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의 힘
가이 필드 지음, 홍주연 옮김 / 더숲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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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얼리 어답터였다. 남들이 다 필기구로 직접 써서 과제물을 제출할 때 프린터로 내서 주변의 놀라움을 사기도 했고, 삐삐라는 신문물을 가장 먼저 착용하여 무슨 정보기관 근무하는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지금은 정반대다. 휴대폰도 구형 투지폰이고 엠프쓰리 겸용 라디로을 애용하고 노트와 필기구를 꼬박꼬박 챙긴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여전히 연필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연필만큼 고전적인 필기구도 없다. 중국의 고대로까지 올라가니 역사는 몇 천년이 족히 넘는 역사다. 그만큼 이야기거리도 많다. 내게 가장 인상적인 스토리는 빈센트 반 고흐가 애용했다는 파버카스텔의 여정이다. 아직도 독일의 자랑이니 대단하다고 밖에 할말이 없다.

 

아마 디지털 할아버지 시대가 오더라도 연필은 위용을 잃지 않을 것이다. 연필처럼 아날로그적이면고 동시에 첨단 제품은 없기 때문이다. 우선 연필은 어떠한 동력도 필요하지 않다. 곧 모든 편리한 제품이 전기와 연결되어 있는 반면 연필은 손만 있으면 어떨때는 입으로 혹은 발로도 쓸 수가 있다.

 

표현력 또한 자유자재다. 연필로는 글도 쓸 수 있고 그림도 그릴 수 있고 낙서도 할 수 있다. 어떤 도구라도 할 수 없는 자유를 선사하는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싸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비싼 연필도 한 자루에 천 원 내외이니, 물론 미술용 연필은 조금 더 비싸지만, 사치도 이런 사치가 없다.

 

<연필의 힘>은 연필에 대한 찬가이자 연애서다. 단순한 동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활용법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가. 나같은 연필애호가에게는 두고두고 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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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달콤한 인생 : 풀슬립 일반판
김지운 감독, 이병헌 외 출연 / 노바미디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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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이병헌을 탄생시킨 영화는 <달콤한 인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자들에서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장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후까씨, 일명 겉멋, 가 어울리는 배우는 매우 드물다.

 

직업이 조직의 해결사인 사내. 보스의 애인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고 그녀 주변에 맴돈다. 연정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러나 어찌어찌 그 사실을 알게 된 대장을 이병헌을 땅속에 파묻어버리는데. 기어코 살아난 그는 드디어 복수의 날을 맞이하는데.

 

줄거리를 짧게 정리하고 보니 신파도 이런 신파가 없다. 만약 스타일이 살지 않았다면 이런 영화는 삼류에 머물렀을 것이다. 이병현과 김영철, 그리고 신민아의 조합이 싸구려로 떨어질뻔한 위기를 구해냈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준조역 혹은 단역에 불과했던 황정민과 오달수는 훗날 대배우(?)가 될 자질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그런데 에릭은 왜 나온거지? 상영 당시에도 논란이고 지금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캐슽팅이다. 역할도 애매하고.

 

덧붙이는 말

 

이 영화의 대사 가운데 하나인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는 한동안 유행했다. 김영철의 캐릭터를 압축하는 표현이었다. 영화를 찬찬히 다시 보고 나서 느낀 감정은 일종의 테스트였다는 생각이 든다. 곧 애첩의 일탈을 이미 눈치채고 이병헌을 붙여 보고를 하는지 안하는지 알아본 것이다. 일종의 충성도 측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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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놀로와 마법의 책
호르헤 R. 구티에레즈 감독, 디에고 루나 외 목소리 / 20세기폭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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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가장 큰 장점은 상상력의 극대화다. 어떤 첨단 기법을 동원한 영화에서도 구현하기 어려운 자연을 너끈하게 소화해낸다. 아이들이 애니메이셔에 몰두하는 이유는 현실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뇌구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소재는? 안타깝게도 제한적이다. 애니가 여전히 아이들 혹은 청소년들이나 좋아하는 장르로 인식되어 온 이유는 상상력의 부재가 아니라 주제가 협소하기 때문이다.

 

<마놀라와 마법의 책>은 파격적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눈에 광채만 사라졌을 뿐 다들 죽고 나서도 일상적인 생활을 이어간다. 아무렇지도 않게 웃고 떠들고 싸우는 그들을 보며 괜히 으스스해진다. 행여 나도 죽고 나서 살아 있을 때처럼 매일 저런 짓을 해야 한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신이, 진정 신이 있다면, 인간에게 죽음을 부여한 이유는 부질없는 삶의 말과 행동을 더이상은 하지 말라는 경고, 혹은 최후의 선심은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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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된 파테마
요시우라 야스히로 감독, 후지이 유키요 외 목소리 / 아트서비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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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청소년수련관에서는 매주 화요일 저녁 영화를 틀어준다. 아주 옛날 영화는 아니고 극장에서 상연된 지 3, 4년 지난 것들이 주다. 선정 기준은 들쯕날쭉이다. 인터스텔라가 등장했다가 다음주에 뽀로로가 바톤터치하는 식이다. 디브이드를 상영하는 거라 화질이야 큰 기대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옛날식 극장이라 화면도 크고 사운드도 들을만하다. 

 

<거꾸로 된 파테마>는 볼까말까 망설이다 들어가서 본 애니메이션이다. 제목만 봐서는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종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니 내용도 복잡해서 스토리를 쫓아가기가 어려웠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고 게다가 세상이 뒤짚어져 있다니. 마치 꿈속에서 본 장면을 만화로 옮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감상평을 접하니 호평 일색이었다. 단순한 업사이드 다운이 아니라 당연한 듯 여겨지는 지금 사회에 대한 삐뜰어진 감정을 드러냈다는 식이었다. 글쎄? 내가 생각하기에는 현실비판 의식이 강했다기보다는 현대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아닌가 싶다. 곧 우연히 빠지게 된 지하세계에서 다양한 군상을 만나 모험을 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과도한 해석주의가 유행이다. <신세기 에반갤리온>이 불꽃을 당긴 느낌인데 그래서인제 감독들조차 잔뜩 목에 힘이 들어간 느낌이다. 영화의 주인은 고객임을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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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 장인: 지로의 꿈
데이빗 겔브 감독, 오노 지로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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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은 손을 쓰는 사람이다. 머리보다는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각을 온 몸으로 구현해내야 한다. 횟집 요리사는 자격이 있다. 생선을 다듬어 회를 뜨는 일은 매우 어렵다. 물론 대충 발라내는 거야 일정 정도 노력을 하면 해낼 수 있지만 정교하게 회맛을 내기란 일정 경지에 올라야만 가능하다.

 

지로는 달인이다. 한 자리에서 성실하게 스시를 만든다. 실력에 앞서 존경스러운 점은 늘 한결같이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는 사실이다. 빌딩 지하 좁은 요리집에서 몇 십년간 같은 일을 하면서도 즐거움을 유지하려면 스시에 미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텐데.

 

글을 쓰다보면 연관된 생각이 떠올라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하고 다른 글을 집필할 때도 있다. 그렇게 되면 십중팔구 둘 다 망친다. 그럴 때 즉흥적인 글감은 제목만 적어두고 일단 쓰던 글부터 마무리한다. <스시 장인>도 문득 떠올랐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우선 타이틀만 달아놓고 쓰던 글을 끝내면 다시 시작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해서 일을 마친고 나니 다시 새로운 글을 쓰기가 싫어졌다. 조금 쉬었다 하지 라고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다보니 몸도 마음도 게을러졌다. 그 때 다시 지로를 떠올렸다. 지로라면 어떻게 했을까? 군말없이 앞치마를 고쳐 매고 피곤한 내색도 없이 바로 칼을 들었겠지. 나도 불평없이 노트북을 켜고 키보드를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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