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돌아왔다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창비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비는 과거로 가는 시간 여행이다. 사람들이 유독 비에 약한(?) 이유는 과거의 기억에 젖어들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지나온 시간들과 살아온 과정들을 반추하고 현재의 의미를 되새기며 쉼표같은 한숨을 내뱉는다. 세상에 대한 열정과 냉소를 멈추고 잠시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같은 존재가 ‘가을비’다.

  김영하의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는 우리들 삶의 거울처럼 시대와 세태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단편의 힘은 촌철살인의 강렬함이다. 잠이 덜깬 아이의 얼굴에 부딪치는 찬물처럼 우리들 정신에 부어지는 냉각수다. 김영하의 소설들은 그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현대문학에서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로 처음 만난 이후 오랜만에 마주한 그의 소설들은 여전히 일상성에 바쳐지고 있다. 어둡고 컴컴한 역사의 뒤안길과 인류의 보편적 정서에 호소하는 방대한 스케일의 소설과는 구별되는 김영하의 소설들은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8편의 단편으로 묶인 이 소설집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금 여기’를 보여주고 있다. 뒤틀리고 일그러진 삶의 가치와 우울하고 모멸스런 현실들을 뻔뻔스럽게 보여준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우리의 자화상 때문에 오히려 독자가 외면하고 싶게 만든다. 비루하고 답답한 현실이 우리 삶의 일부라면 피해갈 이유가 없다고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사소한 생활의 일부가 모여 우리 삶의 마디를 이루고 그 마디들이 모여 한 시대를 이룬다. 마치 홍상수 영화가 보여주는 미의식과 유사한 김영하의 소설들은 그래서 더 흥미롭다. 옴니버스식의 단편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같다.

  두 부부의 ‘이사’를 소재로 사소한 일상이 얼마나 끔찍하게 변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너를 사랑하고도’와 ‘크리스마스 캐럴’에서는 모멸스런 욕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삶의 가치를 상실한 우리들의 우울한 자화상을 보여주는 ‘그림자를 판 사나이’, 열정에 대한 뒤틀린 모습으로서 ‘너의 의미’를 보여준다. ‘보물선’에서는 신기루같은 욕망의 끝을 보여주고, ‘마지막 손님’에서는 단순한 일상을 그려낸다. 표제작 ‘오빠가 돌아왔다’에서는 가족의 가치를 되묻고 있다.

  김영하의 소설을 한 마디로 정리하는 것은 무모하다. 8편의 단편이 보여주는 미덕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세계의 핵심은 삶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된다. 모든 인물들은 생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태도를 보여준다. 다만 그 욕망들을 구현해내는 방식들이 제각각이며 뒤틀리고 비틀어진 형태로 현실에 반영된다. 그것이 더욱 비극적인 것은 특별한 누군가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거울속에 비친 나와 우리들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고 싶어하듯 소설의 내용들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게 한다.

  세태소설로서 현재 우리의 모습을 가장 적확하고 직설적으로 보여주려는 김영하의 소설은 단숨에 읽힌다. 어쩌면 소설은 그래야한다고도 생각해본다. 미처 손뻗어 만져보지 못한 곳을 더듬게 한다. 작가는 우리의 손을 이끌고 어둠속의 그 무엇인가를 애써 확인하게 만든다. 왜 여기, 이것에 대해서는 말이 없냐고. 소설이 TV 교양프로처럼 거만을 떨거나 사회 곳곳의 문제를 지적하고 털어내며 해결책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다만 아프다고 여기를 보라고 소리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이 소설들은 고발자의 역할도 하지 않는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열정은 냉소를 낳는다. 뒤틀리고 억압된 개인의 욕망이 현실에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가? 그런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때로는 뜨겁게 때로는 차갑게 현실을 바라보자. 대안이나 특별한 처방은 없다. 인생에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그저 살아볼 일이다. 주변을 기웃거리고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를 돌아보고 영화같은(?) 일상들을 즐기면 그 뿐 아닌가.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생의 가치’라는 것이 존재하기나 하는가. 나는 없다고 본다. 다만 과정에 충실하고 현재를 즐기며,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해 보는 것 뿐이다. 김영하의 소설은 그렇게 사람들의 자세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오래된 그 자세를 바꿔 보라고, 다리를 바꿔 꼬아 보라고.


200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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