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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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은 주문하지 않은 택배다. 아무도 늙기를 원하지 않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온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인간의 욕망과 외로움이 덜해지지 않는다. 밤에 우리 영혼은 평안과 안식을 원하지만 오히려 철저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친밀한 가족 관계, 애틋한 연인이 곁에 있는 사람이 노년에 그들과 이별한다면 상실감과 외로움은 배가 된다. 켄트 하루프의 마지막 소설의 주인공 애디와 루이스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인생을 살다 혼자가 된 여, 남 노인이다. 


“우리 같이 잘래요?” 용기를 낸 건 여성인 애디다. 성별이 바뀌었다면 아마 이 소설의 성격이 달라지고 또 다른 논쟁에 휘말렸을 수도 있었으리라. “라면 먹고 갈래요?” 보다 직설적이나 전혀 애로틱하지 않은 돌직구는 루이스에게 가 닿는다. 44년간 한집에서 산 70세 여성 노인의 제안에 47년째 가상의 도시 홀트 시에 거주하는 남성 노인은 고민 끝에 이를 수락한다. 저녁에 건너가 잠을 자고 아침에 돌아오는 일상이 이웃과 타인들의 눈에 곱게 비칠 리 없다. 그들의 외로움보다 관계를 규정짓는 일반적 시선과 각자의 도덕적 기준이 이 소설을 혼란스럽게 바라보게 한다. 혼자 사는 두 남녀 노인의 만남에는 문제가 없으나 법적으로 혼인 관계를 형성하는 데 따른 현실적 문제들 ― 이를 테면 유산 상속과 자녀들과의 관계 등 ― 앞에서 노인들은 절망한다. 아니, 쉽게 포기한다. 애디도 마찬가지다. 손자를 이기는 할매는 없다. 자식이 가로막는 노년의 위로와 행복이라니. 지나치게 현실적인 결말 앞에 모임에 참석한 분들의 의견이 갈렸으나 두 사람이 찰떡같은 티키타카는 환타지에 가깝다. 그들의 대화, 정서적 공감, 따로 또 같이 나누는 일상 등 이상적 연인의 모습이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앞에 굴복하는 관계 양상이 소설의 결말을 흐릿하게 한다. 


소설 서두에서 애디는 루이스에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 갖지 않기로 결심했으니까요. 너무 오래, 평생을, 그렇게 살았어요. 이제는 더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라는 말로 자신의 남은 생을 이야기한다. 작지만 분명하고 주체적인 삶의 계획이다. 이 결심은 소설 중반에 다시 반복돼 애디의 결심을 재확인한다. 그러나 결국 자식과 손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관심을 갖는다. 200쪽이 안되는 중편 소설을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이든 독자들은 또 각자의 입장에서 노년의 성과 사랑, 자식들과의 관계, 현실적인 문제 등 다양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상찬하거나 비난하는 소설보다 이렇게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작품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면에서 동의할 만하다. 그러나 개성있는 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주제를 드러내는 장편 소설과 달리 중, 단편의 미덕은 칼날처럼 깊은 인상을 남기는 묵직한 한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애디의 파격적 제안으로 시선을 끌었으나 과정과 결과는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해피엔딩의 환상도 없고,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갈등도 없이 너무 쉽게 자식 앞에 무너지는 애디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전화기를 붙잡고 극복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뱉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인 애디의 “당신, 거기 지금 추워요?”는 “우리 같이 잘래요?”라고 제안할 때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위로로 갈음되지 않는다. 루이스의 입장에선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외로움을 느끼는 정도의 차이, 혼자 사는 일상의 장단점, 노년을 위한 준비와 가족 관계, 자기 욕망과 삶에 대한 적극적 용기 등 이 소설은 어쩌면 지극히 현실적인 노년을 위한 고민을 담은 켄트 하루프의 마지막 고백이 아니었을까 싶다. 태평양 건너 미쿡이든 한국이든 늙고 병들어가며 삶의 종착역을 향해 치닫는 사람들의 태도와 삶을 대하는 자세는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밤에 우리 영혼은, 그보나 낮에 우리의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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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문학과지성 시인선 572
진은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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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낮달이 선명하다. 흰 손톱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달의 모습이 기이하다. 별들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나 밤과 낮,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인간의 시선에 닿을 때도 있고 잊혀질 때도 있다. 수많은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그러하다. 어머니와 동생을 부양하던 20대 여성의 죽음은 처참하다. 전날 먹은 파리바케트 빵조각이 목에 걸린 것처럼 목이 멨다.


현실은 한 번도 인간의 욕망을 이긴 적이 없다. 자본의 논리와 탐욕을 앞선 어떤 ‘-ism’이 있었을까. 그 간극을 좁히려는 부단한 이상주의가 시詩의 본령이 아닐까. 오랜만에 읽는 진은영의 시집에도 예외 없이 슬픔과 고통이 주인공이다. 삶을 사랑하는 시인의 눈에 타인의 고통과 모순된 현실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떨까. 자연의 아름다움, 사랑의 위대함, 철학적 진실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진은영의 좋은 시들은 대체로 라임rhyme과 리즌reason의 절묘한 교직물이다.”(신형철 해설, 「사랑과 하나인 것들 : 저항, 치유, 예술」, 113쪽) 


언어로 표명된 눈부신 아름다움 너머엔 반드시 리즌이 자리한다. 라임에 천착한 시의 본질에 닿아 있는 시가 무엇인지 독자에게 맡겨질 수는 없다. 치열한 일상과 생의 비극을 노래한 시들 사이사이에 놓인 진은영의 고백이 아프게 새겨진다.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에 오랜만에 나온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는 사랑 노래가 아니다. 


청혼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시집 한 권을 읽고 몇 편을 필사할 때가 있다. 서시에 첫 구절이 시집 제목이 되었다. 사랑은 잘 팔리기 때문이지만 진은영의 사랑은 그런(?) 사랑이 아니다. 사랑의 종류와 방법을 논할 생각은 없다. 다만 자기만의 사랑과 타인의 사랑이 다를 때 우리는 늘 ‘태도’를 본다.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는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청혼이 남아 있을까.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어도 사랑할 수 있을까. 숱한 의문이 떠오를 때쯤 「사랑의 전문가」가 나타난다. 


사랑의 전문가


나는 엉망이야 그렇지만 너는 사랑의 마법을 사랑했지. 나는 돌멩이의 일종이었는데 네가 건드리자 가장 연한 싹이 돋아났어. 너는 마법을 부리길 좋아해. 나는 식물의 일종이었는데 네가 부러뜨리자 새빨간 피가 땅 위로 하염없이 흘러갔어. 너의 마법을 확신한다. 나는 바다의 일종. 네가 흰 발가락을 담그자 기름처럼 타올랐어. 너는 사랑의 마법사, 그 방면의 전문가. 나는 기름의 일종이었는데, 오 나의 불타오를 준비. 너는 나를 사랑했었다. 폐유로 가득 찬 유조선이 부서지며 침몰할 때, 나는 슬픔과 망각을 섞지 못한다. 푸른 물과 기름처럼. 물 위를 떠돌며 영원히


연쇄적 반응과 충돌의 메타포가 뒤섞인 사랑은 결국 슬픔과 망각이다. 영원히 섞이지 못하는 너와 나의 거리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상대를 향한 비난으로 자기 사랑이 마무리된다면 사랑의 아마추어다. 사랑의 전문가는 마법을 부리는 대신 타자를 변화시킨다. 스스로 열망하는 세계로 잠입하는 데도 불구하고 상대를 전문가라 칭하는 아이러니다. 그렇게 한 사람을 사랑하고 한 계절을 사랑하고 한 생을 사랑할 시간도 많지 않다는 조언과 충고들을 흘려듣다가 거울을 본다.


도둑맞은 가을을 아쉬워할 필요도 없다. 침이 고이는 귤을 기다리고,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기다리면 된다. 금세 여름비가 시원할 테고 또다시 낙엽이 질 때 우리도 무지개처럼 각자 다른 빛깔과 모습으로 사라질 것이다. 때를 알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건 운명을 수용하는 겸손 때문이 아닐까. 보이지 않고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을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낭만적 사랑과 감정적 사치를 허용한다. 


봄여름가을겨울

작은 엽서처럼 네게로 갔다. 봉투도 비밀도 없이. 전적으로 열린 채. 오후의 장미처럼 벌어져 여름비가 내렸다. 나는 네 밑에 있다. 네가 쏟은 커피에 젖은 냅킨처럼. 만 개의 파란 전구가 마음에 켜진 듯. 가을이 왔다. 내 영혼은 잠옷 차림을 하고서 돌아다닌다. 맨홀 뚜껑 위에 쌓인 눈을 맨발로 밟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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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역사
제임스 수즈먼 지음, 박한선.김병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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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문제는 우리 모두가 무한한 욕구와 유한한 수단 사이의 연옥에서 살라고 저주하는 것 같지만, 수렵채집인들은 물질적 욕구가 많지 않아서 그 욕구는 몇 시간만 일하면 채워질 수 있다. 그들의 경제적 삶은 희소성에 대한 집착보다는 풍부함의 전제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 들어가며, 21쪽


일과 놀이를 구별하는 일은 헛되다. 누군가에게 삶은 놀이처럼 쉽고 누군가는 시시포스Sisyphos의 고뇌에 불과하다. 그 차이를 극명하게 가르는 사회적 계층과 보이지 않는 계급 사이에서 우리는 종종 길을 잃고 방황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목적지와 방향을 탐색하려는 목마름조차 사라지면 인간의 삶은 생존과 경쟁에 매몰된다. 


사회인류학자 제임스 수즈먼은 ‘일work’을 들여다본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우리에게 일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일은 노동labour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생존을 위한 모든 활동이 일이다. 자본과 결합한 노동의 개념과 역사는 숱한 경제학자와 사회학자들의 밥줄이니 굳이 재론할 필요도 없고 앞으로도 다양한 해석과 분석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요한 하위징아의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Homo Ludens』의 현대적 고찰은 잘 이뤄지지 않는다. 인류학이 경제학에 밀린 탓일까. 태초에 벌어진 도구와 기술에서 출발해서 공생하는 인간의 모습, 끝없는 노역과 시간이 돈이 되는 과정, 도시를 이뤄 끝없는 욕망을 분출하는 현대인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보면 인류의 역사가 과연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문명발달로 인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진보적 관점은 부정되어야 할까.


인간은 스스로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어리석은 존재가 아닐까. 모두 이기적 욕망 탓이라고 하기엔 인류의 역사가 보여준 모습이 혼란스럽다. 목적지를 알 수 없고, 방향이 설정되지 않아 한 국가와 공동체는 때때로 퇴보하며 흔들리고 해체되고 되살아나기를 반복한다. 문명의 흥망성쇠는 필연이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처럼.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한순간도 쉼 없이 일을 한다. 때로는 생존을 위해 때로는 이타적 목적과 사회 전체를 위해.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그 과정의 결정적 장면과 결과가 과연 필연적인지 묻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쉬기 위해 일하지만 일없는 시간을 불안해 한다. “2008년 폴 돌란 등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는 근무 시간이 줄어들수록 불안을 더 크게 느낀다. 근면과 성실은 우리 스스로 부여하는 낙타의 짐이다. 이걸 프로테스탄트 윤리로 부르든, 육 윤리로 부르든 그건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약 5,000년 전 낙타가 가축화된 것처럼, 인류도 신석기 혁명 이후 스스로 가축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묵묵한 인내의 가치를 체화해 왔다는 것이다.”라는 박한선의 해제가 책 머리를 두드린다. 과연 우리에게 일은 무엇인가. 


일과 인간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의 사용, 농경 사회, 도시의 탄생, 산업혁명이라는 결절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류 역사에서 이 장면들은 이후에 태어난 인간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버렸다. 유발하라리가 『호포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에서 상술했듯 현재의 변화는 느린 점들의 변화를 한 곳에 모아 폭발하듯 현대인의 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 우리는 상시 혁명 시대를 살고 있는게 아닐까. 


빅데이터, 사물인터넷은 물론 AI 알고리즘이 일상생활을 파고든 지 오래다. 나를 위한 과학, 기술의 발달은 오히려 종속적인 존재로 만든다. 주체적인 판단력과 지속 가능한 일의 즐거움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딩크 족Double Income, No Kids을 넘어 파이어 족(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이라는 신인류가 등장하며 인류의 삶에서 일의 의미와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우리에게 ‘일’이 무엇이었는지 말해주는 대신 미래의 인류에게 ‘일’의 개념을 다시 설명하려는 듯하다. 


예를 들어, 오늘 저녁 메뉴를 떠올리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자. 음식을 먹는 목적, 방법, 과정이 제각각이다. 내가 먹는 음식이 나를 말해준다. 어디 음식뿐이랴. 내가 사용하는 물건, 입은 옷, 사는 집도 마찬가지다. 다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면 일의 기쁨과 슬픔은 우리 삶의 핵심에 해당한다. 무슨 일을 하는지, 일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그 일은 어떤 기쁨과 슬픔을 주는지 등등. 돈만 벌 수 있다면 ‘불쉿 잡Bullshit Jobs’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노동의 미래와 경제 문제에 골몰하는 우리에게 ‘일의 역사’는 어쩌자고 자꾸 뒷통수를 당겨 뒤를 돌아보게 하는가. 현재와 미래가 고민이라는 그 방향과 목적지는 늘 과거에서 먼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에너지와 삶과 일의 관계는 인간이 다른 모든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가진 공통된 연대의 일부이며, 인간의 목적의식, 세속적인 데서도 만족을 찾아내는 무한한 재주와 능력 또한 지구상에 생명이 처음 태동한 이후 내내 연마된 진화적 유산의 일부다. - 4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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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 26가지 키워드로 다시 읽는 김수영
고봉준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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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푸른 하늘만큼 회색빛 하늘이 주는 무색무취의 날들이 좋다. 비가 와도 다시 맑아져도 하늘은 여전히 별들을 숨기고 있을 테니까. 김수영과 신동엽으로 가득했던 20대 젊은 날도 괜찮았지만 더 이상 외부 세계에 휘둘리지 않는 지금도 좋다. 독자는 변하고 시인은 늙는다. 얼마 전 정호승 시인 등단 50주년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새벽 편지』에 실린 형형한 눈빛은 그대로인데 시간은 자꾸 흘러 『슬픔이 택배로 왔다』 하지만 김수영은 박제된 사진 그대로 살아 있는 듯 싶다. 흰 ‘난닝구’를 입은 사진 한 장이 김수영의 시각적 이미지다. 그 사진을 오래 간직했다. 1921년생인 시인의 100번째 생일이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때때로 시간이 흘러 새롭게 시인의 시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다. 같은 작품도 시대정신에 따라 다른 평가를 받기 마련이니 어쩌면 당연한 통과의례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시인과 소설가가 명멸했으나 여전히 주목받고 널리 읽히는 작가는 많지 않아 보인다. 시절 인연처럼 한 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져 버리는 시인과 소설가가 무의미하지는 않다. 당대의 고민을 담아 동시대인들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했다면 그 또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시와 소설이 갖는 순기능, 본질과 역할에 닿아 있는 작가로 평가받는 일은 쉽지 않다. 이어령과의 순수, 참여 논쟁이 아니더라도 김수영은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가족, 일본어, 설움, 하이데거, 전통, 자유, 혁명, 비속어, 번역, 여혐, 죽음, 사랑, 풀 등 26가지 키워드 하나하나를 한참씩 들여다 볼만하다. 김수영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의 시 세계를 다시 톺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고, 김수영이 낯선 독자라면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시인, 평론가, 교수 등 26번에 걸쳐 신문에 연재된 글들은 일정한 분량과 뚜렷한 목적으로 쓰여 한 권의 책으로 손색없이 묶였다. 시대상황이 그러했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현실’을 떠나 김수영의 시를 읽을 수는 없다. 현실에 대한 외면도 작가의 태도일 수 있으나, 대체로 인간의 내면과 섬세한 감정선이 주를 이루는 시와 소설이 ‘보편성’이라는 이름으로 다수 독자를 확보하는 경우가 많다. 시와 소설을 읽는 목적에 따라 독자의 성향에 따라 다른 평가가 가능하겠으나 문학은 여전히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향한 아픈 비명이며 더 나은 삶을 위한 고민이다. 슬픔 없는 기쁨이나 고통 없는 행복 따위가 있을 수 없듯 내면의 상처와 개인의 불행은 근본적으로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부조리한 삶의 이면을 읽으려는 노력만큼 삶의 조건을 이루고 있는 세상에 대한 고민이 없는 문학은 가당치 않다.

김수영의 시 전집과, 산문 전집을 가끔 꺼내 읽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아니, 김수영이 아니라 누구라도 좋다. 혼자만의 시간, 언제든 꺼내 읽고 싶은 몇 권의 시집이 꽂혀 있는 책장을 가진 사람의 삶은 조금 다른 향기를 난다. 가을이 곧 지나면 겨울을 인내한 봄이 다시 온다. 그렇게 자연의 순리에 따라 시간이 흐르고 점차 사라지는 삶의 순환 논리에 적응하는 삶의 자세가 공동체와 우리가 사는 시대에 적용될 수는 없다. 인간은 생각하고 움직이고 변화를 추구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김수영은.

그래서 그의 시 한 구절을 따온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는 제목의 울림이 크다. 내 안의 반동, 세상 곳곳의 무수한 반동들이 시대와 역사를 추동하는 힘이다. 김수영은 시인들을 위한 시인이기도 하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과 고민을 위해 조금 더 깊이 고민하는 시인과 소설가가 늘 때 독자들은 풍요로운 한국문학을 즐길 수 있다. 자유와 혁명, 사랑과 죽음은 김수영의 시가 아니라 우리 삶의 뜨거운 키워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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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창비시선 475
송경동 지음 / 창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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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시를 쓰고 독자는 시를 읽으며 꿈을 꾼다. 현실 밖을 꿈꾸는 무수한 사람들의 그루터기 쉼터여야 할 시는 때때로 찬물을 끼얹는다. 비현실적인 공상이 현실을 견디는 힘을 주지만 두 발은 언제나 현실을 딛고 있다. 문학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판단이 어떻든 세상에는 다양한 시와 소설이 독자를 기다린다. 망설이다 다시, 송경동을 읽는다. 가장 치열하게 현실의 한복판에 서 있는 시인의 모습은 애처롭고 위태하다. 시가 혁명의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 때문에 참여시가 소비되는 건 아니다. 


감옥이 따로 없어

법정최저임금 정도나 받는 강제 노역에 시달린 후

저물 무렵 반지하나 옥탑방으로 자진해 입방하는

당신이 양심수

-「당신이 양심수」중에서, 20쪽


누군가는 소리를 내야 한다. 소리는 소리를 부른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난여름 물에 잠긴 반지하, 뜨거운 옥탑방에 사는 사람들을 송경동은 현대판 ‘양심수’라고 부른다. 청소용역노동자들의 선언을 시작으로 아직도 강철이 어떻게 단련되는지 묻는 시인에게 대한민국은 누구나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행복한 나라가 아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정부의 정책이 어떻게 달라지든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의 자리는 변함이 없다. 현실의 최전선에서 하루를 견디고 삶을 지탱하는 이웃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가 세상을 살아가는 바로 우리들의 삶의 자세다. 타인을 바라보는 기준과 공동체를 향한 목소리가 지금, 여기에 선 내 삶의 무게다. 무엇을 할 것인가.


나중에는 나도 무장하고 다녔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 먼저 공격했다

짓밟히고 난 뒤의 모멸과 분노를 견딜 수 없어

목청을 먼저 높이 올렸다

「목소리에 대한 명상」중에서, 48쪽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감동적인 자연과 두근거리는 순간 보다 피 흘려 싸우는 현장과 땀으로 범벅이 된 노동의 순간들이 모여 거대한 삶의 뿌리를 이룬다. 기막힌 묘사와 감각적 언어보다 때때로 목청 높여 외치는 송경동의 목소리를 아프게 읽어야 한다. 시는 슬픔의 미학이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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