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열대 한길그레이트북스 31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박옥줄 옮김 / 한길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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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의 상대적 개념은 미개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문질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사회를 일컫는 미개사회나 미개인이라는 말은 상대를 낮잡아 보려는 편견이 내재해 있다. E. 사이드의 개념으로 보면 타문화에 대한 유럽의 관점에 다름 아니다. 아직 열리지 않은 사회, 기계적 합리주의와 자본의 논리가 개입되지 않은 사회를 우리는 여전히 미성숙된, 미발달된 사회로 본다. 학교에서 아무리 문화적 상대주의에 대해 가르치고 배운다고 해도 나와 다른 삶에 대한 편견은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야콥슨의 구조언어학와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이 만난 것은 인류의 지성사에 축복도 재앙도 아니다. 단순한 친분관계나 학문적 동종 교배를 벗어나기 위한 수단도 아니었다. 당대의 지적 흐름에서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배태된 구조주의는 역사적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실존주의를 앞세운 사르트르의 말과 글들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던졌다. 레비-스트로스에게 역사란 인간 사회를 더 좋은 상태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 의식의 양식을 변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역사적 발전이라는 연속선에서 우월한 양식과 열등한 양식을 구분했다.

  어쨌든 일반적으로 구조주의가 마르크스 지향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인간이 과학적으로 탐구되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받아들여 구조적 분석이 변증법적 방법을 응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비역사적, 비실존적 정신으로 인간을 추상적, 이념적으로 파악했으며 현실적인 요구를 주장하지 않고 오직 사실들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데 치중하는 기계론적 형식주의에 빠졌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양차 대전을 겪으며 최연소 철학교수 자격 시험을 통과한 유대계 프랑스인의 지적 편력은 그의 기나긴 생애만큼 광범위하게 펼쳐진다. 프랑스에서 브라질 다시 프랑스와 미국으로의 망명 등 그의 생애와 사상은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냈다. 앙가주망을 외쳤던 사르트르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인류에 대한 모색과 탐구의 열정을 놓지 않았던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는 <슬픈 열대>는 멀고도 길었던 브라질 여행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기록물이다.

  1935년 브라질 상파울로 대학 교수로 부임한 27세의 레비-스트로스는 1938년 카두베오족과 보로로족, 남비콰라족과 투피 카와이브족 등 브라질 원주민 사회를 조사한다. 그리고 15년 후 1954년 10월부터 1955년 3월까지 역작 <슬픈 열대>를 집필한다. 이후 <구조인류학>, <야생의 사고>, <신화학> 등 대표적인 책들이 출간되지만 <슬픈 열대>은 조금 특별한 책이다.

  철학으로 출발한 학문적 토양이 인류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야콥슨의 구조언어학을 만나기까지 레비-스트로스의 관심은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사유에 대한 비판이라고 요약될 수 있다. 처음부터 방법론이나 신념을 정해 놓고 시작한 연구가 아니라 원시사회의 모습을 외부자의 시선으로 관찰함으로써 얻어진 경험의 산물이며 문명화된 사회와의 비교를 통해 얻어낸 값진 결과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연대기적 서술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미국 뉴욕으로 밀항하는 과정으로 시작되는 1부를 추억담으로 할애하고 있다. 2부에서 4부까지는 시간을 거슬러 브라질로 가는 과정과 예비답사 내용이다. 5, 6, 7, 8부가 바로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을 조사하게 되는 과정과 각각의 원주민 사회의 문화가 소개, 분석되어 있다. 마지막 9부는 돌아오는 길에 인도와 파키스탄 여행기가 추가되어 그가 경험했던 인류학적 연구의 문제점들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담겨있다.

  문화인류학의 고전으로 빈번하게 언급되며 원전을 보지 않은 채 인용된 부분이나 혹은 레비-스트로스의 영향, 사상 등에 대한 이해 없이 다른 책을 보면서 느꼈던 답답함을 해소할 목적으로 두툼한 책에 매달려 꼬박 닷새 동안 책 속에 파묻혔다. 70여 년 전 이기는하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아마존에 생존했던 원시 공동체를 들여다보는 일은 충격에 가까웠다. 책의 앞쪽에는 그들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어 책을 읽다가 앞으로 돌아와 그들의 눈을 들여다 보며 대화를 시도한다. 우리 인류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할 길에 대한 낭만적 상상에 빠지기도 하고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보기도 했다.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적 관심이나 <슬픈 열대>라는 책이 주는 무게감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삶을 영위하는 과거의 인류를 만난 느낌이었다. 저자의 독특한 시선이나 그들의 삶에 대한 애정, 객관적 관찰과 분석, 철학적 성찰이 어우러진 이 책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 꼭 읽어야 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고전이라는 말은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생각할 여유가 있을 나이와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지금 만났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는 관점에서 문화라는 관점에서 천천히 음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꿈을 꾸던 인간이 이제는 사람을 우주 정거장에 보내놓고 그곳의 생활을 생중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과 문명의 발달은 눈이 부시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의 삶의 원형은 어떠했으며 과연 지금 우리는 그들보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문명인이며 그들은 야만인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인류학적 상상력이 극한까지 발휘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레비-스트로스가 살아있었다면 이 시대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궁금하다. 1981년에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그가 100세의 나이로갈리마르 출판사의 ‘플레이아드 총서’에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누렸다. 인류의 삶은 계속되고 생태학적 상상력은 점점 축소되고 있지만 개발의 논리와 자본의 횡포는 지칠 줄 모르고 인류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지식과 학문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삶의 철학과 생활의 발견이라는 측면에서 그와의 대화를 시도한다면 독자들은 보다 진지하고 풍요로운 저자와의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08041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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