시에서도 아름답다.

보이지 않는 데서 힘을 더하고,
들리지 않는 데서 꿈을 보태면서, 그러나
드러나는 순간.

숨어 있는 것들은 아름다움을 잃는다.
처음 드러나 흉터는 더 흉해 보이고
비로소 보여 얼룩은 더 추해 보인다.
힘도 잃고 꿈도 잃는다.

숨어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
보이지 않는 데서 힘을 더하고
들리지 않는 데서 꿈을 보태면서,
숨어 있을 때만, 숨어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관심, 숨어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시인의 능력은 아닐까?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재능 또한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과 거대함에 감탄과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는 동안 시인은 부지런히 숨어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보아왔다. 그것이 신경림 시의 특징이다.

  이 시집에서는 ‘나는 왜 시를 쓰는가’라는 시인의 에세이가 해설을 대신하고 있다. 새삼스레 그의 시를 해설하고 비평하는 것보다 그의 육성을 통해 그가 살아온 생과 시의 길을 들여다보는 감동이 더욱 컸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늙은 시인들의 새 시집들을 조심스레 열어간다.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경외의 마음으로 어쩌면 마지막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모든 것들에 감사한다. 신경림의 새 시집은 낙타처럼 그렇게 타박타박 우리들 가슴 속으로 걸어들어 온다.


08030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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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상지도 - 세계지성사를 풍요롭고 활기차게 한 핵심 키워드 88
기다 켄 지음, 김신재.심정명.윤여일 옮김 / 산처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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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첫 문장이다. 완결된 고대 그리스 문화의 구조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하는 루카치의 이 문장은 너무도 유명하다. 20세기를 전망하고 있는 듯한 이 문장은 어둠과 암흑의 시대를 예견이라도 하는 듯하다.

  겨우 7년이 흐른 시점에서 20세기를 정리한다거나 마무리하는 것은 무리한 욕심인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무언가 끝맺고 싶은 욕심과 정리하려는 본능을 가진 것 같다.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어야 객관적인 시점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20세기를 정리하려는 노력은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혹은 치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장석준은 <혁명을 꿈꾼 시대>라는 책을 통해서 20세기는 인류의 역사상 끊임없는 혁명을 꿈꾸었던 시대라고 정리하고 있다. 그것은 역사의 결정적 시기를 나눈 또 하나의 기준이 될 것이다.

  기다 겐은 <현대 사상 지도>를 통해 20세기의 세계 지성사를 풍요롭게 했던 핵심 키워드를 정리하고 있다. 88개의 개념을 통해 19세기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는 주요 개념들을 정리하고 있다. 한 사람이 이 작업을 하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다. 여러 명의 일본 학자들에 의해 정리된 이 책은 일종의 현대 사상에 관한 개념어 사전과 같은 역할을 한다.

  우선 사상의 흐름과 키워드를 제시하며 거시적 관점에서 20세기를 파악한다. 응용윤리학에서 출발해서 해석학, 현상학, 구조주의와 실존주의, 분석철학, 포스트모던 등 지난 세기를 풍미했던 개념들을 소개하고 가능세계, 젠더, 상징, 타자성, 탈구축, 노마돌로지, 차이와 차연 등 현대 철학의 용어와 개념을 설명한다. 그리고 언어, 심리,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인류, 종교, 과학, 비평에 관한 용어들을 분야별로 잘 정리하고 있다.

  어떤 책이든 장단점을 가지고 있겠지만 이런 종류의 책은 감탄과 아쉬움이 교차된다. 우선 장점을 보자. 한 권의 책으로 다양하고 복잡한 개념들과 한 시대의 사상의 흐름을 깔끔하게 일별할 수 있다. 특히 개념 중간 중간 학자들과 학파들 그리고 사상의 흐름들을 표로 정리하고 있다. 영향 관계를 화살표로 정리해 놓고 있어 시각화의 장점을 백분 활용하고 있다. 또한 중요한 용어와 핵심 개념들을 서로 연계 시키고 있고 마지막 부분에 그 개념과 관련된 용어와 키워드를 찾아 가도록 안내하고 있다. 즉 순서대로 읽는 책이 아니라 화살표를 따라 지도를 찾아 가듯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을 <현대 사상 지도>라고 지었을 것 같다. 또 하나의 장점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의 수고가 돋보인다. 공저가 갖게 되는 문제점, 즉 일관성과 통일성의 결여는 이 책에서 의미가 없다. 어차피 개별 개념들에 대한 정확하고 명쾌한 설명이 필요한 책이니까. 그리고 공동 번역의 효과는 모르겠지만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연구원 세 명의 노력이 좋은 책을 소개하고 있는 것 같아 흥미 있게 읽었다. 내용 자체가 무슨 재미가 있을까마는 머릿속에서 쉽게 정리되지 않는 현대 사상의 흐름과 용어들이 그나마 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또 하나의 장점은 용어별로 마지막 부분에 우리말로 번역된 관련 서적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책꽂이에 꽂아 놓고 사전처럼 쉽게 찾아보고 관련 서적을 찾아본다면 훌륭한 현대 사상의 안내서 역할을 할 수 있다. 어떤 책이든 그렇겠지만 이 책의 활용은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읽고 사용할 것인가는 개별 독자가 선택할 일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당연하게도 지나치게 짧고 굵은 설명이다. 하나의 개념을 설명하는 데 짧게는 한 페이지가 안 되는 것도 있다. 서너 페이지에 걸쳐 특징과 흐름을 잘 설명하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각 분야에 대해 조금씩이나마 관심도 없었고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은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일 것이다. 자신의 취향과 목적에 맞는 책을 구입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독서라는 것이 처음부터 예정된 길만 걷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연히 이 책을 만난 독자라면 오히려 혼란스럽고 어려운 느낌을 가질 수도 있겠다.

  비슷한 얘기지만 하나의 개념이나 용어를 설명하는 데 있어 분명하고 핵심적인 접근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모호한 표현이나 설명하는 방식에 따라 변죽만 울리고 마는 것도 있다. 일일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쉽고 간단한 것을 너무 어렵게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몇 가지 아쉬움이 남지만 곁에 두고 참고할 만한 부분이 많은 책이다.

  20세기는 루카치의 말대로 별빛이 길을 안내해 주지도 않았고, 지도가 없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21세기는 더욱 심각해졌다. 길이 보이지 않아도 걸어야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인류가 걸어온 사상과 문명 발달의 길이 더욱 험난하게만 느껴진다. 양보와 배려를 위한 이타적 유전자보다는 자본으로부터 소외되고 물질적 욕망의 덩어리로 가득한 세상을 비참하기만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꿈꾸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합의도 없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책이 답을 줄 수는 없다. 다만 사상의 흐름과 사유의 방식을 뒤돌아보는 방식을 통해 미래를 짐작하고 고민하며 한 걸음 내디뎌 볼 뿐이다.


080227-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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