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은 입 창비시선 245
천양희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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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서정시가 유효한 것은 머리로는 모든 일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서정시는 건재할 것이다. 다만 감정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거나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된 시들만 피해갈 수 있다면 말이다. 사실 그런 시가 있기나 한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으나 시에서 절제되지 않은 감정들이 어떤 형태로든, 우스꽝스럽게 혹은 어설픈 몸짓으로 많은 책으로 엮여왔는지 독자들은 알고 있다. 각설하고 올 봄에 나온 시집, 천양희의 <너무 많은 입>에서 몇 편이 내게로 왔다.

뒤편

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퍼진다
저 소리 뒤편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왜 ‘뒤편’인가? 그건 시인의 시선이므로 따라가면 될 일이다. 다가오는 사람의 앞모습보다 떠나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영원히 기억되는 법이다. 동전의 앞뒤처럼 생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시인이라고 믿는다. 잘못된 믿음인가? 아니 그러면 그 뒷모습을 포착할 줄 알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바꿔본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거라는 진단이 떨어진다. 동의할 수 밖에. 시인은 또 말한다. 그 지겨운 희망에 대해.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을 놓아버리는 일은 여전히 금기된다. 그러면 남는게 없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형태의 희망이며 무엇을 희망하고 있으며 어떻게 희망하는가가 문제이다. 물론 그 실현방식에 대해서는 모호하다. 그래도 여전히 ‘희망’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다.

노선

형님은 자기 노선(路線)이 있소?
독립문 지나다 아우가 묻는다
그는 대답 대신 자신에게 반문한다
희망은 있는걸까
아직 그런 게 남아 있다면
거기가 나의 노선이 될 텐데

아우는 자기 노선이 있나?
광화문 지나다 형이 묻는다
그는 대답 대신 형에게 반문한다
희망은 있는 걸까요
아직 그런 게 남아 있다면
거기가 너의 노선이 될 텐데

가다보면 길이 되는 것
그것이 희망이라면
그 희망이 우리의 노선이리

  ‘가다보면 길이’ 된다고? ‘그것이 희망’이라고?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는가. 노신의 말이 떠오른다. ‘처음부터 길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한사람 두사람 가다보면 길이 생긴다’는.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사회를 모색하는 선구자들의 이야기고, 등떠밀려 그 길의 첫 번째 보행자로 나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평범에 바쳐지는 ‘희망’은 없는가? 구체적인 ‘희망가’는 울려퍼지지 않는다. 당연한 일에 목숨걸지 말자. 시인은 신이 아니다. 냉소적인 시선으로 생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올곧은 시선으로 ‘희망’과 ‘노선’을 이야기하는 시인의 말이 때로는 위로가 되는 법이다. 그래서 ‘희망’은 ‘완창’이 된다.

희망이 완창이다

절망만한 희망이 어디 있으랴 

절망도 절창하면 희망이 된다 

희망이 완창이다

  ‘희망’에 대한 평가와 기대는 각자의 몫이다. 다만 필요성은 인정하자. 인간과 사회로 확대된 ‘희망’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한 꿈이 아닌가. 그것은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교감’에서 시작된다. 이 울림과 떨림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메마른 생을 산다. 겹침과 떨림을 느껴보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욕망이 있기나 한 걸까?

교감

한 마음의 움직임과
한 마음을 움직이게 한
한 마음의 움직임이
겹쳐 떨린다
물결 위에 햇살이 겹쳐 떨리듯

시집을 읽다가 발견한, 어딘가에서 본 듯한, 참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구절이 눈에 밟힌다. 내가 걷는 이 길이 가장 먼 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었습니다. - '뒷길' 중에서

 

200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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