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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과 남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평점 :
냉소적인 책읽기 스타일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모든 책에서 저자와 대화를 나누며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책에 대한 애증은 영원히 계속되겠지만 좋은 책에 대한 열망만큼은 쉽게 가시지도 않을 것같다. 그래서 더더욱 목마르고 갈증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하드보일드 하드럭>으로 첨 만났다. 순전히 남미에 대한 관심 때문에 조금 다른 시각이나 특별한 애정으로 남미를 살펴 볼 수 있을까 싶어 그녀의 소설 <불륜과 남미>를 읽었다.
책 뒤에 여행 일정표를 부록으로 실어 놓을만큼 그녀의 여행 경험이 철저하게 소설에 반영되어 있어 현실과 소설의 경계가 모호하다. 작가의 말에서 실제 여행 경험을 소설속에 녹여 낸 장면들도 발견된다. 여행하는 모든 인간들이 부럽다. 평생 세상을 떠돌며 책만 읽다 죽을 수 있는 자유를 사랑한다. 그래서 부럽다. 200여페이지의 짧은 분량속에 그림과 사진을 삽입해서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중심으로 한 남미에 대한 여행 욕구만 잔뜩 부풀려 놓는다. 그래, 가고 싶다.
이 여행 에피소드 단편들은 7편을 묶었다. ‘전화, 마지막 날, 조그만 어둠, 플라타너스, 하치 하니, 해시계, 창밖’이 그것이다. 물론 제목처럼 불륜에서 오는 열정과 고뇌, 사랑에 대한 새로운 시도와 해석은 꿈도 꾸지 마라. 지루하고 나른한 일상처럼, 받아본 적도 없는 남미의 가을 햇살처럼 노근하게 온몸의 긴장을 풀어놓는 편안함과 여유가 오히려 독자를 긴장시킨다. 뭔가 있을 텐데 싶은 조바심도 생긴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 허무하다.
이국적인 풍물과 분위기 낯선 곳에서의 상상과 추억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책이 될 수 있을까? 문체로 승부하기에도 내겐 너무 지루하게 느껴진다. 오감을 충족시키거나 이성의 뒤통수를 후려치거나! 어정쩡한 책을 골라내는 힘은 언제 생기려나.
회색빛 하늘 만큼 우울한 날이다.
우울
어떤 형태로든
우울하다.
- 시 : 서정윤
2005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