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백홈
황시운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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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무엇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걸까
난 지금 어디로 쉬지않고 흘러가는가

난 내 삶의 끝을 본적이 있어
내 가슴속은 갑갑해졌어
내 삶을 막은 것은
나의 내일에 대한 두려움
반복됐던 기나긴 날 속에
버려진 내 자신을 본 후~
나는 없었어 그리도 또
내일 조차 없었어
내게 점점 더 크게 더해갔던
이 사회를 탓하던 분노가
마침내 증오가 됐어
진실들은 사라졌어 혀 끝에서~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 MUST COME BACK HOME
거칠은 인생속에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 MUST COME BACK HOME
나를 완성하겠어
다시 하나의 생명이 태어났고
또 다시 부모의 제압은 시작됐지
내겐 사랑이 전혀 없는 걸
내 힘겨운 눈물이 말라버렸지
무모한 거품은 날리고 흠~

주위를 둘러봐 널 기다리고 있어
그래 이제 그만 됐어 나는 하늘을 날고싶었어
아직 우린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자 이제 그 차가운 눈물을 닦고 COME BACK HOME~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지금 어디로
쉬지않고 흘러가는가  

- 서태지와 아이들 '컴백홈'
 


상표를 떼지 않은 옷을 입고 쓰러질 듯 무대를 휘젓는 서태지, 양현석, 이주노의 모습은 등장부터 충격적이었다. 폭발적인 반응과 주목을 받으며 대한민국 가요계를 평정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은 세기말의 문화 코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노래와 몸짓과 이미지는 기존의 가요계의 문법을 뒤흔들었고 그야말로 ‘아이들’의 잠재된 충동과 욕망을 폭발시켰다. 질서와 규범의 파괴는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에 충격을 주었다. 서태지는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교실 이데아’와 ‘컴백홈’의 가사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 더구나 그 때는 어떠했겠는가.

황시운의 장편소설 『컴백홈』은 멈칫거리지 않고 땀 흘린 후에 마시는 이온음료처럼 흡수해버렸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미덕중의 하나가 ‘재미’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일단 재미있다. 쉼 없이 막힘없이 책장이 넘어가게 만드는 능력은 작가의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이다. 서태지 키드라면 아련한 추억에 젖을지 모르지만 소설의 내용은 서태지와 무관하다.

슈퍼울트라 개량돼지라 불리는 박유미는 130kg에 달하는 거구의 왕따 여고생이다. 극단적인 외모를 가진 주인공 유미의 생각과 행동은 출구 없는 현실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초등학교 절친 지은은 고등학생이 되어 일진이 되고 직접 유미를 구타하고 돈을 갈취하면서 우정을 유지하는 기괴한 형태의 친구가 된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히 불량 청소년들의 일탈 행위를 보여주고 그 원인을 사회적 현실로 돌리는 식상한 청소년 소설의 문법에 기대지 않는다. 서태지를 축으로 그의 노래와 환상적 이미지는 유미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가 된다.

다이어트, 안나수이, 프링글스, 다이어트 등 소설에 등장하는 감각적인 소재와 10대 소녀들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이 소설은 절망과 불안에 대한 보고서로 읽힌다. 서태지는 90년대 청소년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희망’은 그저 현실을 견뎌내는 마취제가 될 수 없다. 작가는 어줍잖은 희망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유미가 꿈꾸는 달의 이면을 생각해 보게 한다. 도달할 수 없는, 단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달의 뒷모습은 어떨까. 우리는 어른이 되고 나면 하늘도 달도 별도 쳐다보지 않는다. 코앞에 놓인 현실만 생각한다. 팍팍한 생활 탓이라고 하기엔 슬프지 않은가. 아무리 삶의 무게가 우리의 어깨를 짓누른다 하더라도 말이다.

사람들은 툭하면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들 했다. 그런데 어떤 순간이 적당한 때인지를 가르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살다보면 누구나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걸 알게 되는 삶의 순간이 저마다 정해져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이에 걸맞는 행동과 삶의 패턴이 있다. 그러나 철들지 않겠다는 꿈을 꾸는 것이 유치한 생각일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때’를 알고 그 때에 맞춰 공부를 하고 직업을 선택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노후를 준비하면 행복은 저절로 보장되는 것일까. 과연 인생에서 우리가 찾아야 하는 값진 비밀은 무엇일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고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유미처럼 달에 가고 싶은 마음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서태지와 함께 달에 가려는 유미의 꿈은 이루어질까.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이라는 장석남의 시가 생각난다. 무언가 그리운 것이 있다는 것은 삶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증거다. 유미는 늘 서태지를 그리워하고 지은이를 그리워한다. 가족과 친구로부터 멀어진 유미가 서태지를 그리워하고 달에 가고 싶어하는 것은 어쩌면 생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유일한 방편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유미와 미혼모가 될 지은이를 통해 삶의 비극과 희극이 어떻게 다른지 묻고 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양상은 거리에 있지 않고 내가 걷는 길과 방법에 따라 달라진다.

올해 마흔이 된 서태지는 최근 이지아와의 결혼과 이혼 문제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실 속의 서태지도 유미만큼 괴롭고 힘겨운 시간들을 견뎌낸 것은 아닐까? 유미는 서태지와 함께 달에 가서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아니, 유미는 서태지를 진짜 좋아하긴 한 걸까.

우울한 일탈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은 건강한 웃음과 밝은 모습으로 현실을 그려내지 않는다. 청소년들에게 권하기도 불편하고 성인들이 읽기에도 그리 탐탁하지 않은 면에 대해서 무어라 말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이물스러움은 소설이 현실과 다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소설에서 보여줄 수 있는 상상력과 문장을 이끌어가는 힘이 문제가 아니라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세계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고루한 독자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세계의 문제다. 작가의 말대로 다음부터 점점 더 쉬워졌으면 좋겠다.

모든 일은 처음이 힘들 뿐, 그다음부터는 점점 더 쉬워지게 마련이다. - 222쪽


11052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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