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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외롭구나 - 김형태의 청춘 카운슬링
김형태 지음 / 예담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대단한 용기가 아니라면 타인에 대한 충고는 오만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사람이든 상황이든 문제가 발생하면 사실 모든 해답은 스스로 가지고 있다. 조언과 충고는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다. 몰라서가 아니라 확신을 얻고 싶은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조언이나 충고대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반드시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생각과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어도 주변에서 들려오는 격려와 덕담, 충고와 조언은 때로 힘이 되지만 잔소리에 불과할 때가 더 많다. 자신의 요구와 필요에 의해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할 때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실타래처럼 엉킨 생각들은 정리되고 자연스럽게 최선의 방법들이 떠오르며 속은 후련해지고 미래는 작은 희망으로 반짝이게 된다. 시간만한 멘토가 없다. 상처와 고통은 세월의 흐름이라는 진통제가 마련해주는 안락함의 세계에 발을 딛게 된다. 다만 구체적인 방법과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할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게 되고 상담을 요청한다.
다양한 경험과 폭넓은 지식이 밑바탕이 된 사람일지라도 객관적인 상황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상담자를 분석해주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주관적인 판단과 결정으로 강력하게 충고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김형태의 <너, 외롭구나>는 후자의 방법을 선택하고 있는 카운슬링 사례집이다. 이 책은 대상과 주제가 선명하다.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에 이르는 ‘청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상담 내용은 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오는 현재의 상황, 진로에 대한 선택, 자신의 결정에 대한 망설임 등이 주를 이룬다.
시대가 변해도 미래에 대한 불안은 청춘들에게 영원한 고통일 것이다. 특히 희망 없는 청춘은 얼마나 불안한가. 자신을 진로와 직업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말이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어떤 분야에 뛰어난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닌 경우가 그러하다. 세상 밖으로 눈을 돌리면 경쟁은 지옥을 방불케 하고 자본의 논리는 바늘하나 꽂을 땅을 허용하지 않는 현실은 두렵기만 하다. 그 끝이 어디인지도 모른채 끝없이 다른 사람을 밟고 이겨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논리는 시대정신이 되었고 숭고한 가치가 되었다. <꽃들에게 희망을> 줄 수는 없을까?
스스로 무규칙이종카운슬러라고 칭하는 김형태의 충고는 대담하기만 하다. 주관적 관점과 논리가 나름대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지독한 가난을 통해 단련된 육체와 영혼은 저자에게 자신감을 주었고 냉정하고 비판적인 판단력을 만들어 준 듯하다. 일면식도 없을 인터넷 상담자들의 사연에 대해 김형태는 그들의 나태함과 안일함, 소극성과 우유부단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껌 좀 씹었던 동네 양아치의 개과천선 프로젝트라고 비유할 만큼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경험한 듯한 저자의 종횡무진 카운슬링은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 많다.
의뢰인들의 경우 주변 사람들이나 가까운 친구와 부모, 선생님 등 지인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고민들을 자신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좀체 드러내고 싶지 않은 환부를 도려내고 싶거나 아픈 충고와 냉정한 질책을 통해 스스로를 확인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인간이 타인과의 사교를 유지하는 이유가 고독이 두렵기 때문이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은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막상 가장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사람들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나를 위로하고 감싸 안아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야한 하는 사람들의 역설적 모순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의 두 줄짜리 짧은 시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분명하기만 하다. 그 수많은 섬들에 가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지만 도착한 사람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세상에 대한 분노와 열정, 미래에 대한 불안과 준비, 박제된 청춘의 날개, 외로움 - 단순하게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모순과 문제점들에 대한 성찰과 비판이 적어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심리적으로 신포도 기제가 작동될 때가 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과 평가 절하 말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그렇게 볼 수 없다. 끝없는 경쟁 논리와 고용 없는 성장이 가시화 되고 있다. 전 지구적 차원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괴물이 살아 숨쉬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갈 길은 멀고도 험하기만 하다.
주로 경제적인 측면이나 진로와 직업에 관한 현실적인 고민들이 많은 이 책의 주인공들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평범한 청춘들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고 괴로워하는 특권을 누리는 청춘은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이제 모든 국민들이 리얼리스트가 되어 간다는 증거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과 나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은 참담하다.
그래도 희망은 청춘에게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저자도 돈이 안 되는 이 짓을 하고 책으로까지 묶어냈을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그들에게서 나온다. 개인적인 고민들이 모여 우리 사회의 고민이 되고 그것을 해결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이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이 될 것이다. 이기적인 욕망과 개인적인 고민이 때로는 국가적 차원의 문제보다 훨씬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이다. 저자가 충고하는 것처럼 벌떡 일어나 주먹 쥐고 뛰면서 생각할 일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념을 잃지 않고 생활하는 하루하루가 당신의 미래가 된다. 나는 지금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돌아볼 시간이다.
080406-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