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백홈
황시운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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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무엇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걸까
난 지금 어디로 쉬지않고 흘러가는가

난 내 삶의 끝을 본적이 있어
내 가슴속은 갑갑해졌어
내 삶을 막은 것은
나의 내일에 대한 두려움
반복됐던 기나긴 날 속에
버려진 내 자신을 본 후~
나는 없었어 그리도 또
내일 조차 없었어
내게 점점 더 크게 더해갔던
이 사회를 탓하던 분노가
마침내 증오가 됐어
진실들은 사라졌어 혀 끝에서~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 MUST COME BACK HOME
거칠은 인생속에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 MUST COME BACK HOME
나를 완성하겠어
다시 하나의 생명이 태어났고
또 다시 부모의 제압은 시작됐지
내겐 사랑이 전혀 없는 걸
내 힘겨운 눈물이 말라버렸지
무모한 거품은 날리고 흠~

주위를 둘러봐 널 기다리고 있어
그래 이제 그만 됐어 나는 하늘을 날고싶었어
아직 우린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자 이제 그 차가운 눈물을 닦고 COME BACK HOME~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지금 어디로
쉬지않고 흘러가는가  

- 서태지와 아이들 '컴백홈'
 


상표를 떼지 않은 옷을 입고 쓰러질 듯 무대를 휘젓는 서태지, 양현석, 이주노의 모습은 등장부터 충격적이었다. 폭발적인 반응과 주목을 받으며 대한민국 가요계를 평정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은 세기말의 문화 코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노래와 몸짓과 이미지는 기존의 가요계의 문법을 뒤흔들었고 그야말로 ‘아이들’의 잠재된 충동과 욕망을 폭발시켰다. 질서와 규범의 파괴는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에 충격을 주었다. 서태지는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교실 이데아’와 ‘컴백홈’의 가사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 더구나 그 때는 어떠했겠는가.

황시운의 장편소설 『컴백홈』은 멈칫거리지 않고 땀 흘린 후에 마시는 이온음료처럼 흡수해버렸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미덕중의 하나가 ‘재미’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일단 재미있다. 쉼 없이 막힘없이 책장이 넘어가게 만드는 능력은 작가의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이다. 서태지 키드라면 아련한 추억에 젖을지 모르지만 소설의 내용은 서태지와 무관하다.

슈퍼울트라 개량돼지라 불리는 박유미는 130kg에 달하는 거구의 왕따 여고생이다. 극단적인 외모를 가진 주인공 유미의 생각과 행동은 출구 없는 현실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초등학교 절친 지은은 고등학생이 되어 일진이 되고 직접 유미를 구타하고 돈을 갈취하면서 우정을 유지하는 기괴한 형태의 친구가 된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히 불량 청소년들의 일탈 행위를 보여주고 그 원인을 사회적 현실로 돌리는 식상한 청소년 소설의 문법에 기대지 않는다. 서태지를 축으로 그의 노래와 환상적 이미지는 유미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가 된다.

다이어트, 안나수이, 프링글스, 다이어트 등 소설에 등장하는 감각적인 소재와 10대 소녀들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이 소설은 절망과 불안에 대한 보고서로 읽힌다. 서태지는 90년대 청소년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희망’은 그저 현실을 견뎌내는 마취제가 될 수 없다. 작가는 어줍잖은 희망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유미가 꿈꾸는 달의 이면을 생각해 보게 한다. 도달할 수 없는, 단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달의 뒷모습은 어떨까. 우리는 어른이 되고 나면 하늘도 달도 별도 쳐다보지 않는다. 코앞에 놓인 현실만 생각한다. 팍팍한 생활 탓이라고 하기엔 슬프지 않은가. 아무리 삶의 무게가 우리의 어깨를 짓누른다 하더라도 말이다.

사람들은 툭하면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들 했다. 그런데 어떤 순간이 적당한 때인지를 가르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살다보면 누구나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걸 알게 되는 삶의 순간이 저마다 정해져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이에 걸맞는 행동과 삶의 패턴이 있다. 그러나 철들지 않겠다는 꿈을 꾸는 것이 유치한 생각일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때’를 알고 그 때에 맞춰 공부를 하고 직업을 선택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노후를 준비하면 행복은 저절로 보장되는 것일까. 과연 인생에서 우리가 찾아야 하는 값진 비밀은 무엇일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고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유미처럼 달에 가고 싶은 마음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서태지와 함께 달에 가려는 유미의 꿈은 이루어질까.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이라는 장석남의 시가 생각난다. 무언가 그리운 것이 있다는 것은 삶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증거다. 유미는 늘 서태지를 그리워하고 지은이를 그리워한다. 가족과 친구로부터 멀어진 유미가 서태지를 그리워하고 달에 가고 싶어하는 것은 어쩌면 생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유일한 방편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유미와 미혼모가 될 지은이를 통해 삶의 비극과 희극이 어떻게 다른지 묻고 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양상은 거리에 있지 않고 내가 걷는 길과 방법에 따라 달라진다.

올해 마흔이 된 서태지는 최근 이지아와의 결혼과 이혼 문제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실 속의 서태지도 유미만큼 괴롭고 힘겨운 시간들을 견뎌낸 것은 아닐까? 유미는 서태지와 함께 달에 가서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아니, 유미는 서태지를 진짜 좋아하긴 한 걸까.

우울한 일탈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은 건강한 웃음과 밝은 모습으로 현실을 그려내지 않는다. 청소년들에게 권하기도 불편하고 성인들이 읽기에도 그리 탐탁하지 않은 면에 대해서 무어라 말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이물스러움은 소설이 현실과 다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소설에서 보여줄 수 있는 상상력과 문장을 이끌어가는 힘이 문제가 아니라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세계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고루한 독자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세계의 문제다. 작가의 말대로 다음부터 점점 더 쉬워졌으면 좋겠다.

모든 일은 처음이 힘들 뿐, 그다음부터는 점점 더 쉬워지게 마련이다. - 222쪽


11052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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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문학과지성 시인선 390
김광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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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모든 사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특히 익숙한 것일수록, 오래된 것일수록 우리에게 많은 말을 건넨다. 그것은 사물에 투영된 우리들 의식의 반영일 뿐 아니라 생활 속에 배태된 사유의 본질을 의미한다. 언어는 사람됨을 규정하고 우리의 의식을 특정한다. 언어의 한계의 우리의 한계이며 생각의 범주이고 삶의 테두리가 된다. 그렇다면 언어를 확장하는 과정이 외부의 세계를 확장하는 일이 아닐까.

평범한(?) 삶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창작 행위를 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 말은 옳으면서 그르다. 동일한 생활 패턴을 반복하다보면 생각의 범위와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작가들이 하나둘씩 교수 자리를 꿰차거나 샐러리맨의 평범한 일상을 즐기고(?) 있는 것이 독자의 입장에서는 불편하다. 뭐 특별한 감흥이나 다른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상상력과 발군의 글솜씨를 가졌다 하더라도 한정된 세계에서 특별함을 창조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현림의 말대로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지지 못한다면 문학은 고급 살롱의 언어 유희에 그칠 위험이 있다. 세기말의 혼돈과 새천년의 희망을 지나 자본주의가 굳건하게 세계를 지배하고 경쟁질서가 공고한 사회에서 문학의 역할은 과연 어떠해야할까.

노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잠깐 상념에 잠긴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로 유명한 시인 김광규의 시를 오래 읽어왔다.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아니다 그렇지 않다』, 『좀팽이처럼』, 『아니리』,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 『처음 만나던 때』, 『시간의 부드러운 손』 등 편안하면서도 일상속에 숨겨진 작은 비밀들을 감각적으로 묘파할 줄 아는 시인 김광규의 시선은 나이와 함께 무디어진다. 여전히 일상에 매몰되어 있는 생의 감각들을 되살려내고 있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저녁나절

썰물이 빠진 뒤
뭍으로 길게 닻을 던진 채
개펄 바닥에 주저앉아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는 거룻배들
정물로 머무는 동안 소금의
하얀 발자국 조금씩 드러날 때
말나루 먼 바다에서 아련히
밀물 들어오는 소리
갈대숲 어느새 물에 잠기고
물새들 날카롭게 지저귀고
잠에서 깨어난 거룻배들
물 위로 떠오르고
황혼의 냄새 불그스레 번져갈 때
조약돌처럼 널리 땅 위의 기억들
적시며 밀려오는 파도
어두워가는 여생의 하루


그것은 세월과 나이의 힘이며 절정을 지나 생을 마감하는 시인의 조근조근한 말투처럼 여겨져 옷깃을 여미게 한다. 환한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밀려오기 전, 말로 표현하기 힘든 빛의 여운과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운 시간을 나는 ‘푸른 시간’이라고 부른다. 시인도 저녁나절 그 시간에 또 하루가 저물어 가는 아쉬움을 ‘어두워가는 여생의 하루’라고 했을 것이다.

김광규 시인의 시는 어깨에 힘을 빼고 툭툭 던지는 쨉처럼 상대를 긴장시키고 거리를 조절한다. 시는 언제나 독자들에게 편안한 긴장을 주는 언어의 견고한 구조물이다. 헐렁하고 편안해 보이지만 단단하게 잘 빚은 백자 같은 기품이 있어야 오래 여운이 남기 마련이다. 쉽게 읽히지만 단순하지 않고 오래 기억하고 싶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는 언어의 바다.

나뉨

소형 임대 아파트 주민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오고 가지 못하도록
주상복합 고층 아파트 입주자들이
통로를 막고
길에 철조망을 쳤다
그렇다
우리는 예부터 나누어진 겨레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다

분노와 절망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슬픔이 배어나오는 시인의 목소리가 좋았다. 당연히 주목해야 하는 이웃의 모습, 상식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무엇인지 말해주는 것 같은 김광규의 시는 통렬한 풍자보다 쉽고 간명하다. 계급과 계층이라는 말을 몰라도 눈에 보이는 일상에서 생각해 보자고 요구하는 낮은 목소리가 더 멀리 울려 퍼지기도 하는 법이다.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삶은 끊임없는 연속입니다
쉴 새 없이 뛰는 심장
숨 쉬는 허파
가슴속에 품은
사랑도 그렇지 않은가요
산책을 하다가 피곤하면
길가의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가듯이
우리의 삶도 사랑도 그렇게
가끔 쉴 수 있다면
좋으련만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는 심장, 처럼 우리들의 삶도 멈추지 않는 걸까. 우리들의 사랑도 그러한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숭산 스님의 말씀처럼 오직 모를 뿐!

고희를 맞은 시인의 눈에 비친 세상은 한결 고즈넉해 보인다. 편안하게 일생을 살아온 명예교수의 뒷짐과는 또 다른 고요함의 세계 같은 것이 이 시집 곳곳에 배어 있다. 여행의 기록이 지루하게 펼쳐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일상에서 길어 올린 시편들이 가슴을 울린다. 잔잔하지만 넓은 파문을 일으키는 그의 몰년이 시집의 마지막이다. 하지만 아직, 그의 몰년을 말할 때는 아닌 것 같다. 조용히 스러지는 김광규의 시들은 푸른 시간에 읽기 좋다. 아니면 몰년 부근에.

몰년(沒年)

죽은 이는 그해까지 살았습니다.
예측 못한 미래를 끝내고
사후(死後)를 남긴 셈이지요
끝없이 이어지는 시간 …… 나머지는
괄호 안의 빈칸 속에서
갑갑한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산 자들의 몫입니다



110513-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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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양장) -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설흔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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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앞에서 모든 인간은 겸손해 진다. 그래서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는 사람은 내일 죽을 것처럼 현재를 즐긴다. 하지만 순간을 영원으로 빛내는 문자는 인간의 육신과 달리 오랜 시간을 견디고 또 견뎌낸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른다. 문학은 선택적으로 기록된 역사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구체적인 모습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역사는 살아 숨 쉬게 된다. 몇 줄의 기록과 시대적 상황이 작가의 상상력과 만나면 우리는 과거를 볼 수 있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꿈꾸는 문학은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말을 건넨다.

기록과 보존에 부실하여 씨줄과 날줄처럼 한 인물의 삶과 그의 글들이 엮이지 않을 때는 그 빈 공간을 채우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우리는 언제나 행간을 읽어내며 시대를 통찰하고 현재를 조망한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 기록의 재현이 아니라 당대의 삶을 생생하게 되살려내고 싶은 욕망이며 우리가 걸어온 길에 대한 호기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나간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고전은 언제나 우리에게 색다른 즐거움과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설흔의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는 소설의 형식으로 풀어낸 팩션(fact+fiction)이다. 절친한 두 사람의 삶과 글은 서로 얽히고설켜있다. 이옥(1760~1815)과 김려(1766~1821) 바로 그 문제적 인물들이다. 두 사람은 정조의 문체 반정에 연루되어 불행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태도와 그 후의 삶은 사뭇 대조된다. 성리학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했던 18세기에 경박한 소설식 문체인 소품체(小品體)로 글을 썼던 이옥은 천상천하 유아독존 왕의 눈밖에 난다. 그의 삶은 그걸로 끝난 것과 다름없다. 그에 비해 김려는 조금 나았을 뿐 평생 가슴에 멍에를 지고 살았다. 그러면 두 사람의 관계를 상상하게 된 작가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아무도 이옥의 아들이 김려를 찾아와 문집을 내달라는 데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평생 이옥이 쓴 글들을 읽으며 김려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경상도 삼가현으로 귀향 가는 길에 쓴 『남정십편』과 삼가현에서 쓴 『봉성문여』가 대표적인 이옥의 소품이다. 결국 이옥은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다고 볼 수 있다. 이옥에 비하면 평범한 글에 안주해 버린 김려의 회한을 상상하며 작가는 두 사람을 모델로 소설을 썼을 것이다.

문(文)으로 도(道)를 실천한다는 재도론(載道論)이 시대정신이었던 조선에 태어나 재기발랄한 글로 자신의 재능을 감출 수 없었던 이옥의 생애와 사상은 이 소설에서 김려의 관점 재조명된다. 소설적 감동은 이옥이 친구의 귀향지를 따라 방랑한 사실을 그의 아들을 통해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역사적 사실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담아냈지만 이 책은 소설로 읽기에는 로 아쉽거나 혹은 아까운 부분이 많다.

이 책을 보면서 2006년에 나온 『고전문학사의 라이벌』(한겨레출판)을 떠올린 건 자연스런 일이다. 정출헌의 ‘이옥 vs 김려’ 편을 다시 꺼내 뒤적인다. 보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부분들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두 인물이 생동감 있게 살아 숨쉴 수 있도록 영혼을 불어넣은 공은 당연히 작가 설흔에게 돌아간다. 딱딱하고 재미없는 고전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다시 살려내는 일은 후세 사람들의 자연스런 욕망일까?

이옥은 그런 사람이었다. 아무리 빈궁하고 어려워도 자기의 마음이 거절하는 일은 도무지 하지 못하는 사람. - 147쪽

소설가 김훈은 “신념이 가득한자, 자신이 정의롭다고 확신하는 자들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의문이 가득한 자들을 신뢰한다.”고 말했지만 이옥은 신념이 강한 선비도 아니었고 정의를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도 아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이옥과 김려의 우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문체 반정의 이면을 파헤치고 시대정신을 되돌아본 것 같다. 글은 틀 안에 가둘 때 생명을 잃고 마는 것이니 네모난 시대의 사각형 글에서 벗어난 글들이 견딜 수 있었겠는가. 빵빵한 집안의 박지원처럼 놀고먹으며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이옥의 존재감이다. 김려의 환상 속에 잠시 등장하긴 하지만 주인공격인 이옥은 이야기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김려의 이옥의 아들이 주고 받는 대화, 김려의 기억과 현재 상황들이 맞물려 추리소설처럼 정교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청소년들 뿐만 아니라 누구든 재미있게 읽으면서 당대를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할 만하다. 이덕무를 다룬 『책만 보는 바보』와 다른 스타일의 책이지만 조금 더 깊이가 있다.


110509-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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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 개정판 문지 푸른 문학
최시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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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오월이다. 햇살이 눈부신 오후 불곡산에 올랐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산란하는 태양은 등산로에 어른거리며 시원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아파트 숲을 거느린 산자락의 오후는 고즈넉했다. 도서의 허파 역할을 하는 중앙공원 도로 주변은 길 건너편까지 주차장이 되었고 사람들은 발 디딜 틈이 없었지만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를 조금만 벗어나면 어디나 푸른 숲에 갈 수 있는 대한민국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람들도 삶도 그러한가?

학교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전국의 학생들은 한줄서기를 끝냈다. 어린이날과 주말을 끼고 석가탄신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연휴가 계속된다. 돈이 없으면 부모, 자식 노릇하기도 어려운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과 노인들과 모두를 챙겨야 하는 어른들은 또 한숨을 내쉴지 모르겠다. 현실은 언제나 녹록치 않고 세상은 언제나 푸르게 빛나는 것만은 아니지 않는가.

책에는 있는 것 보다 없는 게 더 많으니까(하지만 그런 조용함이나 편안함 따위는 시험에 안 나온다). - 45쪽

아주 오래전에 발표된 청소년 성장 소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반성이기 전에 현실에 대한 성찰로 읽힌다. 모든 인간이 태어나서 겪게 되는 사춘기는 그야말로 생각의 봄이다. 누가 사춘기를 겪지 않고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불행은 그 사춘기를 철저하게 망각하는 데서 시작된다. 아니 어쩌면 지나간 사춘기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후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을 중심에 놓고 있다. 1500여명의 대량 해고 사태를 맞으며 출범한 전교조는 1999년 7월에 합법적인 조직이 되었다. 20년의 세월이 흘러 세상도 변하고 학교도 변했지만 교사와 학생의 관계, 학교를 통해 학생이 배워야 할 가치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더욱 경쟁 위주의 대입 제도와 현실적 가치만을 요구한다. 입시 위주의 교육은 대다수 학생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았다. 교사가 노동자냐 아니냐의 문제를 넘어 참 삶의 주인이 되는 참교육의 깃발을 들었던 교사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소설에 등장하는 ‘왜냐’ 선생은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국어교사다.

주인공 선재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며 사춘기의 방황과 내면적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소설이지만 그 갈등은 현실의 견고한 벽에 기인한다. ‘왜’라는 질문이 끝없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 아이들은 질문을 원천 봉쇄당한다. 그럴듯한 논리와 너를 위한 충고라고 던지는 말들은 모두 어른들의 시선일 뿐이다. 부모없이 세상을 견뎌야 했던 선재의 누나 입장에서 보면 제 앞가림을 해야 할 선재의 생각과 행동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청소년기에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고뇌가 아닌가. 인간은 그 과정을 거쳐 성숙해지고 인간과 사회에 대해 깊은 고민과 성찰을 하지 않는가. 부모가 되면 왜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그 시간을 거쳐 어른이 되지 않았는가.

이 소설의 주인공 선재는 전형적인 사춘기 문학 소년에 불과하다. 현실의 모순을 관찰하는 관찰자에 불과하다. 왜냐 선생이 쫓겨난 후 온몸으로 저항하는 말더듬이 친구, 입시에 번번이 낙방하는 친구, 돈 많은 친구 등 그의 주변에는 우리 주변에서 여전히 흔한 아이들이 등장하지만 선재는 일기체 형식으로 고2에서 고3 여름까지의 시간들을 일기체 형식으로 적어나간다. 기존 질서에 저항할 수도 없고 세상을 버릴 수도 없는 미성숙한 존재로서 살아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이 소설은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스테디셀러로 사랑받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공감을 얻고 이유는 단순하다. 선재의 고민이 여전히 해결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수레바퀴 아래서』 같은 성장소설이 고전이 된 것은 시대와 상황이 변했지만 인간이 겪는 성장통에 대한 공감 때문이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선재가 겪는 방황과 내면적 고통, 현실적 모순에 대한 분노, 미성숙한 존재로서의 한계 등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는 문제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을 통해 국어교육뿐만 아니라 교육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아이들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여전히 객관식 시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내 생각보다 모두가 그렇다고 인정할 만한 생각이 더 중요한 현실에서 한발도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논술시험과 입학사정관제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성적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공정한 경쟁과 개선된 입시 제도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다양한 방식의 교육과 자기만의 삶을 고민할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교사와 학생과 부모가 이 소설을 읽는 방식이 다르듯이 대한민국의 현실과 학교와 교육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적어도 인간을 한 줄로 세워 모든 것을 규격화하고 다양성을 포기하는 교육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데는 동의할 것이다.

소설의 힘은 세다. 선재와 그 친구들이 이제는 어른이 될 만큼 한참 시간이 흘렀다. 세상은 조금 변했을까. 우리들의 교육은 어떻게 변했고 아이들은 또 얼마나 행복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이 아니라 모두 행복한 아이들로 가득한 세상은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세상에는 설명할 수 있는 일보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 108쪽


11050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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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은 시절
공선옥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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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인간의 능력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것들. 이해할 수도 없고 짐작하기도 힘든, 그래서 운명이라고 말해버리는 것들 중 하나가 시간의 흐름이다. 사람이 태어나 나이를 먹고 죽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 그것이 인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을 우주로 확장해 보자. 신산스런 인간의 삶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소설이다. 한 시대를 공유하면서도 인간의 이기적 욕망은 타인의 삶을 짓밟게 된다. 나눔과 배려, 공감과 신뢰는 인간만이 가진 가장 큰 힘이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능력이 아니다.

공선옥의 『꽃 같은 시절』은 천운영의 『생강』과 또 다른 방식의 우리들의 삶을 성찰한다. 공지영의 『도가니』에서 보여주었던 인간의 추악함과 공선옥의 소설에서 보여주는 그들만의 견고한 네트워크는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권력이든 자본이든 가진 자의 지키려는 욕망과 더 가지려는 욕망은 못가진 자의 뺏기지 않으려는 욕망보다 훨씬 집요하고 강력하다.

동물들이 살아가는 정글의 법칙이 사실은 인간 세계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끝없는 경쟁과 탐욕에 눈멀어 타인의 삶에 눈 감아버리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공선옥은 누구보다도 가슴이 뜨거운 작가다. 정겨운 이웃들의 모습을 통해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선옥의 소설은 언제나 색다른 감동을 전해준다. 작가는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다양한 작가의 다양한 이야기들은 저마다 무지개처럼 다른 빛깔로 빛나고 문학은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꽃밭이다.

이번에는 시골 할머니들이 주인공이다. 시골 마을에 돌공장이 들어서면서 벌어지는 시골 마을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다. 언제든 돈이 되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살던 대로 살아가게 내버려 두라는 할머니들의 외침에 우리는 무슨 말로 대답해야 하나.

이 세상에는 돌공장 소리 말고도 지렁이 울음소리도 있다는 것을, 철수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생각하며 영희는 감자밭에 몸을 엎드리고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 108쪽

버려진 집에 스며든 젊은 아낙네와 할머니 그리고 소설을 쓰러 내려왔다가 이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소설가의 이야기를 장편으로 엮어낸 『꽃 같은 시절』은 잔잔한 감동을 주는 슬픈 우리시대의 자화상이다.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을 만한 자극적인 사건이 아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들 삶의 조건과 우리 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삶’을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 할머니들이 가진 마음의 갈피들, 돈과 권력이 조정하는 세상, 버려지는 농촌 문제 등 사회 문제를 다룬 소설이라기 보다는 그저 우리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읽혀도 충분하다.

제목 ‘꽃 같은 시절’은 할머니들이 경찰과 군청에서 ‘디모(데모)’라도 할 수 있는 시절이니 얼마 좋은 시절이냐고 의미로 사용되었다. 아직도 달라지지 않은 대한민국, 아니 자본주의의 현실에 대한 통렬하고 지독한 반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견고한 콘트리트처럼 쉽게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2011년 1월 할머니들은 싸움에서 졌다. 권력은 자본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법과 제도가 대다수 평범한 서민들의 편을 들어 준 적이 없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역사가 잘 알고 있다.

시대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의 영원한 주제일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솜씨에 따라 독자들은 다양하게 반응해 왔다. 무엇보다도 지금, 여기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소설들이 조금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지나간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것도 좋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소설도 좋지만 현실에 발딛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학이 언제나 시대를 반영하고 비판적 시각만 유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과 유리된 문학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공선옥의 장편 『꽃 같은 시절』은 전라도의 방언을 기막히게 담아냈다. 이문구의 『내 몸은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가 충청도 방언의 구수함을 잘 담아 낸 것처럼 이 소설은 지역 방언이 우리 문학을 얼마나 풍성하게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할머니들의 입담은 사실적이고 생생하다. 공선옥이 아니면 쉽게 담아내지 못할 것 같은 문장들이다. 사회 문제를 다루면서도 훈훈하고 따뜻하게 이 소설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은 순전히 작가의 할머니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인간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삶과 죽음은 언제나 우리곁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만 그 경계선을 우리는 언제나 넘을 수 있지만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타인의 삶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무엇인지는 ‘자본과 권력’이라도 예외가 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내가 아닌 너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주 단순하고 지극히 분명한 대답을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작가는 부드러운 목소리도 되묻고 있는 듯하다. 당신의 이웃은 행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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