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앞에서 모든 인간은 겸손해 진다. 그래서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는 사람은 내일 죽을 것처럼 현재를 즐긴다. 하지만 순간을 영원으로 빛내는 문자는 인간의 육신과 달리 오랜 시간을 견디고 또 견뎌낸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른다. 문학은 선택적으로 기록된 역사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구체적인 모습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역사는 살아 숨 쉬게 된다. 몇 줄의 기록과 시대적 상황이 작가의 상상력과 만나면 우리는 과거를 볼 수 있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꿈꾸는 문학은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말을 건넨다. 기록과 보존에 부실하여 씨줄과 날줄처럼 한 인물의 삶과 그의 글들이 엮이지 않을 때는 그 빈 공간을 채우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우리는 언제나 행간을 읽어내며 시대를 통찰하고 현재를 조망한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 기록의 재현이 아니라 당대의 삶을 생생하게 되살려내고 싶은 욕망이며 우리가 걸어온 길에 대한 호기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나간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고전은 언제나 우리에게 색다른 즐거움과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설흔의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는 소설의 형식으로 풀어낸 팩션(fact+fiction)이다. 절친한 두 사람의 삶과 글은 서로 얽히고설켜있다. 이옥(1760~1815)과 김려(1766~1821) 바로 그 문제적 인물들이다. 두 사람은 정조의 문체 반정에 연루되어 불행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태도와 그 후의 삶은 사뭇 대조된다. 성리학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했던 18세기에 경박한 소설식 문체인 소품체(小品體)로 글을 썼던 이옥은 천상천하 유아독존 왕의 눈밖에 난다. 그의 삶은 그걸로 끝난 것과 다름없다. 그에 비해 김려는 조금 나았을 뿐 평생 가슴에 멍에를 지고 살았다. 그러면 두 사람의 관계를 상상하게 된 작가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아무도 이옥의 아들이 김려를 찾아와 문집을 내달라는 데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평생 이옥이 쓴 글들을 읽으며 김려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경상도 삼가현으로 귀향 가는 길에 쓴 『남정십편』과 삼가현에서 쓴 『봉성문여』가 대표적인 이옥의 소품이다. 결국 이옥은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다고 볼 수 있다. 이옥에 비하면 평범한 글에 안주해 버린 김려의 회한을 상상하며 작가는 두 사람을 모델로 소설을 썼을 것이다. 문(文)으로 도(道)를 실천한다는 재도론(載道論)이 시대정신이었던 조선에 태어나 재기발랄한 글로 자신의 재능을 감출 수 없었던 이옥의 생애와 사상은 이 소설에서 김려의 관점 재조명된다. 소설적 감동은 이옥이 친구의 귀향지를 따라 방랑한 사실을 그의 아들을 통해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역사적 사실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담아냈지만 이 책은 소설로 읽기에는 로 아쉽거나 혹은 아까운 부분이 많다. 이 책을 보면서 2006년에 나온 『고전문학사의 라이벌』(한겨레출판)을 떠올린 건 자연스런 일이다. 정출헌의 ‘이옥 vs 김려’ 편을 다시 꺼내 뒤적인다. 보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부분들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두 인물이 생동감 있게 살아 숨쉴 수 있도록 영혼을 불어넣은 공은 당연히 작가 설흔에게 돌아간다. 딱딱하고 재미없는 고전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다시 살려내는 일은 후세 사람들의 자연스런 욕망일까? 이옥은 그런 사람이었다. 아무리 빈궁하고 어려워도 자기의 마음이 거절하는 일은 도무지 하지 못하는 사람. - 147쪽 소설가 김훈은 “신념이 가득한자, 자신이 정의롭다고 확신하는 자들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의문이 가득한 자들을 신뢰한다.”고 말했지만 이옥은 신념이 강한 선비도 아니었고 정의를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도 아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이옥과 김려의 우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문체 반정의 이면을 파헤치고 시대정신을 되돌아본 것 같다. 글은 틀 안에 가둘 때 생명을 잃고 마는 것이니 네모난 시대의 사각형 글에서 벗어난 글들이 견딜 수 있었겠는가. 빵빵한 집안의 박지원처럼 놀고먹으며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이옥의 존재감이다. 김려의 환상 속에 잠시 등장하긴 하지만 주인공격인 이옥은 이야기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김려의 이옥의 아들이 주고 받는 대화, 김려의 기억과 현재 상황들이 맞물려 추리소설처럼 정교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청소년들 뿐만 아니라 누구든 재미있게 읽으면서 당대를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할 만하다. 이덕무를 다룬 『책만 보는 바보』와 다른 스타일의 책이지만 조금 더 깊이가 있다. 110509-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