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인간의 능력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것들. 이해할 수도 없고 짐작하기도 힘든, 그래서 운명이라고 말해버리는 것들 중 하나가 시간의 흐름이다. 사람이 태어나 나이를 먹고 죽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 그것이 인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을 우주로 확장해 보자. 신산스런 인간의 삶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소설이다. 한 시대를 공유하면서도 인간의 이기적 욕망은 타인의 삶을 짓밟게 된다. 나눔과 배려, 공감과 신뢰는 인간만이 가진 가장 큰 힘이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능력이 아니다. 공선옥의 『꽃 같은 시절』은 천운영의 『생강』과 또 다른 방식의 우리들의 삶을 성찰한다. 공지영의 『도가니』에서 보여주었던 인간의 추악함과 공선옥의 소설에서 보여주는 그들만의 견고한 네트워크는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권력이든 자본이든 가진 자의 지키려는 욕망과 더 가지려는 욕망은 못가진 자의 뺏기지 않으려는 욕망보다 훨씬 집요하고 강력하다. 동물들이 살아가는 정글의 법칙이 사실은 인간 세계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끝없는 경쟁과 탐욕에 눈멀어 타인의 삶에 눈 감아버리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공선옥은 누구보다도 가슴이 뜨거운 작가다. 정겨운 이웃들의 모습을 통해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선옥의 소설은 언제나 색다른 감동을 전해준다. 작가는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다양한 작가의 다양한 이야기들은 저마다 무지개처럼 다른 빛깔로 빛나고 문학은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꽃밭이다. 이번에는 시골 할머니들이 주인공이다. 시골 마을에 돌공장이 들어서면서 벌어지는 시골 마을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다. 언제든 돈이 되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살던 대로 살아가게 내버려 두라는 할머니들의 외침에 우리는 무슨 말로 대답해야 하나. 이 세상에는 돌공장 소리 말고도 지렁이 울음소리도 있다는 것을, 철수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생각하며 영희는 감자밭에 몸을 엎드리고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 108쪽 버려진 집에 스며든 젊은 아낙네와 할머니 그리고 소설을 쓰러 내려왔다가 이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소설가의 이야기를 장편으로 엮어낸 『꽃 같은 시절』은 잔잔한 감동을 주는 슬픈 우리시대의 자화상이다.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을 만한 자극적인 사건이 아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들 삶의 조건과 우리 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삶’을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 할머니들이 가진 마음의 갈피들, 돈과 권력이 조정하는 세상, 버려지는 농촌 문제 등 사회 문제를 다룬 소설이라기 보다는 그저 우리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읽혀도 충분하다. 제목 ‘꽃 같은 시절’은 할머니들이 경찰과 군청에서 ‘디모(데모)’라도 할 수 있는 시절이니 얼마 좋은 시절이냐고 의미로 사용되었다. 아직도 달라지지 않은 대한민국, 아니 자본주의의 현실에 대한 통렬하고 지독한 반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견고한 콘트리트처럼 쉽게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2011년 1월 할머니들은 싸움에서 졌다. 권력은 자본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법과 제도가 대다수 평범한 서민들의 편을 들어 준 적이 없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역사가 잘 알고 있다. 시대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의 영원한 주제일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솜씨에 따라 독자들은 다양하게 반응해 왔다. 무엇보다도 지금, 여기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소설들이 조금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지나간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것도 좋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소설도 좋지만 현실에 발딛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학이 언제나 시대를 반영하고 비판적 시각만 유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과 유리된 문학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공선옥의 장편 『꽃 같은 시절』은 전라도의 방언을 기막히게 담아냈다. 이문구의 『내 몸은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가 충청도 방언의 구수함을 잘 담아 낸 것처럼 이 소설은 지역 방언이 우리 문학을 얼마나 풍성하게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할머니들의 입담은 사실적이고 생생하다. 공선옥이 아니면 쉽게 담아내지 못할 것 같은 문장들이다. 사회 문제를 다루면서도 훈훈하고 따뜻하게 이 소설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은 순전히 작가의 할머니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인간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삶과 죽음은 언제나 우리곁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만 그 경계선을 우리는 언제나 넘을 수 있지만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타인의 삶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무엇인지는 ‘자본과 권력’이라도 예외가 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내가 아닌 너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주 단순하고 지극히 분명한 대답을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작가는 부드러운 목소리도 되묻고 있는 듯하다. 당신의 이웃은 행복하십니까? 110501-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