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오월이다. 햇살이 눈부신 오후 불곡산에 올랐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산란하는 태양은 등산로에 어른거리며 시원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아파트 숲을 거느린 산자락의 오후는 고즈넉했다. 도서의 허파 역할을 하는 중앙공원 도로 주변은 길 건너편까지 주차장이 되었고 사람들은 발 디딜 틈이 없었지만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를 조금만 벗어나면 어디나 푸른 숲에 갈 수 있는 대한민국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람들도 삶도 그러한가? 학교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전국의 학생들은 한줄서기를 끝냈다. 어린이날과 주말을 끼고 석가탄신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연휴가 계속된다. 돈이 없으면 부모, 자식 노릇하기도 어려운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과 노인들과 모두를 챙겨야 하는 어른들은 또 한숨을 내쉴지 모르겠다. 현실은 언제나 녹록치 않고 세상은 언제나 푸르게 빛나는 것만은 아니지 않는가. 책에는 있는 것 보다 없는 게 더 많으니까(하지만 그런 조용함이나 편안함 따위는 시험에 안 나온다). - 45쪽 아주 오래전에 발표된 청소년 성장 소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반성이기 전에 현실에 대한 성찰로 읽힌다. 모든 인간이 태어나서 겪게 되는 사춘기는 그야말로 생각의 봄이다. 누가 사춘기를 겪지 않고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불행은 그 사춘기를 철저하게 망각하는 데서 시작된다. 아니 어쩌면 지나간 사춘기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후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을 중심에 놓고 있다. 1500여명의 대량 해고 사태를 맞으며 출범한 전교조는 1999년 7월에 합법적인 조직이 되었다. 20년의 세월이 흘러 세상도 변하고 학교도 변했지만 교사와 학생의 관계, 학교를 통해 학생이 배워야 할 가치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더욱 경쟁 위주의 대입 제도와 현실적 가치만을 요구한다. 입시 위주의 교육은 대다수 학생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았다. 교사가 노동자냐 아니냐의 문제를 넘어 참 삶의 주인이 되는 참교육의 깃발을 들었던 교사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소설에 등장하는 ‘왜냐’ 선생은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국어교사다. 주인공 선재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며 사춘기의 방황과 내면적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소설이지만 그 갈등은 현실의 견고한 벽에 기인한다. ‘왜’라는 질문이 끝없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 아이들은 질문을 원천 봉쇄당한다. 그럴듯한 논리와 너를 위한 충고라고 던지는 말들은 모두 어른들의 시선일 뿐이다. 부모없이 세상을 견뎌야 했던 선재의 누나 입장에서 보면 제 앞가림을 해야 할 선재의 생각과 행동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청소년기에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고뇌가 아닌가. 인간은 그 과정을 거쳐 성숙해지고 인간과 사회에 대해 깊은 고민과 성찰을 하지 않는가. 부모가 되면 왜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그 시간을 거쳐 어른이 되지 않았는가. 이 소설의 주인공 선재는 전형적인 사춘기 문학 소년에 불과하다. 현실의 모순을 관찰하는 관찰자에 불과하다. 왜냐 선생이 쫓겨난 후 온몸으로 저항하는 말더듬이 친구, 입시에 번번이 낙방하는 친구, 돈 많은 친구 등 그의 주변에는 우리 주변에서 여전히 흔한 아이들이 등장하지만 선재는 일기체 형식으로 고2에서 고3 여름까지의 시간들을 일기체 형식으로 적어나간다. 기존 질서에 저항할 수도 없고 세상을 버릴 수도 없는 미성숙한 존재로서 살아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이 소설은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스테디셀러로 사랑받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공감을 얻고 이유는 단순하다. 선재의 고민이 여전히 해결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수레바퀴 아래서』 같은 성장소설이 고전이 된 것은 시대와 상황이 변했지만 인간이 겪는 성장통에 대한 공감 때문이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선재가 겪는 방황과 내면적 고통, 현실적 모순에 대한 분노, 미성숙한 존재로서의 한계 등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는 문제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을 통해 국어교육뿐만 아니라 교육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아이들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여전히 객관식 시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내 생각보다 모두가 그렇다고 인정할 만한 생각이 더 중요한 현실에서 한발도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논술시험과 입학사정관제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성적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공정한 경쟁과 개선된 입시 제도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다양한 방식의 교육과 자기만의 삶을 고민할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교사와 학생과 부모가 이 소설을 읽는 방식이 다르듯이 대한민국의 현실과 학교와 교육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적어도 인간을 한 줄로 세워 모든 것을 규격화하고 다양성을 포기하는 교육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데는 동의할 것이다. 소설의 힘은 세다. 선재와 그 친구들이 이제는 어른이 될 만큼 한참 시간이 흘렀다. 세상은 조금 변했을까. 우리들의 교육은 어떻게 변했고 아이들은 또 얼마나 행복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이 아니라 모두 행복한 아이들로 가득한 세상은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세상에는 설명할 수 있는 일보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 108쪽 110505-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