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에게 길을 묻다 - 안네의 일기
조지 스티븐스 감독, 밀리 퍼킨스 외 출연 / 유비윈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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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만큼 널리 알려졌지만 그다지 읽히지 않은 책은 드물다. 왜 그럴까? 생각만큼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나와 직접 관련 있는 사람이 썼을 때 뿐이다. 생판 모르는 몇 십년전의 한 소녀가 쓴 일기를 꼭 읽어야 할 이유 따위는 없다.

 

그러나 이 일기는 단순한 하루돌아보기가 아니다. 나치를 피해 숨어 살기 이전부터 체포되기 직전까지 겪은 온갖 감정이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다. 사실 나치에 대한 증오는 그다지 많지 않고 도리어 사춘기 소녀가 겪을만한 질투와 짜증이 주를 이룬다. 안네의 일기에 위대한 이유는 그가 나치 저항운동주의자가 아니라 평범한 소녀였기 때문이다. 곧 극한 상황에서도 이어지는 인간의 자유로운 감정을 숨기기 않았기에 문학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영화 <안네의 일기>는 숨막힌다. 흑백에 오랜 러닝타임 때문만은 아니다. 폐쇄공포증을 일으킬 정도의 좁은 다락방에서 온 식구가 부대껴 살아가는 일상의 갑갑함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오죽했으면 차라리 잡혀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정도다. 실제로 영화속 인물들도 그러한 감정을 느꼈다. 내내 초조함에 신경이 곤두서지냈지만 정작 체포되었을 때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이 영화는 악몽이 다시는 반복되서는 안된다는 교훈도 주지만 폐쇄공포증에 빠진 인간군상을 탁월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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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에게 길을 묻다 - 오 헨리의 풀하우스 (오 헨리 단편집)
헨리 해터웨이 감독, 안네 배스터 출연 / 유비윈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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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설은 많지만 훌륭한 이야기는 드물다. 오 헨리의 글은 그 드문 이야기 가운데에서도 정점에 있다. 그는 인간은 어리석지만 스스로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묘한 현명함을 발휘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감옥 투옥의 경험이 없었다면 아이러니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 헨리의 풀 하우스>는 그의 단편 다섯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존 스타인백이 해설자로 나와 설명을 곁들이는 매우 고전적인 방식이 지금은 의외로 참신하게 느껴진다. 첫 이야기는 <되찾은 개심>이다. 추운 겨울 감옥에 들어가 석달 정도 들어가 나올 생각으로 사소한 범죄를 저지르는 노인이 주인공이다. 어쩐 일인지 그의 의도는 죄다 실패로 돌아가고 추위를 피해 들어간 성당에서 뒤늦게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뿌듯해진 마음으로 성당을 나서는 그에게 경찰이 다가와 말을 건다.

 

"당신 부랑자지."

 

이 한마디로 노인은 즉결심판대에 오르고 그토록 바라던 90일 감옥행을 선고받는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인가? 역설적인 전개를 마무리짓는 강력한 반전의 펀치라인이 관객들의 마음을 얼게 만든다. 만약 누군가 교훈따위를 얻으려 한다면 그건 오 헨리에게 태클을 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그저 인생은 부조리하며 아이러니 투성이임을 드러낼 뿐이다.

 

대작가로 성공한 후에도 오헨리는 이런 저런 고난을 겪었다. 특히 아내 때문에 처한 불행은 그를 항상 곤경에 빠트렸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슬픔은 글의 원천이 되었고 독자를 즐겁게 해주었다.

 

덧붙이는 말

 

풀하우스에서 소개하는 오 헨리의 단편은 "경찰관과 찬송가", "나팔소리", "마지막 잎새", "붉은 추장의 몸값", "크리스마스 선물" 이다. 어느 것 하나 빼트리기 어려운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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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든
모건 매튜스 감독, 샐리 호킨스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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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들을 두고 상투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너희는 좋겠다. 뭐가 걱정이냐. 학교가서 공부하고 파하면 친구들과 뛰어놀고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해주는 밥 먹고. 아이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무기력감에 시달린다. 경제적 의존상태는 정신적 독립성까지 갉아먹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아이들은 어른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모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공부는 아이들의 직업이다. 거의 모든 평가가 시험점수로 이루어진다. 공부는 부모의 요구사항이기도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시험의 노예가 된다. 애써 아닌척 해보았자 소용이 없다. 자존감이 떨어져 어긋날 뿐이다. 더욱 큰 문제는 공부에 목숨건 아이들간의 경쟁이다. 특히 수학처럼 우열이 명확히 드러나는 분야에서는 더하다. 

 

<네이든>은 수학 영재들의 이야기다. 어려서부터 일찌감치 신동소리를 듣는 학생들끼리 경쟁이니 그 치열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게다가 예민한 나이때니 1점때문에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살벌하다. 과연 비인간적인 점수 경쟁이 필요한가?

 

답은 모른다.  경쟁은 원하든 원치않든 자연법칙의 일부다. 곧 뛰어난 종이 살아남아 후손에 유전자를 전한다. 얼치기 평등교육은 도리어 창의력을 죽이는 짓이다. <네이든>은 치열한 경쟁 이면에 도사린 수학의 순수한 세계를 놓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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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번 산 고양이 비룡소의 그림동화 83
사노 요코 글 그림, 김난주 옮김 / 비룡소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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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읽어도 좋은 아니 반드시 보아야 하는 그림 책이 있다면 그건 <100만 번 산 고양이>다. 몇 번을 죽어도 살아나는 능력을 가진 고양이에게 죽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 뭐 어때 다시 살아날텐데. 인생에 대한 흥미는 줄어들고 모든게 하찮게 여겨지던 고양이가 뜻밖의 사건을 마주친다. 사랑에 빠진 것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저 여인과 혹은 그 남자와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친다.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는 모르면서. 사랑하던 암고양이가 죽자 드디어 죽음의 의미를 알게 된다. 아,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구나. 그동안 나는 얼마나 그 강을 우습게 여겼던가.

 

아이들은 이 동화를 보고 살짝 무서울지 모르겠다. 죽음의 순간이 지나치게 생생하게 묘사되기 때문이다. 아니면 재미있어 할지도. 죽음은 별 거 아니야, 라는 특유의 철학이 느껴저서. 반면 어른은 두렵다. 특히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적은 나이대에서는 남은 삶동안 무엇에 의미를 두어야할지 몰라 방황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저자인 사노 요코는 그림책 저자로 출발했지만 일급 에세이스트로서도 평판이 높다. 그의 글은 날 것 그대로여서 이리 저리 꼬아 있는 척하는 인간에게 한방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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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2: 겨울과 봄
모리 준이치 감독, 마츠오카 마유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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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겨울과 봄>이 돌아왔다. 계절별로 단막극 형식의 영화를 만든다는 원래

뜻을 이룬 셈이다. 여름과 가을이 적응기간이어다면 겨울과 봄은 한껏 무르익었다는 느낌을 준다. 시골 생활도 씩씩하고 의연하게 해나간다. 왠지 떠나버릴 것 같은 불안감도 엿보였지만 봄을 맞는 주인공은 결국 고향에 눌러앉고 결혼까지 한다. 상대가 누군지는 미스터리로 남겨놓았지만.  

 

일본이나 우리나 시골에 대한 동경은 여전하다. 원래대로의 모습이 남아 있는 곳이 없어 더더욱 그런 것일지로 모르겠다. 그러나 막상 시골에 가서 살라고 하면 다들 멈칫한다. 당장은 일자리가 문제라고 하지만 사실은 심심하고 사생활없는 그곳에서 버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적 갈등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었지만 역시 일본 보수는 구제불능이다. 회사생활하며 겪은 스트레스를 상사 욕을 하며 푸는 손녀에게 버럭 화를 내며 남을 훙보지 말라며 할아버지가 등장하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장면을 삽입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더이상의 후속편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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