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의 숏컷 - 개정 증보판
김지운 지음 / 마음산책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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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중에는 작가 못지 않게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김지운도 그 중 한명이다. 그의 영화는 독특한 유머가 있다. 뭔가 극적이고 어려운 일을 해내 다음 별 것 아닌 일에 허당짓을 하는 식이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주인공들이 대표적이다. 최근작 <밀정>은 너무 진지했다.

 

<김지운의 숏컷>은 짧은 글들을 모은 책이다.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장르가 다양한 생각의 파편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겠다. 2006년에 나온 책임을 감안하면 올드한 느낌을 줘야 마땅한데 희한하게 지금 읽어도 참신한다. 시대를 타지 않는 자신만의 개성이 강하다는 반증이다. 감독도 밝혔듯이 백수생활을 오래하며 갈고 닦은 내공의 덕이 아닌가 싶다.

 

불행하게도(?) 김지운 감독이 비주류이던 시대가 주류가 되고 말았다. 청년 백수는 넘쳐나고 희망을 사라지고 무기력한 인간들이 좀비처럼 활개치고 있다. 소수일때는 그저 쭈그려있으면 되지만 수가 많아지다보니 당당하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게으르면서 예민한 백수들은 설 땅을 잃고 뭐라도 외쳐야 되나라는 좌괴감을 느낀다.

 

시간이 많고 생각이 많아지면 예민해진다. 그 예민함의 칼날을 단 한번도 휘두리지 못하고 방바닥을 뒹구는 인생들에게 김지운 감독은 한마디한다. 케이크를 바라보는 것과 먹는 것은 다르다고. 더이상 이러쿵 저러쿵 남이 만들어 놓은 것에 말을 내뱉지 말고 어설퍼도 좋으니 자신만의 무엇인가를 창작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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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저블 사인
마릴린 아그렐로 감독, 제시카 알바 외 출연 / 다일리컴퍼니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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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터 9 가운데 가장 근사한 숫자를 떠올려보시라. 어떤 숫자든 답을 내놓는 사람은 인생을 헛살지 않았다, 라고 까지는 아니지만 삶이 마냥 지루하지많은 않았다는 증거다. 나는 4다. 야구를 좋아하는 터라 4번 타자가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유승민 후보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인비저블 사인>은 말이나 행동보다 숫자가 편한 사람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수학자인 제시카 알바는 어렸을 때부터 숫자에 친숙했다. 이런 아이는 흔히 사회생할에 어려움을 겪는데 역시나 혼자 틀어박혀 있길 좋아한다. 아버지가 불치병에 걸리자 그 증세는 더 도지고 병구안을 핑계로 세상과 담을 쌓는다. 다행히(?)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어머니가 딸을 발로 뻥 차 사회로 내보내는데 그녀가 억지로 일하게 된 직장은 초등학교 산수 선생이었다.

 

이후 영화는 뻔한 결말로 치닫는다. 학교에서 만난 화학 선생과 사랑에 빠지고 아이들과 티격태격하다 천직임을 느낀다. 역시 제시카 알바답다. 아주 살짝 자기 세상에 빠진 아버지를 비난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곁가지에 머문다. 결국 수학 천재보다는 남들과 잘 어울리는 평범한 사람이 훨씬 좋다는 이야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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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엔드 오브 더 투어
제임스 폰솔트 감독, 제이슨 시걸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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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작가가 되고 싶어한다. 딱히 어려운 것도 아니다. 연필과 종이 아니면 노트북이나 컴퓨터만 있으면 된다. 어쩌면 만만해 보이기에 아무나 하고자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입학은 쉬워도 졸업은 죽도록 어렵다는 마법학교처럼 좋은 글을 쓰는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특히 작가들 세계에서는.

 

<여행의 끝, 굳이 디 엔드 어브 더 투어 라고 원어를 그대로 써야 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은 유명 작가의 취재기를 담은 영화다. 구체적으로 롤링스톤지의 기자가 천재작가와 며칠을 함께 보내며 느낀 소감을 소개한다. 어쩌면 매우 지루한 이야기지만 작가들 혹은 예술세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눈빛을 반짝일지도 모른다. 혹시 내가 모르는 창작의 비법이 있을지도 몰라하면서.

 

정답은 안타깝게도 타고나야 한다는 사실. 그저 그렇게 태어난 것일 뿐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서 불멸의 작품을 남기는 건 아니다. 문제는 천재 작가들은 왜 그런 자신을 다들 칭송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온전한 삷이 불가능한데 말이다. 결국 작가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불멸이 된다.

 

그럼에도 작가가 되고 싶다면 자신의 머리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부터 자세히 살펴보시라. 정말 말도 안되는 아니면 도덕의 선쯤 가뿐이 뛰어 넘는 생각이 마구 넘쳐난다면 당신은 작가의 자질이 있다. 놀라지 말고 차근차근 그걸 문장으로 옮겨보시라.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휴대폰의 녹음 버튼을 누르고 생생하게 떠오르는 풍경을 목소리로 전달하면 된다. 글쓰기는 나중에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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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내밀한 역사
테오도르 젤딘 지음, 김태우 옮김 / 강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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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선입견 중에 학문에 대한 편견만큼 강력한 것도 없다. 가설은 명확해야 하고 논리는 정연해야 하며 문장은 군더더기없이 깔끔해야 하고 결론은 빼도박도 못할정도로 확고해야 한다. 심지어 인간의 언어도 써서 안된다. 숫자와 수식만이 엄밀함의 대명사다.

 

과연 그럴까? 인문이나 사회학에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우스꽝스러운 짓이 가능하기는 할까? 독재국가에서나 감행할만한 단일국정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정부에 부역자로 앞장선 역사학자들이 자신들의 전문성을 믿어달라고 강변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짓인가?

 

시어도어 젤딘은 엿같은 금기를 통쾌하게 깨트린다. 첫 문장부터.

 

"제 인생은 실패했습니다." 이것이 자신의 삶에 대한 줄리엣의 판결이다.

 

그 어떤 눈문도 이렇게 시작한 적은 없다. 바로 아웃이다. 이건 통과여부를 떠나 자격이 없습니다, 라고 되돌려보낼 것이다. 그러나 다음 문장을 조금만 더 읽어보면 이런 판단이야말로 얼마나 어이없는 오만인지 바로 깨닫게 된다.

 

물론 그녀는 좀처럼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그녀의 인생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물론 달라질 수 있었다. 인류의 역사도 달라질 수 있었으니까?

 

인간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끌고 나간다. 개인과 사회과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고 설켜있다. 이 관계를 풀지 않는 학자는 자격이 없다. 아무리 우주를 떠들고 경제수치를 외우고 바다밑 세상을 탐험해도 자신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구름위의 한담에 불과하다.

 

젤딘의 시도는 나같은 사람에게 희망을 준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글이란 좋은 글과 나쁜 글이 있는게 아니라 잘 쓴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이 있을 뿐이다. 논문이니 소설이니 수필이니 하는 장르가 중요한게 아니라 얼마나 잘 쓰느냐가 생명이다. 짤 쓴 글은 읽는 이를 공강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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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발견 - 우리 삶을 가치 있고 위대하게 만드는 28가지 질문
시어도어 젤딘 지음, 문희경 옮김 / 어크로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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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면 거창한 인생 회고담 같지만 사실 자세히 읽어보면 인간의 여러 갈레를 세심하게 보듬고 있다. 사람이란 어리석으며 그 누구도 함부로 예측 불가능하다.

 

사이도어 젤던은 전작 <인간의 내밀한 역사>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학자다. 현대 문명이 이미 익숙해진 요즘, 더 나아가 미래사회가 바로 코앞이라는 현실에서도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인간의 본성과 관계에 대해 그처럼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 책은 우리의 삶을 가치있고 위대하게 만드는 28가지 질문들을 담고 있다. '헛된 삶이란 무엇인가' '자살하는 방법은 얼마나 많을까' '예측하려 하거나 걱정하지 않고 달리 미래를 생각할 방법이 있을까' 언뜻 보기만 해도 범상치 않은 물음들이다. 그럼에도 누구나 한번쯤은 심각하게 고민해보았을 주제들이다.

 

저자는 쉽게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인류는 그동안 수많은 정답을 찾기 위해 헤매기만 했을 뿐 진정한 답을 이끌어낸 적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으라는 말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다움을 발견하는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정해진 목적지는 없지만 일단 출발하면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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