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벤허
티무르 베크맘베토프 감독, 모건 프리먼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벤허>는 사골국이다. 때만 되면 욹어먹느라 이미 뼈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사운드 오브 뮤직>과 쌍벽이다. 영원히 변치 않을 것처럼 보여졌던 아성이나 다름없었다.

 

새로 나온 <벤허>는 결코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들기는 심정으로 제작되었다. 제목까지 똑같이 정해 한번 구 벤허와 겨뤄보자는 패기가 돋보였다. 동시에 원작에 대한 오마주도 잊지 않았다.

 

평가는 엇갈렸다. 역시 오리지널을 능가하는 작품은 나오기 힘들다, 라는 주장과 세련되고 스마트한 멋진 벤허였다는 칭찬도 있었다. 나는 후자쪽이다. 구 벤허는 소설을 충실히 따른다. 참고로 벤허는 소설이 원작이다. 종교적 색채가 농후하다. 모든 고난과 괴로움은 예수의 구원으로 해소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반면 신 벤허는 기독교적 요소보다 인물들간의 갈등과 근원을 세심하게 보여준다. 실제로 구 벤허에서는 유대인 귀족 벤허와 로마인 메살라와의 관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곧 절친지었던 두 사람이 어떻게 원수가 되고 다시 화해를 하는지가 애매하다. 신 벤허에서는 구 벤허에서 대충 넘겼던 두 인물간의 변천과정을 자세하게 보여주어 기존의 궁금증을 해소했다.

 

그러나 아쉬움도 크다. 뭐니뭐니해도 전차장면의 박진감은 예전 것이 훨씬 좋았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특수효과 기술의 발전속도를 볼 때 1959년에 만들어진 벤허가 훨씬 밋밋하게 보여야 마땅한데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도리어 신 벤허가 밋밋하게 보였다. 대체 이유가 뭘까? 지나친 따라하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말해 구 벤허의 전차씬이 워낙 강렬하다 보니 달리 전개할 엄두가 나지 않았으리라. 실제 부가영상을 보더라도 감독 및 제작진이 이 문제 때문에 고민을 거듭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인절한 것은 과거를 강물에 떠내려보내지 않고 새롭게 재해석하려는 용기다. 국물조차 말라 나중엔 건져먹을 것조차 사라진 사골국이 되지 않기 위한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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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걷는 남자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조셉 고든-레빗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16년 2월
평점 :
일시품절


영화는 현실이 아니다. 아무리 실화에 근거했다고 하더라도 극적인 장치를 만들어 낸 가짜다. 극장을 벗어나는 순간 상상은 사라진다.

 

<하늘을 걷는 남자>는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쌘터를 줄로 연결하여 건너는 사내의 이야기다. 지금은 사라진 일명 쌍동이 빌딩을 오고가겠다는 발상은 당시에도 지금도 황당하고 허무맹랑하다. 게다가 그물망도 설치하지 않은 채. 당연히 불법이다.

 

영화 제작자라면 탐이 날만한 소재다. 문제는 빌딩 사이를 건너기 전 스토리를 어떻게 끌어내느냐다. 곧 대체 왜 필립은 공중을 날고 싶어했는지 설득력을 부과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영화는 강력한 동기를 보여주지 못했다. 서커스 활동을 하며 끊임없이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고는 하지만 단지 그 이유때문에 위험함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뭔가 다른 요인이 분명히 있는데.

 

만약 다큐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영화를 보았다면 꽤 잘 만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논픽션은 픽션이 미처 살피지 못한 세세한 구석을 잘 잡아낸다. 물론 아찔한 광경은 덜했지만. 영화를 보고 뭔가 미진한 점을 느끼신 분들은 꼭 다큐멘터리를 접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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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즈 러너
웨스 볼 감독, 딜런 오브라이언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눈을 뜨고 일어나보니 딴세상이다. 게다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여지저기서 다그쳐댄다. 나와 임마. 엉금엉금 기어서 나가 보니 주변은 황량하다. 누군가 외친다. 뛰어, 죽기 싫으면 빨리. 그 말이 총알이 되어 나는 달리기 시작한다. 숨이 턱에 차는 줄도 모르고.

 

<메이즈 러너>는 고전적인 방식의 영화다. 주인공을 낯선 곳에 던져놓고는 스스로 헤어나오게 한다. 결국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해내지만 그 과정은 절대 쉽지 않다. 죽을 고비를 수도없이 넘는다. 관객들은 어느새 동화되어 등장인물들을 응원하게 된다.

 

소년들이 전면에 나서는 이야기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15소년 표류기> 같은 고전부터 인간의 악마성을 드러낸 <파리대왕>에 이르기까지. <메이즈 러너>도 마찬가지 부류지만 다른점은 현대적으로 각색되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게임방식을 따르고 있다. 곧 일정한 한계를 주고 그 단계를 넘어야만 다음 스케이지로 넘어가는 식이다. 오락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은 전개다.

 

그러나 한계 또한 명확하다. 아이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려지고 나서는 눈에 띄게 이야기의 흡입력이 떨어진다. 내가 왜 달려야하는지 이유도 없이 뛰기만 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공허감이 밀려든다. 물론 원작에서 묘사한 베경이나 설정을 큰 화면으로 보는 즐거움은 있지만 이 또한 금세 익숙해지고 나면 그저 그렇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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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헌트
토마스 빈터베르크 감독, 매즈 미켈슨 외 출연 / 하은미디어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전혀 갖지 않고 극장에 가는 것은 모험에 가깝다. 말 그래도 모 아니면 도다. 깜짝 놀랄만한 명작이거나 돈 주고 보기도 아까운 쓰레기거나. <더 헌트>는 전자였다. 덴마크 영화라는 것도 깐느 영하제에서 극찬을 받았다는 사실도 모른채 그저 시간이 남아 보았다.

 

첫 장면부터 예사롭지 않다. 중년 남자들이 마치 어린시절로 돌아간듯 흥겹게 어울려 노는 장면이 불안하게 전개된다. 아니나 다를까 학교가 폐쇄되는 바람에 유치원에서 임시로 일하게 된 주인공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다. 아동 성학대. 여자 아이 앞에서 심볼을 드러낸채 유사성행위를 했다는 이유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헷갈리기 시작한다. 분명히 화면에서는 남자가 무죄임을 강변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혹시하는. 감독은 이 점을 노렸다. 자신이 직접 보거나 듣지 않았지만 동네 사람들을 포함하여 친한 친구들까지 그를 의심한다.

 

좋은 영화의 두 가지 기준은 딜레마와 아이러니다. 곧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야 한다. 또한 고심껏에 내린 결정이 뜻밖이어야 한다. <더 헌트>는 이 조건을 충족하고도 남는다. 남자는 선택을 해야 한다. 조용히 물러나는 선에서 매듭을 짓느냐, 아니면 끝까지 싸우느냐.

 

그러나 이미 결정은 내려졌다. 아무리 죄가 없음이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그는 죄인이다. 영원한 낙인이 찍혔다. 어찌어찌 일상으로 돌아와 아무일 없던 것처럼 어울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누군가는 그를 한없이 역겨워한다. 그리고 총알을 날린다.

 

덧붙이는 말

 

사회학은 쓸모없는 학문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연과학이 우주와 생명의 원리를 따지고 심리학이나 철학이 인간 본연의 마음을 헤어리는데 반해 사회학은 중간에 걸쳐 이도저도 아닌 용어들만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학문으로 살아남으려면 <더 헌트>같은 영화를 교재로 삼아야 한다. 이 영화처럼 낙인이론labeling theory을 사실적으로 드러낸 작품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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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사이드 스쿼드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 자레드 레토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특수효과 기술의 발달로 가장 큰 덕을 본 영화가 있다면 단연 마블 시리즈다. 어찌보면 황당무개한 말 그대로 만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을 큰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인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는 낯설었던 아이언 맨이나 아메리칸 솔져가 마블 영화 덕에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반면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았던 슈퍼맨이나 배트맨은 자체 캐릭터로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관련 만화는 크게 떠오르지 않았다. 마블에 한수 밀린 탓이 크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디씨가 마블에 대항하기 위해 작심하고 만든 영화다. 원작에 익숙한 분들은 환호하겠지만 사실 모두 왠지 거리감이 느껴진다. 물론 처음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곰곰 생각해보니 전체적으로 어둡다. 마치 배경이 배트맨의 고담시를 연상시킨다고나 할까?

 

등장인물들간의 갈등 구조도 마블만큼 극적이지 않다. 쭉 나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헐리 퀸 정도가 좀 튈 뿐 다른 영웅들은 주인공을 처음 해본 조역들처럼 쭈삣쭈삣거린다. 심지어 월 스미스조차. 앤딩 컷이 올라가고 후속편이 나올 것임을 암시하고 있지만 과연 마블처럼 애타게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팬들이 얼마나 될지는 의심스럽다. 영화 제목초럼 자살골을 넣은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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